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찬 鄭贊

1953년 부산 출생.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로 등단. 소설집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황금 사다리』 『로뎀나무 아래서』 『유랑자』 등이 있음. lodem53@hanmail.net

 

 

 

등불

 

 

1.

그가 여객선 사고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문경새재에서였다. 부산항에서 안산 시화공단으로 화물을 싣고 가던 도중이었다.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가까운 식탁에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 들려왔다. 오백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탄 여객선이 침몰되었는데 구조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승객 가운데 수학여행 가던 학생이 삼백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빠르게 잊었다. 그에게 세상일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흐린 영상 같은 것이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날 저녁 4시 조금 넘어 시화공단의 한 업체에 화물을 인계한 후 구미공단을 들러 화물을 싣고 부산항으로 왔을 때 밤 열시가 넘어 있었다.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을 겸해 소주를 마신 후 자정 무렵 거처로 들어갔다. 그의 거처는 부산항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낡은 오피스텔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잠을 자는 날은 한달에 서너번이었다. 잠자리는 정처가 없었다. 화물 배송지와 도착시간에 의해 결정되었다. 알선업체 휴게소와 주유소 휴게소를 비교적 자주 이용했다. 퀴퀴한 냄새가 떠도는 방이지만 그에게는 편했다. 트럭도 심심찮게 잠자리가 되었다.

새벽 네시 조금 넘어 일어난 그는 사십분 후 오피스텔을 나왔다. 아침 아홉시에 인천 남동공단에서 인수해야 할 화물이 있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면서 가속페달을 자주 밟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시속 150킬로미터를 넘게 달리다보면 정신을 놓을 때가 있다는 사실을.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그가 모르는 어떤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간혹 트럭 운전석에 앉은 채 육중한 쇳덩이에 깔려 뭉개진 자신의 육신이 환영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아침 아홉시 조금 넘어 남동공단의 한 업체 화물을 싣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단골 식당으로 향했다. 입구가 가정집 부엌 뒷문처럼 보이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썩 젊지도 않은 여자가 걸음마를 겨우 하는 아이를 키우며 혼자서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값이 싸면서도 음식이 정갈했다. 아이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식당뿐이라고 했다.

뜻밖에도 식당 문이 잠겨 있었다. 창 안을 들여다보니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식당 전화번호를 눌렀으나 받지 않았다. 그녀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옆집 세탁소 노인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노인이 어떤 생각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세탁소 노인은 자주 그녀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녀를 모슬포댁이라고 불렀다. 그녀 고향이 제주 모슬포였다. 노인은 언젠가 모슬포댁이 보기 드물게 착한 여자라고 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못 들은 척했다. 노인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으나 알 수 없었다.

십여분을 서성이다 인근의 다른 식당에 갔다. 벽에 걸린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두운 바다에 가라앉은 배가 화면에 비쳤다. 배의 앞머리만 바다 위로 삐죽이 나와 있었다. 그의 눈에는 커다란 새처럼 보였다. 화면에 자막이 뜨고 있었다.

4190시 기준 총 탑승인원 476명, 사망 28명, 실종 274명, 구조 174

그는 화면을 멍하니 보았다. 눈빛이 몽롱하고 공허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런 상태가 음식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몰랐다. 이십여분 후 식사를 마친 그는 식당 바깥에 우두커니 섰다. 머릿속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트럭을 어디에 세워놓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디론가 가야 해. 그는 중얼거리며 발을 떼었다. 걸음걸이가 불안정했다. 잠시 후 그는 그녀의 식당 입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식당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녀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녀의 몸은 짙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그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그녀가 스르르 사라질 것 같았다. 저긴 어디일까? 어디이기에 저토록 멀리 보이는 걸까? 새 날개 치는 소리가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2.

그가 그녀의 식당을 다시 찾은 것은 일주일 후였다. 인천 남동공단으로 배송하는 화물이 있었다. 트럭을 식당 근처에 주차했을 때는 오후 세시에 가까웠다. 점심을 걸러 배가 몹시 고팠다. 그녀가 차린 음식들이 눈에 보이듯 떠올랐다. 찰기가 흐르는 밥과 콩나물을 넣고 끓인 된장국, 양파를 섞어 들기름에 볶은 두부와 새콤한 도라지무침, 그리고 자리젓. 그녀의 식탁에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이 자리젓이었다. 고향음식이라고 했다. 모슬포 앞바다는 물살이 거칠어 자리의 육질이 쫄깃하고 오래 보관해도 변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리젓 냄새가 그녀에겐 아버지 냄새라고 했다. 늘 자리젓을 안주로 소주를 마신 그녀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자리젓을 어린 그녀의 입에 넣어주곤 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퀴퀴하고 큼큼한 맛이 뱉고 싶을 정도로 싫었지만 자꾸 씹다보니 몰랐던 맛이 생겨났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리젓 냄새는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냄새가 되었다고 했다.

식당 문은 그전처럼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녀가 식당을 열흘 이상 비워둘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주 낯설지가 않았다. 가슴이 조이는 듯한 불안이 일면서 발밑이 허전해지고 있었다. 두 발을 딛고 있는 데가 땅이 아닌 듯 몸이 흐느적거렸다. 무릎 아래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발밑을 살피면서 식당 앞 계단에 겨우 앉았다. 그런 증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시커멓게 불에 탄 채 반쯤 무너진 건물을 보고 있을 때였다. 어린이캠프에 참가한 딸의 숙소였다.

그는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겨우 여섯살이었다. 여섯살 아이가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소풍을 간다고 했다. 하룻밤만 자고 온다고 했다. 숙소는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전기배선도 제대로 안된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객실을 만든 허술한 건물이었다. 불은 새벽 한시 전후에 났다. 불길에 휩싸인 컨테이너가 구겨지듯 무너진 것은 컨테이너 하중을 지지하는 기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컨테이너와 합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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