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신예소설가특선

 

최은영 崔恩榮

1984년 경기 광명 출생.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euni153@naver.com

 

 

 

먼 곳에서 온 노래

 

 

봄학기 강의를 마치고 뻬쩨르부르그에 왔다. 미진 선배가 뻬쩨르부르그 대학원에 입학한 때가 2005년이었으니 이 도시에 놀러 오겠다는 약속을 10년 만에 지킨 셈이었다. 그때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곳에 올 수 있을 줄 알았다. 남는 건 시간이고 부족한 건 돈이었으니, 돈만 생기면 언제든지 미진 선배를 보러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출국 전날 율랴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초록색 롱원피스를 입은 동양 여자가 보이면 나인 줄 알아달라고. “솔직히 내 눈에는 모든 사람이 다 똑같아 보이니까 율랴가 나를 찾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율랴는 출국 게이트에서 허둥대는 내 어깨를 잡고 웃어 보였다. 미진 선배가 사진을 보낼 때마다 선배 옆에서 별다른 미소 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던 폴란드 여자. 짙은 일자 눈썹, 회색 눈, 얇은 입술 때문에 꽤 차가운 얼굴로 기억했지만, 실제로 웃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주소만 알려주면 알아서 찾아갈 수 있다고 했는데도 율랴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가고 싶으니까 가는 거예요. 소은은 소중한 손님이니까. 그럴 수 있게 해주세요”라며 굳이 마중을 나왔다. “우리 집에서 버스 타고 20분 정도 가면 미진 연구실이에요. 미진이 자주 가는 여름정원은 우리 집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고. 미진이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점도 알려줄게요.” 능숙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알아듣기 쉬운 발음으로 율랴는 천천히 말했다.

“그녀와 얼마나 같이 살았다고 했죠?”

3년쯤. 내가 이 집에 들어오고 플랫메이트로 처음 구한 사람이 미진이었어요. 미진이 연구소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까지 같이 살았으니까요.”

플랫 건물은 미음자 모양이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도넛처럼 가운데가 뻥 뚫린 공간에 정원이 있었다. 율랴의 집은 그 건물 3층에 있었다. 방 둘에 화장실 하나, 거실 하나, 세탁실 하나, 부엌 하나의 작은 공간이었다. 율랴는 현관문 앞에 신발을 벗어놓았다. “미진과 함께 산 다음부터 집에서 신발을 벗어요. 습관이 되니 이게 편해서.” 발바닥에 닿는 나무 바닥이 부드럽고 차가웠다. “여기가 미진 방이었어요.” 그녀가 방문을 열자 은은한 계피향이 났다. 싱글 침대 하나, 오크나무로 만든 커다란 책상 하나, 텅 빈 책장과 삼단 장식장, 옷장 하나가 보였고, 커다란 창으로 늦은 저녁 햇살이 내려왔다.

“한동안 플랫메이트를 받지 않았어요. 이 방도 사람이 반가울 거예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이제 여기가 소은 집입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미진 선배가 3년간 사용했을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침대에 누워 미진 선배의 시선으로 벽과 천장을 응시했다.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지만 바로 잠이 들어서 눈을 떠보니 이미 오전 열시였다. 모스끄바 공항에서 여섯시간 동안 환승 대기를 해서인지, 그 전날까지 학생들 시험지를 채점하느라 잠이 부족해서였는지, 아침에 율랴가 나가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로 깊이 잤다. 부엌으로 가니 식탁에 토스트와 사과, 삶은 계란,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있었다.

냉장고에 우유와 주스가 있습니다. 커피메이커에 진한 커피가 있습니다. 즐거운 하루!

율랴는 시내 지도에 현재 위치를 별 모양으로 표시하고, 지도 곳곳에 점을 찍은 뒤 설명을 달아놓았다. 미진의 연구실, 미진의 아파트, 베트남 음식점, 여름정원, 정교회 성당…… 그 옆에 몇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까지 적어놓았다.

