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소연 金素延 시인. 저서로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이 있음. catjuice@empas.com

 

김정환 金正煥 시인.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 『텅 빈 극장』 『해가 뜨다』 『드러남과 드러냄』 『거룩한 줄넘기』 『유년의 시놉시스』 『거푸집 연주』 등 다수의 저작과 번역서가 있음. maydapoe@hanmail.net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저서로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등이 있음. cyndi89@naver.com

 

 

백지연 『창비』 50주년을 기념하는 봄호 문학초점 좌담에서 뵙게 되어 기쁘고 반갑습니다. 김소연 시인께서는 저와 함께 올 한해 문학초점 좌담을 진행해주실 예정이고요. 이번 초대손님으로는 김정환 시인을 모셨습니다.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두분의 근황을 여쭙고 싶은데요. 김소연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독립잡지 『조립형 text』 창간을 준비하고 계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과 함께하시는지요?

 

김소연 시인 유희경 송승언 신해욱 하재연, 디자이너 김재연씨와 함께 독립출판으로 준비 중이에요. 함께하는 출판사 이름은 ‘눈치우기’이고요. 소셜펀딩 사이트 ‘텀블벅’이랑 SNS에서 홍보를 해서 독자 지원을 받았어요. 한 이년 정도를 만나서 준비해왔는데 서로 다른 의견을 듣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백지연 작년 하반기부터 기성 잡지 형식과는 다른 무크지나 새로운 형태의 문학잡지 들이 여럿 창간되었는데요. 문학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느낌입니다. 출간될 새 잡지가 기대되네요. 김정환 선생님은 주로 행사 뒤의 모임에서 뵙곤 했는데 이렇게 환한 낮에 마주 앉아 문학 이야기를 나누려니 새삼 낯설기도 한데요.(웃음)

 

김정환 그러게요. 누가 나를 이런 자리에 부르라고 했을까.(웃음) 두분과 책 이야기 나눈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왔고요. 이번 기회에 제가 읽고 좋았던 책도 추천했고 그냥 지나칠 뻔한 책도 새롭게 읽었네요.

 

 

김이정 장편소설 『유령의 시간』

 

유령의 시간백지연 그러면 소설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보겠습니다. 김이정(金夷貞)의 『유령의 시간』(실천문학사 2015)인데요. 작가의 성장사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념적 선택으로 인해 전쟁 때 가족과 헤어지고 월남하여 또다른 가족을 이루고 살아온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인데요. 김이정씨가 본격적인 장편 형식으로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것은 처음이지요. 식민지 시기와 분단의 역사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생애’를 돌아보는 방식은 우리 소설사에서 아주 익숙하긴 합니다만 딸의 시선에서 아버지의 삶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룬 작품이 많지는 않았는데요.

 

김소연 저도 흥미롭게 읽었어요. 딸 ‘지형’의 시점과 아버지 ‘이섭’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서사가 전개되잖아요. 아버지가 겪은 백년 한국역사의 엄청난 비극들을 ‘유령의 시간’이란 말로 압축했다고 여겼어요. 이 유령 같은 세월이 실재할 수 있게 복원하려는 노력으로써 아버지의 시점이, 그런 아버지와 이산가족이 되어 살아온 자식이 겪은 상처들에 대한 성장서사로써 딸의 시점이 작가에겐 필요했으리라 보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복원도 온전해지고 성장서사도 온전해진다면, 이 소설은 개성이 없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좀 전형적일까봐 염려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버지의 복원은 디테일이 아주 좋았어요. 너무 따뜻하게 감싸안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요. 아버지 이야기에 비한다면 지형의 성장서사는 마지막에서 오히려 좌절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특히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창문을 열고 아파트단지를 향해 지형이 비명을 지르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는 온전하게 건사하고, 하나는 실패를 지향하는 작가의 선택이 이 소설을 빛나게 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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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백지연, 김정환, 김소연, Ⓒ 송곳

 

