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탈북인의 자리를 돌아보다

 

 

고경빈 高景彬  평화재단 이사. 하나원장,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 등 역임.

 

이향규 李向珪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글로벌 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공저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 비 전향장기수 김석형 구술기록』, 『북한교육 60년: 형성과 발전 전망』 등이 있음.

 

설송아 데일리NK 기자. 평안남도 출생. 2008년 탈북.

 

한기욱 韓基煜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저서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역서 『필경사 바틀비』 『미국 패권의 몰락』 등이 있음.

 

ⓒ 김준연

ⓒ 김준연

 

한기욱(사회) 작년부터 부쩍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의 존재 및 발언이 부각돼왔습니다. 일부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사건이 남북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북한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의 중요 현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정작 탈북자의 실제적인 삶이나 그들의 곤경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탈북자를 우리 일원으로 배려하기보다 편견과 차별로 대한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이런 단순치 않은 문제들을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이번 좌담을 마련했습니다. 아울러 그간 창비가 제시한 분단체제의 개념이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짚어봤으면 합니다. 전문적인 이야기보다 주로 시민적 관심사를 중심으로 하면서 탈북자 문제와 동시에 탈북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함께 돌아보려 합니다. 저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문학평론가로서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자리를 점하고 있는 탈북자의 존재와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모신 분들은 모두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오셨는데 우선 자기소개 겸 주된 활동, 근황을 말씀하시면서 시작해볼까 합니다.

 

고경빈 반갑습니다. 저는 통일부 관료 출신으로 하나원(탈북자의 사회정착을 지원하는 통일부 소속기관) 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지금은 평화재단에서 북한인권, 환경 문제 등을 연구하면서 활동을 돕고 있습니다.

 

이향규 저는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 있고, 전에는 무지개청소년센터,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등에서 이주청소년, 탈북청소년에 대한 교육지원, 연구, 실천 등을 해왔습니다.

 

설송아 저는 평안남도 출신이고요, 2008년에 탈북해서 2011년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동안 혼자 시행착오와 고비를 겪다가 현재는 북한에 대한 기사를 발췌하는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한기욱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몇가지 개념과 상황에 대해 공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탈북자를 지칭하는 용어와 탈북의 동기, 탈북자 현황 같은 기본적인 내용을 고경빈 이사께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탈북자’는 누구인가

 

高 景 彬 평화재단 이사. 하나원장, 통 일부 정책홍보본부장 등 역임.

高景彬

고경빈 탈북자라고 통칭되지만 법률에서 사용하는 공식용어는 ‘북한이탈주민’입니다. 새터민, 이주민 등 나머지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나 맥락에 따라 쓰이는 사회적 용어들입니다.

탈북 동기와 관련해서는, 냉전시대에는 남북 간 체제경쟁과 그로 인한 정치적 동기를 중심으로 전방 군인과 자수간첩 위주로 나타났습니다. 매년 10명 안팎의 소규모였죠. 그러다가 90년대말 이후에 남북의 국력경쟁이 종식되고 북한이 식량난과 경제난을 겪으면서 탈북자가 대량으로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가족재결합 차원의 탈북이 늘어나는 추세라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1차 경유지로 해서 동남아시아나 몽골, 유럽 등 여러 곳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탈북 이후 한국행까지는 사정에 따라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이 아니라 제3국에 난민신청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고, 한국 여권을 가진 상태에서 위장망명 신청 대열에 끼어드는 사례도 많습니다. 더러는 북한으로 재입국하는 사례도 10여건 보고됐습니다.

국내로 입국하는 탈북자는 최근에 증가율이 다소 감소했습니다만 매월 100여명에 이르고 누적규모는 조만간 3만명에 근접할 전망입니다. 대량탈북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지만 정국에 따라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기욱 탈북 문제를 다룬 소설을 보면 기획입국 가운데 인신매매와 관련된 경우가 꽤 많습니다. 정도상(鄭道相)의 『찔레꽃』(창비 2008)이나 이향규 박사님이 추천해주신 김유경(필명, 탈북작가)의 『청춘연가』(웅진지식하우스 2012)도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지금은 꽤 줄어들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李 向 珪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글로벌 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공저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 비 전향장기수 김석형 구술기록』 『북한교육 60년: 형성과 발전 전망』 등이 있음.

李向珪

 

 

이향규 어디까지 인신매매라 규정할지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오히려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경우도 있을 것 같고요. 고경빈 이사님이 말씀하신 용어 문제만 해도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탈북청소년이라고 하면 북한에 있다가 탈출한 청소년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정부가 집계한 탈북청소년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태어난, 북한여성의 자녀예요. 북한에 적()을 두지도, 북에 대한 기억이 있지도 않은 친구들입니다. 그냥 ‘탈북여성의 자녀’라고 부르는 게 맞는 셈인데, 이들을 어떻게 부를 건지, 과연 이들을 부르는 말이 필요하긴 한 건지 애매하죠. 물론 정책적인 용어로서 가령 지원대상을 정하기 위해서라면 필요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이들을 부르는 정책용어가 일상용어가 되면 어떻게든 이들을 구별짓게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들을 부르는 새로운 말을 자꾸 만들게 아니라 아예 특별한 용어로 구별해 부르지 말 것을 주장해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돼요. 이제 한국에서 오래 살아가야 하는데 늘 탈북이라는 정체성을 못박아두는 이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더는 탈북이나 북에 대한 기억을 굳이 갖지 않는 상태에서도 여전히 탈북주민이라고 불리는 현실이 이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기 어렵게 하는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그 와중에 재미있는 건, 중국인 아버지와 북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청소년들은 자신을 북한사람은 물론 한국사람으로도 여기지 않아요. 중국사람으로 여기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중국의 힘이 강하다고 생각하니까요.

