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승우 李承雨
1959년 전남 장흥 출생.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심인광고』 『오래된 일기』 『신중한 사람』 등과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한낮의 시선』 『지상의 노래』 등이 있음. lsw555@chosun.ac.kr
신의 말을 듣다
공사 중이던 고층건물이 무너지면서 여러명이 죽고 수십명이 다친 M시의 사고는 부실공사의 주된 원인으로 업체선정 과정에 인맥과 뇌물과 정치자금이 작용한 사실이 지적되면서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들끓는 여론을 몰고 왔다. 인구가 20만도 안되는 지방도시에 랜드마크 운운하며 복합레저타운 건물을 허가해준 것부터 수상한 일인데다가 그 사업을 따낸 건설회사가 도시개발이 예정된 지역에 인접한 땅을 싸게 구입해서 연립주택을 지어 판 것 말고는 달리 내세울 실적이 없는 소규모 회사여서 의혹을 키웠다.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불거지지 않았거나 나중에 불거졌을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의 수수를 비롯한 각종 추문들이 둑이 터진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졌다. 치명적인 것은 그 업체의 대표가 시장의 부인과 친척관계라는 소문이었다. 헛소문이라는 반격은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그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도시 전체로, 도시를 넘어 나라 전체로 퍼졌다. 진상조사와 담당자 처벌과 시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신문 칼럼과 관공서 건물 앞의 피켓시위와 각종 단체의 성명서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어갔다. 사람들은 모이면 그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했다. 이를테면 결혼식 피로연장에서도, 직장인들의 저녁 회식자리에서도, 30년 만에 만난 동창들의 대화에서도 그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그 화제를 처음 꺼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는 건 중요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불가능하기도 하다. 누군가 먼저 꺼낸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화제는 특정인에게 귀속되는 고유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 그 누군가는 곧바로 익명이 되어버린다. 이 사람이 한 말이나 저 사람이 한 말에 내용의 차이가 없으면 굳이 이 사람이 이 말을 했고 저 사람이 저 말을 했다고 구별해서 새길 이유가 없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안도가 이 상황이 제공하는 혜택인데, 실상 그것은 나는 고유하지 않다,의 다른 말이고, 나는 실체가 없다,를 덮는 말이고, 그러니까 허위다. 발화자가 구별되지 않는 의견이나 감정을 주고받을 때 우리의 마음이 편한 것은 그 때문이고, 편한데도 가끔 (이건 예민한 사람이 느끼는 거라고 할 수 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듯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새겨질 필요가 있는 것은 다른 의견이나 감정인데, 이럴 때 의식은 느슨한 자세를 고치고 똑바로 앉는다. 의식이 곤두서는 경험, 30년 만에 만난 사람 앞에서 국립 M대학의 10년차 교수인 김승종은 최근에 그런 순간을 겪었다.
일찍 사위를 보는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만나게 된 M고등학교 11기 동창들 가운데 몇명이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결혼식장 부근 맥줏집으로 들어가 만들어진 자리였다. 아닌 게 아니라 졸업하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았고 그냥 헤어지면 아쉬워할 만한 자리였다. 지난 기억을 떠올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주고받고 각자 살아낸 시간들을 한두줄로 요약하거나 장황하게 늘어놓느라 시끌벅적하던 술자리가 웬만큼 시간이 지나고 나자 시들해졌는데, 그때 누군가 불쑥, 승종이가 한건 했더라, 어제 신문 봤냐? 하고 새로운 말을 꺼냈다. 고등학교 때 살던 동네에 여태 살면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친구였다. 한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는 무슨 말이냐는 듯 빵집 주인과 김승종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김승종은, 내가 무슨, 하며 머리를 긁적였고, 말을 꺼낸 친구는, 저 친구가 말이야, 하고 신문에서 읽은 내용을 옮겼다. “저 친구가 이번 붕괴사고에 대해 인터뷰를 했는데 말이야, 시민들은 시장에게 부정과 전횡을 저지를 어떤 권리도 주지 않았다, 주지 않은 권리를 제멋대로 행사한 시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시민의 권리다, 뭐 그런 요지의 말을 했더라. 인터뷰하는 사진도 크게 났고.”
