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시대 | 전환의 징후를 읽는다

 

바꾸거나, 천천히 죽거나

87년체제의 정치적 전환을 위해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시대유감』 『우리는 다시 디즈니의 주문에 걸리고』 『좌충우돌』 등과 편서 『87년체제론』 등이 있음. jykim@hs.ac.kr

 

 

정보는 기대와 다른 점, 즉 놀라움의 요소를 가진 무엇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지금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은 전혀 정보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지표는 지천이다. 비근한 예로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나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있다. 너무 오래 그리고 자주 들어와서 지겨운 지표이지만, 삶의 시작과 종말에 자리잡은 이 지표만큼 우리 사회의 불행을 간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또 있을까? 무미건조한 숫자로 표시되어 있지만, 이 지표엔 낳기 두렵고 살아서 뭐하겠는가 하는 절망의 감정이 한가득 깃들어 있다. 이제 청년층은 스스로를 ‘3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넘어 ‘5포세대’(3포+인간관계·내집마련)라 말하는 지경이며, 장년층 사이에서는 ‘견디면 암, 못 견디면 자살’ 같은 말이 횡행하는 사회가 되었다.

더 나아가 우리 모두 이런 불행이 어떤 메커니즘들에서 유래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우리 사회는 분단체제 형성 과정에서 연대의 자원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그 결과 사회성원 모두가 좁은 가족주의의 틀에 갇혀버렸다.1) 그 가족들은 근대적 학력주의의 회로를 따라 지위상승을 향한 경쟁에 참여했다. 그 결과는 점점 더 강화되는 입시경쟁이었다. 이런 입시경쟁이 야기하는 자녀의 고통스러운 삶과 그것이 요구하는 경제적 비용 상승은 자녀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부모들을 내몰았다. 하지만 자녀수가 줄어들면 부모에게 개별 자녀의 가치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특별해진 자녀는 무한한 투자를 요구한다.2) 그러나 이런 투자를 보상할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그것의 결과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는 지금 대학생들이 직면한 ‘취업절벽’이다.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이 산업구조, 주택시장, 의료와 연금 문제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짜맞춰보면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의 얼개가 대략은 드러날 것이다.

문제는 이런 메커니즘을 알고 있어도 거기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도한 입시경쟁이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대안과 그 대안을 향한 어떤 사회적 전환이 없는 한, 경쟁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별적으로 경쟁을 혐오하고 거기서 이탈하는 것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입시경쟁의 보상이 형편없어지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남은 가능성을 차지하기 위해서 자신과 자녀를 쥐어짜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전환이 없다면, 우리 사회에 남은 길은 천천히 죽어가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전환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체제가 스스로 생산한 위기에 직면할 때, 그것을 조정하고 때로는 체제 자체를 재편하는 동력은 아래로부터의 미시적인 동원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생각해보면 앞서 지적한 입시경쟁만 해도 개별 가족들의 미시적인 행동전략의 총합이 낳은 사회적 결과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전략의 총합이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갇혀 있다면, 미시적 동원은 결코 쉽지 않게 된다. 그보다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정치적 전환이다. 한 사회의 중앙적 권위와 권력을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정치의 일차적 과제는 사회 하위 부문들에서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고 전체 사회의 방향을 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정치 부문은 상당한 역량이 축적되고 있다. 우리는 한해 수백조원에 달하는 세금이라는 공동기금과 법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러 기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운용할 잘 훈련된 인적자원과 그들을 지휘할 정치인을 선발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전환의 가장 빠른 길이며, 그런 의미에서 전환의 중심 열쇠는 정치에 있다.

하지만 위기가 매우 깊고 심각한 것이라면 그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전환 또한 실패할 수 있다. 낡은 사유와 실천의 습속을 통해 초래된 위기임에도 그 속에서 낡은 습속에 따른 나쁜 선택이 거듭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우리 사회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치적 전환의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나쁜 선택 탓에 전환은 실패했고, 그 실패의 댓가를 박근혜정부를 통해 경험하고 있다. 다시 한번 전환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댓가를 헤아려보고 구조적으로 조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럴 때 전환을 향한 동기가 강화되고 더불어 방향감각 또한 재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87년체제에서의 민주화와 탈민주화

 

박근혜정부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보면 강렬한 인상을 주는 두 계열의 사건들이 교차편집된 영화를 본 듯한 느낌에 빠진다. 하나는 ‘국정원’과 관련된 것들이다. 18대 대선 시기 국정원의 여론조작 및 대선개입(이른바 댓글조작 사건), 10·4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와 그에 따른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서울시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최근 불거진 국정원의 불법적인 해킹툴(이른바 RCSTNI) 구매 및 운용, 그리고 그것을 통한 선거개입과 불법감청 의혹이 거기에 속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검찰은 채동욱 검찰총장 시기에 엄정한 수사를 잠깐 시도했을 뿐, 그의 불명예스러운 퇴진 이후로는 국정원의 ‘시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한 계열은 세월호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대변된다. 언론이나 대중의 주목을 그만큼 받지 못했으나 평택의 주한미군 오산기지에 탄저균이 산 채로 배달된 사건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사건의 진상이 군사적 기밀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이니 여기서는 앞의 두 사건에 주목해보자. 세월호참사가 발생하자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탄식이 터져나왔고, 메르스 사태 와중에는 삼성서울병원 관계자가 ‘뚫린 것은 삼성이 아니라 국가다’라고 발언했다. 사건의 성격에 이런저런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발언들은 두 사건 모두 국가능력 약화와 관련된 것임을 적시하고 있다.

