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이웃집 천사를 찾아서

세월호 트라우마, 어떻게 극복할까

 

 

정혜신 鄭惠信

정신과 전문의, 서울시 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 ㈜마인드프리즘 대표 역임. 고문피해자모임 ‘진실의 힘’ 및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치유센터 ‘와락’ 설립에 참여. 현재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활동중. 저서로 『남자 vs 남자』 『사람 vs 사람』 『홀가분』 『당신으로 충분하다』 등이 있음.

 

진은영 陣恩英

시인,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인문학상담 교수. 시집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 저서로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문학의 아토포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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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는 일이 참 많이 힘들다.’ 세월호참사 이후 안산에 있는 서울예대에 강의를 나가는 작가들이 괴로워하며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들만 그런 건 아니다. 와동분향소에 참배하러 갔다 온 많은 사람이 그렇게 고백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짐을 싸서 그곳으로 아예 살러 간 사람이 있다. 정신과의사 정혜신이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와동에 마련한 치유공간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세월호참사로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과 매일 함께한다. 911일 조용히 문을 연 이 치유공간의 이름은 ‘이웃’이다. 나는 그곳을 찾아가며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구를 떠올린다. “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이사 가든 천사들이 우리 옆집을 빌릴 테니까.” 나는 지난 몇년간 여러 곳을 지나며 이 시구를 떠올렸다. 그렇지만 그녀를 만나러 가는 지금만큼 이 시구가 마음 깊이 맴돌았던 적은 없다. 그곳에 가면 이웃집 천사를 찾을 수 있을까? 정혜신 선생은 죽음의 동공처럼 삶과 영혼이 깊이 파인 안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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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세월호참사 이후 6개월이 흘렀습니다. 세월호 이야기가 많이 피로하다며 이제는 그만 들었으면 한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추스르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때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유가족을 끝까지 도와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거리와 광장에서 싸워야 한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선생님처럼 희생자 아이들의 학교와 집이 있는 동네로 무조건 달려온 사람도 있지요. 선생님은 단원고 학생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와동에서 유가족을 만나는 치유공간을 마련하셨는데요. 어떻게 이들과 함께하시게 된 건지요?

 

鄭惠信 정신과 전문의, 서울시 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 ㈜마인드프리즘 대표 역임. 고문피해자모임 ‘진실의 힘’ 및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치유센터 ‘와락’ 설립에 참여. 현재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활동중. 저서로 『남자 vs 남자』『사람 vs 사람』 『홀가분』 『당신으로 충분하다』 등이 있음

鄭惠信
정신과 전문의, 서울시 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 ㈜마인드프리즘 대표 역임. 고문피해자모임 ‘진실의 힘’ 및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치유센터 ‘와락’ 설립에 참여. 현재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활동중. 저서로 『남자 vs 남자』『사람 vs 사람』 『홀가분』 『당신으로 충분하다』 등이 있음

정혜신 그동안 정신과의사로서 저는 국가적인 재난으로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를 겪는 분들을 주로 상담해왔어요. 고문피해자들을 오랫동안 상담했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평택지역에 심리치료센터 ‘와락’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어요. 모두 국가폭력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다가 세월호참사 이후에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도울 만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안산으로 들어왔습니다.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학교에 복귀하기 전 중소기업연수원에 있을 때 함께 숙식을 하며 단원고 교사와 생존학생 부모의 심리적 위기상황에 치유적 개입을 했습니다. 생존학생들이 사고 초기에 접했던 정신과치료에 대한 반감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직접 다가가기보다는 교사와 부모의 혼란을 줄여주고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갖도록 심리적으로 도우면 아이들이 안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래서 단원고 2학년 담임교사들의 집단상담과 생존학생 부모와의 대화에 가장 집중했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첫날 아이들이 학교에 잘 들어갔습니다. 연수원에 있는 동안에 여자아이들은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데 남자아이들은 거부하거나 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유가족도, 엄마들은 많이 우시는데 아빠들은 그런 걸 잘 못하잖아요. 아이든 어른이든 남자들은 감정적인 표현을 힘들어하죠. 그런데 등교 첫날에 남학생들이 아주 많이 울면서 돌아가신 선생님과 희생된 친구에게 편지도 썼어요. 그간 친구들에게 못했던 이야기를 한 거지요. 그러고 나서 선생님과 친구에게 보내기 위해 편지를 태웠어요. 이제 이 아이들은 치유를 위한 첫발을 뗀 셈인데, 여전히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주로 치유공간 ‘이웃’에서 유가족 심리상담을 하고, 희생학생 형제자매를 위한 치유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생존학생 부모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도 진행하지만 유가족을 돕고 있는 안산 사회복지사들의 감정소진도 상당해서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쓰러지지 않아요

