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사회적 연대를 위한 복지로

 

 

백영경 白英瓊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공저 『프랑켄슈타인의 일상: 생명공학시대의 의료와 일상』, 『여성운동 새로 쓰기』, 역서 『유토피스틱스』 등이 있음.

 

오건호建昊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저서 『국민연금, 공공의 적인가 사회연대 임금인가』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 등이 있음.

 

장석준 張碩峻

전 노동당 부대표. 저서 『혁명을 꿈꾼 시대』 『신자유주의의 탄생』 『장석준의 적록서재』 『사회주의』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등이 있음.

 

조성주 趙誠株

전 서울시 노동전문관,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저서 『너는 나다』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이상 공저)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등이 있음.

 

ⓒ 이영균

ⓒ 이영균

 

백영경 한국사회에서 불안이 일상화된 만큼 안정된 삶과 그것을 가능케 할 복지에 대한 사회적 갈망도 커진 것 같습니다. 이를 반영하듯이 한동안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정치의제로 떠올랐고 지난 대선 때만 하더라도 모든 후보가 ‘복지국가’를 약속함으로써 복지국가론이 대세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기초연금 공약이 후퇴했다고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위한 재원이나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비판과 논쟁이 이어지면서 복지에 대한 시민의 뜨거운 반응은 사그라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양극화나 빈곤, 자살률, 출산율 등 여러 지표에서 우리 사회가 퍽 살기 힘들어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면에서 복지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번호 대화에서는 현재 여러 이슈로 흩어진 채 진행되는 복지 관련 논의들을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21세기 한국에서 정의와 연대의 이념에 부합하는 복지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짚어보려 합니다. 이 자리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복지 ‘전문가’는 아니라고 할 분들도 계십니다만, 오늘 대화의 취지 자체가 전문가끼리의 기술적인 논의에 복지의제가 묻히는 상황을 탈피하는 데 있는 만큼 한국사회 여러 영역에서 복지 논의의 실질적인 축을 담당하는 분들로 모셨습니다.

먼저, 각자의 현장에서 복지를 사회적 연대와 정의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얘기를 시작해볼까 하는데요, 우선 사회적 연대로서의 복지라는 말의 의미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복지의 핵심, 사회적 연대다

 

오건호 사회적 연대는 ‘서로 의지해 함께 사는 것’이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사람들은 노동시장에 뛰어듦으로써 자신의 생활수단을 구하는데, 이것의 결과가 격차와 차별로 이어져요. 이에 재분배기제로서 복지가 시장의 격차를 완화하는 ‘함께 살기’ 역할을 담당하려는 것이지요. 물론 나라마다 복지형태가 다른 만큼 복지가 지닌 사회적 연대 의미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복지정책은 늘어나고 있는데 사회적 연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직 아주 미흡합니다.

복지가 국가시스템으로 안착된 걸 복지국가라고 한다면 두가지 측면이 같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사회안전망 역할입니다. 최소한의 기본생활은 국가가 보장한다는 것. 그런데 이게 그냥 뚝 떨어지진 않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그런 만큼 복지국가의 또다른 면은, 사람들 간의 관계 즉 상호의존이 증대돼야 합니다. 소득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힘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서로 손잡고 복지를 이루는 거죠. 요컨대 복지는 물질적 측면의 사회안전망과 사람들 간의 상호의존성을 강화시키는 관계망, 이 두가지가 합쳐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 복지는 물질적 측면의 접근만 있어요. 그러다보니 복지의 핵심인 관계, 연대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겁니다. 세금을 어떻게 생각할지, 국민연금에 가입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연대할지, 현세대와 미래세대 간 재정책임의 몫이 달라지는 노후복지에서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이런 상호의존적 관계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었어요.

두가지 요인이 있다고 보는데 첫째는 복지 논의가 너무 빨리 진행된 탓이고요, 둘째는 그렇게 진행된 과정의 기본동력이 정치권이었어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 2014년 지방선거에서 연대와 관계에 대한 고민이 빠진 상태에서 마치 정치권의 선물처럼 ‘무상시리즈 복지’가 주어져버린 거예요. 지난 3년간 대한민국 복지의 양적 확대는 세계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을 만큼 빨랐어요. 그러면 그 속에서 사회적 연대·관계도 뿌리를 뻗어갔어야 하는데 이건 거의 정체상태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복지를 늘리자 하다가도 재정장벽에 부딪히면 금방 ‘돈 없으면 어려운 거지’ 하면서 흔들리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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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英瓊

백영경 최근 복지 논의를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오건호 연대라고 하면 좀더 어려운 계층을 중시해야 할 텐데 최근 3년간의 복지는 불균등한 발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복지재정이 부족하고 기존 복지제도가 여러 결함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양적으로 늘어나다보니 중상위계층의 복지는 늘어났는데 어려운 사람들의 복지는 정체상태에 있어요. 작년말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개정되었지만 크게 개선되진 않았고 지자체가 제공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도 거의 묶여 있습니다. 재정이 부족해서죠. 보편복지 열풍으로 확대된 복지의 혜택을 사실상 중상위계층이 받은 반면 그 아래 계층은 계속 정체되어 있는 불균등 발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대의 기준에서 봤을 때 이 상태가 그대로 가는 건 곤란하다 생각합니다.