국정원이 정치의 전면에 부상한 현상, 그리고 세월호참사나 메르스 사태에 드러난 국가능력의 후퇴는 사실 서로 연관된 현상이다. 하지만 두 계열의 사건들 사이의 관련성을 다루기 전에 국정원 문제부터 살펴보자. 국정원이 정치과정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간첩사건 조작을 시도하고, 광범위한 불법감청과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 전직 국정원장이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판결을 받았다는 것은 자유권과 참정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었다는 것을 말한다.3) 이런 일들은 민주주의 자체가 후퇴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에 대해 적절치 않은 두가지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그것을 마치 민주주의 내부의 사건인 것처럼 다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속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사건들이 민주주의의 후퇴임을 명백히하는 장점은 있지만, 권위주의정권 시기의 투쟁전선을 회고적으로 소환하는 인상을 준다. 그런 도식을 동원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권위주의정권 시기와 동일한 상황에 있지 않다는 직관과 충돌하며, 그만큼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전자의 해석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기각하는 바로 그 직관에 의지하며 국정원 관련 사태를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니라 민주주의 운영 속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사건들로 파악한다. 이런 해석은 대체로 보수언론이 제공하는 것이지만, 뜻하지 않게 ‘진보적인’ 정치학적 시각에 의해서도 뒷받침되는 것 같다. 예컨대 최장집(崔章集)이 말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견지에서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일이 그런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같은 표현은 민주화를 문턱을 넘는 것과 같은 일회적 사건으로 보게 하고, 그 이후 과정을 단지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으로 비치게 하는 면이 있다. 그럴 경우 표준적인 정치학 담론에 의해 규정된 공고화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명백한 민주주의 후퇴조차 분명하게 조명되지 않게 된다. 그로 인해 보수언론의 해석과 진보적 정치학의 시각이 의도와 무관하게 조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백낙청(白樂晴)과 정치평론가 박성민(朴聖珉)이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두번의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헌팅턴(S. Huntington)의 명제를 비판하면서 최소한 “세번의 정권교체가 있어야 민주화가 정착된다”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고 할 수 있다.4) 하지만 좀더 분명하게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예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발상법을 버리고 민주화를 지속적인 과정, 항상 ‘탈민주화’(dedemocratization)가 일어날 수 있는 역동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게 나을 것이다.5) 그리고 쉽사리 역전되기 어려운 구조적 분기점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어떤 체제전환을 표시하고 그 이후의 민주화 과정을 기술하는 것이 정당해 보인다. 예컨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표현보다는 ‘87년체제에서의 민주화와 탈민주화’가 사태를 조명하기에 더 나은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볼 경우 민주주의의 수준과 민주화를 정의하는 기준이 필요한데, 찰스 틸리(Charles Tilly)가 제시한 기준이 명료하고 도움이 된다. 그는 민주화를 시민들의 표현된 요구(expressed demands)와 그것에 대응하는 국가행위 간의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음 네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공공정치(public politics)가 시민의 표현된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는가(범위). 둘째, 다양한 집단의 시민들의 요구가 어느 정도 평등하게 국가행위로 전환된다고 느끼는가(평등성). 셋째, 시민의 요구 표현이 얼마나 국가의 보호를 받는가(보호). 마지막으로, 시민의 표현된 요구가 국가행위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국가와 시민이 얼마나 협의적인가(상호 구속력 있는 협의).6)

이런 관점에 서면 87년체제를 민주화와 탈민주화가 지속적으로 교차했던 과정으로 조명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쉽사리 진영논리에 이끌리는 민주 대 반민주 대립구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요컨대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를 ‘민주정부 10년’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그 안에서 민주화와 탈민주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개별 정책 및 국가행위와 관련해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선상에서 최근의 국정원 사태를 평가할 수 있을 텐데, 그 경우 최근 사태에 더해 이명박정부에서의 총리실 민간인 사찰과 국정원 및 군 사이버사령부의 ‘심리전’ 등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가 2008년말 이래로 심각하고 대규모적인 탈민주화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직관적 판단만은 아니다. 1점을 최상, 7점을 최악으로 하는,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의 민주화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2005년 이래로 정치적 권리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자유화 지수가 각각 1점, 2점, 그리고 1.5점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에는 세 영역에서 모두 2점을 받았는데, 이는 2004년 이전 수준으로 퇴행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탈민주화는 국제적 지수로도 확인되는 것이며, 프리덤하우스의 민주화 지수가 매우 신중한 평가를 거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8년말부터 진행된 탈민주화가 2014년 지수에서 표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7)

 

 

탈민주화와 국가능력의 약화

 

이제 세월호참사나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국가능력의 약화 문제를 살펴보자. 이와 관련해서도 틸리의 논의가 도움이 된다. 민주화와 국가능력 문제를 함께 고려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국가가 시민들의 요구 표현을 보호하고 또 그렇게 표현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보호 능력에서부터 공공재를 공급하는 행정능력에 이르기까지 일정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는 국가능력과 상관관계를 가진다. 국가가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민주적인 정부에 의해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해낼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 민주화는 매우 약한 지반에 서게 된다. 또한 국가가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지라도 매우 높은 수준의 국가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시민이 거기에 저항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네가지 유형의 체제를 분별할 수 있고, 그 유형 위에 우리 정치체제의 궤적을 그려볼 수 있다.

다음 그림은 4·19, 5·16, 5·18, 6·10 같은 커다란 정치적 변곡점을 중심으로 대략적인 궤적을 그린 것이다. 아마 상세하고 크게 그린다면 선은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하며 지그재그일 것이다. 또한 이런 식으로 그리는 것을 정당화할 경험적 자료가 축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1953년부터 현재까지를 일관된 점수체계로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학문적으로는 가설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을 조망하는 데 어느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적변곡점

 

우리의 경우 국가능력은 독재정권하에서 크게 성장했다. 독재정권이 상당기간 유지될 수 있는 토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될 수는 없었다. 국가능력의 성장이 중동 산유국이나 뿌찐(V. Putin)의 러시아처럼 자연자원에 근거한다면 민주화의 압력은 낮은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 이와 달리 자본축적과 성장이 대중의 정신적 능력과 노동능력에 의존하는 경우 국가능력의 성장 자체는 사회의 능력 성장에 의존해서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국가능력에 입각한 독재는 장기적으로는 지속 불가능하며, 87년의 민주화운동은 그런 장기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세 영역에 머무를 때는 민주화와 국가능력 사이에 일관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지만, 일단 고능력 민주주의체제에 진입하면 일반적으로 탈민주화에 국가능력의 약화가 동반된다. 개방적이고 복잡한 사회체제일수록 그 복잡성 때문에 국가의 공공재가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작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런 사회일수록 항공수요도 매우 높을 텐데, 항공기 운항과 관제 시스템 그리고 공항관리는 국가에 의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규율 없이 작동하기 어렵다. 그것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적정 수준의 노동강도와 운행규칙에 대한 규율, 항공노조와 항공사 간의 노사협상 등을 포괄하는 사회적 갈등 관리능력이 요구된다. 이런 것들 모두가 항공사의 이윤동기에만 맡길 수 없는 공공적 문제인 것이다.

