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의 문학, 이제 어디로
창비를 둘러싼 표절과 문학권력론 성찰
한 내부인의 시각
염종선 廉鍾善
출판편집자. 창비 편집이사. yum@changbi.com
1. 표절 논란과 창비의 대응
표절과 문학권력 논쟁이 시작된 지 두 계절이 흘러가고 있다. 초기의 격렬한 분위기는 어느정도 진정된 가운데 새로운 차원의 논의도 진전되고 있다.1) 다만 제기된 문제에 관한 입장들의 차이가 워낙 큰 탓에 더 상세하고 깊이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글은 그런 논의를 위한 기본적인 자료이자 창비 내부에서 이 사건을 겪으며 기록해둘 만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적은 것이다. 밖에서는 잘 모르는 실상을 알고 있는 대신 내부인 나름의 편향도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창비의 첫 보도자료
지난 6월 16일 이응준(李應準) 작가가 신경숙(申京淑) 작가의 표절 문제를 제기한 후, 해당 내용을 부정한 창비의 첫 보도자료(6.17)는 당시 문학출판부 부서장이 법률자문을 받은 내용을 참고하고 문제의 작품들을 검토하여 작성한 후 대표이사의 승인하에 발표된 것이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일이지만, 보도자료 발표 전에 그 문안을 『창작과비평』(이하 『창비』) 편집인 및 편집주간과 편집위원, 그리고 다른 단행본 부문의 간부들은 보지 못했다. 문학 단행본과 관련한 일상적인 업무였다면 통상적인 결재계통을 따라 이루어진 일이므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하기 어렵지만, 이런 중요한 일이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발표된 것은 큰 문제였다. 당시 언론사의 취재가 빗발침에 따라 다급한 면도 있었고, 마침 편집주간이 연구년으로 해외에 체류하고 있던 점도 공교로웠지만, 변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담당자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듯이 중요 저자에 대한 출판사의 과잉보호 의지가 작용한 면도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개인적 평론이라면 몰라도 의혹에 대응하는 보도자료로서는 부적절한 비평적 언급이 포함된데다, 출판사가 섣불리 판정을 하려 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최초의 잘못된 대응에 대해 다음날 발표된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6.18) 중 “내부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것이란 바로 이 점을 말한다.1)
사건의 초기 국면에서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창비라는 ‘백낙청(白樂晴) 일인체제’의 조직에서 어떻게 그런 중요한 입장이 백 편집인의 검토나 재가 없이 발표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 그러했다. 이는 오히려 창비가 어느 한 사람의 뜻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창비 내부의 분권화된 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게 문제였던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선 단행본 편집국의 조직을 개편했고 향후에도 관련 체제를 정비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를 조직원 일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말려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 글을 쓰는 필자 본인부터 단행본 편집부문의 핵심간부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창비의 편집인부터 편집위원진, 간부진을 비롯한 모든 성원 또한 뼈아프게 자성하고 있다.
그 내용의 적실성은 후에 더 논의하겠지만, ‘문학권력’으로 지목받고 있는 창비로서는 이런 일들을 겪으며 그간 조직이 은연중 타성에 젖어들어 대중과 소통하기보다는 먼저 단정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고압적 자세 혹은 상업주의적 경향에 침윤된 것은 아닌지 겸허하게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작가의 인터뷰와 ‘신경숙 신화론’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신경숙 작가는 경향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2) 작가는 “표절이란 문제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해당 문장들의 결과적 표절을 인정하고 독자에게 사과했으며, 문제의 단편 「전설」을 자신의 작품목록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했다. 창비도 그에 따라 해당 작품이 실린 『감자 먹는 사람들』을 출고정지하고 시중 서점의 도서를 모두 회수했다.