또다른 문제는 앞서 말씀드린 관계망입니다. 공무원연금이 지금 재정적자가 크지 않습니까. 게다가 한쪽에서는 국민연금 급여율을 더 올리자는 얘기도 나오는데, 현재 우리나라 공적연금 제도에는 사각지대가 많아요. 이 상태에서 급여율을 올리면 노동시장 중심권에 있는 사람들은 후세대의 재정으로 혜택을 보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계속 주변으로 밀리죠. 노동시장에서도 밀리고 노후보장 면에서도 뒤처지는 겁니다. 고령화시대엔 노후복지, 특히 연금복지가 대단히 중요한데 지나치게 제도 내부자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시민단체들도 그렇고. 결집된 세력이 중심권 노동자들이다보니 그들의 입장이 강하게 담긴 면이 있죠.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혁이 미진한 문제나, 사회보험 개혁이 제도 내부 가입자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사각지대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는 문제는 사회연대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입니다.

인수위에서부터 후퇴 논란을 가져온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이 세가지입니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해서 깎겠다고 했고, 의료에서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 대책을 없던 일로 하자고 했고, 또하나가 저임노동자 사회보험료 지원 문제였어요. MB정부 때 정부에서 절반가량 지원했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을 앞으로 전액 지원하겠다고 한 말을 바꾼 건데, 다행히 기초연금과 3대 비급여는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대응해서 그나마 덜 후퇴하게 만들었지만 저임노동자 보험료 전액지원 공약은 인수위원회 때 결국 폐기됐어요. 핵심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는 노동계의 대응이 사실 없었어요. 이런 걸 보면 아직도 약한 사람의 복지를 위한 세력관계 지형은 지극히 취약하다고 봐야겠죠.

 

 

사회적 합의도 양극화 고민도 없는 복지 논의

 

전 노동당 부대표. 저서 『혁명을 꿈꾼 시대』 『신자유주의의 탄생』 『장석준의 적록서재』 『사회주의』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등이 있음.

張碩峻

장석준 오건호 위원장님도 말씀하셨지만, 한국의 복지 논의가 기성정치권의 선거 대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정작 사회적 합의가 정말 필요한 부분이 빠진 채로 기술적으로 흘러온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정치권의 행태가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기성정치권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제한되어 있어서 서구의 좌파 역할을 하는 세력이 없거나 취약하기 때문에 논의가 왜곡된 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연대’라는 말이 그냥 좋은 것으로만 여겨지는 현실 자체가 문제적 상황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사회적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자본주의 시장법칙을 어떤 영역에서는 제한하거나 아예 작동을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사회적 연대를 중심으로 복지를 늘려간다는 합의의 토대에 깔려야 하는데 그게 없죠. 그러다보니 가령 복지의 핵심 중 하나인 일자리 문제에서도 계속되는 비정규직의 양적 확대와 질적 차별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이윤을 얻은 자들은 항상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써왔는데 그러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회적 연대를 중심으로 한 합의입니다. 그게 안되니까 법인세는 계속 깎이고 소득세가 누진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봉쇄되어 있고, 이런 상황에서 재원 문제가 닥치면 정치인들이 약속했던 복지공약은 후퇴하게 되고…… 이게 지금 한국사회가 부딪힌 상황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조성주 기본적으로는 두분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주로 노동 쪽에 있다보니 좀 다른 관심이 있습니다. 이미 복지는 한국에서도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단계인 것 같아서 놀라운 한편으로, 복지와 함께 노동시장의 극심한 양극화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한 고민 없이 진행된 면이 있다고 봅니다. 복지 논의를 통해 조직된 힘으로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복지 확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말씀하신 저임금노동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중요한 사안은 당사자가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그냥 사라집니다. 그에 비하면 공무원연금 개혁은 훨씬 큰 문제로 부각되잖아요. 그것은 그것대로 중요하긴 하지만 솔직히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의 확대가 단순히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혜택을 받는 게 아니라 사회를 전체적으로 좋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얘기를 잘 안하죠. 한마디로, 복지가 아무리 확대되더라도 장시간 노동체계가 그대로 있으면 이게 무슨 복지국가냐 하는 겁니다. 세대 간 불평등 문제도 있습니다. 이대로는 계속 가기 어렵다는 건데요. 그동안 복지정책을 쏟아내기 식으로 내놓은 셈인데, 지속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더 세세한 고민이 있어야 했고, 지금부터라도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백영경 현재의 복지 논의가 정규직 중심, 중산층 중심으로 흘러가는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만, 여성 쪽에서는 정상가족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큽니다. 특히 재정문제가 핵심으로 떠오르면 대체로 ‘저출산이 문제다’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라고 얘기되는데, 혼외출산을 장려할 사회분위기는 안되다보니 결국은 가족지원정책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복지제도에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비판을 받는 듯하다가 오히려 그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다 할 수 있는데요. 어떤 사회를 꿈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으니 보수적인 사회적 가치가 복지와 함께 회귀할 가능성이 우려됩니다.

또한 복지가 현금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마치 일종의 재테크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삶이라는 게 굉장한 고비용 지출구조 속에 있는데 이 구조를 그냥 둔 채로 사람들이 연금을 얼마 받아야 되는가만 생각하다보니 공무원이나 교사조차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중산층을 벗어나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현금소득 자체보다 오히려 주거지원이라든가 의료지원 같은 서비스가 주어지고 사회적 관계망이 회복되는 것이 더 긴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여성이라면 비혼여성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얼마나 안전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이어지겠고요.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저서 『국민연금, 공공의 적인가 사회연대 임금인가』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 등이 있음.

吳建昊

오건호 늘어난 물질적 복지를 같이 끌어가줘야 할 사회적 연대 관계 형성은 두 측면에서 가능합니다. 하나는 복지를 이루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관계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지만 만약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노동복지를 위해 합심한다면 노동시장에서 분열되어 있던 이들이 그 과정에서 사회적 연대를 이룰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복지가 제공되는 과정에서도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현금복지는 그게 가능치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