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을 겪으며

 
 

이번호를 내보내는 편집진의 마음가짐은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습니다. 지난 6월 신경숙 작가의 표절 시비를 겪은 뒤 안팎의 많은 분들이 가을호를 주시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먼저 편집주간으로서 이 기회를 빌려 본지를 아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죄드립니다.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저는 연구년을 맞아 해외 대학에서 강의 중이었습니다. 문학출판부 명의의 최초 보도자료가 내부 논의 없이 나감으로써 독자의 분노와 논란을 키운 것이 이런 제 사정과 무관하지 않았기에 개인적으로 송구스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창비의 경우 편집인을 포함한 편집위원들은 계간지 편집을 담당하고 저만이 계간지와 단행본 출판업무를 함께 관장하는 시스템이기에 더욱 곤혹스러웠습니다.

저는 그 일 이후 저희에게 쏟아진 사회적 관심과 반응에 놀라면서도 거기에는 창비가 지난 50년간 걸어온 길에 대한 신뢰와 기대도 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더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깊은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저희는 그간 내부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도 신속하게 시인하고 문학에서의 ‘표절’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을 제의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가가 ‘의식적인 도둑질’을 했고 출판사는 돈 때문에 그런 도둑질을 비호한다고 단죄하는 분위기가 압도하는 판에서 창비가 어떤 언명을 하든 결국은 한 작가를 매도하는 분위기에 합류하거나 ‘상업주의로 타락한 문학권력’이란 비난을 키우는 딜레마를 피할 길이 없었기에 저희는 그동안 묵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고, 독자 여러분이 비판을 하시더라도 창비의 기본입장을 다소간 이해하며 비판해주시지 않을까 감히 기대해봅니다.

표절 문제에 대한 발언이 특히 어려웠던 것은 그것이 또다른 쟁점, 곧 문학권력(내지 문화권력) 논란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비가 ‘문학권력’으로 지목되는 순간 감정이나 도덕 차원의 비난 대상에 오르고 무슨 발언을 해도 불순한 권력행사로 비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문제 또한 찬찬히 따져볼 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문학권력이란 것이 문학장 안에서 일정한 자원과 권위를 가진 출판기업을 가리키고 그 출판사가 유수한 잡지를 생산하는 하부구조로 기능함을 의미한다면, 창비를 문학권력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지만 창간호 권두논문에서 ‘창조와 저항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한 창비에 공공적 가치의 실현은 창사 이래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리고 공공성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공공성과 사업성의 결합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왔습니다. 창비가 그간 거둔 사업적 성과 또한 저희의 공공적 기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창비가 그 과정에서 양자 사이의 균형을 언제나 잘 유지해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창비의 주간을 맡은 것은 창비가 창간 40주년을 맞았던 10년 전입니다. 당시는 노무현정부가 후반기에 들어서며 ‘진보의 위기’가 거론되고 신자유주의 시장논리가 점점 강화되던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창비 혁신의 기본방향을 ‘운동성 회복’으로 잡았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볼 때 당시의 약속에 비춰 성과의 미흡함을 실감합니다만, 창비의 편집진이 그 목표를 저버린 적은 없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그럴수록 저희는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비판에 귀기울이며 자세를 더욱 가다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권력, 나아가 출판권력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거대한 언론권력이나 종교권력 등을 포함하는 문화권력의 실태와 그 구체적 작동양상을 분석하는 작업도 당연히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호에는 우선 최근 사태를 둘러싼 외부의 다양한 견해를 경청하고 앞으로 더욱 심화된 토론의 자료로 삼기 위해 다른 자리에서 발표된 세분의 글을 ‘긴급기획’란에 게재합니다. 하나는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토론문이며, 또 하나는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 주최의 토론회에서 나온 글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한국작가회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입니다.

이 기획은 물론 하나의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저희는 문학에서의 모방과 표절, 문화권력 문제 등 이번에 크게 부각된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함은 물론, 창비가 수십년간 공들여온 ‘창비담론’을 더욱 내실화하여 훌륭한 문학을 생산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한층 적극적으로 수행하고자 합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소중한 자원을 겸허하게 활용하면서 한국 문학과 문화의 창조력을 높이고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운동을 벌이는 분들과 연대 및 선의의 경쟁을 한껏 도모할 생각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애정과 편달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종전 70년이자 해방 70년을 맞아 본지는 ‘창비담론’의 관점에서 그 현재적 의미를 찾아본다는 취지에서 특집 ‘시대전환의 징후를 읽는다’를 마련하고 네편의 글을 거두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종말’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세계사적·문명사적 전환의 차원, 중국의 대국굴기가 초래한 지역질서 변화라는 동아시아 차원, 그리고 한반도 차원의 분단체제 동요가 중첩되는 국면에서 한국에서는 전에 없이 더 커다란 전환을 예감하거나 기대합니다.

