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2013년체제론 이후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인, 서울대 명예교수. 최근 저서로 『2013년체제 만들기』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백낙청 회화록』(전5권) 등이 있음. paiknc@snu.ac.kr
1. 적공과 전환: 세월호 이후
‘2013년체제 만들기’ 기획이 실패로 끝난 이후, 나는 시국에 관한 발언을 되도록 자제해왔다.1) 성찰할 것이 너무 많고 국민 앞에 나설 면목도 없었으며 ‘2013년체제’ 대신에 무엇을 내놓을지도 막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4월 16일의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나도 가만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세월호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공감에 찬 상황에서, 이전처럼 생각하고 발언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전처럼 침묵하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2013년체제 만들기’를 대체할 구호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자체가 낡은 사고라는 생각도 들었다. 필요한 구호는 때가 되면 나올 터이고 그것을 반드시 내가 내놓아야 할 까닭도 없다. 우선은 세월호사건이 촉발한 우리 사회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수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월호 이후’로의 전환을 이룩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되지 싶다.
실제로 사건 이후 우리는 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공감과 결의만으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말로는 다 바꾸겠다면서 종전처럼 누리고 사는 삶을 전혀 바꿀 뜻이 없는 이들이 사회의 온갖 요처에서 버티고 있는데다가, 그들을 비판하고 심판하자는 야권의 정치인과 지식인도 여전히 ‘세월호 이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일쑤이다. 그러한 양쪽에 다 실망한 국민도 대책없이 분노하거나 쉽사리 체념하면서 더러는 세월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솔깃해지기조차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2012년에 그러했듯이 한국사회에 아직도 시대가 요구하는 큰 전환을 이룩할 적공(積功)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물론 나름의 공덕과 공력이 그나마 쌓였기에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라도 민주화되고 자력을 갖춘 사회가 되었겠지만, 또 한차례 큰 전환을 이룩해야 할 판국을 맞아 더 크게 적공할 필요가 절실하다. 아니, 적공과 전환이 결코 둘이 아니다. 적공하는 만큼 전환이 이뤄지는 것이며 전환해가는 과정 자체가 적공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세월호사건의 최대 교훈은 제때에 전환을 이루지 못할 경우 나라가 어떤 혼란과 난경에 빠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일지 모른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지속된 교착상태가 그 단적인 예다. 철저한 진실규명은 성찰의 기본이고 새 출발의 전제인데, 이 첫걸음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은 염치없는 버티기를 일삼았고 야당은 ‘세월호 이후’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전에 하던 방식대로’ 밀고 당기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고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런 가운데 사회는 ‘대통합’과 더욱더 멀어지고 공론의 질은 전에 없이 저열해졌다. 식민지와 독재 시대를 통해 권력에 굴종하고 피해자를 오히려 멸시하는 습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내면화된 면을 부인할 수 없는데 요즘처럼 그 점이 실감되는 때도 드문 것 같다.
하지만 ‘국민이 문제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고 쉽게 말하는 것 자체가 진실규명과 대책마련의 소임을 게을리하는 방식일 수 있다. 모두가 죄인인 면이 없지 않다 해도, 위정자로서의 잘잘못부터 밝힐 책임, 적어도 진실을 밝히려는 시민들의 노력을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할 지도자와 정치권의 특별한 책임을 흘려버려서는 안된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저들이 그들 나름으로 쌓은 공력과 술수를 다해 훼방을 놓는다면 국민이 아무리 잘난들 어쩌겠는가!
