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미월 金美月

1977년 강원도 강릉 출생.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 있음. welcomesnow@hanmail.net

 

 

 

장편연3(마지막회)

세 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네

 

 

그들의 이야기

 

엘리베이터 앞의 줄이 길었다. 복도에도 사람들이 복작복작하여 통행에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진은 설마 이 많은 사람이 전부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하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 했다. 그러나 웬걸, 아닌 게 아닌 것 같았다. 몇몇 사람의 손에 낯익은 표지의 책이 들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출간된 지 사흘 만에 2쇄를 찍었다더니 과연 시장의 반응이 뜨겁구나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행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삼십분이나 남아 있었다. 진이 빌딩 밖으로 나오는데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오분 후 도착 예정.’

소윤이었다. 누가 프로페셔널한 편집자 아니랄까봐 그 짧은 한 문장을 쓰는데도 꼼꼼하게 띄어쓰기 한 것을 보고 진은 픽 웃었다.

명주의 네번째 장편소설 출간기념 행사가 열리는 장소는 종로에 위치한 빌딩 꼭대기의 이벤트홀이었다. 아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빌딩 입구의 벽에 명주의 얼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인쇄된 현수막이 부착되어 있었다. 사진 속의 얼굴은 나 작가입네 하는 전형적으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진이 보기에 그것은 매일 아침 집에서 명주가 잠이 덜 깬 채로 식탁에 앉아 커피를 내릴 때의 표정과 상당히 흡사했다.

소윤은 예정대로 정확히 오분 후에 도착했다. 손에 명주가 좋아하는 제과점의 치즈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진은 자신이 동료 작가의 출간행사에 선물을 사 간 적이 한번도 없음을 깨달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행사에 가본 일 자체가 없었다.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것 같은 기분이야.”

소윤은 들떠 있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그게 다 일이었는데.”

그랬을 것이다. 행사 준비하랴, 작가들 뒤치다꺼리하랴, 정신없었을 것이다.

소윤이 농한기를 맞은 농부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빌딩 전면의 현수막을 올려다보는 사이에도 명주의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소윤과 진을 지나쳐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진은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예전부터 품었던 의문이지만 소설이라는 게 읽어서 재미있으면 그걸로 됐지 굳이 소설가까지 만나서 뭐하자는 것일까 싶었다. 소설가를 연예인 좋아하듯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열렬히 흠모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 테고 말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응?”

소윤의 답은 빠르고 간명했다.

“외로워서 그런 거지.”

“외로워서라고?”

소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영화나 연극, 콘서트 같은 것과 달리 출간 기념행사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혼자라고 했다.

“뭔가 딱 부러지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 알고 보면 답은 사실 외로움일 때가 많아.”

소윤은 계속 말을 이었다.

“왜 그랬어? 외로워서. 왜 죽였어? 외로워서. 왜 떠났어? 왜 돌아왔어? 외로워서. 왜 자꾸 물어봐? 외로워서.”

“……”

“다 외로워서 그런 거라니까.”

딱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진은 반박을 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전 자신의 첫번째 책이 출간되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녀도 딱 한번 출간행사를 치른 적이 있었다.

