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세랑 鄭世朗
1984년 서울 출생. 2010년 『판타스틱』으로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이만큼 가까이』가 있음. snare@naver.com
효진
냉장고 아래 칸에서 재료를 꺼내고 있을 때, 평소 나를 싫어하던 선배가 위 칸을 갑자기 여는 바람에 날카로운 모서리에 이마를 다쳤어.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났어. 피의 양에 비해 심하게 찢어진 건 아니었는데도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어. 조용히 운 것도 아냐. 왈칵 울었어. 서른명이 복작거리는 주방에서 소리를 죽이지 않고. 바깥쪽 껍질이 떨어져나가 속살이 드러난 크루아상처럼 서러웠어. 그날만은 그 선배도 잘 대해주었지만, 문을 벌컥 여는 행동의 저 바닥에는 분명 적의가 있었다고 생각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이야. 금방 떠나버릴 외국인, 무책임한 외국인, 질 나쁜 외국인,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언제나 모른 척 웃고 있었으니까. 웃는 척이라는 걸 들켜버려서 더 미움 받았으니까.
적의에 대해 생각해. 적의에 오래 노출되고도 괜찮은 사람은 여기든 거기든 없을 거야. 그 나쁜 입자들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비슷한 게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해. 간편한 에어샤워 같은 것.
울면서 만든 베리타르트의 맛을 두고 컴플레인이 걸려오진 않았어. 슈거파우더로는 거의 모든 걸 덮을 수 있지. 사람들의, 관계의 가장 저열하고 싫은 부분까지도 말이야. 그리고 그날 퇴근하면서 너를 떠올렸어. 내가 다친 이마의 그 부분은 언젠가 네 얼굴에 무지개가 맺혔던 부분.
내가 너를 떠올릴 때, 그 순간을 자주 생각해. 두장의 유리가 맞닿은 틈이 프리즘처럼 무지개를 만들어냈을 때를. 학교 앞의 별로 예쁘지도 않은 까페였는데 유리창이 가끔 그렇게 재주를 부렸잖아. 관자놀이에 무지개가 있다고 내가 말하자, 너는 아주 조심스럽게 눈을 옆으로 굴렸어. 마치 그러면 볼 수 있을 것처럼. 자칫하면 무지개가 사라지고 말 것처럼.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는데 그때의 화소 낮은 휴대폰 카메라엔 좀처럼 잡히지 않았어.
지난번에 통화하다가 네가 했던 말 기억나? 내가 꼭 네 머릿속에만 있는 인물인 것 같다고. 너도 여기 오고 나도 거기 가고 그저 몇달 보지 못했을 뿐인데 그런 기분이 든다고. 나도 토오꾜오도 정말로는 없는 게 아닐까 가끔 이상한 상상을 한다고. 멋대로 토오꾜오를 없애지 마, 하며 나는 웃었고 말이야.
우리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가난한 여행자였고, 나는 너 없이 돌아와서 여러번 신분이 바뀌었지만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 그래도 너와 함께 갔던 곳을 지나면 그때의 날짜와 날씨 같은 것들이 마음속에 자막처럼 지나가. 그런 곳들에 남자친구들과도 몇번이나 더 갔지만 희한하게 최초의 기록만이 떠오르지. 사실 그건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남자친구들이 대대로 너를 버거워하나봐. 우린 어째서 이렇게 슬프도록 스트레이트일까. 이렇지 않다면 남자친구들, 하고 복수로 말해야 하는 극적이고 피곤한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무하고도 너만큼 파츠가 맞지 않아, 응, 맞아. 피 에이 알 티 에스, 그 파츠. 여기선 자주 쓰이는 표현인데 네가 그렇게 확인하니까 좀 다르게 들린다. 작고 견고한 부속품이 된 것 같네. 조금 모양이 다른, 하지만 나란히 들어가는 파츠.
네가 못 믿는 것도 이해가 가지만, 나는 정말 하루에 네시간씩 자고 있어. 자정에 들어와서 새벽 네시에 다시 일어나 나가. 우리가 함께 살 때는 먼저 일어난 네가 가끔 내 코밑에 손가락을 대거나 맥박을 체크하고는 했으니 그새 많이 바뀌었지. 내가 죽은 것처럼, 이제 깨어나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처럼,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처럼 잔다고 넌 싫어했잖아. 잠은 점점 더 가벼워지는 것 같아. 덮지 않은 것처럼 가벼운 차렵이불 같아져.