동시에 다음 순간, ‘정녕 잘난 국민이라면 애당초 이런 정치가 가능했겠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것도 외면할 수 없다. 이는 ‘그러니까 다음 선거에서는 지도자를 잘 뽑아야지’ 하는 다짐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일은 선거로 뽑은 정치인의 책임을 제대로 묻되, 책임추궁을 해낼 넓은 의미의 정치활동에 각자가 일상적으로 정진하는 훨씬 어려운 적공을 요한다.2)
다음 선거를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이곳에서의 적공을 어떻게 할지를 몇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검토하려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의제를 상세히 논하려는 것은 아니고, 과제들에 접근하는 자세를 주로 생각하고자 한다. 『만들기』에서도 강조했듯이(82면) 민주·평화·복지 같은 중요 의제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큰 과제인지를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동시에 공간으로는 한국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전세계를 생각하면서, 시간상으로는 단기·중기·장기 차원의 과제를 식별하고 적절히 배합할 필요가 있다. 이때 ‘식별’ 못지않게 ‘배합’이 중요하다. 단·중·장기 과제를 분류해서 단기과제부터 하나씩 수행해가자는 게 아니라 그 완성의 시점이 각기 다름을 인식하면서도 어떤 식으로 동시에 추진해야 최대한의 상승효과를 거둘지를 찾아내는, 그야말로 적공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혼란이 극에 달했으나 어디까지나 혼란이요 교착이지 ‘세월호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는 점이 희망이다.3) 교착과 혼란 자체를 환영할 일은 물론 아니지만, 체념을 거부하고 ‘일상’으로의 편안한 복귀를 거절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차피,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4) 그런데도 이렇게 토로하는 소설가 황정은(黃貞殷) 자신을 포함해서 수많은 시민들이 적공과 전환의 작업에 이미 나서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 대열에 동참하려는데, 내 경우 2013년체제론에 대한 자기성찰에서 출발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2. 2013년체제론에 대한 성찰
2013년체제 만들기의 취지
2013년 2월은 새 대통령이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때였다. 이 시기를 앞두고 단순한 정부교대 또는 정권교체에 만족하지 않고 6월항쟁이 일어난 1987년에 맞먹는 대전환을 촉구한 것은 많은 국민이 공감한 바였다. 야당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에 ‘2013년체제’를 직접 거론했고, 여당 후보도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서는 시대교체’를 약속하면서 당선되었다. 물론 당선인 자신의 체질로 보나 그 지지세력의 성격으로나 ‘시대교체’ 약속을 이행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적었다.5) 그러나 의도적 기만책이든 자기최면이든 국민의 여망이 있기에 나온 약속이었고, 지금 우리는 시대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국민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음을 체험학습 하는 중이다.
2013년체제론은 87년체제를 극복하려는 기획이지만 어디까지나 87년체제의 성과를 딛고 넘어서자는 것이었다.6) 따라서 항쟁을 통해 한국사회가 확보한 선거공간을 활용하는 일이 당연했고, 6월항쟁 때처럼 길거리 싸움을 주요 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희망2013’이라는 구호에 선거를 의식한 ‘승리2012’라는 표어가 붙어 다닌 것도 그 때문인데, 동시에 ‘희망2013’을 향한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승리2012’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4월 총선의 결정적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나는 범야권의 총선승리가 대선승리의 전제조건임을 명시하기도 했다(『만들기』 제4장 제4절, 85~87면).
