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기호 李起昊
1972년 강원 원주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 박사는 누구인가?』, 장편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가 있음. antigiho@hanmail.net
오래전 김숙희는
1
그는 낯선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다.
제주도 협재해수욕장 부근의 한 펜션 잔디마당에서였다. 그는 마침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숯불 그릴 위에 목살과 새우, 새송이버섯을 올려놓고 가위와 집게로 하나하나 잘게 자르던 중이었다. 장마와 태풍이 모두 물러간 칠월 하순답게 기온은 높았으나 습도는 없었고, 그래서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여덟살, 여섯살인 두 아들은 수영모자를 쓴 채 그의 양옆에 서 있었다. 아이들은 펜션 좌측에 마련된 어린이 풀장에서 오전 내내 미끄럼틀과 튜브를 타고 놀았다. 아이들의 어깨와 목덜미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종아리에선 연신 뚝뚝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는 목장갑을 낀 손으로 새우의 껍질을 벗겨 연한 속살만 아이들의 입에 쏙쏙 넣어주었다. 아이들의 한껏 벌린 입과 그뒤로 보이는 연두에 가까운 바다, 어린 풀냄새를 닮은 참숯 연기까지. 그는 마치 그 모든 풍경을 자신이 만든 양, 그 모든 풍경 속에 자신 또한 일정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양, 의식적으로 커다랗게 미소 지으려고 노력했다. 결혼한 지 9년 만에 처음 떠나온 여름휴가였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평상시보다 더 감상적이고 더 특정한 기분상태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바람이나 햇빛 속에 자잘한 멘톨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것처럼, 명치 부분에 알코올 묻은 솜이 닿은 것처럼, 무언가 끊임없이 그의 내부에서 화르륵 화르륵 휘발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감정상태는 그로부터 채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정반대되는 지점으로, 급하게, 추락하고 만다.
아내가 스칸디나비아풍으로 지어진 하얀 펜션 건물에서 작은 밥상을 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커다란 밀짚모자에 발목까지 오는 하늘색 긴치마를 입은 아내. 아이들이 먼저 아내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도 가위 든 손을 치켜들어 흔들었다. 아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펜션 현관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펜션 정문 입구에 검은색 승용차 한대가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승용차에서 내린 남자는 두명이었다. 한명은 썬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 차림에 무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남자들은 곧장 그에게로 다가왔다.
“정재민씨 되시죠?”
썬글라스를 쓴 남자가 물었다. 남자는 코팅된 신분증을 내밀며 자신들은 서울지방경찰청 장기미제 전담팀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썬글라스를 쓴 남자가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하려다가 말고 잠깐 뒤에 서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를 돌아보았다. 정장 차림의 남자는 그의 곁에 서 있는 아이들을 힐끔 한번 바라보더니 말없이 짧게 고개만 끄덕거렸다.
“잠깐 저희하고 같이 가주셔야겠는데요. 확인할 게 좀 있어서……”
그는 들고 있던 가위와 집게를 내려놓았다. 아내가 양손에 밥상을 든 채 그의 바로 뒤편에 섰다.
“무슨 일 때문이죠? 저는 지금 가족하고……”
“이게 시간을 좀 다투는 일이라서요. 가면서 말씀드리면 안될까요?”
남자는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하지만 말을 하는 와중에도 고개는 자꾸 두리번두리번 펜션 뒤 바다 쪽을 살폈다. 남자는, 그의 태도나 답변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무언가 다 정해진 일을 하는 사람처럼, 숙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처럼 느껴졌다. 남자의 그런 모습은 그에게 충분히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손에 끼고 있던 목장갑을 벗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밥상을 내려놓고 두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내가 그들에게 어디에서 나오셨다고요, 다시 한번 물었고, 이번엔 정장 차림의 남자가 천천히 서울지방경찰청 장기미제 전담팀이라고 말해주었다. 정장 차림 남자의 목소리는 중저음이었고, 썬글라스를 쓴 남자와 마찬가지로 친절했다. 정장 차림의 남자는 그렇게 말한 후, 아내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는 아내와 짧게 눈을 마주친 후, 별일 아닐 거야, 먼저 밥 먹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곤 그들을 따라 펜션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 제주시 쪽으로 가는 건가요?”
