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해진 趙海珍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가 있음. glala95@hanmail.net

 

 

산책자의 행복

 

흐렸고 오후 한때 진눈깨비가 날린 날, 오늘도 저는 긴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한달 전부터 같은 페이지가 접혀 있는 전공서적과 뜨거운 커피를 담은 보온병, 그리고 대충 자른 훈제 햄을 끼워넣은 식빵 두조각을 챙겨서요. 산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죠. 그저 걷는 것입니다.

이 도시는 산책자를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제가 쓴 적이 있던가요. 서너시간만 걸어도 시청사와 박물관, 대성당이 모여 있는 도심뿐 아니라 공원과 공동묘지가 자리한 외곽까지 둘러볼 수 있죠.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이곳에 없는 거라곤 국제공항과 출입국사무소 정도일 거예요. 수시로 국경을 넘어야 하는 직업만 피해 간다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이 도시엔 마련되어 있습니다. 간혹 그런 사람을 상상해봅니다. 이 도시의 시립병원에서 태어난 뒤 도시 안에 있는 학교와 직장을 다니다가, 생애가 소진될 즈음 다시 그 시립병원으로 돌아가 임종을 맞은 사람, 그러니까 이 도시에 있는 건물들을 옮겨 다닌 물리적인 이동이 삶의 전부인 사람…… 어쩌면 그런 삶이 이 세계의 표준인지도 모르겠어요.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지금은 이곳에 있지만 제 삶에도 새로운 것은 없으며 그저 몇개의 동일한 일상과 감정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니까요.

라오슈라면 분명 이런 조언을 해주겠지요. 전진하려 했으나 장벽에 부딪혀 돌아온 허무와 애초부터 전진을 시도하지 않은 고정된 허무는 다르다고, 일상과 감정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 실존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요. 라오슈가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죠. 하지만 라오슈, 하루하루가 특별한 감각 없이 머릿속 망각의 창고 안에 쌓여가고 있는데, 나라는 존재 하나 해석할 수 없어 생산성과는 완전하게 무관한 산책이나 하며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을 낭비하고 있는데, 이런 제가 어떻게 제 세계의 둘레를 벗어나 전진할 수 있을까요. 해변에 버려진 종이상자처럼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조금씩 무너지고 있을 뿐입니다.

라오슈, 오늘도 저는 긴 산책을 했고 책을 펼쳐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라오슈에게선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

 

높은 곳에서 새벽의 M시를 내려다본다면, 형광등의 창백한 빛으로 둘러싸인 편의점은 네모난 모양의 부표처럼 보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곤 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안전하면서도 풍요로운 영역이 있다는 걸 알리는 부표인 셈이다. 실제로 새벽의 편의점 안에서 바라보는 문밖의 어둠은 물결처럼 일렁이곤 했고, 어둠을 가로질러 담배나 생수를 사러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항로를 갖고 있는 외로운 항해사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그녀는 2년 전에 M시로 이사 왔다. 이사가 결정되기 전부터 살짝 언 강물 위를 맨발로 걷고 있는 듯 매 순간이 춥고 위태로웠음을 그녀는 기억한다. 어디로든 발을 뻗어야 하지만 내딛는 곳이 곧 나락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분명하게 의식해야 하는 불안한 피곤…… 그 시절 불행은 각종 청구서와 독촉장에 찍혀 배송되었고, 그녀는 숫자로 구체화된 그것의 위력 앞에서 무력했다. 서른살 때부터 이십년 가까이 해오던 대학 강의를 그만두면서 수입은 제로가 되었는데 어머니의 병원비와 은행빚은 꾸준히 불어났다. 살던 집을 처분하고 타고 다니던 구형 자동차를 팔아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했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임대아파트 입주권자가 발표되던 날, 그녀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병원 비상구 계단에 앉아 새벽을 맞았다. 하나의 세계는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를테면 불행이란 진실을 사유하는 데 필요한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혹은 진정한 행복을 완성하는 부속품이라고 여기던 세계는 단단하게 셔터를 내린 것이다. 입과 거주지를 국가에 의탁해야 하는 세계, 수치심은 사치가 되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최후의 보루조차 될 수 없는 세계, 그녀 앞에 새로 펼쳐진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정부가 지정해준 임대아파트가 M시에 있었다. 지금은 번듯한 신도시의 외관을 갖추게 됐지만 그녀가 이사 올 때만 해도 M시는 유령의 은신처처럼 황폐하기만 했다. 여기저기 땅이 파헤쳐져 있었고 입주가 안된 빈 아파트들은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 같았으며 인도엔 부서진 벽돌이나 각목 조각이 나뒹굴었다. 그때는 지하철 역사도 아직 정비되지 않아서 M시역은 이름만 존재할 뿐, 지하철은 정차하지 않았다. 시내에 나갔다 올 때면 그녀는 늘 M시역의 전 역에서 내린 뒤 M시까지는 걸어서 이동했다. M시는 오랫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으므로 개발구역을 제외한 곳은 논밭이 많았고 M시로 이어지는 6차선 차도엔 횡단보도나 신호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상해. 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는 6차선 옆 좁은 인도를 묵묵히 걸으며 그녀는 중얼거리곤 했다. 이상한 풍경이긴 했다. M시역의 전 역까지는 대도시의 윤곽이 뚜렷하고 밤에는 인공적인 불빛에 휘감기는데 M시로 이어지는 길은 풀벌레 우는 소리와 곡물 익어가는 냄새로 가득한 것이다. 마치…… 메이린에게 답장을 보낸다면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을 쓰고 싶다고, 언젠가 희미한 낮달이 배에서 떨어져 나온 닻처럼 떠 있던 M시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마치, 메이린, 그 길은 얼어붙은 강물 밑 같았어. 늘, 너무 추웠어.

메이린은 그녀가 철학과 강사로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때 만난 중국 유학생이었다. 대체로 한국어를 일이년 정도 배운 뒤 입학한 중국 유학생들은 고난도의 어휘와 복잡한 어순의 문장으로 점철된 전공서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좀처럼 강의에 집중하지 못한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잡담을 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그녀는 의욕을 잃곤 했다. 그녀는 중국 유학생들에게 도무지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 적어도 메이린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메이린은 달랐다. 아니, 특별했다. 강의 중 무심결에 언급한 책까지 구하여 밤새도록 읽어오는 열정은 놀라웠고 그녀의 말을 그대로 흡수하는 듯한 총명한 눈빛은 신뢰감을 주었다. 강의가 끝나면 가방을 정리하는 그녀에게 다가와 그날의 강의를 꿰뚫는 질문을 해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누구보다 학자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메이린의 젊은 미래가 부러웠다. 부러웠지만, 동시에 안쓰럽기도 했다. 가능성은 실패하고 좌절할 확률과 비례한다는 의미니까, 어떤 실패와 좌절은 또다른 가능성에 가닿는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직선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철학과가 다른 비인기 학과와 묶여 인문학부로 통합되고 철학과 관련된 교양수업이 폐강되면서 그녀는 대학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게 됐지만, 그 이듬해 졸업을 한 메이린은 독일로 유학을 떠난 뒤에도 잊지 않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사이에 그녀는 퇴원한 어머니와 함께 M시로 이사를 왔고 1년 전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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