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불가능한 몸이 말하기

세월호 시대의 ‘시적 기억’

 

 

함돈균 咸燉均

문학평론가. 저서로 『얼굴 없는 노래』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예외들』 『사물의 철학』 등이 있음. husaing@naver.com

 

 

기록이 없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한 사무기기 제조사가 내세운 인상적인 광고 문구다. 그러나 남길 수 있는 기록 자체가 부재하다면, 혹은 도저히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면 기록의 만세유전(萬歲遺傳)을 확신하는 저 문구는 유효한가. ‘공식적 기록’이 기록의 생성단계에서부터 왜곡되거나 은폐되거나 망실되는 세계에서, ‘기억’은 비상하고 절박하며 특별한 지위를 강제적으로 떠맡게 된다. 한 사건에 대한 개인들의 경험, 그런 주관적 기억만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이 아니라) ‘기억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기록’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개인들의 머릿속에 담긴 불완전한 기억은 주관적 경험을 넘어서 객관적 ‘사실’이 되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요구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사실과 진실과 허구, 객관과 주관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기이한 언설로 독자를 미궁에 빠지게 했던 작가 보르헤스( J. L. Borges) 이야기가 아니다. 2014416일 이후 현재 500일에 이르고 있는 세월호사건의 현황이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종래 대형사건과 달리 이 사건이 던지고 있는 특별한 화두는 기억이다. ‘기억하라’라는 슬로건은 이 일이 ‘사고’가 아니라 ‘사건’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최초 순간부터 지금까지 명료하고 일관되게 선언된 시민들의 제1 행동강령이자 윤리적 태도였다. 그런 점에서 기억하라는 말은 (온전히 칸트적인 의미에서) 세월호사건의 ‘시민 정언명령’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이 시민 정언명령조차 매우 벗어나기 힘든 ‘기억의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 상황조차 전지구적으로 실시간 영상이 전달되는 요즘 배가 가라앉는 그 순간 텔레비전 화면은 정지영상만을 내보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조난당한 긴박한 현장 화면은 왜 생중계로 전송되지 않았으며, 어떻게 이런 완벽한 방송통제가 가능했는가. 모든 방송은 그 정지화면 속에서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승객 전원구조’라는 메시지로 국민을 안심시켰으나, 선체 안으로 진입하는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304명이 배와 함께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완벽한 오보와 국민 기만이 가능했는가. 더 놀라운 것은 해경과 해병대와 해군 UDT가 출동하여 ‘곁에’ 있었으나 민간구조업체와 맺은 이해하기 힘든 계약과 ‘구조수칙’에 의해 공권력에 의한 긴급재난구조 자체가 ‘저지’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정황이다. 그 계약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 배의 실소유주는 누구인가. 정부와 언론에 의해 갑작스럽게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 사람은 왜 영문도 모를 곳에서 얼굴도 확인할 수 없는 해골로 발견되었나. 그 해골은 정말 그의 사체인가. 조작된 정황이 짙은 지역관제센터의 메시지들은 무엇인가. 국가의 재난 컨트롤센터는 존재했는가, 왜 그들은 ‘방관’했는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대통령의 부재 일곱시간 논란은 또 무엇인가.

정상적인 이성을 지닌 시민이라면 누구나가 다음과 같은 합리적인 의심에 이를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나온 그 어떤 정보도 진술도 메시지도 발표도 해석도 믿을 수 없다! 이 사건의 가장 특이한 본질은 사건과 관계된 1차 정보 상당수가 증발되거나 은폐되었으며 정부에 의해 공개된 정보에 조작 혐의가 짙다는 사실, 그리하여 그로부터 파생되는 정부 공식발표와 언론보도, 심지어는 ‘안전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해석조차도 ‘허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무엇을, 누가, 왜 숨기는가. 국민을 죽이는 정치권력은 있었지만 집단조난 상황에서 국민을 죽게 내버려두는 정부는 없었던 정치사에서, 이 사건은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않은’ 사건으로 규정되었다(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계속 놀라게 하는 것은 500일이 지난 시점에서도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 ‘아무것도’ 추가로 알려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진상조사를 위해 법률적 근거에 의해 만든 세월호진상조사특별위원회는 이 시각까지 단 1원의 예산조차 배정받지 못함으로써 가동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실 규명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시 이렇게 반복하여 정리할 수 있겠다. 이 사건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사실뿐이라고. 우리는 어떠한 믿을 수 있는 ‘공식적 기록’을 아직까지도 별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하라’는 시민 정언명령은 기억해야 하는 내용이 분명히 무엇인지 모른 채 기억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불가능한 목소리가 온다

반복하건대, 이 사건에서 ‘기억’은 기록을 대신하여 사실의 ‘복원’에 안간힘을 써야 하는 과잉 임무를 부여받는다. 시민들의 주관적 기억의 합을 통해서라도 객관적 사실의 구성에 이르러야 한다는 불가능한 작전에 호출된다. 세월호유가족협의회에서 시민사회와 힘을 합쳐 만든 ‘4·16기억저장소’ 같은 특이한 이름이 붙은 기구의 출현은 이 과제의 엄중하면서도 웃지 못할 아이러니를 드러내고 있다. 기록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저장’하는 기구가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