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신예소설가특선

 

임현 林賢

1983년 전남 순천 출생. 2014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dasimarvel@naver.com

 

 

 

좋은 사람

 

 

1

오래전에 나는 이런 기사를 읽었다. 다리가 무너진 사고 이후로 10년이 지난 다음에 추모식에 다녀왔다는 내용이었는데, 요약하자면 재건된 다리를 건너면서 이정표 같은 걸 보긴 했으나 그걸 따라 위령비를 찾아가기는 아주 어려웠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아니어서 복잡한 주차장에 자가용을 세워두고 다시 차로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다고도 했다. 백화점도 비슷했는데 붕괴된 자리가 아니라 거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추모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나는 전에 우재와 갔던 여행지를 생각하다가 언제부턴가는 그 기사의 내용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남해와 가까운 도립공원에 올랐다가 산중턱쯤에서 조난당한 적이 있었다. 험한 편이 아니었으나 갑작스러운 폭우였고 그것으로 고립되었다. 외부와 연락이 닿아서 가까운 대피소까지 안내받았는데 그때는 무섭다기보다는 신기했다. 비치된 라디오를 틀어놓고 ‘비구름이 서북서진하고 있으나 중부지역은 종일 무더울 것’ 하는 예보를 들으며 놀라워하던 우재가 기억난다. 이렇게 멀리 와 있구나, 여기는 전혀 다른 곳이구나, 생각하니 나도 아득했다. 대피소는 이렇다 할 구획도 없이 방 하나 크기의 시멘트벽으로 지어져 있었다. 지하실 냄새가 났는데 아늑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날 우리는 대피소에서 반나절 정도를 머물다가 내려왔다. 가는 길에 계곡이 불고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젖은 흙이 미끄러웠으나 우리 중 누구도 미끄러지지 않고 무사했다.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산 아래에서 보았던 하늘이 무척 맑았다. 도착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도 잘 보였다. 멀리 탑인 듯 높은 조형물도 보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아마 그게 그런 종류의 것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무언가를 기리려고 세워둔 게 아닐까. 중요하지만 자꾸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니까 가장 후미진 곳에 그걸 두기로 한 게 아닐까. 그러나 그때는 이런 곳에 저런 게 하나쯤 있는 게 당연해 보였다.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고, 원래 저 자리가 맞다고 여겼다. 당시에는 정말로 불행을 위로하려는 사람들이나 추모하려는 가족들은 힘들겠다, 같은 걱정은 하지 못했다.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사를 읽은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으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남자에 대해 무언가를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뒤의 일이었다.

 

나는 재작년쯤에 우재의 촬영을 도운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남자와는 딱 한번 만났고 그것 외에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일이 끝나고도 특별히 만나거나 한 것은 아니었는데 얼마 뒤에 우재는 그 남자가 사고를 당했다고 전화했다. 장례식에 가는 길이라고도 했다. 병원까지는 내가 있던 곳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었으나 나는 조문하지 않았다. 우재도 같이 가자는 의도로 연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알고 있으라고.” 하는 우재의 말이 나를 배려해서 그런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운하게 들렸다. 일종에 자격이 없다, 너는 그럴 수 없다, 하는 것처럼 들렸다. 후에 나는 우재를 만나 대강의 정황을 들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가 트럭 아래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명쾌하게 요약이 가능한 사고였다.

 

 

2

얼마 전에서야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무언가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그날 그 사람이 어땠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했다, 훗날 사고를 당해서 이게 나한테 이런 의미더라, 같은 것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랬는데도 우리가 만나 무엇을 했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같은 게 떠오르는 게 아니라 우재가 무슨 말을 했고 우재는 어떤 사람이다, 하는 것들만 분명해졌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없고 우재에 대해서라면 아직 할 말이 많구나, 같은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우재와 만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났으나 우리 중 누구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심하게 다투었다가 서먹한 기운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사이가 틀어져버렸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자주 멀어지는 편이다. 어느 순간 견딜 수 없는 점을 발견하고 결국엔 그걸 참지 못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그 사람들과 내가 달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 너무 닮아서였다고 생각한다. 아마 우재와도 결국 같은 이유로 멀어진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너무 닮았던 게 아닐까. 그걸 알아보고 우재나 나나 결국 참지 못했던 게 아닐까.

