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F. R. 리비스의 소설론

 

 

김영희 金英姬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저서로 『비평의 객관성과 실천적 지평리비스와 레이먼드 윌리엄즈 연구』 『세계문학론』(공저) 등과 역서로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공역) 등이 있음. gnosisi@kaist.edu

 

  

1. 들어가는 말

  

21세기의 F. R. 리비스(Leavis)라니? 20세기 영문학 연구 및 비평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나, 그간 진행되어온 문학에 관한 다각도의 이론적 ‘의식화’를 통해 이미 극복된 과거의 인물인 그를 지금 다시 들추어내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사실 리비스는 20세기 후반 영문학연구에서 ‘이론’이 부상하면서 중요한 대결상대로 설정되었지만, 이제는 문학주의적 발상과 꼼꼼히 읽기라는 구태의연한 비평방법을 대표하는 이름 정도가 되어버린 형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다. 작품에 충실한 읽기를 중시하고 문학의 ‘창조성’이니 작품의 ‘위대한 성취’를 강조하는 리비스는 문학이라는 이데올로기나 작품에 담긴 이데올로기의 무반성적인 추수에 머물고 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리비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이론적 읽기들이, 작품을 이론의 방증자료나 아니면 이론을 통해서 은폐된 의미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야 하는 ‘텍스트’로 다루는 것인 한, 그가 처음부터 맞서고자 하였던—작품의 성취를 가늠하는 비평적 시선이 탈각된 채 작품에 관한 지식의 축적이나 작품의 분석과 주석에 머무는—‘강단적’(scholarly) 경향의 악화 양상이라고 보였을 법하다.

이것이 단순한 ‘문학적’ 문제가 아니라는 의식은 양편 다 공유하는 바일 터이다. 문학의 이데올로기를 거론하는 논자들이 결국은 근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재생산, 전파, 강화하는 문학의 기능에 초점을 두었듯, 리비스에게도 작품의 ‘성취’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문학적’ 가치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한 방식의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대응을 살려나가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개개 작품들, 나아가 문학이라는 형식과 지배이데올로기의 관계에 대한 전혀 다른 이해가 양편에 전제되어 있는 셈이다.

이런 거친 대비로 다양하고 나름의 의미있는 문제의식을 담은 이론적 고투들이 다 포괄될 수는 물론 없고, 새로운 이론적 탐구들이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 극복을 지향하는 만큼은 리비스와 만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리비스에 개입하는 측면에 국한한 것이라면 크게 무리한 정리는 아닐 것이다. 리비스와 리비스를 비판하는 이론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부딪치게 되는 중요한 물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가 문학을 굳이 왜 하고 읽는가, 혹은 하고 읽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인데, 리비스가 처음부터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닥뜨리면서 문학으로만 가능한 경지를 밝히면서 나름의 강력한 ‘답’을 제출하는 데 비해, 이론들은 그 점에서 아무래도 취약해지는 것 같다. 문학텍스트를 이론의 적용대상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이데올로기 재생산을 넘어선 문학의 잠재력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 의미와 가능한 조건들을 별도로 해명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이 문학적 잠재력이 이론적 사유조차 넘어서는 차원인지 아닌지가 애매해지기 십상이다. 어떤 점에서는 이론의 과잉에 대한 피로의 기미조차 엿보이는 21세기 영문학연구의 곤경 또한 이런 ‘맹점’과 맞닿아 있다고 보이는데, 그렇다면 리비스의 사유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절실함을 띨 수 있다. 전지구적으로 자본주의 근대문명이 그 모든 분식(粉飾)을 떨쳐버리고 적나라한 형태로 현상되는 현재의 국면에서, 근대문명에 대한 근원적 비판의식을 소설논의와 결합시킨 리비스의 작업을 상기해볼 필요가 그만큼 커진다. 이런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면서 이 글에서는 그의 소설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문명이 인간의 창조적인 삶에 가하는 위협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리비스에게 근대문명의 이런 진상을 드러내며 그럼에도 면면히 존재하는 삶의 창조성을 구현하고 증거하는 근대의 가장 중심적인 문학 형식은 바로 소설이었던 것이다.1)

 

 

2.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

 

리비스의 『위대한 전통』(1948)을 여는 “위대한 영국소설가란,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래드다”2)라는 문장은 정전주의를 대변하는 발언으로 악명 높다. 사실 리비스가 앞서 시()에서 수행했던, 진정으로 의미있는 전통 구축작업을 이 책에서 소설로 확대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는 ‘정전’(canon)의 재구성이 이 책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더욱이 여타 소설가들 위에 군림하는 ‘위대한’ 영국소설가를 따로, 그것도 단 네명만 (혹은 총론 격인 제1장 말미에서 덧붙인 D.H. 로런스까지 포함하여 다섯명만) 꼽는 것은 정전 구축 중에서도 매우 배타적인 문학적 ‘권력’ 행사의 시도라고 보일 소지를 갖는다. 리비스 자신도 이 파격적인 모두(冒頭) 발언이 편협하다고 비판받거나 오독될 위험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분명한 비평적 판단이 소설에 관한 의미있는 토론을 촉진하는 최선의 길이므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리비스가 그러한 파격적인 호명을 통해 개별 소설가의 평가만이 아니라 소설을 보는 기본발상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가 말하는 위대한 전통에 속하는 작가들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지니거나 어떤 한 부분에서 ‘고전적인’ 위상을 이룩한 작가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시대 속에서, 그 시대에 대해 생생하고 민감하게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