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성태 全成太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매향』 『국경을 넘는 일』 『늑대』 『두번의 자화상』, 장편 『여자 이발사』가 있음. jstroot@hanmail.net
장편연재1
늙은 햄릿
1
마흔을 넘기면서 태오는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삼십대 중반부터 조금씩 몸이 불었다. 복부는 원래 똥똥한 편이었고, 어깨와 허벅지가 옷을 입을 때 살짝 째는 느낌이 들었다. 나잇살이라는 말이 있고 술살이라는 말이 있다. 핑계 있는 살들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잇살은 어느 변곡점에 이르면 내릴 것이고 술은, 언제까지 마시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살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고 물러서는 마음이 되곤 했다. 가급적이면 안주를 덜 주워먹어보려고 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꼭지 도는 날에는 이튿날 셔츠에 고추장이나 기름얼룩이 묻어 있고 바지주머니에서 땅콩 부스러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날도 그는 자책하지 않았다.
어제는 취하지 않을 수 없었어.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다.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이혼하고 누구는 재혼을 하니까. 누구는 진급하고 해고당하고 개업을 한다. 부모상을 당하기도 하고 배우자나 자식을 앞세우기도 한다. 실연당해 징징거리는 후배와 한번 쏘겠다고 덤벼드는 친구는 피할 길이 없다. 상경하는 고향 친구들은 그가 홀몸이라는 이유로 아침까지 물고 늘어진다. 부서 회식, 접대, 동창회와 망년회. 인생사가 그렇다. 자신을 위해 취해볼 일은 별로 없다.
서울 사는 고등학교 동창끼리 삼십대를 종치는 망년회를 갖던 날이었다. 다들 바빠서 연기를 거듭하다가 해 넘겨 신년초에 날이 잡혔다. 안하고 지나가기도 뭣해서 억지로 꾸리기는 했지만 서로 민망해서, 우리는 생일을 음력으로 새니까, 하고 모여보자고 했다. 태오는 망년회에 가려고 구두를 신다가 한쪽 구두끈이 풀린 걸 발견했다. 그는 쪼그려 앉아 구두끈을 맸다. 일어서는데 바지 단추가 떨어졌다. 단추는 툭, 소리를 내며 타일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그는 일시에 허리가 시원해지는 해방감을 느꼈다. ‘넓은 바다가 눈앞에 툭 트여 있었다’라는 용례로 쓸 때 그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해방감이랄까 청량감은 순식간에 스러지고 잡아주는 힘이 사라져 허전해진 허리를 움켰다. 그는 단추를 주워들며 배꼽이라도 줍는 것처럼 어이가 없었다.
그는 중견그룹의 스피치 라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홍보실 가장 구석진, 파티션으로 분리된 작은 공간이 그의 사무실이다. 그룹회장의 대내외 연설문, 기고문, 인터뷰 답변서, 신년사를 쓴다. 메시지팀장이라 불리지만 상무 이상 선임들은 장 작가라 불렀다. 회사는 1970년대 중동건설 붐 때 하청건설사로 뛰어들어 정책금융 지원을 받으며 리조트와 투자회사를 거느린 기업으로 사세를 키웠다. 지금도 계속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정치컨설팅 회사에서 경력을 쌓다가 이 회사로 옮겨 십년째였다. 사회생활이 평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작년에 신도시의 소형아파트가 당첨되어 올가을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전세로 살던 연립주택을 빼서 중도금을 상환하고 원룸 오피스텔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덤덤해진 편이다. 누가 소개해주면 선은 보았다. 연이 닿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내볼 생각이다.
일에 회의를 느껴 여러번 이직을 고민해보기도 했다. 이 직업은 시장이 손바닥만 하고 계약직을 쓰는 추세여서 옮기기도 여의치 않다. 언젠가는 회사를 그만두게 될 텐데 그때는 프리랜서로 일해볼 생각이었다. 입사 초기에는 원고가 승인될 때까지 비서실 문턱에서 벌을 서듯이 했다. 그룹 회장은 성미가 괄괄했다. 배짱 안 맞고 수가 틀리면 ‘조인트’를 예사로 깠다. 영감은 조인트를 한번 깔 때마다 공기(工期)가 하루씩 단축되었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태오는 영감마저도 읽어보지 않았을 회사의 이십년사, 삼십년사, 사십년사를 통독하고, 통계청 연간집 같은 CEO 메시지철, 이사회 회의록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자료실에 박힌 두 상자 분량의 육성 녹음테이프도 사사팀과 함께 녹취작업을 했다. 영감의 어록을 모은 노트 한권 분량의 파일도 가지고 있다.
나는 전장에서 입은 군복을 아직도 갖고 있다. 중동에서 그 군복을 걸어놓고 일했다.
애사심이 곧 애국심이다.
기름은 물에 뜨지만 땅 밑에 있다.
배포를 가져라. 중국인들이 허풍으로 저 큰 땅덩어리를 끼고 사는 게 아니다.
나하고 사업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나는 그림자까지 벗어달라고 한다. 나는 우리 임직원들이 그림자까지 벗어놓고 일했으면 좋겠다.
