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신예소설가특선
정영수 鄭映秀
1983년 서울 출생. 2014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apedoors@gmail.com
애호가들
진행 중인 강의만 모두 끝내면 더이상 강사 일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몇년 전부터 이 일이 내게 맞지 않는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접속법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세시간 동안 중세 스페인어에 대해 떠들어대는 일이나, 한 학기에 책 한권 거들떠보지 않는 아이들에게 로뻬 데 베가의 희곡에 대해 설명하는 일, 형편없는 수준에 성의까지 없는 레포트에 점수를 매기는 일이나 성적입력 기간이면 밀려오는 억지투성이 메일에 일일이 대꾸해줘야 하는 일 등 모든 것에 진력이 났다.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한다면 그건 혹시 언젠가 교수가 될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일 텐데, 요즘은 그에 대한 의욕조차 시들해진 게 월급 좀더 받고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만 제외하면 교수라고 해도 하는 일은 시간강사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지긋지긋한 일들을 평생 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차라리 번역이 멍청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보람 있는 일이었다. 몇년간 부업 삼아 스페인 문학을 번역해온 결과 나는 그 작업이 다른 어떤 일보다 내게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내 번역은 꽤 훌륭한 편이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담당 편집자도 그렇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적어도 로뻬 데 베가의 작품만큼은 나보다 더 잘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나라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획을 하나 세웠는데 조만간 지긋지긋한 강사 일을 때려치우고 스페인으로 날아가, 이를테면 그라나다 같은 곳에 볕이 잘 드는 2층 아파트를 구해 창 너머로 생기 넘치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번역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오래된 도시를 산책하고 까페에 들러 에스쁘레소를 한잔 마신 다음 열린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책상에 앉아 베가의 희곡을 천천히, 하루에 스무쪽 정도씩 번역하는 삶은 꽤 멋지지 않은가. 평생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일년 정도, 운이 좋다면 이년 정도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 계획이 곧 현실로 다가올 조짐이 보였다. 얼마 전 편집자와 저녁을 먹는 도중에 그가 자그마치 천이백면에 달하는 로뻬 데 베가의 희곡 선집을 준비 중이며 역자를 물색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나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넌지시 운을 띄운 것이다. 그렇게 상세하게 기획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은 이 바닥의 법칙으로 봤을 때 계약서만 안 썼다 뿐이지 사실상 내게 의뢰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나는 겉으로는 그런가요, 하고 말았지만 실은 당장 일어나 뜀박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작업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일년은 걸릴 것이었고 연이어 다른 작업을 시작한다면 이년까지 그라나다에 머무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넌더리나는 학생들과도 영영 안녕이었다. 내 머릿속엔 오로지 로뻬 데 베가와 그라나다의 볕이 잘 드는 2층 아파트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영한이 교수 자리를 꿰찼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소식을 ‘근대 스페인 문학의 이해’ 수업 종강모임에서 들었다. 내가 진행한 수업은 아니었지만 우리 학과에는 각 학기의 마지막 수업 뒤풀이에 강사들이 모두 참석하는 전통 비슷한 게 있었기 때문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오영한과, 타학교 출신으로 이번 학기부터 수업을 하게 된 새로 온 강사 그리고 석사과정 중인 조현수가 있었다. 그외에 다섯명 정도 더 있었지만 내가 아는 얼굴은 그 정도였다. 일부러 조금 늦게 가려고는 했는데 너무 늦었는지 벌써 몇명 정도는 집에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술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분위기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가 지나치게 오영한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새로 온 강사에게 내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조금 호들갑을 떠는 말투로 오영한의 조교수 임용 사실을 말해주었다. 아직 정식으로 발표는 안했지만 사실상 결정은 됐고 다음 학기부터는 지도학생까지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 소식을 듣고 놀라지도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무리 이 나라 인문대학이 사대주의에 찌들어 유학파라면 깜빡 죽는다고 해도 아직 서른다섯도 되지 않은데다 강의를 시작한 지는 삼년도 채 안된 햇병아리가 교수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더욱 가관이었다. 학생 서넛이 오영한 주위에 둘러앉아 눈을 빛내며 그 인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꼼꼼하게 추임새를 넣어주고 있었는데 특히 조현수가 제일 신난 것 같았다. 그놈이 내 수업을 세학기 연속으로 들었을 뿐 아니라(거기다 그중 하나는 청강이었다) 종종 진로나 연애에 대한 상담도 요청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쓴 평론을 보여주기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번 학기에는 안 보인다 했더니 오영한의 수업을 들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듣긴 들었으니 오영한에게 다가가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이게 뭐 축하할 일인가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무슨 소리야 교수 못 돼서 안달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는데 말을 하고 보니 내가 꼭 그 교수 못 돼서 안달인 사람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정하겠답시고 한마디 더 했다가 오히려 괜한 오해나 살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어쨌든 오영한이 그렇게 겸손하게 나오니 더 보탤 말이 없어서 나는 머쓱해진 채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그다음부터는 맥주나 마시는 것밖에는 더 할 일이 없었다. 새로 온 강사와 이야기를 좀 나누긴 했는데 관심사도 잘 안 맞고 해서 대화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유머감각이 부족하고 무슨 말을 해도 쓸데없이 긍정적인 방향으로(그럴 수도 있죠, 다 잘될 거예요, 요즘 다들 힘들죠 뭐,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은 겁니다, 하는 식의)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점점 대화가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맥주 한잔 마시고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나 귀를 기울이다가 다시 한잔 마시고 하며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2차까지 따라가게 되었는데 그때쯤 되니 다들 취해 있었다. 특히 조현수가 제일 많이 취한 것 같았다. 난데없이 주먹을 휘두르며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자신의 문학관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보르헤스가 어떻다느니 옥따비오 빠스가 어떻다느니 하더니 이어서 제삼세계의 향취가 나는 작가들의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했는데(알베르또 푸겟이니 오라시오 끼로가니…… 기억도 잘 안 난다) 평소 대화를 나눠본 바로 나는 그놈이 그들의 작품보다는 그저 발음하기 어렵고 어딘지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들을 들먹이는 걸 좋아할 뿐이라는 데 전 재산도 걸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보니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조현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놈의 수다에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인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나도 그때는 꽤 취한 상태였고 피곤하기도 해서 별말을 하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새로 온 강사가(이름이 뭐였더라?) 긴 시간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는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었는지 오영한의 교수 임용을 축하하자면서 1차 때 수도 없이 되풀이했던 무의미한 건배 제의를 또다시 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내 이름을 들먹이면서 다음은 선생님 차례입니다,였다. 갑자기 나한테 시선이 집중되었고 나는 다른 계획이 있다고 아까 그 선생과 대화할 때 이미 말했음에도 그따위 소리를 하는 저의가 궁금했지만 학생들 보는 눈도 있고 해서 적당히 넘어가려 했는데 그때 조현수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내게 분발하셔야겠네요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