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은희경 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등이 있음. silverpaperbox@gmail.com

 

 

 

별의 동굴

 

 

8월 어느날 아침 그는 휴대폰의 문자 알림음 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동네 안경점에서 보낸 문자였다. 그의 46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수입테를 제외한 모든 품목을 할인해주겠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휴대폰의 달력을 열어서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그날이 생일인 것은 맞았다. 그러나 일부러 잠을 깨울 만큼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른 대부분의 날들과 마찬가지로 달력에 그날의 일정은 아무것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그가 사는 원룸 오피스텔은 11층에 동향이었다. 여름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창을 통해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벽에 걸린 액자 속 그림과 창턱에 쌓아놓은 책들의 표지는 허옇게 색이 바래 있었다. 책상 위의 데스크탑을 아침의 직사광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기 전에 수건으로 덮어놓아야 했다. 6년 전 그 집을 계약할 때는 겨울이었다. 오랜 고시원과 반지하 생활을 벗어나 마침내 해가 드는 집에서 살게 되어 들떴었다. 그 부드럽고 따사로운 볕이 여름에 실내를 불가마로 만들어버리리라는 건 짐작하지 못했다. 덕분에 여름마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했다. 온몸에 땀띠분을 뿌려가며 선풍기 앞에서 팬티 바람으로 지냈다. 그러다 며칠에 한번쯤은 에어컨을 찾아 까페에 나갔다.

커피가 맛없기로 소문난 체인점이 그의 단골 까페였다. 그다지 취향을 내세우지 않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정수리의 머리숱이 적고 폴로 티셔츠 아래 스키니가 아닌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혼자 몇시간을 앉아 있어도 그다지 눈길을 끌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늘 책과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 가끔은 다운받은 영화를 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야외 테이블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그는 9년째 박사논문을 붙잡고 있었다. 빨리 끝내는 게 실력이라며 잔소리를 해주던 지도교수가 작년에 정년퇴임한 이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논문이었다. 하지만 더이상은 미룰 수가 없었다. 다음 학기부터 모교의 시간 강의를 맡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 임용된 학장이 박사학위가 없는 강사를 일괄적으로 잘라버렸다. 지난 몇년 동안 그는 대학 동기가 조교수로 있는 경기도의 한 대학에서도 강의를 해왔다. 그곳 역시 시간 강사를 줄이고 대신 강의전담 강사를 뽑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동기로부터 아직 아무런 통보도 받지 않았지만 강의를 더 해봐야 한두 학기가 고작일 것이다.

그러나 미리부터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통장에 잔고도 얼마간 남았고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적금도 있었다. 단출한 삶의 방식이 몸에 배었으며 돈이 들어갈 만한 특별한 취미도, 관계도 없었다. 논문이 통과되면, 임용까지는 몰라도 다시 강의를 맡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일상이 무기력해지고 계획을 세울 때에 위축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가진 현실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 때문이었다. 나이 탓도 있었다. 집중력과 끈기가 떨어져 책상 앞을 들락날락하는 주기가 짧아졌고, 문맥을 파악하는 데에도 예전보다 시간이 걸렸다. 성격이든 나이든 모두 고쳐지거나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 바에야 현실을 수긍하고 거기 맞춰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정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방학을 한 뒤 지난 두달 동안 그는 그가 사는 신도시 오피스텔 주변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모임이나 술자리에 나가느라 서울행 버스를 탄 일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올해 여름에는 어머니 집에도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지난봄부터 어머니는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어린시절만을 반추하며 남은 생을 노인병원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것 역시 어머니에게 닥쳐올 필연적인 죽음의 전단계로 어느정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오피스텔 건물 1층에는 24시 편의점과 빵집과 코인 세탁소와 반찬가게가 있었다. 모퉁이를 돌면 식당과 까페, 그리고 생맥주 체인점이 나왔다. 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중 한군데의 가게에 들렀다 나오는 길에 이따금 횡단보도 건너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그의 일상적인 동선이었다. 그는 시세에 따라 전세금을 올려주며 계약을 유지해왔다. 집을 옮길 마음이 없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이나 집에 대해 불만이 없진 않았지만 굳이 변화를 만들어 에너지를 소모하기가 싫었다. 책도 문제였다. 그 건물에서 가장 작은 평수라 해도 그 집은 그가 지금까지 가져본 개인 공간 중 가장 넓었다. 그 공간의 거의 모든 벽을 그는 책으로 채워왔다. 처음으로 책장도 맞췄다. 커다란 책장이 현관문을 쉽게 통과하지 못해 목공소 주인과 함께 진땀을 흘렸던 일을 떠올리면 그 원목 책장을 다시 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날 그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산 뒤 부동산 사무실 앞에서 걸음을 멈춘 것은 단지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 두개를 가득 채운 커다란 지도였다. 개발지역 종합도와 신도시 아파트 전도였다. 다른 벽에는 숫자가 크게 인쇄된 달력과 자격증 혹은 허가증이 든 액자 몇개가 걸렸다. 묵중해 보이는 검은색 인조가죽 소파세트가 한자리를 차지했고, 그 앞의 유리탁자 위에는 신문이 던져져 있었다. 책상은 모두 세개였다. 맨 구석자리 책상에서 한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밝게 염색한 머리를 하나로 묶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여자였다. 어서 오세요. 여자는 인사를 건네며 안경을 벗었다.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뭔가를 확인하듯 잠깐 눈을 가늘게 떴는데 아마 습관인 것 같았다.