김종엽은 한국 차원에서 87년체제의 정치적 전환 가능성을 점검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절감하고 있는 위기 구조를 탈민주화에 수반되는 국가능력의 계속적인 악화로 파악하고, 그 극복을 위한 단기적 과제를 한창 논쟁 중인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서 찾습니다. 그것은 낡은 습속에서 벗어난 사회운동세력을 중심으로 선거법연대가 가동될 때 실현 가능하다고 전망합니다. 김연철은 해방 70년을 분단 70년으로 규정하면서 한반도 차원에서의 전환의 길을 북한을 중심으로 모색합니다. 분단체제가 북한의 국가형성에서 남한과의 차이와 경쟁의 환경을 조성했음을 역사적 접근을 통해 보여주면서, 북한의 붕괴가 아닌 변화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지난해 출간된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와 진지하게 대화하는 김동춘은 당면한 단기과제를 중장기적 관점과 결합해 사고하는 백낙청의 접근법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 책에서 말하는 ‘대전환’의 실제 내용과 미래 구상이 좀더 충실해질 방도를 제안합니다. 박근혜정권의 파행과 그 극복이란 과제를 분단체제의 극복 및 19세기말 이래 강요된 비자주적 근대화의 극복이란 중층적 시간대의 과제와 연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 톄쥔 등은 중국의 새 국가전략인 ‘일대일로’를 육상세력과 해상세력 간의 패권갈등으로 전개된 19세기말 이래 세계사의 차원에서 파악합니다. 그리고 사회정의 이념과 문화다양성 비전이 담긴 생태문명 전략을 중국 안에서부터 실현할 때 대안 담론이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원로 인문학자 임형택과 미야지마 히로시를 중심으로 진행된 ‘대화’도 특집의 취지와 연결됩니다. 중국 대국화가 초래하는 동아시아질서 변화와 얽혀 있는 오늘의 한일 간 갈등을 사상사·문명사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적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동아시아의 사상자원에서 찾는 격조있는 토론의 자리입니다.

올해는 반둥회의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논단과 현장’란에서는 제3세계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우간다 지식인 마흐무드 맘다니가 아프리카적 시각에서 미국의 형성에 관한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글을 싣습니다. 인디언의 운명을 통해 정착형 식민주의의 선구였던 미국사의 특성을 부각시키는 야심적 작업으로서, 근대세계의 식민지배 역사를 다시 보는 안목을 깨우쳐줄 것입니다. 그밖에 지난호의 사드 관련 글에 대한 반론이 투고되었습니다. 한국에 배치하려는 사드가 남한을 겨냥한 북한의 공격 위험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국용인 근거를 대는 것이 그 골자입니다. 또 올해 5월 홍콩에서 열린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의 성과를 깊이있게 전해주는 글, 메르스 사태의 진상과 의료체계의 개선점을 시민의 시각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 글이 독자를 기다립니다.

‘긴급기획’란에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신경숙 사태와 관련한 세편의 평문이 실립니다. 정은경 김대성 윤지관은 각기 다른 입장에서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에 접근하지만, 세 글 모두 선정적 여론몰이에서 벗어나 사회와 문학의 현재를 치열하게 묻는 비평의 역할을 올곧게 세우려는 문제의식의 소산입니다. 기고자들은 기존에 발표한 내용을 다소간 보완하여 보내주셨습니다.

이어서 문학평론란에는 한국문학의 현장에 대한 섬세하고 날카로운 비평적 성찰을 보여주는 글들이 함께합니다. 함돈균은 세월호참사 이후 한국문학의 변화양상을 주목하면서 진실이 은폐되는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기각되고 망각된 것이 스스로 발화하는’ 문학적 현상을 논의합니다. 신예평론가 이은지의 글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난 기억, 망각, 회상 행위의 다양한 국면이 삶의 대한 공통감각과 어떻게 접속되는가를 분석합니다. 창비신인평론상으로 등단한 김요섭은 문학작품과 역사적 현실의 관계를 끈질기게 탐문합니다.

소설란에는 지난호에 시작한 전성태의 장편연재가 작가 사정으로 한회를 쉬게 됐습니다. 대신에 신예작가 양선형 이승은 임현 정영수 최은영과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김수의 작품이 현재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다채로운 색채와 개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시인 11인과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한 김지윤의 시편도 지면을 빛냅니다. 그밖에 비평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본지가 공들이는 문학초점, 작가조명 및 촌평 등의 맛깔난 글들도 이번호를 풍성하게 해줍니다.

올해 만해문학상은 아쉽게도 수상작을 내지 못했지만, 신동엽문학상은 시인 박소란과 소설가 김금희에게 돌아갔습니다. 우리 문학의 활력을 불어넣은 두분께 독자와 더불어 축하와 격려를 보냅니다. 아울러 창비신인문학상 각 부문 당선자에게도 축하를 드립니다.

유난히 뜨겁게 느껴지던 여름도 이제 물러나고 차분히 사색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계절이 다가옵니다. 이번호는 두꺼운 분량으로 독자에게 다가갑니다. 가을호를 둘러싼 여러분과의 진지한 대화가 어느 때보다 기다려집니다. 창비는 독자의 속깊은 관심에 힘입어 한호 한호 걸어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白永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