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 표절 문제와 문학권력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하여

 

 

정은경 鄭恩鏡

문학평론가. 저서로 『디아스포라 문학』 『지도의 암실』 등이 있음. lenestrase@hanmail.net

 

* 이 글은 지난 6월 23일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공동 주최했던 긴급 토론회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일부 수정·보완한 글이다. 당시 취지와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구두로 발표했던 내용을 대체로 가감없이 재구성하였고, 이후의 소회에 대해서는 말미에 약간의 보론으로 대신한다. 이 토론회에서는 이명원, 오창은의 발표가 있었고, 심보선, 정원옥 등의 토론이 있었다.

 

 

최근 신경숙(申京淑) 표절 사태를 둘러싼 대중과 매스컴의 폭발적인 관심과 비난에는 미국까지 진출한 ‘한국 대표작가, 혹은 국민작가’와 ‘표절’ 사이의 간극에 대한 경악과 실망이 작용한 듯합니다. 국민작가라는 기대치 배반, 그리고 이에 대한 불성실한 답변이 사태를 키웠다고 볼 수 있는데, 눈덩이처럼 커진 이 사태에 대한 수많은 논의에서 우리는 다음 두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신경숙 신화화에 대한 비판과 표절 의혹에 대한 검증입니다. ‘한국문학을 대표할 작가가 못되는데’ 이를 부풀렸다는 신화화에 대한 비판이 신경숙=표절작가라는 등식으로 이어지거나, 한국문학이 표절작품 투성이인 ‘썩은 문학’으로 폄하되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문제제기된 부분은 표절입니다.

둘째, 두 발제자께서 지적하신 문제들에 대해 동의하는 바가 큽니다. 표절 의혹에 대한 출판사와 작가의 불성실, 출판상업주의, 폐쇄적 매체권력, 스타시스템, 문학권력의 폐쇄성, 비평의 위기와 무능, 한국문학의 구조적 문제 등등. ‘신경숙 표절 의혹’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문학출판사들의 폐쇄적 문학권력, 급급한 출판상업주의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신경숙 문학’은 80년대 문학적 이념형에 기반을 둔 진영논리를 해체하고, 대중성과 문학적 자율성이 합쳐진 지금의 생산 시스템을 만든 중요한 고리이자 상징이라고 봅니다.

 

1) 판매부수는 다음을 참고했습니다. 한기호 『희망의 출판』, 창해 1999, 331~32면; 강준만·권성우 『문학권력』, 개마고원 2001, 143~44면. 2) 한기호, 같은 글.

1) 판매부수는 다음을 참고했습니다. 한기호 『희망의 출판』, 창해 1999, 331~32면; 강준만·권성우 『문학권력』, 개마고원 2001, 143~44면.
2) 한기호, 같은 글.
3) 문화일보 2015.03.02.
4) 같은 글.

 

위의 표는 2010년까지의 신경숙 작품 출간현황입니다. 발제자들께서 지적해주셨듯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에서 고르게 출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 소설집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고 많이 팔리지도 않았으나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의 ‘예기치 않은’ 성공 이후, 여기에 힘입어 『깊은 슬픔』 『외딴방』이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제가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여기인데, 이전까지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 시인에게 주던 ‘만해문학상’을 창비는 문학동네, 문지의 작가 신경숙에게 수여(199611회)합니다. 창비의 만해문학상은 신생 출판사이자 신세대 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적 대중지향성에 기반한 문학동네와 신예 신경숙을 문학적으로 인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화답처럼 『외딴방』의 2판 개정판부터는(1999) 남진우(南眞祐)의 해설(「우물의 어둠에서 백로의 숲까지」) 대신 백낙청(白樂晴)의 해설(「『외딴방』이 묻는 것과 이룬 것」)5)이 실립니다. 신경숙의 문학은 이제 만해문학상과 백낙청의 “리얼리즘” 독법에 의해 대중성에 이어 ‘창비’가 상징하는 진보적 가치와 문학적 상징자본을 일거에 획득하여 한국문학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될 뿐 아니라, 문학동네가 지닌 대중성 내지는 상업성과 연계해주는 중요한 가교가 됩니다. 1989년이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기념비적 해였다면, 1996년은 이렇듯 한국문학에서 신경숙을 통해 문학적 이념 진영과 당파성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해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외딴방』이 지닌 ‘리얼리즘’적 성격과 문학적 가치를 전면 부인할 수는 없지만, 산업체학교 작가지망생의 성장소설이 리얼리즘적으로 그토록 상찬받아야 되는지는 좀더 면밀히 검토되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기인 96~97년 창비 진영에서는 문학담론적으로 진정석(陳正石), 최원식(崔元植), 황종연(黃鍾淵) 등으로 대표되는 논자들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회통론’과 화합론이 본격 제기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경숙 문학’은 명분도 갖춘 화해와 통일의 상징이 됩니다. ‘신경숙 문학’을 통해 놓인 다리로 이후 많은 작가들이 왕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07년 김영하가 『빛의 제국』으로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그 일부이겠지요.)

또 하나 한국문단에서 ‘신경숙 문학’의 의미는, 부르디외(P. Bourdieu)의 문학장 이론에 따르면, ‘상징자본’과 ‘경제자본’의 행복한 조우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6) 쉽게 말하면 작가적 명성과 돈의 만남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둘을 모두 갖는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작가 이상(李箱)이 문학장 내에서만 인정받는 굶주린 예술가를 상징한다면, 김진명(金辰明) 같은 작가는 문학장과 상관없이 돈에 해당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문학사적으로 박완서(朴婉緖), 박경리(朴景利), 이문열(李烈), 황석영(黃晳暎) 같은 작가는 이 둘을 획득한 경우이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 둘을 동시에 획득하기는 어려운데, 대중성에 비해 인색한 문학적 평가를 받은 공지영(孔枝泳) 같은 작가도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고 봅니다. 어쨌든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신경숙은 문학장 내에서의 공고한 위치와 경제자본까지 갖춘 보기 드문 작가로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신경숙의 상징자본과 대중성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한기호에 따르면, 신경숙의 독자의 80%는 24세 이하라고 합니다.7) 문학적 가치는 신경숙 문학에 대한 “존재의 괴리, 그 슬픈 아름다움”(김병익),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증언록”이자 “감동적인 노동소설”(남진우), “개인 차원의 진정한 변화가 수반되는 시대의 증언이나 사회현실의 고발”(백낙청)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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