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눈먼 자들의 귀 열기

세월호 이후, 작가들의 공동 작업에 대한 기록

 

 

양경언 梁景彦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참된 치욕의 서사 혹은 거짓된 영광의 시」 「이것을 누구에게 바칠까」 등이 있음. purplesea32@hanmail.net

 

 

1. 쓸 수 있을까

 

“저는 글로 말하겠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삶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이들이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엄숙한 표현의 하나로 꺼내던 이 말은 그러나 세월호 이후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사건은 목격했으나 진실엔 눈감아버린 이 시기를, 방향과 힘이 상실된 ‘쓰기’만으로 감당해낼 수 있을까.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쓸까. 내 경우, 세월호에 관해 무엇을 할지 묻는 말에 오로지 쓰기로 견뎌보겠다는 답을 들으면 괜히 야속하게 느껴지곤 했다. 마치 작가가 책상 앞에 앉아 내놓을 수 있는 결과에만 국한해서 말하겠다는 고집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평론가 김나영(金娜詠)이 “내가 모르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한편 내가 너무 말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둘 사이의 길항에 놓여 있었다”1)고 전한 고백에는 아무런 말도 제대로 해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절멸(shoah)의 상태에 놓인 현 시기 작가들의 초상이 담겨 있다. “망가진 문법더미 위”에서 “말의 무력” “말의 무의미”2)와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쓰기’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계속 쓸 수 있을까.

 

감자탕 집에서

누군가의 어버이로 살아온 두 사람이

소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단순한 사고에 불과한 게 아니라고

한 남자가 말하지만

맞은편에는 유령이 앉아 있습니까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여자가

펄펄 끓는 감자탕을 들고 옵니다

그냥 사고였잖아요

세상에 그런 일들은, 그냥 사고잖아요

휴대용 버너를 켜고 깍두기가 든 접시를 내려놓으며

그녀는 어떤 시민입니다

사고가 사고 이상이 될 수 없는 어떤 세계가 있습니까

나도 선량한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장래희망 칸에 적어넣은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쓸 수 있습니까

그건 음모론

맞은편에 앉은 자가 밀사의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그렇지요 설마하니

맞장구를 치던 여자가,

쟁반이 떨어져 가라앉습니다

죽은 아이들이 배 안에 가득한 것 같아요

갑자기 진통을 호소합니다

“다음 소식은 피해자 X들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방정식은 자꾸만 다른 방정식을 근이라고 우깁니다. 퇴보의 활주로를 향해 돌아간다고 합니다. 용인될 수 없는 램프 리턴입니다. 이 시체는 누구입니까? 토막 난 불안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기껏 담아둔 희망에서는 물이 새는군요.”

다음 소식입니까

 

한 남자가

되풀이되고 있는 역사에 대하여

말하려는 순간에

—입 좀 그만 다물게

입 좀 그만 다물게 그 일이 무슨 일이었는지 우리 좀

알고 싶습니다

빈 소주병 안에서 누군가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맞은편에 앉은 자가 뚜껑을 닫자

병 속에는 에어포켓

여기는 어디 아니 얼마예요 얼마냐가 중요하지 중요한 건 이제 그게 아니라니까 민생을 살려야 한다니까,

손님들은 뉴스를 보고 있습니다 뉴스를 듣고 뉴스를

 

다음 소식은 물음표를 쓰면 잡혀갑니까

물음표 모양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한반도는 어떤 모양으로 생겼습니까

이 땅 위에서 도대체

무엇을 쓸 수 있습니까

무엇을 쓸 수 있습니까

—한지혜 「무엇을 쓸 수 있습니까」 전문(네번째 304낭독회 2014.12.27)

 

위의 시는 소통의 도구라 여겨왔던 말이 전달의 과정에서 의미가 굴절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탕을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의 말과 음식을 나르는 이의 말, 감자탕 집의 벽 한켠을 차지하며 마치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를 감시하듯 지나가는 뉴스의 말 등 이 공간의 모든 목소리는 방향을 잃고 서로를 비켜간다. 이를테면 “단순한 사고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거기에 대고 “그건 음모론”이라고 대꾸하는 순간, 말 속에 조금이라도 잠재되어 있으리라 기대되는 진실은 휘발되는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왁자지껄한 식당일 테지만 그곳에서 ‘대화’는 기실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말의 용도가 점점 줄어드는 이 현장의 구석에서는 한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