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인간적이다』,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투명인간』 등이 있음. songsokze@hanmail.net
믜리도 괴리도 업시*
너에게 전화가 온 건 꼭 오년 만이었다. 네가 그새 세차례나 바뀐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하지도 않았다. 나긋나긋하면서도 나른한, 연육제에 푹 담겨 부드러워진 고기처럼 무장해제가 되게 만드는 네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네가 말하는 장소로 가겠다고 말했다.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맹세를 오년쯤 잘 지키다가 오랜만에 단골술집을 만나서는 별생각 없이 들어가버리듯.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네가 어떻게 살았을지 가늠해보았다. 너는 문자 그대로 자력갱생(自力更生)하는 인간의 표본이었다. 유산이나 복권 당첨금처럼 노력 없이 생긴 재산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을 때 주변의 누구에게든 무상으로 줘버리고 훌훌 떠나버리는 것, 그게 너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너에 대한 평판과 호오를 결정짓는 요소였다. 사람들은 너를 처음에는 천사처럼 좋아하다 더이상 네가 줄 게 없다는 걸 알면 악마처럼 대했다. 아니 대하지 않고 욕을 하며 떠나가버렸다. 너에게 구체적인 피해를 입은 것도 없으면서.
으악새. 그게 네 별명이었다. 대학시절 일부러 어른들만 출입하는 다방에 터를 잡은 우리가, 소파에 반쯤 누워 줄담배를 피우거나 서로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무심코 다방에 들어서는 어른들을 내쫓는 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 너는 혼자서 지절거리는 스피커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말고 느닷없이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망루 위 소년처럼 “으악새가 새가 아니고 갈대 비슷한 풀이라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제히 가래침을 돋워 너를 겨냥하면서 ‘쪼다 같은 게 분위기 조진다’고 가락을 붙여서 너를 타박했다. 풀이 울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갈대도 순정이 있다는데……” 네가 한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사 풀이 진짜로 눈물을 흘리며 울고 갈대에게 한몸을 불사를 순정이 있다 해도 네가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주제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으악새는 총에 맞아 죽어가는 새를 연상시키지만, 실제로 ‘으악’에 가까운 단말마 비명을 지르는 동물은 인간이다. 새가 죽을 때 내는 소리라야 짹, 아니면 끽일까. 네게 ‘으악새’라는 별명이 오래도록 따라붙은 건 네가 그런 식으로 턱도 없는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슬그머니 나타나 뒤통수를 침으로써 사람을 ‘으악’ 소리가 나도록 놀라게 해서였다. 그래. 그랬다. 가을바람에 흰머리를 나부끼는 낭만적인 억새에서 너를 연상하기 힘든 것처럼 네가 우리와 다르고 잘난 뭔가 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쨌든 너는 키가 크긴 했다. 누가 가꾸지 않아도 자력갱생하는 수많은 풀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억새처럼.
초등학교 6년 동안 너와 나는 같은 학교에 다녔다. 두어번인가는 같은 반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귀공자처럼 차려입은 너와 가까이한 적이 없었다. 너를 둘러싼 하이에나 같은 무리는 다른 아이들이 네게 접근하면 콧등을 찡그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들은 네가 사는 동네 시장 장사꾼들의 자식이었다. 소방서의 망루보다 까마득히 높은 굴뚝이 있는 주물공장이 네 아버지 것이었고 그의 재산은 시장 모든 상인들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소문이 돌았다.