그런 중에도 작가의 태도가 모호하다며 비난이 끊이지 않았고, 표절 시비는 ‘문학권력론’과 ‘신경숙 신화론’으로 번졌다. 평론가 정문순은 관련 토론회 발제문 중 한절의 제목을 “신경숙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로 붙이고 신경숙을 상습표절을 저지르는 ‘괴물’로, ‘문학소녀’급 소설가로 묘사한다. “진영논리가 설 공간을 잃으면서 무력해진 문단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기획되고 소진됐지만 실력이 달리는 신씨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상습적인 표절에 의존하게 됐다”는 것이다.3) 그런데 ‘문학소녀급 소설가’니 ‘괴물’이니 하는 말은 비평을 넘어 고발이라고 하기에도 도가 지나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주장과 더불어 신경숙 문학은 신화라는 인식이 인터넷언론을 비롯한 여러 매체로 확산되었다.
물론 비판자들이 모두 신경숙 문학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길영(吳吉泳)은 신경숙 문학이 문단권력에 의해 『풍금이 있던 자리』나 『외딴방』을 포함해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며,4) 권성우(權晟右)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경숙 문학을 좀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다.5) 작가의 문학적 성과와 무관하게 표절을 문제로 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렇게 저마다 편차를 보이긴 하지만, 초기의 일반적 분위기는 대개 가장 극단적인 평가에 의해 견인되었다. 신경숙 문학은 문학권력이 만들어놓은 허상에 불과하며 한국문학은 파탄으로 치닫고 있다는 보도와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언론기사들은 취재와 분석보다는 극단적인 평가들과 즉각적인 대중의 반응을 싣는 데 몰두했다. 이는 이후 소설가 박민규(朴玟奎)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낮잠」 사건에서도 여전히 감지되는데, 작가의 본의는 물론 실제 발언과도 다르게 언론은 박민규가 “표절 시인”을 했다고 자의적으로 기사화했다.
신경숙 사태의 초기 국면에서 창비는 단답형 양자택일을 요구받았고 다른 어떠한 답변도 변명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동시에 ‘문학권력’으로 낙인 찍혔다. 대표이사 사과문에서 “논의가 자유롭고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말을 실천하지 못한 것도 당시 분위기로는 창비가 나서서는 생산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창비가 그런 점까지 허심탄회하게 밝히면서 대중을 설득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는데, 어찌 됐든 공언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잘못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창비의 입장과 반론들
백영서(白永瑞) 편집주간은 『창비』 2015년 가을호 ‘책머리에’에서 “저희는 그간 내부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도 신속하게 시인하고 문학에서의 ‘표절’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을 제의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외부의 반응은 우선 ‘창비가 표절을 인정하지 않았다’라거나 ‘결과가 중요하지 의도성은 중요하지 않다’ 등으로 대개 부정적이었다.
김명인(金明仁)은 “〔창비 머리말의〕 ‘문자적 유사성’은 있으나 베끼기는 아니라는 주장은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강일우 사장 명의의 두번째 발언보다 오히려 퇴보한 입장”6)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창비』 머리말의 정확한 표현은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명인의 글에서는 “의도적”이란 말이 빠지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도 생략되면서 ‘베끼기는 아니다’라는, 즉 창비가 표절 그 자체마저 부인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당시 언론의 논조도 그랬고 많은 대중도 그렇게 생각했다.
백낙청 편집인은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신경숙의 해당 대목이 의식적인 베껴쓰기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할 정확한 진실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두어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신경숙의 변호인을 자임한 윤지관씨도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 문장들이 미시마 유끼오의 「우국」을 표절한 혐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창비』 가을호, 357면)고 했는데, 그 점마저 제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은 창비사의 1차 보도자료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고 회사 대표가 곧바로 사과했습니다. 둘째로, 그렇다고 그것이 일부러 베껴쓰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결과라고 보는 문학관, 창작관에는 원론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더구나 상상력까지 동원해서 저자의 파렴치한 베껴쓰기를 단정하고 거기다 신경숙은 원래가 형편없는 작가였다는 자의적 평가마저 곁들여 한국문학에 어쨌든 (항상 좋은 작품만 써낸 건 아니지만) 소중한 기여를 해온 소설가를 매장하려는 움직임에는 결코 합류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