이런 점에 주목한다면, 세월호참사가 어떤 국가 무능력에서 연원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참사 직후에 나온 많은 분석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대규모 연안여객선에 대한 국가의 관리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운항관리나 관제 그리고 재난 발생 후의 대처 시스템 등 모든 분야에서 관리부실과 부패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런 사태는 탈민주화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세월호참사 발생 원인이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모두 소급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사 대처에서 드러난 정부의 놀라운 무능은, 대통령이 거대한 권력을 가진 사회에서는 그의 리더십이 일정수준에 미달한 상태에서 권위주의적 성향을 갖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리더십 아래서는 정부와 공무원이 시민의 요구에 둔감해지고, 정부조직 운영이 충성도 중심으로 재편되며, 고() 성완종(成完鍾) 사건에서 보듯이 부패 네트워크가 광범하게 부활한다. 탈민주화가 국가능력을 빠른 속도로 침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국가능력의 약화가 문제를 일으켜 시민이 국가행위에 저항하면 그들에 대해 다시 탈민주화된 방식으로 대처하게 된다. 세월호참사 이후 유족과 대중의 정당한 요구를 탄압하다시피 한 대통령의 행태는 탈민주화-국가능력의 약화-추가적인 탈민주화의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메르스 사태 또한 다르지 않다.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이미 무엇이 우리 사회를 세계 2위의 메르스 환자 발생국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많이 제출되었다. 그런 분석들이 지적하듯이 메르스 사태에는 응급실 수가(酬價)나 이용관행, 대형병원 중심의 이윤추구적 병원체제, 환자들의 의료쇼핑 등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모든 문제가 응축되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심적인 요인은 국가 방역능력의 문제이다. 예컨대 평택성모병원이 자체 격리 결정을 하기까지 질병관리본부의 직원들은 평택병원을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거나, 삼성병원을 중심으로 메르스가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을 때조차 병원 공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태를 수습할 정부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8)

지구화된 세계에서 국민국가의 방역과 검역 그리고 금융과 내외국인 출입국 관리는 전지구적인 금융, 노동력, 식량, 생물, 질병, 범죄 등의 이동을 조절하거나 방지하는 핵심 영역이다. 전세계와 국민국가의 대중 사이에 위치한 모래시계의 병목 같은 지점에 국가가 있는 셈이다. 국가가 이 병목지점에서 제대로 된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메르스는 물론이고, 피라냐와 레드파쿠가 강원도 횡성의 저수지에서 발견되고, 탄저균이 산 채로 오산공군기지에 배달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더구나 분단체제하에서 분단체제극복까지는 아니어도 그것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은 정부의 기본 책무이다. 하지만 내치(內治)에서의 탈민주화가 불러오는 사회적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서 종북 담론을 휘두르고 남북관계를 갈등과 긴장으로 몰아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 정리하자면 2008년 촛불항쟁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광우병 문제를 괴담으로 취급하고 남북관계를 위협한 보수정권이 선거에 의해 교체되지 않은 것이 탈민주화에 의한 국가능력 후퇴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9)

이명박정부에 이은 박근혜정부의 집권이 탈민주화를 경유한 국가능력의 약화를 가속하리라는 예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李明朴) 후보의 BBK 의혹에 면죄부를 부여할 때부터 검찰은 충성의 댓가로 권력을 확장했다. 촛불항쟁을 계기로 2008년 후반부터 경찰의 억압적 능력 확장도 이루어졌거니와, 그것이 부른 첫번째 비극이 20091월에 발생한 용산참사였다. 또한 이명박정부는 천안함사태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단절하다시피 했는데, 이 과정은 또한 군부의 권력이 국방 영역 밖으로 범람해가는 과정이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시기에 국정원이 펼친 수상쩍은 심리전과 댓글공작 그리고 지금 밝혀지는 이딸리아 해킹팀으로부터 사들인 해킹툴 RCS의 운용은 정부 내에서 국정원의 권력이 강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억압적 국가기구의 권력이 커진 상황에서 이명박정부를 승계한 박근혜정부가 그런 기구들을 규율하고 정상화하는 것은 (그러한 의도를 가졌을 때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출범부터 국정원 선거개입으로 정당성을 의심받은 박근혜정부하에서 이런 억압기구의 권력은 더 확장될 개연성이 컸으며,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생각하면 그 과정은 가속적일 공산이 컸다. 충성에만 보상하고, 충성한다면 과오나 비리도 용납하지만, 충성하지 않는다면 능력있고 합리적이어도 내치는 식의 인사정책과 정부운영은 불가피하게 국가능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입만 떼면 민생을 입에 올리는 정부 아래서 실제 그 민생은 기초적 안전 수준에도 미달하게 된 것이다.10)

하지만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 넘어서려던 민주파의 노력은 지난 선거들에서 실패했고, 이후의 정치적 활동 또한 여전히 신뢰받고 있지 못하다. 왜 그런 것이며 전환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오래된 습속에서 벗어나기

 

