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 제22회 창비신인평론상 당선작

 

역사의 눈과 말해지지 않은 소년

조갑상의 『밤의 눈』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 대하여

 

 

김요섭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 어떻게 소통되며,

기억이 어떻게 보존되고 세대 간에 전달되는가 하는 것이다.1)

 

 

1. 죽음의 기억과 기록

 

죽음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오직 살아 있는 자들만이 말할 수 있으므로 시간의 지평에 세워진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을 경유해야만 역사-세계에 등장할 수 있다. 역사-세계를 만들어내는 사건들은 수많은 죽음을 그 결과와 조건으로 한다. 그러므로 역사-세계는 죽음 위에 쌓아올려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역사-세계는 죽음을 말하는 방식뿐 아니라 죽음 앞에 침묵하는 방식으로도 만들어져왔다. 죽음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비극은 지워지고 지배는 정당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 역사-세계를 둘러싼 갈등은 죽음을 말하지 않으려는 자와 말하려는 자들 사이의 긴장이다. 세계에 말을 거는 존재로서 문학이 불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말해지지 않은 죽음을 다시 되뇌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침묵을 통해 견고해지려는 역사-세계에 배회하는 문학은 끝없는 웅얼거림으로 균열을 만들어간다.

우리 시대에도 죽음을 말하려는 불온한 문학은 침묵하지 않는다. 아니 침묵하지 못한다.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저 차가운 바다의 입에 수백의 생명이 삼켜지는 것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바다에 목 놓아 울기 전에도, 용산의 화마가 가난한 이들을 삼키기 전에도 우리 시대에는 수많은 죽음들이 촘촘히 수놓아져 있었다. 역사의 물결에 떠밀려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던 그 비극들을 건져내어 시대의 이정표로, 별자리로 새기려는 문학의 노력이 있어왔다. 세월호 이후 다시 죽음을 말하여 세계에 맞서려는 불온한 문학을 위해서 어떤 죽음들이 어떻게 말해져왔는가 살피고자 한다. 때로 어떤 죽음은 단지 말하는 것만으로는 말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죽음은 침묵 속에서 사라지는 데 반해 어떤 죽음은 반복되는 호명에도 불구하고 틈이 벌어져 있다. 말해지지 않은 죽음이란 이 두가지 형태 모두로 나타난다. 말해지지 않은 죽음의 차이를 보여주는 우리 역사의 두 비극이 ‘국민보도연맹학살’과 ‘광주민주화항쟁’이다. 국민보도연맹학살은 그 광범위한 학살 피해에도 권력의 재갈과 역사의 망각에 풍화되어 그 이름조차 희미하다. 그에 반해 광주민주화항쟁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5월의 모든 피가 민주주의만의 출혈일 수 없다. 그 땅에 쓰러진 주검들을 ‘시민’이라는 하나의 이름만으로 모두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5월 광주, 총탄에 무너진 각각의 이름들도 보도연맹학살처럼 희미하다. 이렇게 희미해진 ‘죽음의 이름’을 포착한 두편의 소설이 눈길을 끈다. 바로 조갑상(曺甲相)과 한강(韓江)의 근작 장편이다. 조갑상 장편 『밤의 눈』이 침묵 속에서 사라져간 보도연맹학살을 포착해내고 있다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항쟁이라는 죽음의 이름 속에 있는 틈을 파고든다.2) 두 작품은 국가폭력이라는 유사해 보이는 사건들에 대한 상이한 접근을 통해 죽음의 이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한다. 또한 학살 ‘이후’를 치밀하게 파고들며 죽음이 역사-세계를 규정짓는 방식을 각각의 시선으로 분석해낸다.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조갑상과 한강의 차이는 모든 죽음을 지켜보는 자, 바로 ‘달’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통해서 가시화된다.

