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미월 金美月

1977년 강원 강릉 출생.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 있음. welcomesnow@hanmail.net

 

 

 

장편연2

세 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네

 

 

소윤의 이야기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책을 집어든다. 햇빛이 책 앞표지에 부착된 청구번호 스티커에 반사되면서 순간적으로 눈을 찌른다. 소윤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책을 펼친다. 『위대한 개츠비』. 그녀의 좌석은 열람실 구석의 창가에 있다. 탁자가 오후 볕에 보송보송하게 달구어져 있어 그녀가 책장을 넘기느라 몸을 움직일 때마다 기분 좋은 온기가 두 팔꿈치로 전해진다. 도서관은 따뜻하고 조용하고 평화롭다. 잠들기 딱 좋은 환경이랄까.

그러고보니 오후 세시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날마다 졸음과 싸워야 했던 마의 시간대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소윤은 전혀 졸리지 않다. 잠이라면 집에서 이미 물리도록 자고 나왔으니까.

자고 싶을 때 잔다. 깨고 싶을 때 깬다.

그것이 행복의 최우선 조건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출판사에 다니던 때였다. 알람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는 새벽마다 소윤은 지옥을 상상했다. 그곳에는 알람시계들이 가득했다. 모두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상상 속에서 그녀는 이를 악물고 당장 그것들의 정지 버튼을 모두 눌러버리겠다고 마음먹지만 언제나 손을 내밀다 말고 주춤거려야 했다. 정지 버튼들이 모조리 날카로운 상어 이빨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진과 명주에게 들려주었을 때 두 사람은 지옥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소윤의 상황에 안타까워하며 청하지도 않은 의견들을 내놓았다. 먼저 소윤이 알람소리에 잠을 깰 때마다 심리적으로 상어 이빨에 물어뜯기는 듯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고 말한 것이 진. 곧이어 전체적으로는 그에 동의하되 소윤의 고통이 심리적인 것이라기보다 육체적인 것에 더 가까우리라고 주장한 것이 명주.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마나 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자고 싶을 때 자고 깨고 싶을 때 깰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에 소윤은 그다지 위로를 받지 못했다.

물론 출판사를 그만둔 후에는 소윤도 그들처럼 언제든 원하는 때 자고 원하는 때 깰 수 있게 되었다. 평일인데도 이튿날 출근 걱정 없이 밤새 맥주를 홀짝이며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몰아서 보고 새벽에 잠들 때나, 오후 느지막이 깨어 침대에서 하염없이 뒹굴 때는 분명히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최우선 조건이 충족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행복의 최후 조건은 무엇인가, 요즘 그녀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중이다.

소윤이 자리잡은 이곳 일반열람실의 탁자는 팔인용이다. 여덟개의 좌석에 여덟명의 남녀가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그러나 탁자에 놓인 책들은 한눈에도 서른권이 훌쩍 넘어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아홉종의 『위대한 개츠비』와 일곱종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여섯종의 『죄와 벌』, 그리고 『폭풍의 언덕』과 『변신』과 『노인과 바다』와 『달과 6펜스』와 『동물 농장』 등이 서너종씩 쌓여 있다. 그 고전의 산을 탁자에 쌓아올린 이가 바로 그 앞에 앉은 소윤이다.

그녀는 옆자리 사람들이 저를 흘끔거리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누가 보아도 그녀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의 특정 페이지에 꼭 찾아내야 하는 암호라도 있다는 듯 곧장 그 부분을 펼쳐 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만 달싹이면서 몇줄쯤 읽다가 이내 풀죽은 얼굴로 책장을 덮어버리기를 반복할 뿐이다. 소윤은 그 일을 벌써 세시간째 하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일이다. 외주로 맡은 편집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탁자 위에 펼쳐놓은 교정지는 어느 유명한 남자 아나운서의 독서 에쎄이집 원고다. 외모가 출중하고 언변도 빼어나지만 무엇보다 최근 온·오프라인에서 정치적 소신을 드러내는 언행을 일삼으며 진보진영의 새 얼굴로 급부상한 동시에 대중의 인기도 급상승한 인물의 첫 책이라 출판사의 기대가 크다. 문제는 그 아나운서가 자신이 읽은 오십여권의 책에 대한 감상과 함께 해당 책의 일부분을 인용하면서 그 출처를 밝혀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들을 일일이 찾아 각주를 다는 일이 바로 지금 소윤이 하고 있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소윤이 뒤적이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를 보자. 작가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니 저작료 지불할 필요 없겠다, 고전인데도 베스트셀러 대열에 늘 끼어 있겠다, 그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위대한 개츠비』는 수십종에 달한다. 절판된 책을 제외하고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것들만 집계해도 삼사십종은 좋이 될 터였다. 그중 도서관에 비치된 것만 십여종. 개츠비는 과연 위대했다. 어쨌거나 그러니 그 아나운서가 어떤 해에 어떤 출판사에서 나온 어떤 책을 읽었는지 소윤이 어떤 수로 알겠는가. 편집자로 꼬박 칠년을 일했지만 이런 일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나운서가 원고에 인용해놓은 대목은 세 문장이었다.

‘한가지는 분명하지, 다른 일은 잘 몰라.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에게 생기는 건 아이들뿐.’

그러나 소윤이 방금 훑어본 세권의 『위대한 개츠비』는 해당 대목을 다음과 같이 번역해놓고 있었다.

1. 한가지는 분명해. 다른 것들은 몰라도. 부자에게는 돈이 늘지만 가난뱅이에게 느는 건 아이들뿐이라는 거.