불행히도 그 진단은 적중했다. 총선에서 진 야권이 대선에서도 패한 것이다. 패인의 구체적인 분석은 전문가들에게 맡길 일이나, 한마디로 ‘희망2013’을 향한 적공이 부족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2013년체제론에는 87년체제가 1961년 이래의 독재정권을 종식시킨 뒤에도 독재시대와 여전히 공유한 53년체제(정전협정체제이자 분단체제)라는 토대를 변화시켜야만 87년체제가 극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 중요하게 포함되었지만(『만들기』 79~80면, 162~64면), ‘2013년체제’를 구호로 채용한 인사들조차 그 점을 간과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주장은 분단시대의 역사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한국사회의 현실진단에서 남한사회를 기본 분석단위로 삼는 습성을 탈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기에, 나아가 분단체제조차 최종적인 분석단위는 아니고 세계체제 위주로 사고하는 학문적 전환을 요구했기에, 단기간에 널리 공유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만들기』와 그 후속작업의 문제점들
2013년체제론이 너무 발본적인 성찰을 요구해서 공유되기 힘들었다고만 말한다면 남 탓이나 하는 꼴이 될 터이다. 실제로는 『만들기』뿐 아니라 이후의 자기교정 시도에서조차 논자 스스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기획의 실패에 일조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선거승리에 집착해서는 선거조차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만들기』가 거듭 강조한 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자 자신도 그런 집착이 없지 않았다. 예컨대 2013년체제론의 핵심개념에 해당하는 ‘변혁적 중도주의’는 『만들기』에서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는데(81면에 딱 한번 언급됐음), 이는 선거의 해 2012년에 책을 내면서 일부러 선택한 방식이기도 했다. “‘변혁’과 ‘중도’라는 얼핏 상충되는 개념들의 결합”7)이 한반도 특유의 현실에 대한 공부심을 촉발하는 화두일지언정 선거구호로서는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집착의 다른 면일 테지만, 시대적 전환에 저항하는 기득권세력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어리석음도 보였다. 단적인 예로,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朴元淳) 후보가 당선된 데에 지나치게 고무되어 한나라당(후에 새누리당)의 박근혜(朴槿惠) 비상대책위원회가 발휘할 위력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만들기』 63~64면 참조). 정치의 문외한으로서 틀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위로해주는 분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외한이니까 입 다물고 ‘본전’을 챙길 권리는 있지만 공개적 발언이 틀렸을 때 책임이 따르는 점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며, 더 중요한 것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막강한 수구·보수동맹에 대한 인식이 충분치 못했다는 점이다.
아무튼 ‘변혁적 중도주의’를 선거구호로 채택하지는 않더라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그 화두를 들고 씨름하도록 하는 일은 중요했다.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해서는 뒤에 더 논하겠지만, 그것이 말하는 ‘변혁’ 곧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과 이를 위한 ‘중도’ 곧 폭넓은 개혁세력을 형성하는 일이 바로 ‘희망2013’의 요체였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승리2012’의 전제조건으로 떠오른 연합정치 문제를 올바로 풀어나가는 지침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2012년 총선에서의 야권 선거연대는 이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선거 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공천경선 시비와 분당 사태를 통해 ‘주사파와 손잡은 묻지 마 연대’로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총선 당시에는 통합진보당이 특정 정파 일변도의 당도 아니었거니와, 야권연대와 후보단일화는 2012년 총선에서도 2010년 지방선거 때처럼 다수 국민의 지상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변혁적 중도주의 같은 연합정치의 철학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모든 정당·정파의 통합 또는 연합과 그에 미달하는 수준의 전술적 연대를 구별해줄 분명한 원칙이 없었고, 한결 당당하고 효율적인 연합정치를 실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총선 패배를 겪은 뒤에야 변혁적 중도주의 논의를 재개했다.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라는 글이 그것인데, 이는 총선에 지면 대선도 지리라는 자신의 예측을 어떻게든 뒤집어보려는 발버둥이기도 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지만, 글 자체의 문제점도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시의성 문제다. 2012년초의 시점에서 변혁적 중도주의 논의가 선거에 부적합하다는 판단에 일리가 있었다면 대선을 코앞에 두고는 더욱이나 너무 늦었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 절 ‘『〔안철수의〕 생각』에 대한 몇가지 생각—마무리를 대신하여’의 경우다. 