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시대 전환의 징후를 읽는다

 

한국사회 ‘대전환’의 길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를 읽고서

 

 

김동춘 金東椿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주요 저서로 『한국사회 노동자 연구』 『한국 사회과학의 새로운 모색』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전쟁과 사회』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등이 있음. dckim@skhu.ac.kr

 

 

1. 글머리에

 

전태일(全泰壹)은 “아무래도 누가 한 사람 죽어야 될 모양이다”라고 생각한 나머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자신을 불살랐다. 사람이 죽어야만 세상이 충격을 받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회는 야만사회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선 사람 한두명은 물론, 수십수백명이 정치·사회적 이유로 죽어도 놀라거나 그들을 죽게 만든 상황을 돌아보지도 않고, 해결책을 마련하지도 않는다. 가까이는 성완종, 유병언, 최근의 국정원 직원 자살 사건이 그렇다. 박근혜정권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결정적 시점에 의문의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간다. 세월호참사로 수백명의 아이들이 ‘수장’을 당하고 삼성, 현대 등 한국 굴지의 대기업 일터에서 많은 하청기업의 노동자들이 자살, 질병, 사고로 목숨을 잃어도 이 세상은 그 사건들을 무심하게 지켜보며 정권이나 책임당국은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미칠 정도로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가진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주기 위해 정치, 법, 국가가 존재하는 법인데, 지금의 정치, 법, 국가는 오직 권력자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박근혜정권 3년차를 살고 있는 우리는 정치와 사회가 이렇게 타락할 수 있는지 매일의 기록 경신에 충격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국가안위’ ‘경제 살리기’라는 구호는 마법의 주문처럼 공중에 떠돌고 있으나, 제도의 강압, 힘 센 집단의 ‘갑질’, 영혼 없는 노동의 고통 속에 우울증 초기증세를 앓으며 살아가는 학생, 청년, 노동자, 노인은 영혼 없는 생명체와 같은 존재다. 이 정권의 권력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라를 일본에 넘긴 구한말 망국의 관료들이 이보다 더 나빴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작업장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 비정규직 노동자, 알바생을 보면 조선시대 노예가 이들보다 비참했을까 싶기도 하다. 근대국가와 자본주의의 ‘막장’이 어떠한지를 보려면 지금의 한국을 볼 일이다.

나는 최근 출간된 백낙청(白樂晴)의 대담집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큰 적공을 위한 전문가 7인 인터뷰』(창비 2015, 이하 ‘대담집’)를 나라에 대한 근심의 고뇌에서 벗어날 길 없는 답답함과 절박한 심경의 표현으로 읽었다. 각계 전문가에게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나누려는 그의 이 시도가 세월호참사 이후 나락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 정치와 사회에 대한 원로 학인(學人)의 평생의 내공이 실린 진단이자 다가오는 2017년 대선을 위해 우리는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다. 사실상 연구활동이나 지적인 활동을 거의 중단할 연배(!)인데도 피대담자들이 직접 쓴 글이나 자료를 섭렵해서 인터뷰어로 직접 나선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한국의 후학들이 크게 배워야 할 점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담집은 지난 대선에서 ‘2013년체제’를 희구했던 백교수 개인의 자기반성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결국 선거결과에 집착한 점, 특히 한국 수구·보수세력의 힘을 과소평가한 점을 인정한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계속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태도는 현실정치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심정이기도 했다. 박근혜정권의 등장으로 ‘87년체제’는 제대로 마침표를 찍기는커녕 ‘신유신체제’라고 부름직한 복고풍이 유행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과 힘겹게 맞서야 하는 처지에 있다. 2012년 당시나 지금이나 대전환(大轉換)이 객관적으로는 요청되고 있으나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세력의 부재, 그리고 야당정치권·지식인 진영의 적공(積功)이 너무나 모자란 데 대한 한탄과 아쉬움이 이 책 전체에 흐르고 있다. 아마 그는 박근혜정권하에서 나타난 민주주의 퇴행, 민생 위기, 정부의 무책임, 남북관계 경색의 상당부분이 그가 제기해온 분단체제와 매우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2013년체제 만들기’1)의 후속 작업을 이런 대담의 방식으로 계속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 것 같다.

이 대담집을 읽으면서 20세기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거론된 ‘문제(問題) 중심’과 ‘주의(主義) 중심’의 접근법이 떠올랐다. 즉 생산대중이 처한 고통 등 실제 현실에서 출발해서 해법을 찾는 것이 ‘문제 중심’이라면, 문제를 파악하고 행동을 조직하려면 ‘주의’에 입각해서 해법과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주의 중심’이다. 정치·사회운동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컸던 한국에서는 80년대 이래 방법론적으로는 ‘주의 중심’의 접근이 ‘문제 중심’의 접근을 압도해왔다. 그러다보니 사회운동과 지식인 진영 내에서 노선갈등과 사상투쟁이 격렬했는데 그 후과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이 대담집은 큰 틀에서 보면 ‘주의 중심’에 있는 지식인 백낙청이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즉 현장과 밀착되어 있는 전문가, 연구자나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본인의 ‘주의’, 즉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의 틀로 포괄하려 하는 인상을 준다. 물론 그는 자신이 주장한 변혁적 중도주의가 ‘주의’라기보다는 ‘아닌 것’을 제외한 잔여 노선이라고 말하지만, 인터뷰 대상자들의 담론을 무리하게 그의 ‘주의’로 유도하려 하지는 않으면서도, 그들의 현장진단을 그의 ‘주의’, 즉 분단체제의 틀로 설명하고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주제와 대상에 따라 인터뷰어로서가 아니라 같은 입지의 토론자로서 강하게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이 책은 전체적으로 주의와 문제를 잘 결합시키려는 보기 드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대담집에 등장한 각 분야 전문가의 주장과 담론 모두 평가할 역량이 필자에게는 없지만, 백낙청의 시각과 접근법, 특히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의 기조에서 본 우리 사회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