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진보교육감 시대, 무엇을 해야 하나

 

 

이기정 李基政

서울 미양고 교사. 저서로 『학교개조론』 『내신을 바꿔야 학교가 산다』 『국어공부 패러다임을 바꿔라』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교육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 등이 있음. gaedong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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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을 말하는 것은 너무 거창할 수 있겠다. 교육감선거라고 해봤자 지방자치선거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올해 치러진 6·4교육감선거의 시대정신을 묻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의 행복은 현 교육감들이 선거에서 내세운 제일 중요한 가치의 하나였다. 그들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선거공보와 선거공약서에는 ‘행복’이란 말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 현상이었다.

 

행복한 학교 특별한 교육(김석준 부산교육감) / 모두가 행복한 교육이 시작됩니다(이청연 인천교육감) / 경쟁보다 아이들의 행복이 먼저입니다(장휘국 광주교육감) / 아이도 선생님도 부모도 모두 행복해지는 미래 세종교육 프로젝트(최교진 세종교육감) / 오늘 행복한 아이가 내일 성공합니다(이재정 경기교육감) / 뿌리 깊은 나무처럼 행복교육도 흔들려서는 안됩니다(민병희 강원교육감) / 아이들이 행복해지면 세상이 행복해집니다(김병우 충북교육감) / 아이들에게 희망과 행복과 미래를 물려줄 수 있는 새교육이 필요합니다(김지철 충남교육감) /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한 김승환의 약속(김승환 전북교육감) / 행복한 학생, 열정 있는 교사, 즐거운 학교(장만채 전남교육감) / 1등도 꼴찌도 행복한 창의적인 학교(박종훈 경남교육감) / 최고의 교육가치는 아이들의 행복입니다(이석문 제주교육감) / 대구 교육, 행복 꽃 피다(우동기 대구교육감) / 깨끗하고 품격 높은 행복교육 도시 울산(김복만 울산교육감) /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습니다(이영우 경북교육감)1)

 

행복이 6·4교육감선거를 지배한 중요한 가치가 된 데는 세월호사건의 영향이 컸다. 세월호의 비극이 없었다면 교육감들은 아이들의 행복에 대해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행복이란 가치가 느닷없이 부각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중요한 교육가치였다.

새누리당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2012717일 발표한 ‘기다려온 변화, 박근혜가 바꿉니다’라는 제목의 대선교육공약 맨 앞에 나오는 말이 무엇이었던가.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교육을 만들겠습니다”였다. 당시에 ‘행복교육’은 상당히 파격적인 말이었다. 당위적 차원에서야 흠잡을 데 없이 좋긴 하지만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위선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박근혜 후보는 그것을 교육공약의 핵심가치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 말은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진행된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보수진영 문용린 후보에 의해 그대로 사용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교육공약의 핵심가치로 행복을 내세운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육에 대한 국민의 가장 큰 욕망을 입시에서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그것과 완전히 대립되는 듯싶은 말을 공약의 전면에 내세우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물론 진실성을 의심할 수는 있다. 당시 박근혜 후보와 그의 교육참모진은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그 말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의 진실성 여부가 아닐 수 있다. 눈여겨볼 점은 그들이 행복이란 말을 득표에 도움 될 것으로 생각했다는 사실 자체다. 그들은 국민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욕망의 미묘한 변화, 즉 아이들의 행복에 대한 바람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포착했던 것이다.

이렇게 행복이란 가치는 2012년 대선에서 이미 중요하게 부각되었다가 20146·4교육감선거를 맞이하여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6·4교육감선거의 시대정신은 단연코 아이들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13명의 진보교육감 당선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진보도 놀랐고 보수도 놀랐다. 사실 교육감선거는 보수의 프레임이 유리하게 작동하는 선거다.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 국민의 가장 강렬한 욕망이 입시에서의 성공이라는 데서 비롯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다수 국민은 자신의 자녀가, 자기 지역의 학생이, 모교의 후배가 입시경쟁에서 승리하기를 강하게 원한다. 이러한 욕망의 실현을 가지고 다툴 때 대다수 국민은 보수진영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어쩌면 보수진영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교육감선거 때마다 진보진영은 단일화를 잘 이루는데 보수진영은 왜 그렇게 못했는가? 굳이 단결하지 않아도 승리할 것 같은 선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상황은 조금씩 변했다. 국민의 마음속에 또다른 욕망, 즉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욕망이 서서히 자라났다. 그리고 그 욕망은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 현저히 더 커졌다. 아직 그 절대적인 크기에서는 입시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욕망에 미치지 못하지만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아이들의 행복에 대해서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이 더 충실할 것으로 보이는가? 국민은 대개 진보진영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의 행복과 관련한 진보의 이미지는 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