 

몇 사람이 소리치며 몸을 일으키고, 같이 묶인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땅! 하는 소리가 울렸다. 한용범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달을 보았다. 밤의 눈. 허벅지인지 옆구리인지가 뜨끔하다 싶더니 앞사람들이 벼 가마니 쓰러지듯 풀썩 몸을 덮었다. 그는 달이 공포가 아니라 밤의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을 놓기 직전에야 알았다.(『밤의 눈』 149면)

달은 밤의 눈동자래. 모임의 막내였던 당신은 어쩐지 그 말이 무서웠다. 저 검은 하늘 가운데, 얼음같이 하얗고 차가운 눈동자 하나가 침묵하며 그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말 들으니까 달이 무섭잖아요 언니.(『소년이 온다』 136면)

 

밤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눈동자. 달에 대한 두 작품의 이미지는 언뜻 흡사해 보인다. 그러나 달에 대한 두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은 전혀 다르다. 보도연맹학살에 휩쓸린 ‘한용범’은 총격에 정신을 잃기 직전 달과 마주한다. 그는 달을 죽음의 밤을 채운 공포에서 분리해내어 자신을 지켜보는 눈으로 파악한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이 그의 공포를 덜어준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의 ‘임선주’에게 차갑고 침묵하는 눈동자의 응시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아직 광주의 5월과 마주하기 이전의 기억이지만 달의 생명 없는 응시에 대한 두려움은 5월 이후의 감각과 동일하다.

 

한 그림자가 나에게서 떨어져나갈 때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어. 구름에 싸인 반달이 눈동자처럼 나를 마주 본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건 단지 텅 빈 은빛 돌, 생명이 살지 않는 거대하고 황량한 암석 덩어리일 뿐이었어.(『소년이 온다』 49면)

 

생명이 없는 밤의 눈, 그 황량한 시선은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무의미한 것이다. 어느 경우도 달은 한용범에게 그랬던 것처럼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지 않는다. 왜 두 인물은 밤의 눈인 달에 대해 전혀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는가. 죽음과 직면했던 이들이 서로 전혀 다르게 말하는 달의 모습을 보며, 조갑상과 한강이 ‘말해지지 않은 죽음’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죽음과 죽음 이후

 

죽음은 역사-세계의 원인이자 결과다. 주검들은 한편에서 역사-세계를 쌓아 올리고 다른 편에서는 역사-세계에 밀려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쏟아진다. 역사-세계와 죽음의 순환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에도 어른거린다. 조갑상과 한강의 소설은 과거에서 미래로 연장되는 죽음의 속성을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학살의 무더위가 식은(공교롭게도 보도연맹학살과 광주민주화항쟁 모두 초여름의 무더위와 함께 시작된다) 뒤에도 이어지는 죽음의 파장을 정교하게 추적해간다.

19506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쟁의 참화는 남하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밀려 내려왔다. 전장의 총성과 비명도 그 걸음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리라. 그러나 전쟁의 시작과 함께 남녘의 이곳과 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전장에서 멀어질수록 더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정부에 의해서 조직된 좌익전향자 단체 국민보도연맹3)에 대한 예비검속과 예방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밤의 눈』은 1950년 수개월에 걸쳐서 자행된 보도연맹학살과 그 이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밤의 눈』은 보도연맹학살이 자행된 1950년의 여름과 전쟁 이후인 1960년, 1961~68년, 1972년, 1979년이라는 다섯개의 시간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 이후의 시간에 대한 세밀한 분절은 소설이 학살의 실상만큼이나 학살 이후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추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밤의 눈』을 구성하는 다섯개의 시간축은 두개의 흐름으로 나뉘어 중심인물인 한용범과 옥구열의 삶 속에서 유사한 양상을 반복한다. 반복되는 시간의 구조는 1950년과 1960년의 한 축과 1961~68년, 1972년, 1979년의 또다른 축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국가에 의한 낙인, 국가폭력과의 조우 그리고 낙인에 대한 저항의 과정을 거친다. 1950년과 1960년의 시간은 보도연맹원으로의 낙인, 학살과 은폐(1950년) 그리고 4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