전환을 위해서 적공(積功)이 필요하며,11) 적공과 같은 선상에 학습(學習)이 있다. 학습은 배움과 익힘인데, 학습이 빈 서판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아닌 한에서 그것은 이미 배워 익힌 습속을 깨뜨리는 새로운 배움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습속을 익히는 과정일 것이다. 사유도 구근처럼 자라나고 뻗어가며 그물 형태로 짜여간다. 그런 사유와 내적으로 연계된 실천 또한 자기관계 그리고 친밀한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 그물처럼 짜여 들어간다. 그래서 생각과 습속을 바꾸는 일은 돈오(頓悟)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뻗어나간 바를 거둬들여 새 길을 찾고 그것과 연결을 모색하는 내면의 과정이 요구되며, 친밀한 이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말하기를 그치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긴장을 견뎌내는 사회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태도와 습속을 바꾸고 인간관계마저 새롭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생각의 전환을 말할 수 있는 법이라, 한번 배우고 익히기도 어렵지만 새로 배우고 고쳐 익히긴 더욱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전환은 습속의 전환과 연계돼야 한다. 습속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전환을 필요하게 만드는 우리의 습속에서 비롯한 잘못된 선택이 거듭되어 정치적 전환이 좌절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전환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파의 혁신인데, 그것을 위해서는 민주파 내부의 습속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은 사실 민주파 내부의 너른 자기성찰과 토의를 필요로 하는 일이거니와, 여기서는 그것을 촉진하기 위한 몇가지 문제제기를 시도할 것이다.

흔히 87년체제의 수립을 ‘운동에 의한 민주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운동에 의한 민주화에서 유래한 민주파의 정치문화가 이후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이고 강한 정당에 기초한 민주주의라는 주장이 있다.12) 하지만 이런 논증의 출발점에 있는 ‘운동에 의한 민주화’는 지나친 단순화다. 87년 민주화운동 이전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사회운동과 제도권 정치 사이에 어떤 합력이 존재했을 때 민주화는 크게 진전될 수 있었다.13) 같은 선상에서 정당의 강화가 사회운동이 뒤로 물러섬으로써 촉진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그 세력 내에 형성된 문화와 습속에는 분명 극복되어야 할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관련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항쟁중심주의’와 ‘진리의 정치’이다.14)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제헌헌법 이래로 헌정을 형성한 힘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총이고 다른 하나는 거리를 점령한 대중의 함성이었다. 이승만(李承晚)과 박정희(朴正熙) 그리고 전두환(全斗煥)이 만든 헌법은 총이 만든 헌법이다. 그리고 4·19혁명과 876월항쟁은 거리를 메운 대중이 그 총을 거꾸러뜨리고 새로운 헌정을 창출한 사건이었다. 확실히 이 모든 과정을 면밀히 살펴본다면 이미 지적했듯이 사회운동이 제도권 정치의 도움 없이 전체를 주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항쟁의 경험은 강렬한 것이고 또 그만큼 정신적으로 깊게 각인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운동에 의한 민주화’라는 테제가 그렇게 쉽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항쟁중심주의적 태도는 정치가 절차화되는 87년체제와 잘 맞지 않는다. 거리를 메운 대중의 함성은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요소이지만 그것이 직접 억압적 국가기구의 작동을 정지시키고 정부를 퇴진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영향력의 행사로만 남고 결정의 심급은 헌정에 새겨진 정치적 과정, 즉 정당의 입법활동과 선거정치로 넘어가게 된다.15) 하지만 널리 그리고 즐겨 불려진 「단결투쟁가」의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같은 구절은 낭만적인 항쟁중심주의가 사회운동 전반에 계속해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일상적인 작은 투쟁에 집요해지기 어렵게 하고, 일상의 작은 투쟁에서의 패배조차 심각한 타격이 되는 가난한 대중이 사회운동을 불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난 6월 정의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조성주(趙誠株)는 이 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약자들의 싸움에선 패배해선 안된다. 강자들은 한번 패배가 좋은 약이나 좋은 경험이 되지만, 진짜 없는 사람들은 한번의 패배로 모든 게 무너진다. 약자들의 싸움은, 약자들과 함께 싸우는 사람은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 질 것 같은 싸움은 피하고 도망가고,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해야 한다. 약자는 한번의 패배가 끝이다.”16)

다른 한편 우리의 사회운동은 반대파를 가혹하게 억압하는 권위주의체제에 도전하면서 발전했다. 이런 체제와의 투쟁은 매우 위험하고, 그런 만큼 극히 제한된 자원을 집중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이런 류의 투쟁이 벌어질 때면 언제나 도전세력은 매우 강한 규율을 가진 조직을 건설하는 일과 제한된 자원의 집중적 투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조건 속의 논쟁은 정확한 정세판단에 대한 강박 때문에 정치를 과학 또는 진리 담론의 직접적 연계로 이끈다.17) 이렇게 옳음 또는 진리가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면 타협과 거리가 먼 독단의 위험이 커진다. 더 나아가서 탄압의 위험 속에서 벌어지는 논쟁인 탓에 이견이 새로운 지식을 이끄는 생산적인 것이 아니라 노선분열과 동원 가능한 자원의 분산을 가져오는 정치적 편향으로 여겨지게 된다.

민주적 법치국가 수립을 뜻하는 87년체제에서는 이견을 편향으로 배격하는 이같은 ‘진리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체제에서 정치는 진리의 정치를 불러왔던 탄압과 동원 가능한 자원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론장에서의 활발한 토론 그리고 이견을 더 나은 통찰과 사실의 발굴로 이끌어가는 것이야말로 산재한 사회적 자원을 조합함으로써 동원 가능한 자원을 확장하는 길이다.

 

 

자유파, 평등파, 자주파의 수렴과 그 너머의 과제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87년체제가 수립되었지만 이전의 논쟁 분위기는 지속되었고, 이전의 정파도 유지되었다. 회고적인 고찰이지만, 80년대에도 그랬고 포스트모더니즘 류의 각종 논의가 휩쓸고 간 뒤에도 사실 논쟁의 내용은 그렇게 풍부하지 않았다. 80년대를 놓고 보면 사태 차원에서는 남한사회의 자본주의 발전과 식민성의 정도에 대한 판단을 표준적인 맑스주의 용어로 풀어내는 것이 논쟁의 중심 내용이었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든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든 일국주의적이고 단계론적인 분석이어서 지금 와서 보면 세계 자본주의의 변동이나 분단체제 분석에 그렇게 쓸모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 차원에서는 조직과 투쟁 방식에 대한 논의가 중심적이었다. 전위당이냐 대중정당이냐, 선도투쟁이냐 대중투쟁이냐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정당 문제는 좀 다르지만 투쟁양식이 선도투쟁이냐 대중투쟁이냐는 어차피 상황의존적인 문제였다. 시간 차원에서는 당시의 많은 팸플릿이 “현시기”나 “임박한” 같은 이름을 붙였던 것에서 보듯이 단기와 중장기 사이의 분별 그리고 투쟁의 선차성을 시간적으로 배분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아마도 사태, 사회, 시간의 세 차원에서 가능한 선택지를 조합하면 이런저런 정파들을 자리매김할 수 있을 텐데, 논쟁의 열기가 남긴 것은 민주, 민중, 민족이라는 세가지 의제의 상관성·선차성에 대한 판단과 활동 네트워크가 서로 연계되어 형성된 자유파, 평등파, 그리고 자주파라는 세 정파였다.18)