똥구덩이에서 건져내도 돈은 돈이다. 내 돈 싫다는 사람은 나가라.
진부하다고? 내 구상이 진부하다고? 서울에 백반집이 널린 건 어떻게 설명할까?
이제 그가 만든 문장들이 영감의 새 어록이 될 것이다. 그는 영감의 공적인 ‘말씀’이다. 말씀을 받아쓰는 사람이고 때로 창조하는 사람이다. 빨간 줄로 고뇌도 읽고 속악함도 볼 것이다. 그래서 자랑도 하고 화도 내고 반성도 하고 변명도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업자, 2만 임직원의 황제. 정경유착과 담합의 표본. 평판은 태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은 비판자도 아니고 옹호자도 아니다. 한 사람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게 어떤 일인지 문득 깊어져서 그는 시인처럼 고개를 든다. 한 인간의 과오와 한계까지 품을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는 거, 그래서 근친처럼 연인처럼 공범이 되기도 한다는 거, 이 인간적인 마음작용이 얼마나 취약한지 아득해진다. 하지만 조인트에 딱 까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밥벌이하는 사람이다.
그는 가능하면 영감님의 어법과 톤과 경영철학을 담은 연설문을 작성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들락날락하고 여기저기 돌다가 오는 수정 원고는 삼성 것 같고 현대 것 같았다. 그는 영감님과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태오의 전임자는 홍보실을 총괄하던 부사장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수족처럼 오너를 보필했고 당시에는 회장님의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었다. 태오는 그가 쓴 연설문들을 참고해가며 써서 올렸는데 퇴짜를 맞자 그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이제 회사 규모가 좀 잡혔어. 공격적으로 해외투자도 하고 있고. 차제에 회장님도 전반기를 넘어서서 후반기는 산뜻하게 맞고 싶으시다는 거지. 이미지 쇄신 말이야. 점잖고 후덕한 리더십 있잖은가. 이건 창립 50주년을 준비하는 회사의 전략이기도 하지. 회장님이 업계에서 현장 돌쇠 이미지가 좀 있거든. 그러니까 ‘쇠뿔을 뽑겠다는 각오와 배짱’ 이런 말 말고 ‘프런티어 정신’ 이런 말을 써보자는 거지. 나도 회장님과 함께 잔뼈가 굵어서 ‘도전과 응전’ 이런 말에 익숙한 사람이야. 사우디 그쪽 속담에 ‘산이 움직였다는 말은 믿겠다. 그러나 사람이 변했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 그렇지만 회사고 사람이고 변하지 않고는 못 배겨나는 세상이야. 회장님이 좀 바윗덩어리지. 몸에 안 맞는 옷은 절대 안 입으시려는 분이야. 이미지 쇄신하자고 하면 앞에서는 끄덕끄덕하시는데 돌아서면 발길부터 내지르시지. 거부감 없이 수용할 만한 적정선을 찾아봐. 당장은 쉽지 않더라도 자네가 그 일을 해줘야겠어.”
이제는 신년사 말고는 웬만한 원고는 올리는 대로 통과다. 사전에 읽기나 하는지 몰랐다. 영감님의 기력이 전만 같지 않은 것도 있지만 태오는 영감님과 자신이 세월을 두고 각자의 낱말카드를 잘 맞췄다고 여겼다. 영감님 카드 80%와 제 카드 20%를 섞어 그들만의 사전을 만든 것이다. 태오가 삼국지·탈무드·마거릿 새처·마쯔시따 코오노스께·김우중·고난·목표·도전·경쟁·열정·일방향·결단·가족·헌신·희생의 키워드를 익혔다면 영감님은 칼의 노래·장하준·감성·공존·문화 유전자를 받아줬다. 지난가을 사내 가족한마당 행사에서 영감님은 수평적 네트워크라는 낱말에 덜컥 걸려 단상 아래의 태오를 힐끔 째려보았다. 귀여웠다. 이쯤이면 자신만 길든 게 아니라 영감님도 얼마간 길들었다고 볼 수 있다.
회사는 2세 경영체제 승계가 임박해 있다. 새 오너가 자신을 곁에 둘지 태오는 자신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자라 MBA과정까지 밟고 온 젊은 상속자는 임원 독서경영 자료로 전미경제학회 토론집 번역본을 밀어넣었다. 토마 피케티와 그레고리 맨큐가 맞붙은, 기업으로서는 민감한 부유세 논쟁을 도시락 까먹으며 토론해보자는 것인데, 상속자가 주재하는 모임은 간을 보는 자리라고 임원들은 여간 긴장하지 않았다. 파티션 너머 이웃인 언론홍보팀장은 부하 과장이 요약해준 자료를 펴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맨큐 박사 손을 들어달라는 그림은 딱 나오는데 나까짓 게 들어준다고 들릴까? 이건 아주 지능적인 조인트인데, 해골을 까는 거라고. 장 작가, 골치 아픈데 까페라떼 한잔 할까?”