여자는 그에게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사장님이랑 실장님이 잠시 외출중이라서요. 앉아서 조금 기다리세요. 말투에서 약간의 사투리 억양이 느껴졌다. 염색머리와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그려진 요란한 티셔츠 때문인지 부동산 사무실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여자였다. 그는 앉을 것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그냥, 뭐 좀 물어보려구요. 전세를 월세로 바꿀 경우에 시세가 어떻게 되나요? 아, 월세로요? 여자가 얼른 펜꽂이에서 볼펜을 꺼내들고 다시 물었다. 몇 호세요? 여자의 직설적이고 난데없는 질문에 그는 당황했다. 그냥 시세만 알았으면 하는데요. 여자는 거의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소파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그를 그대로 보내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음에 올게요. 저기요. 여자가 그다음 말을 하려는데 문이 열리고 중년 남녀 한쌍이 들어왔다. 중년 여자의 손에는 작은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남자가 그에게 다가와 대표라고 적힌 명함을 한장 건네며 말했다. 일단 좀 앉으시죠. 그는 결국 소파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집 위치를 알아야 정확한 시세를 말해줄 수 있다는 바람에 오피스텔 호수도 불러주었다.

그사이 여자 실장은 케이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초를 꽂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크 좀 드시고 가세요. 여자 실장이 붙잡았다. 옆에 서 있던 염색머리 여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제 생일이거든요. 그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이 초에 불이 붙여졌다. 초는 모두 네개였다. 여자 실장이 생일 축하 노래를 선창했고 사장도 따라불렀다. 그도 얼떨결에 박수를 조금 쳤다. 여자는 두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었다. 콧대 옆에는 안경에 눌린 자국이 희미하게 나 있었다.

그날이 가기 전에 또 한번 그녀와 마주쳤다. 1층 생맥주집에서였다. 평소에 그는 다른 자리 손님에게 거의 시선을 두지 않았다. 식당이나 술집에 혼자 드나드는 사람의 몸에 밴 태도였다. 아마 그날 오후 부동산 사무실에서 나란히 선 채로 생일 케이크를 나눠먹지 않았다면 하나로 묶은 염색 머리와 애니메이션 티셔츠의 조합을 무심히 지나쳤을 것이다. 그녀는 맥주잔을 앞에 놓고 바의 구석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한손으로 턱을 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누굴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가 저녁밥 대신으로 감자튀김에 생맥주 석잔을 비우기까지 긴 시간은 아니었다. 나올 때 흘끗 보니 그녀는 우편물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생일이 같은 두 사람이 한 장소에서 각기 혼자 생일을 보낼 확률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그만두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그는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왼쪽 가슴에 손을 대자 불규칙하고 급한 박동이 손바닥을 쳤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 벽에 몸을 기댔다. 가슴을 지그시 누른 채 천천히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인터넷 검색에 따르면 부정맥 증상이었다. 몇년 전 처음 겪었을 때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증상이 일어날 때마다 인터넷에 나온 대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했다. 병원에 가야 할 정도의 중증은 아니었다. 서너달에 한번 정도밖에 나타나지 않았고 길어야 10분이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곧바로 침대에 가서 누웠다. 전에 없이 증상이 30분 넘도록 계속되었지만 마침내는 진정되었다. 침대 위에 늘어져 왼쪽 가슴에 손을 얹은 그대로 그는 잠들었다.

 

폭염이 거리와 자동차와 에어컨 실외기를 뜨겁게 달구던 지난 한주일 내내 그는 논문에만 매달렸다. 덕분에 겨우 한 챕터가 넘어갔다.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논점이 약하고 예시도 빈약해 논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자료를 읽을 때마다 처음 세웠던 가설에 혼란이 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뒤집으면 감당할 수 없게 일이 커진다.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에 어떻게든 진전시키려고 매수를 채워가다보면 문장이 따로 놀고 산만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산만해질수록 추상적이 되고 또 그걸 덮기 위해서 유행하는 이론으로 일반화하거나 공허한 수사를 동원했다. 쓰는 사람에게도 뻔히 보이는데, 호의를 가질 의무가 없는 읽는 이들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