 

 

한기욱 그런 경우에도 우리 사회에 오면 탈북청소년이라고 부릅니까?

 

이향규 그렇죠. 교육부에서 그렇게 집계하고 있습니다.

 

한기욱 그건 무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향규 지원을 폭넓게 한다는 의미는 있지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탈북주민이 일반적으로 겪는 어려움과 비슷하다는 면에서 교육적인 지원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한기욱 그런데 북한을 실제로 이탈한 사람을 탈북자라고 부르는 것에는 양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명칭으로 부름으로써 그 사람이 어떻게 변하든 그 정체성에 계속 고정시켜놓는 부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탈북자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정체성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아요. 이 명칭의 존재 자체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면이 있기도 하죠. 탈북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명칭을 일률적으로 없애면 행정관리상의 문제도 있지만 그 사람이 정체성을 새로 찾아나가는 데도 꼭 바람직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향규 정체성은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와 타인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맞물려서 생긴다고 봅니다. 그런데 탈북자라고 자꾸 부를 경우 전자보다는 후자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타인에 의해서 탈북자라는 사실을 계속 확인받는다는 거죠. 본인이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요.

 

설 송 아 데일리NK 기자. 평안남도 출 생. 2008년 탈북.

설송아

설송아 탈북자 입장에서 저나 제 주변 사람들을 보면 북한이탈주민이든 탈북자든 명칭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획탈북이라는 건 북한 내에서도 이루어지지만 여기서도 그렇게 합니다. 남한에 온 사람이 브로커를 시켜서 강제나 합의로 가족을 탈북시키기도 하는데요, 해외소식을 다 들으면서 이삼년 기획하는 거죠. 고이사님 말씀처럼 김일성정권 때는 아주 특별한 사람만 탈북을 했다면 90년대에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생존권을 위해서 인신매매까지 포함해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했고요, 최근에는 좀더 잘살아보자 하면서 오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기획적인 탈북으로 이어져요. 탈북자의 현황에 대해 다른 각도로 말씀드리면,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가 갈라져서 싸우는 것처럼 탈북자도 그렇습니다. 제가 2012년 대통령선거 때 깜짝 놀랐어요. 고향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자리에서 관련 대화를 하다가 이런 건 야당 후보쪽이 옳다고 했더니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탈북자 2만명 중에 문재인 좋아하는 건 너 하나다, 네가 잘못됐다’ 그러더라고요. 참 가슴 아픈 일이지요.

 

한기욱 대체로 양분되나요, 아니면 한쪽에 치우치나요?

 

설송아 치우치죠. 95퍼센트는 보수, 새누리당 쪽으로 쏠립니다. 물론 그럴 만한 게, 북한에 ‘고양이는 쓸어주는 대로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이쪽이 혜택을 많이 주니까 당연한 결과기도 하죠. 그렇다 하더라도 탈북자들이 자신과 사회에 대해 좀더 객관적으로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념적 구속과 자본주의적 유혹 사이에서

 

韓 基 煜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저서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역서 『필경 사 바틀비』 『미국 패권의 몰 락』 등이 있음.

韓基煜

한기욱 탈북자가 남한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은 여러 종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경제적인 어려움, 특히 구직의 어려움, 그리고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송금을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 있겠지요. 그리고 탈북자에게는 반공·반북의 이념적 ‘구속’과 ‘유혹’이 보통 시민들보다 훨씬 클 듯해요. 또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만만찮은데 거기에 남한사회의 광범위한 편견과 차별까지 견뎌야 하는 것이 큰 시련일 듯싶습니다. 박정범 감독의 영화 「무산일기」(2010)는 이런 어려움들을 실감나게 보여주는데, 탈북자의 고난과 존재론적 외로움이 깊숙이 느껴져요. 청소년의 경우 한국교육의 살벌한 경쟁체제에 어떻게 적응하는가도 빠뜨릴 수 없는 문제일 것 같고요. 먼저 당사자로서 설기자님께서 말씀해주실까요?

 

설송아 제 경험 위주가 될 테니 객관적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남쪽으로 넘어와서는 우선 먹고살려면 돈을 벌어야 되니까 신문 같은 데서 알바 자리 찾아서 무조건 전화해봐요. 우리는 말투가 특이하잖아요. 듣고 바로 끊어버려요. 그 스트레스가 말도 못합니다. 이렇게 말투 때문에 취업을 못하는 상황이 상당히 오래 지속돼요.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정부에서 장려금을 준다기에 공부 열심히 했어요. 근데 문제는 같은 고졸이라 하더라도 북한의 평균 교육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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