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기

 

자본주의 위기 이후, 무엇이 오는가

 

 

백승욱 白承旭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등이 있고, 최근 논문으로 「‘해석의 싸움’의 공간으로서 리영희의 베트남전쟁: 『조선일보』 활동시기(1965~1967)를 중심으로」 등이 있음. swbaek@cau.ac.kr

 

 

1. ‘자본주의 위기’라는 질문

 

우리가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극단적 양극화, 고용의 불안정성 증가, 저성장 체제로의 전환, 고령화와 결합한 실업의 증대, 사회보장의 부재 또는 와해, 정치의 중심성 상실 등 한국사회에서도 중요한 현안으로 등장한 문제들은 세계화시대에 전지구 어디서나 발견된다. 위기 증상은 중심부뿐 아니라 반주변부나 주변부까지 확산된다는 점에서 전지구적이지만, 이 체계의 한계를 뛰어넘을 새로운 도전세력은 역설적으로 약화되고 분산되었으며, 위기가 확대되고 심화할수록 위기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세력의 집중성과 구심력은 전에 없이 취약해졌다. 현재 위기를 더 크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지난 시대에 얻은 성과를 상실해가고 있으며 앞으로 상실이 더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온 시대에 대한 상실감과 미래의 불안정함·불투명함이 위기감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위기의 성격과 관련해 질문을 제기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 차원에서 그런가?

지난 20세기 내내 ‘자본주의 위기’라는 담론은 누구보다 좌파, 특히 사회주의자들의 담론이자 주장이었고 이들의 운동을 결집하는 구심점이었다. 자본주의는 삶을 피폐화하고 세계를 몰락의 길로 몰아가는 문제의 근원이며, 모순은 자본주의 원리에 내적이어서 회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이들 사상의 저변을 형성했다. 이 위기는 저항세력에게는 곧 기회이니, 위기를 돌파하고 기회를 잡아 대안적 세상을 만들자는 호소가 꽤나 힘을 가졌고,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담론이 되었다. 이에 반해 자본주의를 옹호하려는 세력은 그들이 통치하는 자본주의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부인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자본주의 위기’에 있는 것이 아님을 설파하는 데 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이 대안으로 제기한 쟁점은 산업화, 기술발전, 자유민주주의, 문명의 충돌, 근대화, 합리성 등 사회과학 교과서를 반복해 채운 많은 내용들이었다. 자본주의는 논의되더라도 위기와 관련해서가 아니라 성장-관리-조절의 틀 속에서만 이야기되었다. 자본주의 위기라는 이야기를 꺼내면 곧바로 “아직도 낡은 경제결정론에 빠져 있는 좌파로군!”이라는 비난이 되돌아오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다시 되돌아온 위기의 시대에, 자본주의 위기라는 주장을 줄곧 펼쳐온 세력은 그들 중 일부가 지속적으로 이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도 과거에 비해 훨씬 힘이 약해졌고, ‘비판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은 ‘인권’이나 ‘복지’ 등을 더 많이 이야기하지 자본주의 위기라는 화두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흥미롭게도 오히려 자본주의의 옹호세력 쪽에서 지금 이 자본주의 위기라는 이야기에 더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앞서 자본주의 대신 산업화라든가 기술문명이라든가 뭔가 다른 용어를 써서 방향을 틀려던 사람들이 이제 좌파보다 더 ‘노골적으로’ 자본주의 위기를 운운하는데, 그 취지는 현행 자본주의를 수선하지 않으면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자본주의의 내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관심이다. ‘자본주의 4.0’이라는 개념도 나오고, 거대 투기꾼인 조지 쏘로스(George Soros) 자신이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선두주자가 되고 있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21세기 자본’이라는 제목을 내건 삐께띠(T. Piketty)의 책이 일으킨 붐과 그에 대한 반응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사용하는 이론적 틀이나 그가 반향을 얻은 청중들 측면에서 과거 ‘자본주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보다는 그 반대쪽에 더 중심이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 위기라는 표현이 빈번히 쓰이는 만큼 위기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위기의 성격과 원인이 무엇이며, 다른 위기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합의된 결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규정이 너무나 상식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정작 신자유주의가 무엇이며 어떤 동학과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의외로 많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고 너도나도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위기의 특성, 기원, 유형화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이고, 그 때문에 혼동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피폐화하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괴물임을 점점 더 느끼게 되지만, 막상 이 괴물과 맞붙어 싸워볼 만한 무대가 우리 눈앞에 잘 차려지지 않고 우리의 싸움 상대가 자신의 전모를 한눈에 잘 보여주지도 않아서, 막상 대면해 싸워보기도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위기는 있으되, 위기의 태풍의 눈이 어딘지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까? 그래서 위기라고 말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위기인지, 어디서 온 위기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 글은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를 당연하게 여기고 출발하기보다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라는 용어법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이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위기인지를 좀더 면밀히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위기와 관련해 이 글이 제기해보려는 질문은 ‘자본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와 같은 것인지, 자본주의의 위기와 ‘발전’의 위기는 같은 것인지이다.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는 그것이 작동하고 재생산되기 위해서 특정한 역사·제도적 조건들 속에 뿌리내려야 하지만, 자본주의의 본성 때문에 그 역사·제도적 조건이 지속될 수 없는 위기가 초래된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단순하지 않은데, 위기는 처음에 자본축적의 위기인 ‘자본주의 위기’로 시작되지만, 자본주의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던 역사·제도적 조건을 파괴하고 그 공간적 경계를 벗어나거나 비트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눈앞에 주로 펼쳐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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