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전환, 어디서 시작할까

 

날갯짓과 쇠사슬 사이에서

민중시의 현재와 미래

 

 

황규관 黃圭官

시인. 시집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 산문집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 등이 있음. grleaf@hanmail.net

 

 

나는 오늘날의 시적 풍요와 그 풍요를 일군의 비평가들이 옹호하는 현실을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내게는 이런 현상이 불가사의할 뿐이다. 니체(F. W. Nietzsche)가 『반시대적 고찰』(책세상 2005)에서, 보불전쟁의 승리에 취한 당시의 독일사회를 비판하며 “승리의 결과로부터 더 심각한 패배가 발생하지 않도록 승리를 견뎌내는 것보다 그러한 승리를 쟁취하는 것 자체가 훨씬 더 쉬운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한 것처럼, 패배에 대한 두려움에 손쉬운 승리주의를 구가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비평의 무기력에서 심각하게 증명되는데, 일테면 비평은 비판이라는 ‘망치’를 내려놓았고 시는 그런 비평의 온화함에 화답하며 우리가 처한 현실을 수사학적으로 한번 더 구부리는 게 시의 몫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래서 ‘민중시’라는 한물간(?) 카테고리로 포착될 수 있는 시의 흐름은 발견하기 쉽지 않다. 저 ‘불의 시대’인 1980년대 이후로 민중시는 한껏 남루해져서 아무도 그 옷을 걸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내가 이 글에서 민중시라는 이름으로 호명하려는 시인이나 작품마저 그것을 내켜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민중시는 특정 시대의 경향 혹은 편의상 불렀던 범주의 이름이었던가. 아니, 억압된 삶의 리얼리티에 충실한 시는 꼭 ‘민중시’라고 불러야 하나, 하는 의문부터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인식은 이 글을 쓰는 내게도 없지 않은데, 그럼에도 나는 ‘노동시’나 ‘민중시’라는 호명 방식을 아주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것은 문학제도의 에토스를 위협하지 않은 채 안전하게 속해 있기를 바라는 일반적인 경향에 대한 타자-되기의 한 방식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에서 버려진 혹은 망각된 존재들을 향한 시의 윤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입장에서도 아직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민중시란 무엇인가. 아니 민중이란 무엇인가. 숱한 신식 이론이 있었고 새로운 명명법이 개발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주체들이 무엇이라 불리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그에 대한 착취와 수탈, 그리고 배제와 망각이 그치지 않고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민중시를 삶의 현장에 즉하는 작품이냐 아니냐로 판단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그럴 경우 시가 현장의 싸움에 이벤트로 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실제로 정치적 실천과 행동은 권장되어야 하지만 그것들이 작품에 포함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비참한 현실에 대한 ‘문학적’ 참여와 시민적 모럴 정도로 시와 세계의 질적 변화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들뢰즈(G. Deleuze)는 『차이와 반복』(민음사 2004)에서 “우리는 수축된 물, 흙, 빛, 공기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식별하거나 표상하기 전에, 심지어 그것들을 느끼기 전에 이미 수축된 물, 흙, 빛, 공기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이런 인상적인 구절도 덧붙였다. “사유는 비자발적인 한에서만 사유일 수 있고, 사유 안에서 강제적으로 야기되는 한에서만 사유일 수 있다.”

견강부회식 해석을 해보면, 우리는 우리의 외부세계와 절연된 채 존재할 수 없으며 도리어 그 세계가 응축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우리의 사유활동 그리고 그것의 결과물인 각종의 표현은 세계에 의해 “강제적으로” 조형된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이러한 성격을 갖는다면, 그리고 오늘날의 현실이 민중의 아우성과 절규로 이루어진 세계라면, 그런 존재와 세계가 만드는 시에 그 흔적이 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 시에 그 흔적이 남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시는 본질적으로 현존하는 세계를 초월함으로써가 아니라 세계에 내재함으로써 그 의미와 위의를 갖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뒤따를 수 있다. 우리의 무의식을 어지럽히는 시의 ‘이데아’를 거부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연원한다. 다시 말하면 ‘좋은 시’에 대한 이데아가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세계에 대한 물음들로 충만한가에 시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나쁨이 판가름나는, 척도라면 척도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온갖 의미가 넘실대는 구체적인 현실과 그것을 있게 한 잠재적 구성력으로서의 시간까지 포함한다.

 

 

사라진 민중

 

박정희정권의 억압적인 개발독재가 추동한 근대화 과정은 우리에게 한국을 신식민지로 인식하게 했으며, 이것은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주체적으로 해방되지 못한 역사적 사실과 그후에도 식민주의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여기서 역사 발전의 주체가 시급히 요청되었고 피억압자적 위치에 있지만 저항의 잠재력을 가진 ‘대중’이 민중으로 호명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민중 개념에는 근대화 과정이 필연적으로 파괴하기 마련인 공동체에 대한 유전자가 이념적으로 이식되기도 했다.

물론 “‘민중’은 물적·역사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분석적인 개념이 아닐뿐더러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도” 아니었다. “비록 1970년대와 80년대의 민중담론에서는 공장노동자와 농민이 진정한 민중으로 분류되어 특권적인 위치를 누렸지만, 1980년대 후반에 와서는 자영업자, 더 나아가 군부의 ‘민족주의적 요소’까지도 민중으로 간주되었다. 다시 말해, 민중이라는 용어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가변적이었다.”(이상 이남희 『민중 만들기』, 후마니타스 2015 참조) 결론적으로 말하면, 민중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욕과 질곡이 낳은 역사적 개념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난 다음에 벌어졌다. 그 사태는 그간의 민중 개념에는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가 추구한 근대화에 대한 대항 혹은 대안적인 이념이 있었으며, 그 모델 중 하나가 현실사회주의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물론 모든 역사적 사건은 평지돌출 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그때부터 민중 담론에는 급격한 썰물효과가 발생했으며 문학장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문학적 상상력에서 물질적 삶에 대한 부분이 깨끗이 소거돼버린 데는 1990년대의 공이 크다고 하겠다. 이런 돌아봄도 일종의 후일담일지 모르겠으나, 그뒤 얼마 안 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체제에 접어든 사실을 떠올려보면 극복 못한 식민주의의 변종이 1990년대에 다시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IMF의 금융 식민통치는 대한민국 사회에 부정적인 의미의 급변을 가져왔다. 이에 대해 최태섭은 『잉여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