읍내 외곽 마을 농사꾼의 자식인 나는 읍내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너를 멀찌감치 넘겨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반장선거 때가 되면 네 어머니가 학교로 출동해—초임 교사처럼 젊어 보이는데다 화려하게 성장한 아름다운 귀부인이어서 학교 전체가 환해지는 것 같았다—반공삐라를 뿌리는 비행기처럼 사탕을 뿌려댐으로써 너무도 간단하게 너를 반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너는 고장 난 로봇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가령 반장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과업인 수업시간의 구령, “차렷, 선생님께 경례”도 제대로 순서를 외우지 못하거나 덜덜 떠느라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담임은 너를 혼내거나 해임하지 않고 반 아이들이 돌아가며 인사를 하게 했다. 반 아이들은 네 덕분에 민주주의란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임을 배울 수 있었다. 그 또한 네 어머니의 돈봉투 덕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학교에 기악합주단이 만들어졌을 때 네 어머니는 실로폰이나 큰북처럼 인기 없고 비싼 악기 대부분을 구입해서 학교에 기증했다. 너는 그런 악기 중에서 가장 쉬운 심벌즈조차 배우지 못했으나 합주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발표회에서 혼자서만 연미복을 빼입은 너는 박자와 음정이 엉망인 지휘를 했는데도 기립박수를 받았다. 너는 언제나 가운데 자리에서 많은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무기력하고 슬퍼 보였다. 하필 그때마다 내 눈길이 네게 향한 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초등학교 6년 동안 너와 나는 제대로 된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았으니 네가 도대체 나라는 존재를 아는지도 몰랐다. 궁금하지 않았다. 중학교를 추첨으로 진학하게 됨으로써 다시 보기 어렵게 된 초등학교 남자 동기생의 절반 정도, 그러니까 사립중학교에 배정된 백명의 아이들처럼.
네 아버지의 공장은 엿장수, 고물상 들이 골짜기와 마을을 돌며 수집해온 쇳조각을 용광로에 녹여 농기계며 철근 등 갖가지 유용한 도구와 일상용품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네 아버지의 공장은 고향의 군 전체에서 최첨단의 과학과 기술, 설비를 갖춘 최대, 최고의 산업체로 여겨지고 있었다.
우리가 중학교 입학을 열흘쯤 앞두고 있던 어느 쌀쌀한 날 오후, 네 아버지의 공장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어느 고물상이 수집해온 쇳덩어리 가운데 6·25 때 버려진 불발탄이 있었고 부주의한 일꾼이 그것을 용광로에 집어넣는 바람에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다. 공장을 덮고 있던 지붕이 부서지고 현장에 있던 사람 예닐곱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주변의 건물 유리창 수백장이 깨졌다. 굴뚝 뚜껑이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날아가 있다가 다른 고물수집상의 수레에 실려 공장으로 돌아왔으나 결코 원래의 자리로는 갈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은 네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져 죽을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는 몸이 됐지만 나는 그런 걸 알지도 못했고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집에서 읍내 외곽의 중학교까지 6킬로미터쯤 되는 신작로를 오가기 위해 자전거를 배우느라 바빴고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자전거와 함께 길 아래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지 않는 게 가장 큰 관심사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서너달 뒤, 하지 무렵에 네 아버지의 공장에 큰 불이 나서 공장과 공장 인근에 수십년 동안 쌓였던 어마어마한 양의 고물과 네 가족이 살던 저택이 속수무책 타버렸을 때는 모를 수가,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자전거를 배운 이후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가서 불길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전거를 세우고 그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위태롭게 선 채로 한 시대의 역사가 젖은 쓰레기처럼 연기를 내며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읍내 사람들이 전부 공장 앞으로 모여든 것 같았다. 그중에는 너를 옹위하던 하이에나 무리도 있었다. 모두들 구경만 할 뿐이었다. 엄청난 공해를 유발하는 공장으로 떼돈을 벌면서 이웃들에게는 떡 한번 돌리지 않았으니 그 때문에 망조가 든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엄마가 1남 4녀의 자식들에게 양복점에서 맞춘 옷만 입히고 외제 책가방과 학용품을 들려서는 몇걸음 되지도 않는 학교를 오갈 때 자가용에 태워 보내는 식으로 거들먹거렸으니 죄를 받는 것이라고 여자들은 수군거렸다. 소방대원조차 화재진압을 하기보다는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평생 보기 드문, 경험하기 힘든 대형 화재의 현장을 보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손 놓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여느 때와 달리 읍내의 사나운 아이들이 가장 늦게까지 화재현장에 남아 있던 나를 무시하고 그냥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나는 너에 관해 갖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불이 나자마자 네가 네마리의 흰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족과 함께 바닷가의 별장으로 가는 것을 떠올렸고 네가 여자 형제들과 나란히 목에 깡통을 걸고 한길에 나앉아 있는 것을 상상할 때는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는 것처럼 목으로 침이 연신 넘어갔다.