87년체제를 통해서 이 세 정파 간의 갈등은 지속되었고 때로 격렬하기도 했지만, 관찰자 시점에서 보면 상당한 수렴이 발생했다. 앞서 지적한 세 차원 가운데 사태 차원에서는 이견이 지속되었어도 사회 차원에서는 대중정당론이 지배성을 획득했으며, 혁명적 정세가 세계사적으로 소멸함에 따라 시간 차원에서도 ‘임박한 과제’ 대신 ‘선거 주기’가 들어섰다. 하지만 오래된 습속으로 인해 그렇게 수립된 대중정당 자체를 ‘패권주의적’으로 장악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으며, 그런 시도는 진리의 정치에서 발원하는 독단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하지만 자주파 가운데 주사파는 한편으로는 박근혜정부의 탄압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내적 퇴영성으로 인해 몰락했다.19) 그리고 비주사적 자주파는 김대중정부의 수립과 더불어 시행된 대북 화해협력정책(이른바 ‘햇볕정책’)을 매개로 자유파와 깊이 융합되었다.20)

평등파 또한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수렴해갔다. 복지국가는 세계사적으로 비맑스주의적 사회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의 협력에 의해서 형성되었다.21) 그러므로 자유파의 일부와 평등파가 연합해서 정의당을 창당한 것은 단지 정파적 이익거래의 산물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87년체제의 수립과 더불어 정치적 시간 지평이 변하고 동원가능한 자원의 성격과 규모가 달라진 만큼 민주, 민중, 민족이라는 세 의제는 함께 제기되고 함께 개선되는 관계에 있게 된다. 따라서 세 정파의 수렴 현상은 당연한 면도 있다.

하지만 이런 외적 요인에 의한 수렴에 비해 이념과 실천의 습속 면에서의 전환은 여전히 미진한 바가 있다. 그래서 다른 정파와 자신의 차이를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하며, 자신이 관심을 갖지 않은 의제에 대해 학습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정파에 맡겨진 과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컨대 분단체제의 작동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왜 탈민주화가 그렇게까지 강력하게 발생하는지, 왜 노동대중의 삶을 위하겠다는 진보정당이 그런 이들로부터 계속해서 외면당하는지 그 이유를 깨닫기 어렵다. 반대로 대중의 경제적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가령 택배 노동자가 선거일에도 배달을 나가느라 투표를 할 수 없다면 민주파가 정치적 다수를 획득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와 남한 내부의 민주주의 후퇴를 방어할 수도 없다는 점이 절실하게 인식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세 의제 각각의 개선은 오직 세 의제의 동시적인 개선과 변혁을 추진할 때만 나선형적으로 상승 국면에 들어설 수 있고, 하강 또한 하나의 악화가 다른 악화를 불러오는 방식으로 닥쳐온다면, 그에 걸맞은 사유와 실천의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백낙청이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기한 것은 이런 과제에 부응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1)분단체제에 무관심한 개혁주의 (2)전쟁에 의존하는 변혁 (3)북한만의 변혁을 요구하는 노선 (4)남한만의 독자적인 변혁이나 혁명에 치중하는 노선 (5)변혁을 민족해방으로 단순화하는 노선 (6)전지구적 기획과 국지적 실천을 매개하는 분단체제극복운동에 대한 인식을 결여한 평화운동, 생태주의 등의 경우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각각의 약점을 거론한 이유는 상호 연관된 과제들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닌 것’의 여섯가지 예를 번호까지 붙여가며 열거했는데, 그런 식으로 이것저것 다 빼고서 무슨 세력을 확보하겠느냐는 반박을 들었다. 있을 법한 오해이기에 해명하자면, 그것은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광범위한 세력 확보를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진지한 개혁을 이룰 수 없는 기존의 각종 배제의 논리들을 반대하되 각 입장의 합리적 핵심을 살림으로써 개혁세력을 묶어낸다는 통합의 논리였다.22)

 

 

지금 가능한 전환을 위해

 

습속의 전환은 단번에 일어날 일이 아니다. 제도적 또는 정치적 전환과 동떨어져 수행될 수도 없다. 양자는 함께 수행되어 서로를 강화할 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87년체제의 정치적 전환과 관련해서 우리가 지금 주목하고 개입해야 할 중요한 대상은 선거법이다.

모두가 알듯이 87년체제하에서 선거법의 근간은 단순다수제에 의한 소선구제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그렇게 선출된다(대통령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단일선거구에서 1명을 선출한다는 점에서 소선구제나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선거에서는 불가피하게 승자독식이 일어나고 낙선자들이 받은 표는 무가치해진다. 승자독식이나 표의 부등가성 같은 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대통령제는 승자독식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대통령제를 버리지 않는 한 이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혹자는 대통령제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함으로써 사표(死票)를 줄이는 동시에 과반 득표에 미달할 때 발생하는 정당성 약화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선투표제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결선투표의 승리자에게 투표한 집단들이 정치적으로 이질적일 수 있으며, 최종 승리자가 1차 투표에서는 소수의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전체 국민의 뜻에 의하여 선발된 듯이 행동할 수도 있다. 통상 결선투표제에서는 2차 투표에 대한 기대나 협상전략 구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후보가 난립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23) 그리고 87년 민주화운동의 중심 상징이었던 대통령 직선제를 개헌을 통해 폐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국민적 동의도 없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단순다수제 소선구제에 의해 선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많은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그것이 지역패권주의의 제도적 토대이며, 표의 등가성이나 사표 방지 같은 규범적 요구에서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법 개정은 개헌처럼 의회의 3분의 2나 국민의 과반수라는 높은 문턱을 넘을 필요도 없다.

