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한국사회 대전환이 진보진영의 목표가 되어야

 

● 언론에서 보도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40대의 80% 이상이 이민을 고려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가장 큰 이유로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그 불신은 세월호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을 겪으며 더 증폭되었다. 이러한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무능력하고 미숙한 모습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기득권 세력은 정치 이데올로기로 포장해 국민을 우롱했다. 진보진영 또한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면서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느끼게 했다. 김동춘 교수가 『백낙청이 대전환이 길을 묻다』를 읽고 쓴 가을호 글에서 “경제민주화나 복지 혹은 사회적 경제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과연 우리가 그 내용을 소화해서 대중의 언어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라고 한 부분을 진보진영은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대중을 바라보지 않고 이념만 강조하며 계파 싸움으로 멍이 든 야권은 자신들의 ‘적공’이 바닥이 드러났음을 보여주며 신뢰를 잃었다. 김동춘의 말처럼 야권이 2017년 대선만을 목표로 삼지 말고 대한민국이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대전환’을 목표로 하길 바란다. 더불어 이 전환을 위해 어떠한 적공이 필요한지 구체화시킬 능력이 없다면 ‘대전환’은 쉽게 이룰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김미애 allsq@naver.com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기

 

● 인간이 지닌 굴곡은 간단히 포착되지 않는다. 임현의 소설 「좋은 사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포착’이라는 행위에서 어떤 의미로는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소설은 겪어보지 못한 타인의 삶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끌어올린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결코 완벽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누락된 부분에 대해 진실을 말해보려는 모든 행위는 ‘함부로 말하는’, ‘마음대로 그렇게 만드는’, ‘같잖은’ 것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실패는 역으로 성공이 존재함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작품의 말미에서 화자는 우재가 겪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겪어본 것처럼 이야기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우리가 이렇게나 닮았다’고 말한다. 이 문장을 깊이 읽어보면, ‘우리가 어떻게 타인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답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서 닮은 부분을 찾는다는 것은 곧 타인의 서사를 스스로의 차원에서 이해해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타인을 이야기하며 나와 ‘닮은’ 사람이라 말하는 것은 타인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태도가 담겨 있는 것 아닐지.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을 두고 한번쯤은, 비록 함부로 하는 말이 될지라도, ‘좋은 사람’이라 불러보고 싶다. 

양소희 0601cosmos@gmail.com

 

 

‘대화’와 ‘긴급기획’을 읽고

 

● ‘대화’에 언급된 ‘소농사회론’에 눈이 번쩍 띄었다. 소농은 나를 먹여살렸던 아버지의 농법이었다. 따지고 보면 소농의 해체는 산업화와 맥을 같이한다. 소농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족단위의 노동력이 필수적이었는데, 산업화는 이것의 해체를 가져왔다. 소농사회론에 대한 논의가 좀더 이어기지를 기대했지만 그러지 않아 아쉬웠다. 한편 주자학이 동아시아 역사에 끼친 영향에 대한 언급에도 관심이 갔다. 지천명에 접어들다보니 유학과 주자학에 관심이 깊어진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논란의 중심에 창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독자로서 당황스럽지만, 긴급기획을 읽고 표절을 곰곰이 되짚어보는 기회가 된 건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지관의 ‘신경숙을 위한 변론’이 변명처럼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름지기 작가에게는 한층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점을 깊이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북악산 bukak1@hanmail.net

 

 

중간을 바라보는 시야의 전환

 

1년이 지났지만 노란 리본은 여전히 영롱하게 빛난다. 사람들의 가방 위에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올해는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수능을 보는 해이다. 유족들은 자녀의 책상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노란 리본을 단 학생들은 수능시험장으로 향한다. 여전히 한쪽에서는 ‘가자 청와대로!’를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통제와 감시로 일관한다. 이같은 시민의 저항과 정부의 탈민주적 처사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김종엽은 가을호 특집에서 이러한 현실을 이야기하며 백낙청의 견해를 빌려온다. 백낙청이 강조한 통합의 논리는 ‘각 입장의 합리적 핵심’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결코 배제의 논리가 핵심이 아님을 언급한다. ‘나만 옳다’는 입장에서 벗어나 상호협력의 노선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참사, 메르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를 민주국가로 부르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합의되지 않은 정체성 속에서 양극의 입장은 극명하게 치닫고, 중간에 남은 사람들은 점점 기운을 잃어간다. 이러한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귀를 열고 좀더 목소리를 크게 낼 여유를 가져야 한다. 나를 아는 것을 넘어서 남을 알고, 그 중간의 핵심을 찾아 돌파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시각의 전환이다. 시각을 바꾸거나, 시력을 잃거나. 지금, 시야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주연 bebezzu@naver.com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분단인식의 재연

 

● 김연철의 「거울 앞에서: 분단체제와 북한의 변화」에 나오는 ‘분단체제’는 단순히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개념적인 용어다. 이 개념이 많은 것을 설명해주었다. 분단이라는 특수상황과 상호경쟁 체제가 현재의 남북관계를 형성했다는 논지에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근래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아닐까. 새누리당이 게시한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플래카드야말로 북한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과 추진력을 얻는 방식, 말하자면 “분단인식이 재연되면서 과거로의 퇴행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김연철은 “거울 속 상대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울 속의 상대를 움직인”다고 말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위한다면 먼저 변해”야 함을 촉구했다. 과연 우리는 변하고 있는가. 아직도 교육에 반공적 사고방식을 적용하는 행태를 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변화를 이뤄낼 것이다. 서로 잡은 손을 놓지 못하던 이산가족들의 슬픈 광경이 잊히지 않으니까. 

박현옥 pho20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