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임화의 해방 전후

분단은 어떻게 한 시인의 삶을 무너뜨렸나

 

 

염무웅 廉武雄

학평론가, 영남대 명예교수. 저서로 『한국문학의 반성』 『민중시대의 문학』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문학과 시대현실』 『자유의 역설』 『살아 있는 과거』 등이 있음. mwyom@ynu.ac.kr

 

* 이 글은 2015년 10월 24일 일본 토오꾜오의 무사시대학(武藏大學) 에꼬다(江古田) 캠퍼스에서 한국의 임화문학연구회와 일본의 조선문학 연구자들이 합동으로 개최한 ‘임화와 식민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문학’ 제하의 제8회 임화문학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으로 발표한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는 임화의 비극

 

주지하듯 남한에서 월북·납북·재북 문인들은 오랫동안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존재였다. 반공-냉전체제 하의 정치적 금지가 주된 원인이었으므로 해금(1988)을 계기로 그들에 대한 출판과 연구가 활성화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임화(林和) 연구가 한때 활기를 띠었던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의 진전에 따라 최근 20여년의 상황은 이런 흐름에 분명한 명암을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정지용(鄭芝溶)·이태준(李泰俊)·박태원(朴泰遠)·백석(白石)·오장환(吳章煥)처럼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고 이념적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작가들은 지속적 평가를 통해 ‘한국문학사’1) 안에 자리잡아가고 있는 반면, 과거 카프계열의 작가와 평론가들은 대체로 일반 독자뿐 아니라 연구자들의 관심에서도 점차 멀어지는 양상이다. 생각건대 임화의 경우에는 위의 양면이 교차하고 있는 듯하다.

많은 논자들이 인정하듯 임화는 1920년대 말경부터 20년 동안 우리 문단의 핵심에서 활동했다. 특히 문학평론과 문학사연구 작업을 통한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그 시대의 우리 문학이 당면했던 이론적 과제의 가장 첨예한 부분에 대한 가장 치열한 사유의 결과물이어서, 그가 거둔 성과와 문제점은 그대로 우리 문학사 자체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시인으로서도 상당한 역량을 발휘했다. 카프계 시인들 대부분이 상투적인 구호시를 남발하는 데 그쳐 독자를 잃어버린 것과 달리 임화만은 오늘날에도 한 시대의 고뇌를 그 나름의 독창적 언어로 노래한 시인으로서 우리에게 살아남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이런 문학적 행로는 8·15해방을 계기로 어찌할 수 없는 격동에 휘말려 비극적인 파산에 이르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어긋났고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해방 후 우리 민족이 통일민주국가의 수립에 실패했고 그 결과 끔찍한 전쟁마저 치름으로써 오늘까지 불행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 임화 같은 사람은 어떤 연관이 있고 또 어떤 점이 그를 비극적 결말로 끌로 갔는가.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임화 비극의 내적 구조와 해방전후사를 꿰뚫는 맥락의 일단을 들여다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임화의 시와 문학이론이 해방 전후 어떤 변화의 굴곡을 겪었고 어떻게 일관성을 지켰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나는 큰소리로 우는 시인이다’

 

1935년은 우리 문학사에서 그렇듯 임화의 생애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한때 위세를 떨치던 카프가 10년의 공적 생애를 마감하고 그해에 간판을 내렸기 때문이다.2) 하지만 이 무렵의 시와 산문을 읽어보면 카프 해체는 적어도 임화에게는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예고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카프시단의 총아로 떠오르던 1920년대말부터 카프의 지도권을 장악한 1930년대초에 걸친 시기에 그는 김팔봉(金八峰)의 ‘대중화론’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시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면서 문학의 볼셰비키화를 주장했는데, 그의 그런 급진주의적 관점에 점차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3) 필자가 보기에 임화의 이런 점진적인 입장변화와 카프 해체를 가져온 식민지 당국의 정치적 압박은 긴밀히 연관된 현상이다. 말하자면 그는 객관현실의 압박을 더 유연하면서도 더 체계적인 이론의 모색으로 돌파하고자 시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이런 변화는 창작과 이론(즉 시와 비평)에서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 같다. 우선 시의 경우를 살펴보자.

1930년대 중반 임화는 카프 해체라는 객관적 사태 이외에도 개인적인 면에서 폐결핵으로 병원을 전전하고 첫 부인 이귀례(李禮)와 헤어지는 등 심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카프 헤게모니 장악과정에서 한때 문단을 향해 무책임할 만큼 강경한 목소리를 발했으나, 변화된 조건 속에서, 더구나 시인으로서 그런 강경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일뿐더러 공허한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 무렵의 많은 시들은 그런 성찰의 반영이라고 여겨지는데, 그 가운데 「나는 못 믿겠노라」와 「옛 책」이라는 작품에서 한 토막씩 읽어보자.

 

정말로 가시덤불은 무성하여 좁은 앞길을 덮고

깊은 밤 날씨는 언짢아, 두터운 암흑이

그 위에 자욱 누르고 있다

이미

자네는 부상한 채 사로잡히고, 나는 병들어 누워,

벌써 몇 사람의 진실로 존귀한 목숨이

고난에 찬 그 험한 길 위에 넘어졌는가?

이제 우리들의 긴 대오는 허물어지고 ‘전선’은 어지럽다

「나는 못 믿겠노라」 부분4)

 

지금

우리들 청년의 세대의 괴롭고 긴 역사의 밤,

검은 구름이 비바람 몰고 노한 물결은 산더미 되어,

비극의 검은 바다 위를 달리는 오늘

그 미덥던 너도 돛을 버리고 닻줄을 끊어,

오직 하늘과 땅으로 소리도 없는 절망의 슬픈 노래를 뜯어,

가만히 내 귓전을 울린다.

 

오오, 이것이 청년인 내 죽음의 자장가인가?

「옛 책」 부분5)

 

이 무렵의 사회적 분위기와 시인의 절망감이 격류가 되어 처연하게 서술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앞의 시에서 ‘무성한 가시덤불’ ‘좁은 앞길’ ‘두터운 암흑’ 같은 단순한 비유도 그렇거니와, “자네는 부상한 채 사로잡히고, 나는 병들어 누워” “이제 우리들의 긴 대오는 허물어지고 ‘전선’은 어지럽다” 같은 구절도 임화와 동지들이 부딪친 암울한 상황을 직설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 시들에는 초기 임화 작품의 ‘연극적 강경발언’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 나름의 진실의 울림이 살아 있다.

뒤의 시에서 ‘옛 책’은 레닌의 저서 『1905년의 의의』이다. 시인은 지난날 이 책을 읽으며 ‘이곳저곳에 굵게’ 붉은 줄을 긋기도 하고 ‘서투른 글씨로 틈틈이 빈 곳에’ 메모를 적기도 하면서 열중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누추한 병상에 힘없이 누워 지난날의 찬란했던 기억을 반추할 뿐이다. 1905년의 러시아가 다가올 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벅찬 예감으로 빛났다면 오늘 식민지 조선에 ‘검은 구름은 비바람을 몰아오고’ ‘노한 물결은 산더미가 되어’ 덮치고 있다. 오직 ‘절망의 슬픈 노래’만이 소리도 없이 귓전을 울려 시인의 비극적 시대감정을 증언한다. 임화 개인의 서정적 자아인 동시에 임화 세대의 시적 표상으로서 (임화의 시적 주인공으로 자주 호명되는) ‘청년’이 여기 등장하는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그러나 임화는 이런 비극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