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진영 崔眞英

1981년생.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장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 『구의 증명』, 소설집 『팽이 』가 있음. metaphor81@naver.com

 

 

 

하룻밤

 

 

여자와 자고 싶다. 모르는 여자 앞에서 남자답게 허세 좀 부리며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맞는 담백한 아침. 그러고 나면 뭐든 달라질 것 같다. 애인 같은 건 부담스럽다. 내 모든 것을 말하고 상대의 모든 것을 들어야만 하는 관계는 너무 어색하고 피곤하다. 은지와 그런 짓을 일년 정도 해봤다. 우리의 대화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잘 잤어?

아니.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난 원래 그런데.

원래 그런 게 어디 있어. 잠을 왜 못 자?

몰라. 난 그런데.

뭔데. 무슨 일인데. 게임했어?

아니.

그럼 어디 딴 데 나갔었어?

아니.

그럼 뭔데. 잠 안 자고 뭐 했어?

그냥 누워 있었어.

밤새?

몰라. 그러다 잠들었어.

몇시쯤에?

새벽에. 시계는 안 봤는데.

뭐야. 그럼 자긴 잔 거네.

……

여보세요?

응.

왜 대답이 없어?

……

아…… 답답해. 뭐가 응인데.

……

아침부터 왜 그래?

은지는 아침부터 왜 그랬을까? 내가 잠을 잘못 잤다는데, 내가 원래 그렇다는데, 잠을 잘못 잔 나를 굳이 잘 잔 애로 만들어야 했을까? 아침부터 그렇게 많은 질문을 던져야 했을까? 은지는 그게 다 관심이라고 했다. 나한테 관심이 있으니까 그렇게 물어보는 거라고. 모르겠다. 그냥 같이 있을 때만 서로에게 집중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약속 잘 지키고,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꼭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야 하나. 나는 나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말을 하려고 하면 속에서 울산바위처럼 커다란 돌덩이가 먼저 튀어나오려고 한다. 그게 목에 턱 걸려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은지는 내게 ‘너는 사랑을 할 줄 모른다’고 했다. 어이없고 피곤했다. 그럼 그동안 자기랑 나랑 했던 건 뭐란 말인가. 우린 대체 뭘 했던 거니? 나와 만나는 동안 은지는 SNS 프로필에 이런 문장을 올려두었다.

 

사랑의 첫번째 의무는 상대방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폴 틸리히

 

이런 글귀를 자기 삶의 엄청난 명언인 양 적어놓고 왜 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까. 이런 짓이랑 초등학생이 방학 첫날 그리는 생활계획표랑 뭐가 다른가 말이다. 지금 은지의 SNS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사랑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위한 선물이다.

장 아누이

 

아,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거창하고 의미심장한지. 그런 의미 없이 여자와 자고 싶다. 하룻밤 산뜻하게 섹스하고 나면 뭔가 달라질 것 같다. 돈을 받고 자는 여자와 자고 싶지는 않다. 부담스럽다. 하룻밤이 비즈니스 같고, 주눅 들고, 아무튼 그들은 전문가고, 그런 여자들이랑 자면 내가 너무 햇병아리 같지 않을까. 전화가 온다. K다.

뭐 하냐.

집이야.

새끼. 내가 뭐 하냐고 물었지 어디냐고 물었냐?

뭐지. 이 은지스러움은. 혹시 이 새끼도 SNS 프로필에 사랑 어쩌고 적어놨나? K와는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아,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다. 고등학교에서 갈렸다. K는 나보다 공부를 잘했다. 나는 중간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쳤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대학에 들어갔고 지금은 그마저도 휴학 중이다. K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웬만큼 알아주는 대학에 갔고 역시나 휴학 중이다.

오랜만에 뭉치자. SO한테 내가 전화 다 돌렸어. 이따 다섯시에 맥도널드 앞에서 만나는 걸로. 일단 빅맥세트 때리고 쓰리쿠션 좀 치고. 그다음 코스야 말 안해도 알겠고.

역시 K다. 공부 좀 해본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계획성과 추진력이 아주 섹시하다. 그런데 난 돈 없는데. 며칠 전에 단기 알바 뛰어서 이십팔만원 벌긴 했지만 교통비에 카드값 메웠더니 이제 구만원 남았다. 그 돈으로 또 한동안 살아야 하는데.

O한테 돈 있대. 클럽은 O가 내겠다고 했어. 클럽 다음부터 각자 충당하는 걸로.

역시 O다. 부잣집 아들놈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오래된 친구들이라서 그런가, 이럴 때 보면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것 같다.

 

밤 열한시 넘어 클럽에 들어섰다. 말이 클럽이지 그냥 나이트다. 나이트에 들어선 순간 나는 목적을 잃었다. 내가 술을 마시러 왔던가. 춤을 추러 왔던가. 여자를 만나러 왔던가. 뭐긴 뭐겠어. 놀러온 거지. K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수건과 냅킨으로 테이블과 컵을 닦았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페브리즈를 들고 다니며 테이블과 의자에 뿌려댔는데, 군대에서 그 버릇을 고쳤다. S는 술부터 말았다. 맥주와 소주의 31 황금비율. 선 채로 술을 들이켠 뒤 O와 나는 바로 춤추러 나갔다. 여러 여자의 어깨와 팔뚝과 엉덩이가 몸에 닿을 때마다 감전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춤추는 순간만큼은 여자와 자고 싶다거나 밤이 무섭다거나 머릿속에서 급브레이크 소리가 들리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지 따위의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음악이 잠시 멈춘 사이 눈을 떠보니 O는 없고, O를 찾을 이유도 없고, 어서 다음 음악이 나오면 좋겠는데, 자극적인 조명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얼굴들이 빛을 쏘아대는 심해 생물 같았다. 어딘가에서 봤는데, 틀림없이 케이블 채널이겠지, 심해는 바다의 90%를 차지한다고 했다. 바다는 지구의 70%. 그렇다면 적어도 지구의 60%는 심해라는 뜻 아닌가? 이렇게 계산하는 게 맞나? 아무튼 그곳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이란 이런 것이다. 거기 사는 애들은 몸에서 빛이 나고 입과 눈이 엄청 크다. 시각은 죽고 나머지 감각기관만 발달한 생물들이다. 근데 지금 여기 있는 여자애들이 그렇다. 눈도 입도 엄청 크고 거의 맨살이다. 심해에는 파도나 수온이나 채광의 변화가 없으니까 심해 생물은 환경 변화에 적응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물고기인데도 수십년에서 수백년까지 산다고 했다. 심해는 완전 암흑인데, 어차피 시각은 죽었고 평생 빛이란 걸 볼 일이 없으니 암흑도 암흑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빛이 엄청난 재앙이자 폭력 아닐까? 커다란 물고기가 죽어 심해에 가라앉으면 심해 생물들은 그 사체만 먹으면서 길게는 수십년까지 살 수 있다. 게다가 거기는 산소가 없으니까 식물도 없다. 연하고 순한 식물. 존재만으로 그저 선한 식물이 없다니. 엄청나지 않은가. 유토피아는 지상이나 하늘이 아니라 바로 바다 바닥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곳. 닿기 전에 짓눌려 죽어버리는 곳. 하지만 여기가 바로 유토피아지. 나는 60%의 세계에 있다. 절대 암흑과 냉혈의 세계에 있다. 저기 보라. 번쩍거리는 심해생물들이 짝, 아니 먹잇감을 찾고 있다. 내 몸에서도 저런 빛이 날까? 나도 유토피아의 일원으로 보일까? 나도 찾을 수 있을까?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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