그는 수시로 태오의 파티션을 두드린다. 박 상무는 책상 깊숙이 들어간 슬리퍼를 대나무 등긁이로 끌어낸다. 저 효자손 말고도 그는 지압슬리퍼, 지압봉, 안대, 핫팩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사 나르는데 어디서 그것들을 구해오는지 궁금하다. 상무의 캐비닛에는 만물상 좌판을 벌여도 될 만큼 저런 물건들로 가득하다. 물건들은 모두 중국산이다. 태오도 그에게서 딱딱한 지압슬리퍼 한족을 선물로 받았다. 무른 발바닥으로 신기에는 압통이 너무 심했다. 그는 며칠 끌고 다니는 시늉을 하다가 슬그머니 인근 당구장에 벗어놓고 와버렸다. 상무에게는 집에 가져다두고 신는다고 둘러댔다.
“광화문사거리 지하도에 가봐. 작은 황학동시장이 거기 있어. 황학동시장 알아?”
태오는 얘기만 들어봤지 추억의 황학동시장을 가본 적이 없었다. 박 상무는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근데 이게 참 묘하단 말이야. 한번은 사지 두번은 안 사게 되더라고.”
“추억을 사셨던 거라 그래요.”
상무는 씽긋 웃었다.
“역시 글 다루는 사람이라 다르군. 추억을 샀단 말이지?”
지난해 여름 동안 박 상무는 빨간 만보기를 허리에 차고 다니며 열성이었다. 일과시간에도 복도를 오가고 10층 계단을 오르내렸다. 퇴근 무렵에는 파티션에 턱을 괴고 득의양양한 얼굴로 만보기를 들이댔다. 그럴 때마다 태오는 그렇게 많이 걸으셨느냐고 놀라워했다. 그러다가 며칠 만에 그는 만보기를 잃어버렸다. 애완견이라도 잃은 사람처럼 쩔쩔 매고 찾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그날로 그의 만보 걷기도 시들해졌다.
상무는 지압슬리퍼를 끌고 성큼 앞서 걸었다. 발을 절면서 고집스레 저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걸 보면 태오는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은 4층 까페떼리아로 갔다.
“이번에 금연을 확실히 하시는 모양이에요?”
“장 작가도 끊어라. 하긴 글 쓰려면 쉽지 않겠지. 내가 요새 까페라떼에 맛 들여 이 재미로 산다. 이것 놓고 이렇게 창밖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만하면 괜찮게 산 것 같고 여한 없다는 마음도 든단 말이야. 장 작가도 끊어봐. 세상에는 맛 좋은 것들이 쌔고 쌨다고. 근데 무슨 쏘스 없냐?”
“쏘스라니요?”
상무는 둥글게 말아쥔 자료집을 흔들었다.
“이거 말이야. 어디에다 실어보겠다고 오더 내려오지 않았냐고.”
“누가……?”
“누군 누구야, 아드님이지.”
“그런 것 없었는데요.”
태오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상무는 몸을 돌려 빤히 쳐다보았다.
“그거 위험한 신혼데.”
“네?”
“예비 오너가 장 작가를 안 찾는 거. 지금껏 그쪽에서 오더 받아본 적 없어?”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 위험한데.”
박 상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내에는 새 오너 체제에서 정년 데드라인은 45세가 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태오는 과연 새 오너의 사전을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다. 쟁반을 들고 일어서는데 상무가 말아쥔 서류로 태오의 배를 툭 쳤다.
“단추 떨어졌다.”
그러니까 단추는 전조에 불과했다. 그는 샤워를 하다가 제 성기가 보이지 않는 걸 알아챘다. 그는 어? 하는 기분으로 샅을 훔쳤다. 그는 옆으로 돌아서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랫배에 힘을 주어 보았으나 뱃살이 당겨진다는 느낌보다 말려 올라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좀 야비한 배신 같았다. 그는 마흔살 증후군, 그 독사 같은 게 마음으로부터 오는 줄 알았다. 회사 분위기가 골치 아프기는 하지만 하던 일이 맨날 그 일이고 딸린 식구가 없어 책임이 가중되는 나이도 아니었다. 마흔살 증후군도 건강검진에 포함되어 50가지가 넘는 설문지를 들이댄대도 ‘해당사항 없음’ 진단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증후군 따위는 남의 얘기였다. 숫자놀음에 불과했다. 행여나 독사의 기척이 느껴진다고 쳐도 살짝 눈을 감아버리면 눈치 못 채고 지나갈 것 같았다. 동창회에서 친구 하나는 마흔의 마자만 입에 올려도 마가 낄까봐 아예 입에 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친구가 “올해부턴 나이를 잊어불자!”고 건배 복창을 할 때도 태오는 잔만 부딪고 말았다.
그는 슬며시 저항감이 들었다. 독사가 배꼽 아래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쳐드는 느낌. 그는 거쳐간 애인들이 떠올랐다. 딱히 한 여자가 도드라지게 떠오른 건 아니었다. 길게 사귄 여자도 있고 짧게 사귄 여자도 있었다. 제법 진지했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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