나는 여섯시까지 긴자의 타르트 가게로 출근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먹는 곳이야. 80년대부터 유명했는데 최근에는 사실 조금 주춤하고 있어. 다이깐야마(代官山)라든지 체인점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동네에 무리하게 진출했다가 철수해야 했거든. 지점장들 사이의 권력투쟁과 암투가 보통이 아니야. 내가 일하는 지점의 지점장도 그새 세번이나 바뀌었어.
한껏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매장 안쪽에는 서른명이 북적대는 주방이 있어. 뜨거운 공기 때문에 모두 고생인데도 분위기를 따지자면 싸늘해. 실수를 하면 그날은 말이 없다가 다음 날 지점장이 부르지. 바보 같은 짓을 했을 때 즉시, 바로 위의 선배가 혼낸다면 차라리 나을 것 같아. 며칠 전에는 2주도 안된 신입사원이 무단결근을 하더니 전화가 왔어. 더이상 못 견디겠다고 하더라. 위염, 장염, 과호흡으로 그만두겠다고 했어. 사람이 계속 바뀌고 있는데 어쩌면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쭉 그렇게 지속되어온 걸지도 몰라.
오전 근무가 끝나고 세시까지는 카부끼쪼오(歌舞伎町)의 스페인 식당에서 에끌레르를 만들어. 에끌레르는 스페인 디저트도 아니고 심지어 마스터도 칠레에서 유학했다고 하니 약간 정체를 알 수 없어. 아무래도 마스터의 부수입용 소일거리인 것 같아. 나는 에끌레르만을 위해 고용된 셈인데, 제과학교 학생을 구한다기에 지원했지만 외국인이라 처음에는 자리를 얻지 못할 뻔했어. 그래도 이제는 아르바이트 세곳 중에 가장 잘해주셔. 특히 자영업의 쓰디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시지. 얼마나 쉴 새 없는지, 근근이 유지되는지 말이야.
에끌레르를 만들고 나면 제과학교에 가. 현장에서 은퇴한 교수님들의 강의는 과학적이라기보단 직관적인 편이야. 소금이 들어가면 케이크 스펀지가 빨리 탄다기에 어떤 원리인지 물었더니, 풀장보다 해수욕장에서 빨리 타지 않느냐는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지. 그런 말을 들으려고 비싼 돈을 내고 다니는 건 아니야 이 영감탱이야, 하고 속으로 투덜대게 되지만 그래도 많이 배우고 있어. 내가 못생긴 걸 구워낼 때면 혹독하게 지적해주거든. 자네, 지금 그 슈크림 못생겼지만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지? 전혀 귀엽지 않아. 엄청 기분 나쁘게 생긴 빵이야. 나 교수님들 성대모사 완전 똑같이 할 수 있는데 네가 몰라서 아쉽다.
수업이 끝나면 복어집에서 일해. 나를 포함해 아르바이트생이 여섯명인 가게인데 복어가 잘 팔리지 않아서 요즘은 장어요리도 팔고 있어. 간판의 ‘복어전문’이 좀 어색하게 되어버렸지만 손님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수조 속에 장어가 더 많아졌더니 복어들이 적응을 못하고 당황해하는 것 같아. 매일 복어 사진을 찍는 게 요즘의 취미야. 복어는 얼굴이 꼭 어린애 같아서 표정이 보이거든.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처음엔 날카롭게 굴었는데 요즘은 좀 나아졌어. 오봉(お盆) 때 대신 일해주고 추석 때 다시 부탁하는 그런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 사장님은 잠시잠시만 다녀가서 가게가 한산할 때는 주방장 아저씨가 늦은 저녁을 챙겨줘. “한국사람들도 카레 먹어?” 하고 물었을 땐 웃고 말았어. 일본사람들은 왜 인도사람보다도 카레에 대한 자부심이 클까.
남자친구도 복어집 아르바이트생이었어. 지금은 학교공부가 바빠져서 그만뒀지만, 우리 둘만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이었지. 남자친구는 베이징에서 왔어. 네 머릿속에서 토오꾜오가 희미해진 것처럼, 나에겐 베이징이 가본 적 없는 먼지로 지어진 도시야. 이야기로만 듣는 베이징은 점묘화 같아. 언젠가 가보게 된다면 달라지겠지. 국제변호사가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