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세월호 이후, 다시 생각하는 한국문학

 

더 넓어지고 깊어지자

80년대 문학의 어떤 풍요와 결여에 대하여

 

 

권성우 權晟右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현재 토오꾜오경제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재일 디아스포라 논객 서경식의 에세이를 연구 중. 저서 『비평의 매혹』 『낭만적 망명』 등이 있음. nomad33@sookmyung.ac.kr

 

 

1. 세월호사건을 통해 80년대 문학을 되돌아보다

 

2015430일 오전 9시, 토오꾜오 인근 코다이라(小平) 시에 있는 토오꾜오경제대학 국제교류회관 게스트룸에서 이번 4·29·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조금은 착잡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세월호사건 1주년을 맞은 지금 이 시점에서 80년대 문학(담론)에 대해 다시 사유하고 성찰해보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생각건대 세월호 참극은 지구상의 어떤 국가보다도 빠르고 역동적이며 정신없이 통과한 한국적 압축근대의 민낯과 어두운 그늘을 충격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 유례없는 비극적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의 비정상, 비합리, 탐욕, 부실한 시스템 등을 마치 갑자기 깨진 거울에 새삼 놀란 것처럼 목도했다. 세월호사건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저 엄청난 참극의 과정에서 행해진 태만과 방관, 협잡, 무책임에서 과연 나 자신은 면제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대화하는 우울한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 각각의 몸과 실존, 무의식에도 분명히 스며들어 있을, 저 한국적 근대의 습속과 행태를 생각해본다. 평생 살아갈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이겠지만, 문학 쪽에서 생각해보면 항상 그 고통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대의 문학은 이 모순과 비극을 통과하고 응시하면서, 상처받은 자의 아름다움을 과연 보여줄 수 있을까?

세월호사건이 한국사회의 뒤틀린 욕망과 무의식적 관행을 다시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라면 이 사건을 둘러싼 문맥과 의미망은 좀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 즉 세월호사건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전개과정을 통해 꽃다운 목숨 304명이 희생되었으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시신 아홉구가 바닷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표면적인 사실에서 더 나아가, 사건의 정확한 원인과 책임소재가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기막힌 현실, 이같은 치명적인 사고와 그후의 숱한 정치적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이번 4·29재보선을 위시한 몇번의 선거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지배권력과 여당에 대한 최소한의 정치적 심판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무력감, 오히려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 대한 불편하고 악의적인 여론이 날이 갈수록 활개치고 있는 모순 등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우리 정치는, 우리의 욕망은 왜 이렇게 나쁜 방식으로 굴절되었을까? 우리 사회에 희망은 있는가?

다시 이렇게 물어보자.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린 통치자와 수권정당이 용납될 수 없는 모순과 불합리한 행태를 보여주어도 선거에 의해 심판되지 않는 사회, 야권이 지리멸렬하여 신뢰할 만한 대안으로 부각되지 않는 사회, 상식과 정당한 비판이 이분법적 진영논리와 보수화된 미디어지형에 흡수되는 사회, 이곳을 바꾸기 위한 진지한 문제제기와 뜻깊은 노력들이 냉소주의라는 블랙홀에 잠겨버릴 수밖에 없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문학(비평)을 통한 사회비판이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것인가? 이 시대 문학에 희망은 존재하는가?

이 글은 바로 이 물음들을 마음에 새기며, 1980년대 문학이 지금 이 시대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가 아직까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80년대 문학의 결여와 풍요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사유하는 비평적 에세이가 될 것이다. 그것은 어느 연대보다 지배이데올로기와 폭압적인 정치권력에 대한 전방위적 저항이 이루어졌고 문학(비평)이 그 전선에서 대단히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던 80년대 문학과 그 시대를 되돌아보며 지금 이 시대 문학(비평)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도정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80년대 문학이라는 주제처럼 특정한 연대의 문학을 하나의 단일한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80년대 문학(담론)에는 생각보다 상당히 다양한 입장과 진영, 스타일이 혼재하고 있었다. 민중문학, 민족문학, 노동문학 등의 진보적인 문학이라는 커다란 흐름 외에도 마광수(馬光洙), 장정일(蔣正一) 등의 도발적이며 퇴폐적인 문학이 있었는가 하면, 시운동그룹으로 상징되는 신비주의와 다양한 형식적 모색도 존재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박남철(朴南喆) 그리고 이인성(李仁星), 이성복(李晟馥), 황지우(黃芝雨) 등의 해체주의적 글쓰기, 윤후명(尹厚明)의 『돈황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