M시에서 발행되는 지방신문에 그런 기사가 난 것은 하루 전이었다. 며칠 전 김승종이 회원으로 있는 M미래포럼은 붕괴사고와 관련하여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에는 시장의 퇴진을 암시하는 문장도 들어 있었다. 그후에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공교롭게도 포럼 대표가 외국에 출장 나가 있는 바람에 부대표를 맡고 있는 그가 대신 기자를 만나야 했다. 그는 사양했지만 따로 하는 일도 없는데 부대표가 그거라도 해야지, 하며 부추기는 회원들의 성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했다. M미래포럼의 성명서는 그 문제를 다룬 다른 단체의 성명서와 다를 리 없었고 다를 게 없었다. 거리에 떠도는 장삼이사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에 불과했다. 그의 인터뷰도 다를 리 없었고 다른 게 없었다. 그는 성명서에 표현된 것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신문을 본 친구가 그가 했다고 옮긴 말은 성명서에 있는 문장 중 일부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가 했지만 그의 말이 아니었다. 그는 쑥스러워하며, 그거 우리 단체에서 낸 성명서에 다 있는 거야, 하고 말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고백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주장이 누구의 것인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주장이라고 할 만한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것인지 분간되지 않는 비난과 한탄의 말들이 그들의 입에서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를 성토하다가 뿌리깊은 이 나라의 정경유착을 개탄하다가 정치인의 부도덕과 공무원의 무능을 도마 위에 올리다가 돈 없고 ‘빽’ 없는 서민의 설움을 토로하다가 했다. 그리고 그런 대화가 으레 그렇듯 곧 초점을 잃고 시무룩해졌다. “승종이 말 잘했다. 시장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용감하고 훌륭하다, 우리 김승종.” 그 술자리 대화에 결론을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김승종은 다른 사람이 받을 칭찬을 대신 받고 있는 것 같은 쑥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에 대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만인의 공감을 불러낼 용감하고 훌륭한 발언을 한 사람의 뿌듯함을 은근히 즐겼다. 어쨌든 신문기자 앞에서 그 말을 한 사람은 그였다. 성명서에 들어 있는 말이고, 단체의 공식입장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이 아닌 건 아니었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단순히 M미래포럼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 한 시민으로서의 공분을 표현했다. 그때 그는 M미래포럼의 부대표였지만 김승종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그가 느낀 뿌듯함에 대해 염치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물론 아무도,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그런 비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김승종은 자기를 비난하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흔들렸다. 아무도 그가 흔들린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를 흔들리게 한 사람조차 그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를 흔들리게 한 사람에게 그를 흔들리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지만, 그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려고 바람이 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뭇잎이 흔들렸다는 사실만으로 바람에 그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현상이 항상 어떤 의지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한 친구는 다만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학기를 추억했을 뿐이다. 그 때문에 김승종이 불편해졌다고 해서 그에게 김승종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그에게 그런 의지가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어떤 단정도 정당하지 않다. “기억나냐, 김승종. 네가 쓰던 방 나한테 물려주고 간 거?” 김승종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말을 붙인 친구를 멀뚱히 바라보다가 아, 그거, 그랬지, 하고 그제야 생각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취생들끼리 그런 거래를 했단 말이야? 짜식들. 아, 좋았지, 그때가. 생각난다.” 옆자리의 친구가 과장되게 반응을 하며 술잔을 들었다. 다른 친구가 술잔을 부딪치며, 둘이 그런 사이였어? 우, 수상한데, 하며 장난스럽게 야유했다. 김승종과 수철이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한 건 같이 학교를 다닌 동창들은 거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둘은 동네는 다르지만 M시 인근 시골 출신이었다. 김승종은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혼자 자취생활을 했고, 수철은 2년 터울의 동생과 함께했다. 3학년 마지막 학기를 마친 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한 김승종은 짐을 싸서 집으로 내려갔지만, 재수를 하기로 결심한 수철은 동생과 함께 M시에 더 머물러야 했다. 승종은 방을 빼야 했고, 수철은 다른 방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의 필요가 맞아서 배턴터치가 이루어졌다.
김승종은 수철이 언급하자 그 일이 겨우 기억난 것처럼 반응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결혼식장에서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일이 바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수철이 그 일을 기억해내지 않기를 바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