선거법 개정 방향에 있어서 중대선거구제나 결선투표제의 도입은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국면에서는 선거법 개정을 향해 두가지 중요한 제안이 이미 주어져 있으며, 이 두 제안이 전체 지형을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최대선거구와 최소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21이 넘지 않도록 국회의원 선거구를 재획정하라는 20141030일 헌법재판소 판결이다. 이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제안이다. 다른 하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5224일 제안한, ‘권역별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라고 부를 수 있는 안이다. 거기서 선관위는 지역구 의원수와 정당투표에 의한 권역별 비례대표수를 21로 할 것을 권고했다. 이 제안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정치권으로서는 쉽사리 무시하기도 어려운 안이다.

구속력있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만을 수용하든 중앙선관위의 제안까지 함께 수용하든 실제 개정방식으로는 매우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며, 또한 현재 300인인 의원정수까지 조정 범위에 넣는다면, 경우의 수는 훨씬 늘어나게 된다. 결국 어떻게 조합될지는 다음 네가지 요인이 각기 어느 정도 힘을 가질지, 그리고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할지에 달려 있다. 첫째, 선거법 개정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인 동시에 개정의 권한을 가진 의원 개개인의 재선 가능성 극대화 노력이다. 둘째, 여당과 제1야당 그리고 군소정당 각각이 자기 당 국회의원수를 극대화하려는 시도이다. 셋째, 현직 대통령의 차기 정부 창출 및 정치적 기반에 대한 관심이다. 끝으로, 선거법 개정을 민주주의의 규범적 요구를 충족할 기회로 삼으려는 공중의 관심이다.

이미 여러 언론매체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 가능한 조합이 가져올 의석수 변화 등에 대한 씨뮬레이션이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규범적인 시각에서만 보면 중앙선관위의 권고를 기초로 지역대표와 비례대표의 비중을 확정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충족하도록 선거권을 획정하는 것이 제대로 된 개혁방향이다. 만일 그것이 현역 지역구 의원의 이익을 심대하게 침해해서 타협을 어렵게 한다면, 의원정수를 적절히 늘리는 것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당은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대서 헌법재판소의 권고만 수용하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의원정수 확대에 부정적인 여론은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반계몽적 캠페인의 산물일 뿐이며, 토의의 조직화와 여론화 그리고 사회운동을 통해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24)

이 문제를 정치적 전환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 앞서 언급한 87년체제에서 사회운동과 제도권 정치 간의 상호작용을 다시 떠올려보자. 사실 민주화 이후 총선은 매번 대통령선거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적 변동의 계기였다. 그리고 200016대 총선에는 1990년대를 통해서 크게 성장한 시민운동이 엄청난 동원력을 보이며 선거개혁을 요구했다. 앞서 인용한 김선철(金善哲)의 지적(각주14)처럼 그런 운동적 동원은 정치권 내부의 이해관계에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200417대 총선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 속에서 치러졌고 사회운동의 개입도는 낮았지만, 탄핵에 반응한 대중운동이 높은 수위로 일어났으며 그 결과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민주노동당이 원내 제3당으로 약진했다. 하지만 200818대 총선은 노무현정부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이명박정부 출범 효과로 민주파의 대패로 귀결되었고 사회운동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2000년 수준은 아니지만 사회운동이 총선에 깊이 개입해서 제도권 정치를 압박하고 견인한 것은 지난 19대 총선의 연합정치였다.

이런 경과를 되짚어보면 2016년에 치러질 20대 총선은 사회운동의 매우 중요한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87년 이후 어느 때보다 더 대규모적인 제도개혁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총선이기 때문이다. 앞서 서술했던 선거법 개정 의제들은 16대 총선에서의 부적격인사 낙천이나 19대 총선에서의 야권 연합정치를 훨씬 상회하는 정치적 전환의 기회이다. 사회운동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는 더 있다. 사회운동의 압력 없이 국회 내부의 동력만으로 이런 개혁적 성과가 이루어지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의도연구소의 보고서가 유출되어 알려졌듯이, 여당은 헌재와 중앙선관위의 제안을 모두 수용하는 큰 폭의 개혁이 이루어질 경우 원내 과반수를 얻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누리당 전체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헌재 판결만 수용하고 더 나아가 비례대표의 수마저 줄이는 개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의 압력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새누리당에서조차 개별 의원들의 이해타산이 작동할 가능성이 커진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수도권의 새누리당 의원이나 호남의 새누리당 출마희망자에게 매우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사회운동세력을 중심으로 선거법 연대가 가동되어야 마땅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환을 이룬다면, 아마 가장 큰 수혜자는 진보정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이를 가능성까지 높게 점치긴 어렵지만, 만일 교섭단체 구성요건마저 완화된다면, 여당과 거대 제1야당 사이에서 0.1 정도의 지분만을 가진 진보정당이 자리하고 있는 현 ‘2.1정당체제’가, 진보정당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0.5 정도의 지분을 가진 ‘2.5정당체제’로 진화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제도적 조건에 입각한 정치적 실험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이 성공적이지 못해서 또는 성공적이더라도 진보정당의 역량 부족으로 진보정당의 약진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런 경우라면 이남주(李南周)가 지난해 연합정치의 진전을 위해서 제안했던 것들이 좀더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연합정치가 직면한 문제는 연합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높임으로써 해결해가야 한다. (…) 민주파는 2017년 수권을 목표로 하는 통합적 수권정당을 건설해 총선과 대선이 연이어 실시되는 2016~17년의 정치적 전환기를 준비해야 한다. 이때에도 지난 총선의 지분 나누기와 대선의 지루한 단일화협상을 반복한다면 민주파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민주당과 새정치신당(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통합)은 물론이고 진보정의당(현재 당명은 정의당)도 단일정당으로 결집해 시대전환의 중심 동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25)

