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보편과 보통 사이의 기억

윤이형 정소현 김금희의 최근 작품을 중심으로

 

 

이은지 李垠知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징후적 소설과 그 너머」 등이 있음. zzellystick@naver.com

 

 

1. 삶이라는 역사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바로 사라지는 것들을 아쉬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어제는 있었으나 오늘은 없는 것을 ‘기억’하는 행위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있었으나 오늘은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histoire)하고픈 아쉬운 마음이야말로 역사(Histoire)의 존재이유가 아닐는지. 일찍이 키케로(Cicero)가 역사를 ‘기억된 삶(vita memoriae)’으로 풀이하였듯이, 사실들을 공평무사하게 새겨놓은 것이 곧장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세계를 경험하고 감각한 것이 망각을 거쳐 어제로 묵혀졌다가 다시금 상기되며 오늘에 잇자국을 남기는 것이 기억인바, 역사 또한 그러한 주관적 행위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기억은 역사에 선행할 뿐 아니라 기억의 구조가 곧 “인간의 역사적 구조”1)이기도 하다.

오늘의 삶이 근거하는 역사적 구조를 읽는 작업이란 원시(遠視)를 앓는 눈이 코앞의 대상에 깜깜이듯이 요령부득이기만 하다. 우선 코앞의 대상을 전망한다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가 비록 상상적일지언정 개인을 집단으로 엮어주던 공통 감각(common sense)으로서의 ‘이념’을 잃은 지 오래라는 진단이 깜깜한 공백을 향해 안경을 빠뜨린 코를 들이미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일정부분 정당화해주고 있다.

함께 딛는 이념의 토대가 부재한 상황에서 ‘나’의 감각과 인식을 붙들고 늘어지며 내핍하는 주체들이 성황인 지도 오래되었다. 이념을 갓 탈각한 90년대 문학을 돌아보면 사회적 대의 상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자아의 내면을 곧 미학적 토대로 축성하는 ‘나’의 해방적 움직임이 지배적이었고, 좀더 가까운 2000년대 문학은 무너져내리는 세계의 질곡이 자아의 존재근거마저도 집어삼키는 아찔한 체험으로부터 ‘나’의 새로운 존재근거가 돌출하는 현장이었다.

‘나’라는 최소단위의 주체들이 저마다 구심점이 되어 각기 다른 파문을 그리는 불안정한 매트릭스가 세계를 이루는 유일무이한 질료가 되었음은 201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모종의 진척이라 할 만한 것은 주체들이 그리는 파문이 외따로 생겨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근접한 주체들끼리 파문을 겹치면서 그 접점을 공유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SNS상에서 해시태그(#)라는 새로운 개념이 왜소한 주체들 간의 거리를 좁히고 좀더 빈번히 곁을 나누게 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해시태그를 통해 교접하고 명멸하기를 반복하는 저 무성한 역사들을 채우는 것은 이념에의 열정이 아니라 “미학화된 일상”과 그로부터 비롯하는 “개인적인 감성들”이다.1)

바야흐로 역사-이후(Posthistoire, 아르놀트 겔렌)의 역사는 외부 세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 삶의 내부로부터 시시각각 피어오르고 있다.2) 역사-이후의 역사가 아이러니하게도 키케로의 표현 그대로 ‘기억된 삶’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의 독해 여부는 총체적 서사에 대한 인식론적 판단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 대한 경험적 판단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을 미학화하고 개인적인 감성에 가치를 부여하려 골몰하는 모습이 자신의 삶으로부터 오늘의 역사를 독해해보려는 대단한 시늉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여전히 심심찮게 호명되는 루카치(G. Lukács)의 ‘서사/묘사’의 개념쌍을 빌리자면 그것은 단지 삶의 묘사일 뿐이며, 삶의 뼈마디를 잠시 채웠다가 빠져나갈 물렁한 것들일 뿐이다. 단순히 삶이 아니라 ‘기억된’ 삶이 곧 역사라는 키케로의 말을 헤아려보면, 삶의 구조를 이루는 ‘기억’에 대한 성찰이 요청되었을 때 비로소 오늘의 삶과 역사의 뼈대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기억에 대한 간단치 않은 통찰을 매개하여 삶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려 애쓰는 문학적 노력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보려는 몇편의 소설은 저마다 다른 음조를 띠고 있지만 어제와 오늘의 길항 속에서 보통의 삶(common life)에 대한 공통 감각을 건져올리려 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또한 주목할 것은 개개인의 삶이 다를지언정 항구적으로 작동하는 기억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기억 행위의 세 국면, 즉 기억, 망각, 회상을 각각 작품의 중요한 지평으로 삼고 있는 윤이형(尹異形) 중편 『개인적 기억』(은행나무 2015)과 정소현(鄭昭峴) 단편 「어제의 일들」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