나는 중학교 2학년 초에 서울로 전학했고 방학이면 고향집에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어쩌다 보니 너를 둘러싸고 있던 하이에나들이 고향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네 아버지가 공장에 화재가 일어난 뒤 일년 만에 숨졌고 네 엄마는 믿을 수 없게도 남편의 무덤에 풀도 나기 전에 대도시에 있는 주물공장 공장장과 재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불타지 않고 남은 유일한 건물인 일꾼들 숙소 겸 식당(‘함바집’으로 불렸다)에서 연년생인 누나 하나, 여동생 셋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한동안은 네 집에서 십년 넘게 일해온 식모가 아이들을 돌봤지만 결혼을 하면서 떠나버렸다. 그뒤로 네 신세와 꼴은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너는 세수도 못한 얼굴로 찢어진 교복을 입고 등교했다. 한문과 영어, 수학을 같이 가르치던 학생과 주임 선생이 교문에서 여자 형제들 씻기고 입히고 먹여 학교에 보내고 오느라 지각했다는 너의 변명을 듣고는 “네 엄마는 제 자식 놔두고 남의 집 계모로 가버리고 너는 여동생들 뒷바라지하는 식순이가 됐으니 앞으로 네 이름을 ‘신데렐로’라고 해라”라고 한 뒤로 너는 고향의 전 중학생, 아니 모든 남자를 대표하는 ‘부엌데기’가 되었다. 네 부하였던 아이들이 하루 만에 모두 네 상전으로 변했다. 그 아이들의 책가방을 집집마다 배달해주려면 지게질이라도 배워야 할 형편이었지만 지게가 없던 너는 온몸에 책가방을 매달고 들고 이고 지고 물고 읍내를 돌아다녔다. 점심시간에는 학교 앞 구멍가게에 네 책가방을 잡히고 ‘까치담배’를 외상으로 받아다가 반에서 대장인 아이에게 상납하곤 한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에게,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돌아가며 구박당했다. 특히 남성 호르몬이 넘쳐나다 못해 공기 속에까지 비산될 정도였던 남자중학교에서 너는 여중생처럼 주목을 받되 무리 내 서열은 성적처럼 꼴찌였다. 쉽게 말해 너는 한때 읍내 최고의 귀공자 미소년에서 ‘만인의 똥개’로 전락했다.
네가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그토록 힘든 시절을 견뎌냈는지 정확하게 아는 아이는 없었다. 네가 거의 매일 저녁, 주물공장의 폐허 위에 앉아 “아아 으악새 슬피 우는”으로 시작하는 네 어머니의 애창곡을 나지막이 부르는 것을 들었다는 아이는 있었다. 언젠가 네 아버지가 좋아하던 “복사꽃 살구꽃 피는”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들었다는 아이도. 그런 식으로 힘든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하더라도 그 노래들이 그 시절을 참고 견뎌낼 이유는 되지 못한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기차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너를 보았다. 너는 교복을 입은 채 철로변에서 석탄과 나뭇가지 같은 땔감을 줍고 있었다. 껑충 자란 키에 비해 교복은 너무 짧고 작았고 곳곳이 기워져 있었으며 눈이 날리는 추운 날씨임에도 너는 홑겹인 교복 하나만 입고 있었다. 때에 전 얼굴에 장갑도 끼지 못한 손발은 터졌고 몸을 구부리는 바람에 드러난 쇄골이 쇠꼬챙이처럼 말라 보였다. 그럼에도 어쩐지 너는 당당해 보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네 눈은 빛났다. 그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뭔가를 기억해내고는 말을 걸려 했다. 오히려 내가 먼저 몸을 피할 정도였다. 너는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어른 같았고 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온실 속에서 갖가지 보살핌과 보호를 받으며 손도 까딱하지 않던 화려한 화초로 있을 때는 생각할 수조차 없던 강인한 모습이었다. 몇년 사이에 한 사람에게 생겨난 너무도 극적인 변화에 나는 ‘으악’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어지간히 놀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너를 영원히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너는 보호를 받으면 무기력해지고 남을 보호하게 되면 강해지는 특이한 체질을 가졌다.
네 험담을 하던 하이에나들도 네가 식당을 차려도 될 정도로 뛰어난 ‘손맛’과 손재주를 가졌다고 칭찬했다. 너는 움막집 같던 일꾼 숙소를 아기자기하게 꾸몄고 누이들에게 오므라이스,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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