2. 다른 일은 몰라도 한가지는 확실하다고.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지만 가난뱅이는 자식들만 점점 많아지지.

3. 한가지는 확실하지, 다른 건 잘 모르지만.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아이들만 늘어난다는 거야.

아아, 그리고 편집자에게는 흰머리만 늘어나겠지.

소윤은 한숨을 쉬며 책에서 얼굴을 들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얼른 고개를 숙이더니 책장을 넘겼다. 한 탁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책장 넘기는 소리가 새삼스럽게 들려왔다.

네번째 책도 아니었다. 젠장. 소윤은 책장을 덮었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꾹 눌렀다. 다섯번째 책을 펼쳤다. 이제까지 어쩌다 운 좋게 첫번째 책에서 문제가 해결된 경우도 몇번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이 작업이 너무나 비능률적이고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나마 『위대한 개츠비』는 워낙 유명한 책이라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소윤이 못 읽어보았거나 읽었더라도 기억이 잘 안 나는 책들은 아나운서의 인용문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책을 아예 처음부터 통째로 읽어야 했다. 대체 이게 뭐하자는 노릇인가. 그 아나운서에게 어느 출판사 책을 참고한 것이냐고 물어보기만 하면, 혹은 페이지 수만 알려달라고 해도 일이 훨씬 손쉬워질 것 아닌가 말이다.

“저자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요.”

소윤이 일찍이 출판사에 제 의견을 피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허어, 소윤씨도 참. 그런 걸 어떻게 물어봅니까?”

“왜요? 왜 못 물어봐요?”

“안 그래도 너무 바빠서 정신없는 분이시잖아요.”

그것이 끝이었다. 안 그래도 바쁜 유명 저자의 심기를 혹시라도 해칠 수 있는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논리 앞에서 그것 때문에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편집자의 하소연은 아무 맥을 못 추었다. 하기야 무얼 바라겠는가. 출판사는 갑이고 편집자는 을이다. 아니, 작가가 갑이고 출판사가 을이지. 그러면 편집자는 병. 더구나 소윤과 같은 외주 편집자는 정. 그것도 아니면 무, 기, 경, 신…… 아, 이거다!

마침내 다섯번째 『위대한 개츠비』에서 아나운서가 인용한 부분과 마지막 조사 하나 문장부호 하나까지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 대목을 발견해낸 것이다. 소윤은 고개를 들고 누구에게든 ‘이것 봐요, 내가 해냈다니까요!’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일단 교정지에 출판사의 이름과 그 대목이 나오는 페이지를 옮겨적었다. 숫자를 잘못 옮기지는 않았는지 두번이나 확인했다. 물론 그녀도 안다. 다수의 평범한 독자들 가운데 책 속의 인용문이 어느 출판사 어느 판본의 몇 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인지 각주를 꼼꼼하게 확인해가며 읽는 이는 없다는 것을. 있다면 일종의 서지학적 변태겠지.

그러나 다수 독자의 관심 밖에 있다 해도 그것을 생략할 수는 없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는 작가에게, 그 작가가 빚진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그리고 독자에게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규칙이 있다. 설령 당장은 독자가 한명도 없다 할지라도 언젠가 나타날지 모를 가상의 독자를 위해 책 만드는 사람은 모든 까다롭고 번거로운 법칙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소윤으로서도 그를 이해시킬 방법이 없다. 다만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자 특유의 외로운 자부심과 지적 우월감이 그 답답함을 일부 보상해주었으므로 그녀는 편집자라는 직함을 부끄러워해본 적이 없다.

개츠비들을 한쪽으로 치웠다. 맨 위에 예의 다섯번째 책이 ‘압권’의 위치를 뽐내듯 약간 흐트러진 자세로 놓여 있었다. 그러고보니 소윤의 집에도 있는 책이었다. 소유주가 진인지 명주인지는 모르나 거실의 공동 책장에 분명히 꽂혀 있는 것이었다. 제 집에 있는 것과 똑같은 책이 그 아나운서의 서재에도 꽂혀 있겠거니 생각하자 소윤은 문득 ‘유명 인사라봐야 별거 없네’ 싶었다. 유수한 문학 출판사에서 나온데다 번역이 매끄러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책이니 한마디로 좋은 책 잘 고른 건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간호사가 대기실 벽에 걸린 시력검사표 옆에 섰다. 소윤은 쟈르갈을 검사선 위에 세운 후에도 얼른 물러나지 않고 공연히 그녀 주위를 얼쩡거렸다. 진료를 받기 전에 시력검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검사표에 인쇄된 한글들이 종성 없이 아주 단순한 자음과 모음으로만 이루어진 것들임을 모르지 않는데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간호사가 가느다란 봉으로 시력검사표의 특정 기호들을 짚기 시작했다.

“가, 스, 니.”

그래. 잘한다, 쟈르갈.

“왼쪽이요.”

3, 나비, 7, 4.”

“비행기, 오른쪽이요.”

어찌된 일인지 소윤의 귀에는 쟈르갈의 한국어 발음이 다른 때보다 더 정확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봉이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지만 쟈르갈은 대답을 주저하지 않았다. 소윤은 그녀의 거침없는 한국어 실력보다도 자신의 눈에는 당최 글자인지 벌레인지 분간도 안되는 작은 기호들마저 척척 알아보는 그녀의 무시무시한 시력에 감탄했다. 보호자랍시고 소윤이 서 있는 위치도 쟈르갈과 같은 검사선 끄트머리인데, 아무리 애를 써도 시력 0.7 기준선 아래의 기호들은 식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쟈르갈의 대답을 듣고 다시 보아도 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