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내가 살아갈 시
송종원 宋鐘元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텅 빈 자리의 주위에서」 「21세기 오감도(烏瞰圖), 21세기 소년 탄생기(誕生記)」 등이 있음. renton13@daum.net
그의 작품을 문예지에서 발견할 때마다 기분이 새로웠다. 지면을 채운 세련된 언어가 ‘세련된 언어’에 그치지 않는 것이 늘 반갑고 신기했다. 그는 알 만한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알고 싶은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또한 그는 남을 속이면서 동시에 자기도 속는 그럴듯한 시에는 무심한 사람이었다. 현자처럼 깨달은 말을 하는 목소리와도 거리를 두고, 거꾸로 선 현자처럼 광기와 착란에만 기대어 목소리를 내는 일도 드물었다. 누군가는 종종 그의 시의 화려한 기술을 논했지만, 그런 말은 일부만 맞는 말이다. 나는 그 화려함이 소박한 열정이 빚어낸 것이고 평범한 삶의 터전에서 터져나왔다는 점까지 말해야 옳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시는 화려하면서도 단단했다. 단단한 시를 쓰는 사람이기에 더욱 두서없이 물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의 첫 질문, 어쩌다가 시를 쓰게 되었나요?
정말 ‘어쩌다가’ 시를 쓰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전혀 생각이 없었어요. 한마디로 그냥 관심이 없었죠. ‘남자는 이과(理科)지’라고 말하는 친구들 따라 고교시절을 보내고 공대에 갔어요. 정말 우연찮게 문학동아리에 들었는데, 물론 문학에 뜻을 품었던 건 전혀 아니었고 그냥 사람들이 좋아서였죠. 독서토론을 위해 난생처음 읽은 시집이 『노동의 새벽』(박노해, 1984)이었는데 그때 큰 감동을 받았어요. 거기에 너무 정직한 언어들이 있는 거예요. 줄글로 풀어놓으면 그냥 생생한 일기가 될 것 같은 정직한 언어들. 거기에 감응해서 시라는 장르의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 그 시집과의 만남이 약간은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시집을 읽으며 어렸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이해하게 되었거든요. 유년시절에 서울 구로에 살았어요. 말하자면 노동자들이 모여사는 상습침수구역이었는데, 「나는 국경꽃집이 되었다」(『국경꽃집』, 2007)에도 나와요. 대문이 파란색이었고, 아버지는 부재중이었고, 비가 오면 집에 물이 들어오고…… 그 동네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집들이 있고 콘크리트 담장도 아닌 철망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있었어요. 아무튼 그랬던 곳인데, 장마가 오면 동네 사람들 다 학교 교실로 가는 거예요. 가서 일주일씩 살고, 학교에서는 수업을 해야 하는 날인데 비가 안 그치니 수업을 못하고…… 어린 저는 그런 게 내심 재미있기도 했고요.
서울 외곽에 살다가 아버지가 외국에 가시면서 외할머니집에 들어온 거였는데, 당시에는 그 집에 세든 누나들이 무얼 하는지 몰랐죠. 마당에서 그 누나들과 놀고 그랬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스무살도 채 안된 그 누나들이 다 공장에 다녔던 것 같아요. 동네 어머니들마저 다 일을 하러 간 골목에는, 학교를 파하고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에 직업 없이 어슬렁거리는 친구의 아버지가 있었는데 한쪽 손이 없었어요. 프레스에 찍힌 건지 어쩐 건지…… 그런데 그 신체의 불구성이 왠지 어린 내게는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어요. 마치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공터에 가지가 부러진 채 서 있던 나무처럼 말이에요. 늘 보는 당연한 모습이었거든요. 제 시 「야행」(『내가 살아갈 사람』)에 나오는 분이 그분인데, 『노동의 새벽』을 읽으면서 그런 오랜 기억의 조각들이 성인이 된 현재로 다시 소환되어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인지 속에서 다시금 조립되고 이해되고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 경험 때문에 시라는 것이 제게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그러고부터는 계속 읽게 되고, 읽다 보니 쓰게 된 것이죠.
제 몸에 쌓여 있던 기억의 더미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발산하지 못한 감정의 꾸러미를 풀거나 고여 있던 욕망과 꿈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작업으로서의 시쓰기. 이같은 시쓰기가 이루어질 때 우리 삶의 가장 어두웠던 부분은 환한 빛에 물든 얼굴을 드러낸다. 유년을 말하는 시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저 자신을 좀더 충만하게 바라보게 하는 이미지와 제 몸을 긁어놓고 간 ‘낙서’들을 맥락화하고 하나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시인의 얼굴을 보았다. 이상하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시 속에 이야기를 풀어내는 목소리는 과거의 김중일과 현재의 김중일 어느 쪽으로도 소급되지 않았을 테니까. 또한 정체를 뚜렷이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어느새 간접화법으로 들어앉아 시인이 연루된 사회와 문화의 맥락을 시 속에 새겨넣었을 테니까.
어릴 때 옆집의 광필이는 제 아버지 직업을 야간여행자라 적었다. 지도 한장 달랑 들고 구멍 뚫린 쪽배로 난바다를 건너온 난민이라 했다. 백지 같은 백주 위로 금세 낙서가 가득했다. 검은 낙서로 가득 차 어둑해진 해거름이면 나뭇잎을 짊어진 개미들이 일렬로 골목을 횡단했고, 광필이 아버지는 야행을 떠나며 개미들이 그어놓은 절취선을 따라 일력처럼 부욱 한장의 하루를 찢어갔다. 학교 화단에 꽂아놓은 모종삽처럼, 주머니에 오른손을 꽂고 있었다. 별을 캐는 사람이라 했다. 한번은 절벽에 핀 초질량의 별을 따다 되레 오른손이 그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었다 했다. 대신 별빛 번쩍이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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