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2003년 『창작과비평』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이 있음. brokenname@empas.com

 

 

 

입동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지금?

응.

소파에서 주춤대다 ‘그래’ 하고 일어났다. 아내가 뭔가 먼저 ‘하자’ 하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베란다로 가 수납장서 벽지를 꺼냈다. 몇달 전 동네 대형마트에서 산 ‘셀프 도배지’였다. 한 롤에 이만 몇천원. 폭은 내 어깨너비만한데 길이가 10미터를 넘어 손안에 전해지는 무게가 제법 묵직했다. 발바닥을 더럽히기 싫어 까치발을 든 채 설명서를 읽다, 왠지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곁눈질로 거실 불빛을 봤다. 그러곤 설명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정말 지금 할 거지?

 

지난달 어머니가 잠시 집에 다녀갔다. 두 사람 다 정신이 없을 테니 당분간 살림을 맡아주시겠단 명분이었다. 짐을 푼 첫날부터 어머니는 집 안 곳곳을 의욕적으로 쓸고 닦았다. 우편물을 정리하고, 먼지 낀 선풍기를 분해해 일일이 날개를 닦고, 시든 고무나무에 물을 줬다. 돼지고기와 메추리알을 섞어 간장에 졸이고, 멸치와 꽈리고추를 볶아 집안에 매운 내를 풍기고, 김을 굽고, 깻잎을 재우고, 냉동실을 정리했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 무기력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이 드신 양반의 악의 없는 참견과 잔소리도 묵묵 감내하는 듯했다. 아니 감내했다기보다 의식하지 못했다 할까 안했다 할까. 적당한 말을 몰라 그냥 그게 말이니 싶어 저쪽에서 열심히 구사하는 몸짓을 아내는 수신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좀 바빴다.

 

그렇게 열흘쯤 지나서였다. 한밤중, 부엌에서 갑자기 ‘펑!’ 소리가 나 뛰어나가보니 어머니가 검붉은 액체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주저앉아 계셨다. 우연히 테러범 옆에 있다 살점과 핏물 세례를 받은 양 얼빠진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손에는 눈에 익은 원통형 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두달 전, 집 앞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복분자액이었다. 도로 돌려줄 생각에 손도 안 대고 방치해둔 걸, 갑자기 뚜껑을 딴 바람에 내용물이 폭발하듯 솟구친 모양이었다. 검붉은 액체는 어머니의 흰색 티셔츠뿐 아니라 식탁과 장판, 밥통과 전기주전자 등 자잘한 가재 위에도 어지럽게 튀어 있었다. 특히 식탁과 마주한 벽의 상태가 심각했는데, 산뜻한 올리브색 벽지 위로 시뻘건 얼룩이 번져 있는 게 마치 누군가 순전히 이웃을 모욕하기 위해 갈겨놓은 낙서 같았다.

아이고, 이거 다 아까워서 어쩐다니.

어머니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셨다.

아니, 나는 그냥 목이 말라서…… 니들이 통 안 먹길래……

나는 일단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엄마. 어디 안 다쳤어?

어머니는 ‘내가 늙어서 주책이다’ ‘이 사람들도 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걸 팔아야지 이런 걸 만들면 어쩐다니’ ‘병에 가스가 찼나보다’ 하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곤 바로 욕실로 가지 않고 키친타월을 둘둘 풀어 바닥부터 닦으려 했다. 평소 같으면 걸레를 빨아 쓰면 되지 뭐하러 종이를 낭비하느냐 나무랐을 터였다.

놔둬, 엄마. 내가 할게.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며 슬쩍 아내를 쳐다봤다. ‘그렇지, 여보? 우리가 하면 되지? 넌지시 동의를 구한 거였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 옆에서 꼼짝 않고 있던 아내가 몹시 나직하고 또 상스러운 투로 뜻밖의 말을 했다.

아이 씨……

어머니가 바닥을 훔치다 말고 고개 들어 아내를 봤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부엌 벽면에선 붉고 끈끈한 액체가 세로로 긴 자국을 남기며 조용히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어색해진 분위기 따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이게 뭐야.

미진아.

그만하라는 뜻으로 지그시 아내의 팔뚝을 잡았다. 그러자 아내는 화를 내는 건지 이해를 구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서글픈 비명을 질렀다.

다 엉망이 돼버렸잖아.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건 작년 봄이었다. 분양면적 24평, 실면적 17평에 지은 지 20년 된 아파트였다. 요즘 같은 때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건 다들 미친 짓이라 했지만 경매로 싸게 나온 물건이 있어 포기하기 쉽지 않았다. 많은 경우 매매가와 전세 보증금의 차가 크지 않았고, 원하는 조건의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웠을뿐더러 이사라면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오랜 고민 끝에 아내와 나는 결국 이 집을 사기로 했다.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서였다. 몇십년간 매달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를 떠올리면 자주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남의 주머니가 아닌 내 공간에 붓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억울함이 덜했다. 누군가 그 아파트 역시 당신 집이 아닌 커다란 남의 주머니일 따름이라고 일러준다 해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앞으로 영우가 어린이집을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겠다며 기뻐했다. 사실 자긴 그게 제일 좋다고. 근처에 편의시설이 많은데다 서울보다 공기도 맑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영우도 여기 좋아.

혼자 블록 쌓기를 하거나 그림책을 보다가 곧잘 어른들 대화에 끼어들곤 하던 영우가 그날도 말참견을 했다.

왜? 영우는 여기가 왜 좋은데?

그즈음 한창 놀랍고 재밌는 말을 쏟아내던 영우에게 아내가 기대감을 갖고 물었다. 부모로서 뭔가 해줬다 싶은지 답도 듣기 전에 벌써 뿌듯한 표정이었다. 영우는 여느 때처럼 입에 맑은 침을 문 채 선홍색 혀를 놀려 천진하게 대꾸했다.

응. 차가 많아서.

베란다 밖 8차선 도로 위로 길게 늘어선 출퇴근 차량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한동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꽤 얼떨떨했다. 명의만 내 것일 뿐 여전히 내 집이 아니면서 그랬다. 20여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이제 막 어딘가 얇고 연한 뿌리를 내린 기분. 갓 돋은 뿌리 하나가 땅속 어둠을 뚫고 나갈 때 주위에 퍼지는 미열과 탄식이 내 몸에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 났다. 퇴근 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이상한 자부와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는 피곤도 겹쳐 있었다. 하지만 되도록 부정적인 생각은 안하려 했다. 세상 모든 가장이 겪는 불안 중 나는 좀더 나은 불안을 택한 거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건 얼마간 사실인지 몰랐다. 적어도 내겐 뭔가 선택할 자유라도 있었으니까. 아파트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얼마 뒤, 티브이 예능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신문지 게임’ 하는 걸 봤다. 발 디딜 면이 점점 줄어드는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최대한 오래 버텨야 하는 게임이었다. 개그맨들은 서로의 몸에 엉긴 채 용을 쓰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중 몇팀은 신문지 너머로 쓰러져 게임에서 탈락했다. 그땐 티브이 앞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낄낄댔는데, 요즘 내가 그 놀이의 참가자가 된 기분이었다. ‘반의반’ 또 ‘반의반의 반’ 크기로 접힌 종이 위에 외발로 선 채 가족을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