 

*

 

선배는 리넨 소재의 하늘색 썬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헐렁한 옷이 아닌데도 몸이 작아 자루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녀는 가느다란 담배를 한 손에 들고 골똘히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짧고 가는 머리카락이 햇빛에 비쳐 반짝였다.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먹을래. 너는?” 나도 같은 걸로 먹겠다고 하니 선배가 웨이터를 불러서 러시아어로 주문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서울과 뻬쩨르부르그의 날씨와 서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왜 이리 늦게 왔어? 금방이라도 놀러올 것처럼 얘기해놓고서.”

“죄송해요.”

“죄송하기는. 네가 덮어두고 미안하다고 말할 때마다 무안해진다.”

“정말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거예요.”

“나는 지금이라도 네가 와줘서 좋기만 한데.”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얼굴 위로 나무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 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여기서 선배랑 있으니 마로니에공원 담장이 생각나요. 담장 옆에 나무가 있었잖아요. 덕분에 여름에 그늘에 앉아 시원하게 공연할 수 있었고.” 내 말에 선배의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이 퍼졌다. 내가 처음 만났던 선배는 스물다섯살, 노래패 고학번 선배였다.

우리는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 저녁에 마로니에광장에서 공연을 했다. 마이크도 스피커도 없이 그저 우리의 목소리만으로 노래했다. 광장의 나지막한 담장이 우리의 무대였다. 우리는 담장 위에 올라가 팔짱을 끼고, 가끔은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노래를 불렀다. 차츰 어둠에 잠기는 공기 속에서 서로의 목소리가 섞이는 동안에는 자질구레한 생활로부터도, 몸으로부터도, 무거운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살과 뼈가 점점 무게를 잃어가는 기분, 내 몸이 작은 열기로도 쉽게 상승할 수 있는, 속이 텅 빈 풍등이 된 기분이었다. 가는 끈만 끊어버리면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어. 누구도 나를 속박할 수 없어. 그럴 때면, 내가 아마도 노래 부르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다고, 이렇게 노래 부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 야외공연을 했던 4월의 저녁을 잊을 수 없다. 준비한 레퍼토리가 다 끝났을 때, 미진 선배가 계획에 없던 독창을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췄고, 나도 다른 동기들도 선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맑고 여린 목소리에 강단이 있었고, 멜로디나 가사를 떠나서 목소리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선배의 노래가 날카롭고도 부드럽게 내 속으로 들어오자 내가 겨우 감추고 숨겨온,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내 속의 한 조각이 속수무책으로 떠올랐다.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선배의 노래는 나를 부끄럽게도, 슬프게도 했다. 선배의 가느다란 어깨를 두 손으로 누르고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얹고 싶었다. 그 자그마한 입속으로, 어둠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싶었다. 어떻게든 선배의 세계에 한발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었다. 선배와 가까워지기 전의 일이다.

우리는 여름정원을 함께 걸었다. 대리석 분수대 위로 물줄기가 솟아올랐고 바람이 불어 물줄기의 작은 물방울들이 안개처럼 선배와 나를 덮었다. 정수리로 따뜻한 햇살이 내렸다.

“러시아에서 살기 힘들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한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는 똑똑한 축에 든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오니까 가장 뒤처지는 축이었지. 그게 당황스러웠어. 언어가 안됐으니까. 율랴를 만나지 않았으면 중도에 포기했을 거야. 걔가 날 많이 도와줬어. 우린 여러모로 비슷했지. 성격이 불같은 것도.” 선배의 창백한 팔에 푸른 정맥이 도드라졌다.

“가끔 햇빛도 좀 보고 그래요. 걸어다니는 백설기도 아니고.” 내가 타박하자 “백설기 먹고 싶다” 하고 선배가 길게 하품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너는 왜 아직도 나한테 말 안 놔? 수현이 같은 애들한테는 언니, 언니 하면서 반말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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