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국가범죄와 법의 책무
박성철 朴城徹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소속. 저서 『헌법줄게 새법다오』 『리트윗의 자유를 허하라』(공저)가 있음. scpark@jipyong.com
1. 간첩조작에서 무죄판결까지 27년
조작하는 방식은 수학공식처럼 단단했다. 결국 간첩이라는 값이 나오고 마는 공식 안으로 빨려들어가면 A, B, C… Z 누구도 낙인이 찍히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설마 국가가 아무 흠 없는 생사람을 잡았겠느냐고, 죄가 있으니 비밀장부를 내어놓듯 세세한 자백을 했겠지 의심한다면, 날조의 현장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깐 조사할 일이 있다면서 밀실로 연행하며 이른바 수사가 시작된다. 1983년 3월초, 공범이라지만 서로를 알지 못했던 A, B, C도 영문을 모른 채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잡혀왔다. “너 간첩이지?”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대답에 주먹질과 발질이 시작됐다. 사나흘 똑같은 추궁과 부인, 구타가 되풀이됐다. 좁은 골방 안에서 거대한 폭력 앞에 팬티만 입은 채 몸서리치며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내게 왜 이러는 거냐고 부르짖을 때 수사관은, 그래 그럼 네 말을 한번 믿어보자고 한다.
간첩이 아닌 걸 증명할 수 있게 모든 행적을 써보라는 말에 사력을 다해 적었다. 굴지의 제약회사 임원이던 A는 영업활동에 매진해 국가경제에 기여한 일을 꼼꼼히 기록했다. 사업에 성공해 제법 여유가 있던 B는 딸이 다니던 학교 기성회, 새마을금고 임원 등 지역 사회단체의 직을 맡아 봉사하고 기부한 일을 소상히 말했다. C는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큰 건설회사에 입사한 전도유망한 기술자였다. 매일 야근을 하며 국내외 공사현장을 누빈 일을 설명했다.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면서 직장의 일원으로 땀 흘리며 사회에 헌신한 일을 보면,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희망은 짓밟혔다. 수사관들은 정교한 조작의 빌미가 되는 낚시를 던진 것뿐이었다. 거래처가 있는 수원에 자주 다녀온 건 출장을 핑계로 그곳에 있는 군부대 공항 주변을 탐지하기 위해서였느냐고 A에게 되물었다. 비행기 이착륙 모습과 헌병의 활동시간 같은 고급기밀을 얼마나 수집했느냐고 추궁했다. 전국을 누비며 영업활동을 한 것은 여러 고속도로 검문활동 정보를 취합한 간첩활동이 아니냐고 다그쳤다. B에게는 학교 기성회 명단, 새마을금고 잡지, 동사무소 내규집을 내밀었다. 북한에 보고하기 위해 집에 보관하고 있던 자료를 압수해온 것이라고 했다. C에게는 원자력발전소 고압용기 제작에 관한 교육을 받으며 북에 넘기려 깨알 같은 메모를 했느냐는 욕설을 퍼부었다.
터무니없다는 반항에 돌아오는 고문은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했다.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얼굴에 수건을 덮은 채 물을 붓거나 비눗물을 코에 넣었다. 손과 발에 몽둥이를 끼워 책상 사이에 매달았다. 간봉으로 내려치다 지치면 무릎 사이에 각목을 넣고 비틀었다. 코피가 나고 항문에 피가 고이고 혈변을 누었다. 빈혈로 바닥에 실신해도 고문은 끝나지 않았다. 옷을 벗겨 꿇어앉게 하고서 한명은 구둣발로 무릎에 올라타 내리밟고 다른 수사관들은 몸 전체를 걷어차며 저주를 쏟아냈다. 어느날 옆방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릴 때 제대로 자백하지 않으면 네 마누라와 딸도 붙잡아 다 벗기고 똑같이 고문하겠다고 겁박했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라는 두려움 앞에 모든 걸 체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내게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남겨진 가족들도 어디선가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 무슨 자백을 또 요구할지, 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원하는 대로 허위자백을 하면 끝에 가서 어떻게 되는 것인지,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인지, 살아서 바깥세상을 다시 볼 수는 있을지, 어느 것 하나 알 수 없었다.
설명되지 않는 공포 앞에 마음이 무너졌다. 자백을 꾸며내기 시작했다. 미리 써준 내용을 보고 베껴 쓰며 살을 붙여나갔다. 유서도 시키는 대로 받아썼다. 조사를 받다 죽임을 당해도 자살로 위장하는 내용이었다. 수사관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간첩활동을 한 것이 너무 부끄러워 자살을 한다는 구절을 옮겼다. 쓰는 동안에는 고문을 당하지 않아서 차라리 거짓이라도 적는 게 나았다. 수사관이 원하는 만큼 그럴 듯한 자백을 토해내지 못하면 다시 고문을 당했다. 완성된 진술서나 반성문을 수십번 옮기고 외웠다. 암기검사를 받다 틀리면 또 고문이 시작됐다. 스스로 정말 간첩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가 되었다. 지하 밀실에서 60일쯤 보내며 완벽한 간첩으로 거듭났다.
검찰로 송치될 때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그래도 검사는 다를 것이라 기대했다. 고문에 못 이겨 거짓자백을 했으니 진실을 밝혀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큰절을 하면서 온몸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거짓말탐지기를 한번만 써달라고 빌었다. 재수사를 해서 털끝만큼이라도 간첩짓을 한 사실이 발견되면 정말 사형을 당해도 좋다고 울부짖었다. 검사는 짜증을 내며 자리를 비웠고 검사실로, 구치소로 바로 그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네가 우리 손을 벗어난 줄 아느냐, 검사님을 피곤하게 해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며 처음부터 또 고문을 하자고 했다. 절망했다. 국가가 자신을 범죄자, 그것도 대역죄인인 간첩으로 낙인찍은 사실을 절감했다. 범죄 피해자로서 국가에 구조를 요청하면 공권력이 수사관들을 처벌해줄 것이라는 바람은 고사하고 제발 누명을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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