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공저 『경계의 섬, 오키나와』 『오키나와로 가는 길』 등이 있음. ursamajor@dreamwiz.com
1. 들어가며
대학 밖에서 인문학을 강의하는 곳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얼 쇼리스(EarlShorris)의 『인문학은 자유다』 부록에 정리된 목록을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방자치단체가 기획한 강의나 ‘자기계발서’ 전달용 강의가 빠져 있음에도 10여면이 인문학 강의 관련 단체들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던 것이다. 대학 내에서는 오랫동안 ‘인문학의 위기’가 회자되는 반면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 강의가 융성한 현상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그 목록이 준 구체적인 충격은 꽤 강렬했다.
내가 새삼 우리의 인문학이 처해 있는 여러 상황과 그 상황을 돌파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살펴볼 필요성을 느낀 것은 바로 이 충격 때문이었다. 인문학이 대학 밖으로 ‘내몰린’ 이 상황을 어떻게 성찰해야 할 것인가? 책 네권에 대한 논평을 통해 이 문제를 좀더 다층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의도다.1)
2. 인문학의 ‘내적 위기’와 대안적 인문학의 방향
백영서(白永瑞)와 오창은(吳昶銀)은 기존의 ‘제도권 인문학’에 대해 “‘인간됨’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을 분석하는 학문으로”(오창은, 35면)으로 변해버렸고 이 때문에 “삶과 앎의 분리”(백영서, 29면)를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세기 이래로 인문학은 각각의 분과학문으로 잘게 쪼개져 전문화되는 방향으로 제도화했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인문학도 자연과학처럼 자기 전공영역을 벗어나면 대화가 안되는 방언의 학문이”(오창은, 35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공통된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제안하는 ‘대안적 인문학’의 방향도 큰 틀에서는 일치한다. 대안적 인문학은 인문학의 통합학문으로서의 성격을 되살려야 하며, 무엇보다도 “앎과 삶의 공동체”(백영서, 48면) 혹은 “앎과 삶의 연대”(오창은, 46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대안적 인문학을 백영서는 ‘사회인문학’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사회인문학은 단순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결합을 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인문학은, 학문의 분화가 심각한 현실에 맞서 파편적 지식을 종합하고 삶(또는 인간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감각을 길러주며 현재의 ‘삶에 대한 비평’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총체성 인문학, 곧 학문 그 자체”(백영서, 35면)인 것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