그는 승용차가 출발하자마자 운전석 쪽 썬글라스를 쓴 남자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아닙니다. 서울로 갈 겁니다. 세시 삼십분 비행기죠.”
썬글라스를 쓴 남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는 앉은 자세 그대로 자신이 신고 있는 슬리퍼와 허리선에 고무줄이 들어간 남색 반바지, 소매가 없는 하얀색 티셔츠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반바지 주머니에 휴대폰과 지갑은 들어 있었다.
“아니 저기, 무슨 일 때문인지 말씀을 해주셔야지…… 저는 내일까지 여기 펜션에 예약이 되어 있는데……”
그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정장 차림의 남자가 말을 끊었다.
“정재민씨, 김숙희씨라고 아시죠?”
정장 차림의 남자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여자가 자수를 해왔어요.”
그는 말없이 미간을 잠깐 웅크렸다. 그러곤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 애쓰는 듯 가만히 조수석 시트의 박음질된 부분을 노려보았다.
“아까는 가족분들 앞이어서 자세한 말씀은 안 드렸는데, 김숙희씨와 관련해서 급하게 확인할 게 몇가지 있어서요. 무슨 일 때문인진…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시죠?”
그는 그 말에도 아무런 대답 없이 침묵을 지켰다. 승용차는 막힘없이 해안도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2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0년 10월 20일 금요일 밤 열한시 무렵, 청색 1톤 포터 트럭 한대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해상공원 인근 방파제 아래로 추락했다. 트럭은 추락하면서 옆으로 한차례 전복된 뒤 차체 바닥이 온전히 하늘을 향해 드러난 상태 그대로 갯벌에 처박혔는데, 마치 시소처럼 짐칸 쪽이 아래로, 운전석 쪽이 위로 향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새벽 두시 무렵, 그 인근으로 드라이브를 나온 이십대 초반의 젊은 남녀 대학생들이 사고 트럭을 처음 발견하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그때까지도 포터 트럭의 전조등은 꺼지지 않은 채 어둡고 컴컴한 밤바다를 은색 불빛으로 넓게, 또 잔잔하게 비추고 있었다. 엔진음은, 파도와 바람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사고의 최초 목격자인 남녀 대학생들은 뒤집힌 트럭 운전석 유리창 밖으로 삐져나온 사람의 어깨를 분명히 보았다고 후에 진술했다. 자신들이 방파제 위에서 몇번 저기요, 저기요,라고 소리를 쳤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무섭고 두려워서 차마 근처까지 내려가진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찰이 도착해 사고를 조사하는 와중, 이상한 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트럭 안에서는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 한명만이 발견되었는데, 그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 이전 이미 사망한 상태로 밝혀졌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29%, 고도의 명정(酩酊) 상태였다. 거기까지는 음주운전에 의한 추락 사망사고의 정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운전석 핸들이나 계기판 등에 충격에 의한 변형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 운전자의 흉복부나 다리 등에도 별다른 부상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럼에도 운전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 등이 경찰의 최초 보고서에 기재되었다. 음주운전에 의한 추락사고라는 추론에는 논리적 결함이 없었으나, 그것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결론에는 숭숭 구멍이 뚫린 보고서였다. 경찰은 곧바로 사망자에 대한 부검을 진행하였다.
부검의에 의해 밝혀진 운전자의 정확한 사인은 후두부 손상이었다. 교통사고 사망자에게는 흔히 나타나지 않는 손목과 손가락에 방어흔이 다수 발견되었고, 트럭 조수석에 놓여 있던 사망자의 점퍼 어깨 부근과 등, 손목 부위에서도 다량의 혈흔이 검출되었다. 사망자의 후두부에는 무언가 동그란 모형의 물체로 타격을 받은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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