물론 안철수씨가 아직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시점이고 더욱이나 출마 뒤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확실한 전망이나 대안을 내놓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령 『〔안철수의〕 생각』이 매우 훌륭한 ‘문서파일’이라 해도 어떤 성능의 ‘실행파일’이 딸렸는지는 문서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실행파일을 돌려봐야 알 수 있다”(33면)라는 지적은 ‘평론가적’ 발언으로 무난할지언정 실천 차원에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하기는 이미 그 시점에서 안철수씨의 능력에 대해 엄혹한 평가를 내리면서 그의 출마 자체를 반대한 일각의 반응이 더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이 또한 ‘평론가적’ 발언으로서의 날카로움을 자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안철수의 출마를 통해 비로소 ‘박근혜 대세론’이 한풀 꺾이고 종국에 야당 단일후보가 48% 득표율이나마 올리는 길이 열린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2014년의 대혼란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나라인가’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여기저기서 들려온 것이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물음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갈등에서 좁은 의미의 ‘나라’, 곧 대통령과 정부가 보여준 행태에다가 세월호 이후에도 잇따라 터진 안전사고와 당국의 변함없는 무능·무책임으로 그 질문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를 계기로 국가가 도대체 무엇이며 국가주의의 폐단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성찰을 수행하는 것도 필요한 적공의 일부다. 그러나 국가 또는 국가주의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식의 단순논리로 치닫는다면 실다운 적공이 아닌 관념의 유희로 빠질 위험이 크다. 매사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신자유주의 타령’도 마찬가지다. 국가주의, 신자유주의 등이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고 있으며 현시점에서 그러한 것들이 온전한 통일국가의 부재라든가 자유주의보다 더 낡은 ‘봉건적’ 요소8) 따위와 어떻게 결합해서 작용하고 있는가를 연마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곧 세월호’라는 등식도 안이한 단순화다. 물론 대한민국이 세월호를 얼마나 닮았는가에 대한 처절한 인식은 긴요하다. 예컨대 소설가 박민규(朴珉奎)가 우리의 처지를 ‘내릴 수 없는 배’를 탄 공동운명으로 규정하면서 세월호와의 닮은 꼴들을 지적한 것은 곱씹어볼 만하다. “일본이 삼십육년간 운항하던 배였고 우리가 자력으로 구입한 선박이 아니었다. (…) 승전국이었던 미국은 군정을 통해 배의 평형수를 조절했고 배의 관리를 맡은 것은 예전부터 조타실과 기관실에서 일해온 선원들이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벨로스터 밸브의 한쪽을 아예 비웠다. 평행수를 비우면 비우는 만큼, 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은 증가했다. 적재와 적재와 적재와 적재……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기울어진 배에서 평생을 살아온 인간들에게//이 기울기는//안정적인 것이었다. 제대로 포박되지 않은 컨테이너처럼 쌓아올린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과 기득권의 각도 역시 이 기울기와 각을 같이한 것이었다. (…) 당연히 문제가 많았으나 근본적인 수리를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땜빵과 땜빵과 땜빵과 땜빵…… 그리고 어느 날//마치 이 배를 닮은 한척의 배가 침몰했다.”9)
작가의 이런 통찰에 공감할수록 우리는 두 선박의 닮음과 다름을 한층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이 나라가 원래 어떤 나라이고 어떤 역사를 전개해왔는가, 그나마 좀 나아진 게 이건가, 아니면 이보다는 나았는데 어느 시기부터 더 나빠져서 이 지경이 되었는가 등을 따져야 한다. 그러한 인식을 위해 일단 87년 이후로 국한해서 종전의 대전환 시도로 어떤 것이 있었고 어떤 궤적을 보여주었는지를 검토해보자.
1987년 이후 전환의 시도들
박민규의 말대로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근본적인 수리를 한 적은 한번도 없었”기는 하지만, 그나마 큰 폭의 수리를 하고 전환을 이룩한 것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서였다. 앞선 4·19혁명이 미완으로 끝나고 5·18항쟁이 유혈진압을 당한 데 비해 이때의 전환은 ‘87년체제’라 불릴 정도로 지속성을 갖고 정착했다.
어쩌면 대전환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한 뒤의 첫 선거에서 제5공화국의 핵심인사였던 노태우(盧泰愚) 후보가 당선되었고 다음 대선에서는 3당합당을 통해 여권에 합류한 김영삼(金泳三) 후보가 선출되었음에도 87년체제가 출범하고 진행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들 대통령의 개인적 체질이나 그 지지세력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두 정권 모두 87년이 이룩한 대전환의 물결을 타고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상당부분 수행했던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김대중(金大中)과 노무현(盧武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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