김정환 김이정씨가 다룬 아버지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고 계속 써야 하는 소재가 맞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읽으면서 뭔가 계몽적인 언어와 익숙한 구도로 역사와 이념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60~70년대 한국소설들에서 많이 본 익숙한 사실주의 기법이기도 하고요. 평단에서는 이런 소재의 소설이 나오면 ‘이런 것도 필요하다’고 얘기하면서 의의를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이제는 소설이 역사를 다룰 때 어떤 계몽의 방식을 넘어서 현대의 수준으로 넘어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문득 인혁당 사건을 다룬 권여선의 『토우의 집』(자음과모음 2014)이 떠오르네요.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이 비극적인 역사의 공간을 왜 그렇게 아이의 시점으로 제한해서 썼는지 비판하기도 하던데요, 저는 이러한 시점과 묘사가 부조리한 상황 자체를 심화해 보여줄 뿐 아니라 끔찍한 역사적 비극을 퇴화시키는 현재의 문제가 무엇인지 되묻는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신비한 독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성태의 『두번의 자화상』(창비 2015)에 실린 작품들을 읽고서도 그런 경험을 했고요. 문학과 역사를 성찰하는 것을 작가의 생명으로 걸고 밀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현재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형상화의 방식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백지연 『유령의 시간』이 평이한 연대기적 서술이나 주제의식의 직설적인 전달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선택한 성숙한 딸의 관찰적인 시점과 아버지의 확대된 목소리는 어느정도 의도적인 것 같아요. 김소연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성장서사로서의 좌절이 깊게 와닿는 것도 그런 구도에서 비롯된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흔히 아버지의 이념적인 선택 때문에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다루는 기존의 많은 소설들에서는 ‘나’의 상처와 갈등을 크게 강조하는데요,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고 나는 어떻게 아버지를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큰 거죠.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내려는 어른으로서의 딸의 시선이 처음부터 강하게 받치고 있어요. 아버지의 삶 자체를 고스란히 기록하고 싶은 욕망이라고 할까요. 계몽적 서사와는 좀 다른 맥락인데요,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듯 담담하게 쓰기 쉽지 않은데, 마지막 장면까지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면서 기록들과 싸워가는 과정이 미덕으로 다가왔습니다.

 

김정환 기본적으로 ‘복원’이든 ‘발굴’이든 그 자체의 의미는 소중하지요. 그런데 당대의 역사 속에 실제로 부딪쳐가는 삶의 에너지가 소설적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죠. 『유령의 시간』이 기록하는 역사적 시간의 감동이 분명 있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정나원의 『아버지의 바이올린』(새물결 2005)이 생각났는데요. 혁명시대부터 개혁개방시대를 거친 베트남 사람들 여러 세대의 삶을 인터뷰한 논픽션이에요. 내용이 무척 감동적이라서 읽으면서 두번이나 울었습니다. 전쟁 이야기라면 신물이 난다고 토로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는 자기들 고생만 우선이고 확실히 어른 세대에 대한 연결고리가 없구나 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솔직한 목소리들이 남기는 여운이 굉장히 컸어요. 같은 역사를 경험했는데도 세대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는 체험들이 흥미로웠어요. 디엔비엔푸 전투(1954) 때 부모님이 밤에 몰래 보따리 쌌던 이야기를 회고하는 혁명세대 이야기도 있는데요, 프랑스군이 감쪽같이 속을 정도로 비밀리에 밤을 틈타 결집이 진행된 유명한 전투였다는 게 읽으면서 실감나더군요. 이런 치열한 혁명을 거쳤지만 뒤늦게 자본주의 체제로 개혁개방하면서 돌아보니 당의 혁명 노선이 틀렸다고 격렬하게 비판할 수밖에 없지요. 이것이 진짜 삶이 아닌가 싶어요. 어쨌건 인간이라는 짐승이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어떻게까지 가보다가 깨닫게 되는 현실 말입니다. 그 현실을 포괄하는 문체랄까 구도랄까 미학이랄까, 그런 것 속으로 소설이 들어가야 해요.

 

김소연 르뽀르따주와는 다른 소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현실을 포착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러려면 역사적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텐데요. 역사의 피해자라는 단순한 인식만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안에 내재된, 이런 역사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인자들을 공격하고 까발려야 하겠죠. 그러기에 『유령의 시간』은 다소 낭만적인 면이 있어요.

 

백지연 부모의 서사를 다루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가 낭만적인 현실인식과 얽혀 있긴 합니다. 딸인 지형은 나약하고 허위적인 아버지를 냉정하게 보지 못하는 만큼 엄마의 삶 역시 모호하게 바라보는데요. 엄마는 호적 등본에도 오랫동안 기재되지 못하고 아버지의 첫 부인이나 영석이 엄마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며 살았어요. 소설에서 그런 엄마의 절절한 삶이 아버지의 삶과 어우러져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지형이 아버지의 자서전을 이어쓴다는 설정이나 남북작가대회에 참석해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해보려는 것은 오히려 결말을 위한 관습적 장치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연좌제 문제라든지 사회안전법 문제의 이야기를 지형이나 가족의 관점에서 현재적으로 더 살렸으면 좋았을 텐데 싶습니다.

 

김정환 아이가 상처를 받고 성장통을 앓는 과정에서 한발 나아갔더라면 이 소설이 새로운 차원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다른 예를 들자면 최근에 홍명진이 쓴 청소년소설 『우주비행』(사계절 2012)을 읽었는데 참신했거든요. 어른의 시점을 안 버렸지만, 성장의 관점에서 역사적 상황을 다루고요. 어른의 시점이 계몽의 시점으로 고정돼서 우린 이렇게 당했다, 이런 슬픔이 있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거기서 좀더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현재 문학의 차원으로 과감하게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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