논단과 현장  | 제4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작

 

변신하는 리바이어선과 감정의 정치

 

 

박가분

1987년생. 고려대 경제학과 대학원 재학중. 저서로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일베의 사상』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등이 있음. paxwonik@naver.com

 

 

1. SNS와 반응사회

 

『피로사회』(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2)라는 저작이 인문학 저서로서 이례적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사회’라는 유사한 저작이 줄을 잇고 있다. 이는 그만큼 독자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상에 대한 진단과 방향제시에 목말라하는 방증이다. 김종엽(金鍾曄)은 이러한 세태를 “사회를 말하는 사회”1)라는 개념으로 반성적인 차원에서 규정지은 뒤 사회구조의 역사적 변천을 등한시한 채 남발되는 시대규정이 인상비평의 나열과 일면적인 분석에 그칠 것을 우려한다.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서, 본고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모바일폰의 보급으로 네트워크사회에 진입한 현재사회의 모습을 ‘반응사회’로 규정한다. 이는 인터넷과 SNS를 매개로 사안에 대한 분노와 공포 등 정념발산이 ‘자기목적화’된 사회를 묘사한다. 본고는 ‘감정의 전염성’으로 특징지어지는 네트워크사회에서 ‘사상(思想)’을 통한 시대적 진단과 대안제시가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위기의식에 가득 찬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여기서 반응사회란 사상의 존립기반의 변화 및 위기를 근저에서부터 추적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도입된 용어규정이다.1)

세대갈등이라는 계기에 주목하며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레디앙 2007)가 제기한 담론은 “사회를 말하는 사회”의 범례로서 세대갈등을 둘러싼 좀더 넓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인식에 소홀했다는 유사한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젊은이의 자립적인 사회운동을 촉구하는 ‘사상’으로서는 유효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저자 우석훈(禹晳熏)은 한편에서 SNS와 인터넷 상에서 표출되는 젊은이들의 분노를 추수하며 ‘짱돌을 던져라’라는 식의 의지주의로 치닫다가 2012년 실망스러운 선거결과로 “내가 20대가 싸우지 않을 핑계를 제공했다”며 돌연 절판선언을 감행하는 등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저자의 모순된 반응에 주목하며 한명의 유명논객이 일관된 방식으로 시대의 변화를 포착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사상적 임무’를 더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사태를 목도하게 된다. 여기서 세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1) 오늘날 사상적 임무는 무엇인가? (2) 누가 그것을 떠맡을 것인가? (3) 사상은 어떠한 형태로 변용되어야 하는가?

이 세가지 문제에 묻고 답하기 위해 우선 근대사상 자체가 어떤 ‘신화적 이미지’에 입각해 있었는가라는 물음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사상적 임무를 재정식화하기 위해 예비적으로 근대사상이 뿌리내리고 있던 신화적 이미지의 역사적 변천을 다소 거친 방식으로라도 추적할 것이다. 그 이후 우리는 원래의 질문에 대한 잠정적인 답변에 이를 것이다.

 

 

2. 근대의 신화 리바이어선,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

 

이미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념을 환기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17세기 중반 막 출현한 근대국민국가라는 정치형태를 사상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리바이어선’(Leviathan)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리바이어선은 페니키아 신화에 등장하는 사나운 바다 괴물로서 아홉개의 꼬리를 지니고 불을 뿜으며 바다와 하늘에 군림하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성서와 유대교 신화에도 등장하는 이 괴물은 하느님에 대항하는 악마적 존재로 묘사되었다. 한편 그것은 홉스가 1651년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거기서 그는 교회와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이제 막 자립한 국민국가가 이권과 종교를 둘러싼 내전의 ‘공포’에 의해 강요된 계약의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리바이어선』은 국민국가의 기원에 자리잡은 ‘신화’가 되었다. 국민국가라는 정치구조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신화’로 취급하는 논자들도 이 책의 신화적 지위에 주목한다. 오늘날 국민국가가 과거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고 국민국가를 넘어선 사회적 결속을 모색하는 방향도 있다. 이 모두 리바이어선이라는 이미지에 국민국가의 존재이유를 명확히 집약시킨 홉스와 반대로 국민국가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의 복잡성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국민국가를 긍정하든 혹은 공동체와 개인의 자율성을 구하며 그것에 대항하든 두 길항력 모두 리바이어선이라는 이미지의 자장 안에 존재한다. 어느 경우든 국민국가를 둘러싼 신화, 즉 국민국가를 하나의 ‘자립적인 정치적 실체’로 간주하는 신화의 두 얼굴이다. 그렇다면 근대사상의 기저에 있는 이 신화의 정체는 무엇인가?

잠시 우회하면, 이데올로기 비판이나 민속사회학의 문맥에서 논의된 신화 개념을 새롭게 사고하는 일본 사상가 후꾸시마 료오따(福嶋亮太)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다. 『신화가 생각한다』(기역 2014)라는 저작에서 그는 신화의 역할을 네트워크사회의 문맥에 접한다. 연결성이 심화된 현대사회에서 신화란 네트워크상의 의사소통을 집약하여 정보량을 감축하는 ‘게이트’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익명성과 무작위성에 노출된 커뮤니케이션에 ‘이해 가능성’ 혹은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과거 ‘신화’는 일반적으로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 사회를 근저에서부터 개혁하려는 운동과 결부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신화는 그러한 낡은 의미와는 관계없고 오히려 좀더 단순하게 정보처리 방정식(알고리즘)을 의미한다. 신화는 우리를 둘러싼 정보 네트워크의 복잡성을 감축하고 때로는 네트워크 그 자체를 확장하기도 하는 운동성을 갖고 있다.2)

 

결국 신화의 개념은 ‘사회의 정보처리 양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에서 임의의 연결망에 따라 의사소통이 분산된다. 그것을 일정한 장소(서사든 이미지든)로 집약하는 데서 ‘신화’가 발생한다. 같은 맥락에서 ‘넷우익’(net右翼)의 출현이라든가 인터넷 인종주의의 출현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정보의 폭주, 복잡성의 증대, 커뮤니티의 고립이라는 신종의 ‘공포’ 속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재확인하기 위해 창출된 넷상의 사회계약인 셈이다.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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