사오년 전이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그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는지 출판사마다 경쟁하듯 신간 홍보행사의 일환으로 작가와 독자의 만남 이벤트를 벌이던 무렵이었다. 첫 소설집 출간 기념으로 진 역시 처음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장소는 신촌에 있는 북까페였다. 출판사는 행사를 위해 까페 안쪽에 따로 마련된 파티룸을 통째로 빌려 독자 열명을 초대했다. 그들에게 무료로 커피와 케이크까지 제공하겠다고 했다. 진은 혹 출판사에 누가 될까봐 행사에 오고 싶다고 했던 친구도 부르지 않았다. 행사 당일에는 아침부터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옷장을 온통 헤집어가며 가장 세련되면서도 무난해 보이는 옷을 골랐다. 평소에 하지 않는 화장도 안한 듯 옅게 하느라 오후 시간을 다 보냈다. 그러느라 어느 틈엔가 하늘이 흐려지고 굵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백년 만의 폭설이 수도권 전역을 강타했던 그날 저녁, 행사가 시작될 예정이던 일곱시 정각의 북까페 파티룸에는 다섯 사람밖에 없었다. 진, 행사 진행을 맡은 동료 평론가, 그리고 진의 담당 편집자를 포함한 출판사 직원 세명. 일곱시 오분이 되었을 때도 인원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내 휴대폰을 붙들고 있던 편집자가 독자 네명으로부터 갑자기 사정이 생겨 불참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나머지 여섯명과는 아예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휑뎅그렁한 파티룸과 대조적으로 까페 안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백년 만의 폭설에 들뜬 사람들은 소리 높여 웃고 떠들며 커피를 마셨다. 정수리에 흰 눈을 얹고 양 손에 입김을 불며 까페에 들어왔다가 빈자리가 없어 되돌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편집부 직원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쉬지 않고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셋이 번갈아가며 창밖을 내다보고는 애꿎은 폭설을 탓했다. 폭설 탓이라도 할 수 있으니 차라리 다행인 걸까. 진은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 자리에서 ‘우리끼리 그냥 술이나 마시러 가요’ 하고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는 사람은 행사의 주인공인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진의 담당 편집자가 오분만 더 기다려보자고 제안했을 때 고개나 겨우 끄덕였을 뿐이다.

그때 진의 행사장과 지금 명주의 행사장 분위기는 얼마나 다른가. 소윤은 사람들이 외로워서 작가를 만나는 행사 따위에 참석한다고 했지만 여러해 전 진의 출간기념 행사장에서 가장 외로웠던 사람은 바로 진이었을 것이다.

왜 그랬어?

외로워서.

진은 문득 세상의 모든 질문에 그렇게 답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 진은 언제나 소설을 생각한다. 언제나 소설을 쓰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안 쓰는 쪽에 더 가깝다. 그것이 문제다. 생각은 늘 하는데 어찌하여 정작 쓰지는 못하는가.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근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저 천직이 아니기 때문일까.

진은 노트북을 덮었다. 더 버티고 있어본들 소득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노트북을 파우치에 넣고 파우치를 다시 배낭에 넣었다. 탁자 위의 쟁반을 치우면서 보니 찻잔에 들어 있는 것은 뜻밖에도 홍차였다. 무엇을 주문했는지도 잊고 있었다니, 그렇다고 소설을 많이 쓴 것도 아닌데, 대체 여기까지 뭐 하러 왔나 싶었다.

진이 소설을 쓰겠답시고 매번 수고스럽게 까페로 행차하는 이유는 바로 그 ‘수고스러움’ 때문이었다. 수고를 해야, 이를테면 뭔가를 지불해야, 그게 아까워서라도 좀더 절박해진 마음으로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잘 안되고 있었다. 수고만 하고, 지불만 하고, 그러고 나서 서너시간 속절없이 노트북 화면만 주시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집에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작업이 더더욱 지지부진했다. 야심차게 덤벼든 장편소설은 여전히 답보상태고, 그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던 차에 마침 문예지에서 원고청탁이 왔기에 쓰기 시작한 단편소설은 두 페이지쯤 쓰다가 버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진공청소기 소음이 먼저 진을 반겼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거실 벽 콘센트에 꽂힌 청소기의 전원선이 주방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은 문이 반쯤 닫힌 소윤의 방까지 이어져 있었다. 소윤의 방이니 소윤이 청소하고 있으리라. 진은 허리를 구부리고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머리카락 한올을 주웠다. 줍고 보니 그 옆에 한올이 더 있었다. 둘 다 모발이 새까맣고 굵은 것으로 보아 쟈르갈의 머리카락임이 분명했다. 수시로 청소기를 돌려도 미처 치우지 못한 머리카락은 이렇듯 언제 어디에서나 툭툭 나타나곤 했다. 하기야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하루에 빠지는 모발의 갯수가 칠십에서 팔십개에 이른다는데, 한집에 다섯명이 살고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진은 무의식적으로 청소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고자 거실 바닥을 훑어보았다. 역할 분담을 약속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청소는 대개 그녀가 담당하곤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청소야 하면 된다. 운동화를 빨라면 빨고, 나물을 손질하라면 하고, 소파를 옮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