 

陣恩英 시인, 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 문학·인문학상담 교수. 시집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 저서로 『순수이성 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문학의 아토포스』 등이 있음.

陣恩英
시인, 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 문학·인문학상담 교수. 시집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 저서로 『순수이성 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문학의 아토포스』 등이 있음.

진은영 유가족을 ‘시체장사꾼’으로 매도하는 악의적인 시선이 있기도 합니다만 세월호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특별히 냉정하고 몰인정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지인 중에도 세월호 팔이가 지겹다,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제가 화도 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그 친구에게 왜 그러느냐 물었어요. 그랬더니 계속 이야기해봐야 딱히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가 변할 것 같지도 않은데, 괴롭게 똑같은 이야기를 왜 반복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어요. 세월호 이야기를 그만하고 싶은 마음 깊은 곳에는 무력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마음이요. 그런데 바꾸어 생각해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세월호가 지겹다는 말을 더이상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건이 지겨운 것이 아니라, 결국 큰 고통과 불행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무기력한 우리 자신이 못 견디겠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을까요?

 

정혜신 멀리서 보면 도움을 줄 수 있는 틈이 보이지 않아서 막막하고 무기력하지만 가까이 와보면 달리 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그분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섬세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어떤 유족 어머니가 요즘 집밖을 잘 못 나오세요. 나왔다가 애 데리고 길을 가는 부모를 보면 ‘저 사람은 지금 나 보라고 유세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막 때려주고 싶대요.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그러고 있는 자신이 참 기막히게 느껴져서 바깥에 못 나온다는 거죠. 다른 경우는, 유족 부부가 사고가 난 이후 지금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차에서 잠을 자요. 아이를 잃었는데, 낮에는 집에 들어가도 아이가 학교 간 것 같고 친구 만나러 간 것 같아서 괜찮대요. 근데 밤에 부부만 있으면 애가 죽었다는 것이 너무 실감 나는 거죠. 그 상황을 견디기가 고통스러워서 밤에 집에 못 들어가요.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거기서 자고 아침에 집에 가서 씻기만 하고 다시 나오는 거예요.

유가족만 고통스러운 건 아니에요. 생존학생이나 그 부모님 입장에서는 유가족들을 보면 무조건 죄의식을 느껴요. 아이들이 등교할 때 유가족 부모님 이삼십명이 오신 적이 있어요. 애들에게 잘 지내라고, 친구들 몫까지 네가 다 하라고 얘기해주면서 안아줬지요.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희생된 친구들 부모님 만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거예요. 누가 뭐라지 않아도, 혼자 살아 나온 것에 대한 죄의식이 들고 질책당할 것 같은 거죠. 이런 여러 빛깔의 아픔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완료에 대한 욕구가 있어요. 영화를 보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다 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는 거죠. 그런데 완료하지 못하고 중간에 억지로 끝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거기서 계속 맴돌아요. 재난으로 누군가와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는 경우처럼 갑자기 죽음과 관련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으면, 잊어야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완료되지 않고 중간에 툭 끊어진 이 욕구가 마음 안에서 충분히 완료되도록 도와줘야 돼요. 그래야 이 슬픔의 경험, 이 고통의 느낌으로부터 떠날 수 있어요. 그게 흔히 말하는 애도예요. 우리는 애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막상은 서로 애도를 막아요. 많이 울고 많이 슬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제대로 못 울어요. 아이 아빠가 막 참고 있으니까 부인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저 사람도 너무 힘들 텐데 가장이니까 울지도 못하고 참는구나, 나 때문에 더 힘들면 안되지.’ 하면서 옆에서 안 울고 참아요. 형제자매가 죽은 아이들은 ‘부모님이 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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