 

선거법 개정이 낮은 수위에 머무른다면, 단순다수제 소선구제가 지배적 제도로 남는다. 그런 제도는 뒤베르제(M. Duverger)가 밝혔듯이 양당제를 강화한다. 대통령제 또한 본질적으로 진영의 양분화를 촉진한다. 지난 총선과 대선은 87년체제를 통해서 있어왔던 교란요인들(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같은 카리스마적 정치인, 지역주의, 제3후보 등)이 제거되고 그런 양분화가 현저하게 관철되는 양상을 보였다. 선거법의 변동이 없다면 이 경향은 더 강하게 관철될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 2.5정당체제가 수립되지 않는다면 진보정당들은 이런 객관적 압박을 쉽게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민주파 내부의 세 분파인 자유파, 평등파, 자주파의 이념적·정책적 수렴도 또한 매우 높아져 있어서 진보정당 명망가의 이익이나 운동정치 습속의 지속 이외에는 독자노선을 고집할 근거가 박약해질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2.5당 혹은 3당 체제 또는 더 나아가 현재의 제1야당을 대치(代置)하는 양당체제에 이르기 위해서도 단일정당으로의 결집이라는 경로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방향으로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정책과 비전의 합의 수준을 더 높여야 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민주, 민중, 민족이라는 의제 간의 상호연관을 더 긴밀하게 하는 중도적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정당 간 격차를 극복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자의 기득권 내려놓기와 약자의 담대함일 것이다. 이 정도의 헌신과 전환의 큰 시도가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천천히 죽어가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1) 상세한 논의는 졸고 「‘사회를 말하는 사회’와 분단체제론」, 『창작과비평』 2014년 가을호 참조.

2) 교육경쟁이 투자경쟁에 의존하게 되면 부()가 승리하게 된다. 부의 승리도 문제지만 그것은 다른 위험을 불러오기도 한다. 격심한 교육경쟁에서 승리한 명문대 학생들은 실은 한번도 우리를 벗어나본 적 없는 ‘뛰어난 양떼’(excellent sheep)에 불과하며, 그 가운데 더 뛰어난 학생들이 고시(高試)에 합격해 고위관료가 되거나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서 판검사가 되며 나중엔 국회의원이 되기도 할 텐데, 그것은 고작해야 ‘아주 뛰어난 양떼’(brilliant sheep)가 다스리는, 어쩌면 끔찍할지 모를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3)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우 설득력 없는 논거를 내세우며 중요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부정하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현재로서는 파기환송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죄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정원법 위반은 유지될 것이다.

4) 백낙청 외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큰 적공을 위한 전문가 7인 인터뷰』, 창비 2015, 322~23면.

5) 민주주의의 후퇴나 역진 대신 ‘탈민주화’라는 찰스 틸리의 용어를 채택하는 이유는 민주화에 반대되는 과정을 표현하는 간결한 단어의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고, 민주주의의 후퇴나 역진이라는 표현보다 민주화의 성과와 축적물이 해체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서이다.

6)Charles Tilly,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13~14면.

7) 프리덤하우스가 밝힌 2014년 강등의 주된 이유는 1200만건에 이르는 국정원의 트위터 조작사건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흐지부지된 결과다. 이런 강등요인이 발생한 시점은 주지하다시피 2012년이며, 국정원이 그런 식의 활동에 나설 수 있게 재편된 것은 더 이전이다. https://freedomhouse.org/report/freedomworld/2014/southkorea#.VcGWefPtmko.

8) 정부가 메르스 발생 후 보름 넘게 지난 6월 7일에야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제적 공개(6월 4일)에 밀려서 메르스 환자 발생 및 경유병원 명단을 공개한 것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9) 광우병을 괴담 취급했던 이들답게 이번에도 대통령이나 여당의원이 메르스 사태도 그저 ‘중동식 독감’이 퍼진 것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마 시간이 지나면 메르스 사태로 인한 사망자도 기저질환으로 죽었을 뿐이라는 식의 말을 유포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런 주장의 오류를 지적해두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인을 목적인, 형상인, 질료인, 효과인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근대과학에서 형상인과 질료인은 더이상 원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예컨대 어떤 지역에 콜레라가 퍼지면 아마도 유전적으로 취약하거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이들이 일정 비율로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신체상태라는 질료인으로 인해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콜레라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근대 자연과학이다. 더 나아가 메르스로 죽은 이들 가운데 누구도 자신의 기저질환 때문만으로는 가족의 임종도 없이 격리병실에서 고독하고 비참하게 죽을 이유는 없었다.

10) 이 과정에서 억압적 국가기구의 권력이 커지는 것은 맞지만, 그 사실이 그들이 유능해지는 것으로, 즉 국가능력 향상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경찰의 시민통제 능력 향상은 범죄통제 능력을 댓가로 지불할 수 있으며,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남 ‘심리전’ 수행능력의 향상은 해외정보나 대북정보 수집능력 그리고 국방능력의 약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바 실제로 이명박정부 시기에 국정원의 해외정보 수집능력에 심각한 손상이 일어났다는 보도는 여러번 있었다.

11) 백낙청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2013년체제론 이후」, 『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 및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12) 최장집 「제도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 『기억과전망』 2006년 가을호.

13) 이 점과 관련해 김선철은 이렇게 말한다. “1997년의 노동자총파업과 2000년의 총선연대도 (87년 민주화 이전과인용자) 비슷했다. 이 두 사례는 일견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동원이자 제도정치권을 위협하는 성공적인 시민사회의 동원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배경에 제도권 행위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원내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안기부법과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계기로 폭발한 97년 노동자총파업은 결국 대통령의 사과,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합법화로 이어졌다. 국회 날치기 통과라는 구태에 대한 대중적 반발도 있었지만, 날치기 법안이 노동법뿐이었으면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노동법과 함께 안기부법도 날치기 통과되었고, 이것에 깊은 이해관계를 가진 야당의 반발과 저항이 각종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되는 가운데 총파업의 정당성도 커졌음은 성공적인 동원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2000년 총선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형상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충돌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각 정당의 입장과는 또다르게 낙선후보를 경쟁자로 둔 후보들은 총선연대의 낙선자 명단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총선연대의 활동은 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김선철 「한국 민주화 다시 보기: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창작과비평』 2007년 가을호 325~26면.