우재에게는 선한 면이 있었다. 분위기랄까 기운 같은 게 그랬는데 진지한 걸 웃기게 잘 말했다. 그게 가끔 부러웠다. 일종의 레퍼토리 같은 게 있어서 다른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매번 재미있었다. 한번은 무슨 대화 중에 심폐소생술이란 단어가 나와서 우재가 자기는 해봤다고, 모르는 할아버지가 터미널 매표소에서 갑자기 자기 앞으로 쓰러졌는데 그때 그걸 해봤다고 말했다. 우재는 배운 대로 신발을 벗기고 양말도 벗기고 몸을 조일 만한 단추나 벨트를 풀었는데 발이 하얗고 발톱이 굳은살처럼 탁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한 게, 오도독 도도독 하는 게 느껴지는 거야. 왜, 손가락 관절 꺾으면 나는 소리 있잖아. 실밥 터지는 것처럼 가슴을 누를 때마다 손바닥으로 그걸 느끼는데 뼈가 이렇게 다 부러지면 살아도 아프겠다, 생각이 드니까 좋은 일이라고 하면서도 할아버지한테 미안하더라.”

생각해보면 그 일은 전혀 웃길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나 그걸 말하는 우재는 웃겼다. 우재는 진지했지만 진지하게 오도독 도도독 하는 것이 사람을 웃게 했다. 이후에 나는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몇번 한 적이 있다. 우재를 모를 만한 자리에서는 아는 누가 그랬다, 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전에 그래봤다고, 확인할 수 없을 테니까, 어쩔 땐 우재가 누구인지 설명하기 어렵고 그래서 그냥 편한 대로 거짓말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기대하는 분위기로 흘러가지는 않고 오히려 이상하게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그러니까 우재에게는 그런 재주가 있었다. 불편한 이야기를 불편하지 않게 말하면서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잘 드러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재를 잘 알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우재는 죽는 게 무섭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주변에 누가 또 그런 일을 당할까봐 미리 대비를 하는구나. 정확하게 꼭 맞아떨어지는 우재 같은 사람은 없지만 우재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생각은 자주 들었다. 그걸 분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너무 몰랐던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그런 종류의 것들은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금방 들킬 만한 것들이어서 그게 진짜 우재야? 우재의 전부가 그거야?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런 사람을 과연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다시 돌아보면 우재가 온전히 선했던 것만은 아니었고 고집을 부릴 때도 있었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우기고 그게 너무 답답할 때가 있었다. 지겹다, 진짜 지겹다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재는,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컸느냐면 입관할 때 맞는 게 하나도 없어서 무릎을 굽혔는데도 모자라더라.” 그걸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우재의 선한 면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우재의 영화는 좀 그런 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재가 연출한 영화를 한번 본 적이 있었다. 20분이 채 안되는 단편이었고 주인공인 남자는 처음엔 야맹증인 줄 알았으나 점점 시야가 줄어드는 병을 앓고 있었다. 육개월에 한번씩 진행속도를 검진받아야 했는데 그 첫번째 육개월이 돌아왔을 때 첫사랑을 찾아간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였다. 우재는 그것의 모티브가 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실제 이야기라고 했는데 “저 사람 얘기야, 저 친구가 지금 자기 이야기를 연기하는 거라고” 같은 말을 다 듣고도 나는 좋네, 좋다, 너 대단하다,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구성이랄까 개연성이 부족하다 싶고 실제랑 영화는 좀 달라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으나 우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걸 찍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고 자기 물건 중 무엇을 팔아야 했는데 그걸로도 한참이 모자라더라, 같은 하소연을 모두 들어주었다.

그즈음 우재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자체 기획한 아이스크림 홍보 영상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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