14) 뒤에서 더 논의할 이 두가지 문제 외에도 이른바 운동권 문화에서 개혁되어야 할 습속은 가부장적 남성주의와 소수자 문제에 대한 둔감함을 비롯해 매우 여러가지이다. 한홍구(韓洪九)는 80년대 학생운동에 투신한 이들의 특성을 “유신의 몸, 광주의 마음”이라는 말로 요약한 적이 있는데, 이런 표현도 전환을 요구하는 습속들이 어떤 것인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5) 이런 항쟁중심주의가 아니라면 2008년 촛불항쟁 이후 널리 퍼진 실망감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촛불항쟁의 효력은 영향력을 미치는 데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정치적 결정의 심급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다면 훨씬 덜 실망했을 것이고 후속작업을 향해 에너지를 모아가기도 한결 쉬웠을 것이다.

16) 「정의당 조성주 “용기있는 타협과 작은 성공으로 단단해져라”」, 한겨레 2015.6.27. 스스로를 2세대 진보정치인으로 칭한 조성주에 이르러서야 이런 발언이 명료하게 발화되었다는 것은 징후적이다.

17) “맑스주의 이전의 맑스” 같은 개념적 곡예를 마다하지 않으며 맑스주의를 사회에 대한 배타적 과학이라고 주장했던 루이 알뛰세르가 우리 사회의 좌파 지식인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영향력을 행사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18) 80년대 사회운동의 전개와 당시 활동가들의 경험에 대한 상세한 연구로는 유경순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전2권), 봄날의박씨 2015 참조.

19) 이석기류의 주사파와 통합진보당 잔류파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승환 「이석기사건과 ‘진보의 재구성’ 논의에 부쳐」, 『창작과비평』 2013년 겨울호 참조. 이들이 사회적 공론을 통해서 정치적 적합성 상실을 판정받지 않고 박근혜정부에 의해 억압적으로 강제 해산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20) 자주파가 김대중정부의 포용정책을 매개로 자유파와 융합해간 것은 실용적인 선택이었지만, 바로 그렇게 실용적인 데 머무르기 때문에 포용정책의 함의를 끝까지 성찰하지 못했던 면이 있다. 보수파는 대체로 북한을 고립화하는 것이 북한붕괴를 유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햇볕정책’은 북한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끌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런 개방과 개혁은 궁극적으로 북한정권을 ‘안락사’로 이끄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햇볕정책도 북한 고립화 정책과 다름없는 흡수통일정책일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화해교류협력을 주도한 이들은 햇볕정책의 궁극적 귀결을 괄호 안에 묶어두고 지금의 평화와 화해의 중요성을 실용적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응도 북한이 핵과 경제 병진노선을 명백히 할수록 유효성을 잃었다. 백낙청이 ‘포용정책 2.0’을 제기한 맥락의 한켠에는 이런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그의 포용정책 2.0은 교류협력의 다음 단계로 국가연합을 명시함으로써 북핵 문제의 밑에 있는 북한정권의 체제안전 문제에 답을 제시하고, 남한 내부를 향해서도 퍼주기가 핵으로 되돌아왔다는 보수파의 선동을 제어하는 효과를 가지며, 자유파의 대북정책을 현재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견인하는 효과 또한 가지고 있다. 백낙청 「‘포용정책 2.0’을 향하여」, 『창작과비평』 2010년 봄호 참조.

21)James T. Kloppenberg, Uncertain Victory: Social Democracy and Progressivism in European and American Thought, 1870-1920, Oxford Univ. Press 1988 참조.

22) 백낙청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57면 참조, 강조는 원문.

23) 더 자세한 논의는 후앙 린츠·아르투로 발렌주엘라 『내각제와 대통령제』, 신명순·조정관 옮김, 나남 1995, 76~77면 참조.

24) 우리 사회의 국회혐오 여론은 과도한 면이 있는데, 그런 여론 형성의 요인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의회의 견제를 피곤하게 여기며 자신의 정책적 실패를 의회 탓으로 미루려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축출한 과정은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이고 고분고분하지 않다면 능력있는 여당조차 굴복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음으로 행정부 관료도 가능하면 자신을 견제할 권한을 가진 의회가 약하길 원한다. 대자본 또한 자신의 이익 수호를 위해서 약한 의회를 원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언론매체와 사회운동단체도 의회에 대한 비판수위를 높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의회가 사용하는 비용을 아까워하고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을 혐오하는 여론은 병리적이다. 국회의원의 특권이 싫고 그 특권을 줄이고 싶다면, 의원수를 늘리는 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법조시장에서의 변호사 권한을 줄이기 위해서 동원된 가장 기본적인 조치가 변호사 수를 늘리는 것이었음을 기억해보라). 더구나 의원수가 늘더라도 국회 총예산을 현행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의지를 의원들이 표명할 때조차 의원수 동결을 원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의회 총 예산은 5000억원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로, 국정원 예산의 절반도 되지 않으며, 전체 국가예산의 0.2%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방산비리는 수백억원, 자원외교는 수조원 단위로 예산낭비가 발생하고 있다. 국회운영에도 예산낭비가 없는 것은 아니며 더 엄격한 집행이 필요하지만, 늘어난 국회의원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 더 경쟁적으로 행정부를 감사하여 절약할 예산을 생각하면 의원수의 증대는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다. 현재의 의원정수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비합리적인 여론을 보면, 필자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옛날부터 대갓집이 망할 때는 뒷담장으로 마당쇠가 몰래 쌀가마니를 줄줄이 넘기고 있는 동안 명민하지 못한 며느리가 하녀 삼월이 오월이 밥 많이 먹는다며 야단치고 있는 법이다.”

25) 이남주 「연합정치의 진전을 위하여: 변혁적 중도주의의 시각」, 『창작과비평』 2014년 봄호 23~24면. 괄호 안은 인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