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정화 崔正和

1979년 인천 출생.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이 있음. daysmare@hanmail.net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라는 제목이 달린 그 그림은 싸이즈가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캔버스에 그려졌는데, 전시된 다른 작품들이 회색을 섞어 둔탁하게 가라앉은 느낌을 주는 것과 달리 강렬한 원색의 파란 물감을 써서 단번에 시선을 끌었다. 실존인물을 모델로 그린 것 같았지만 이목구비를 흐릿하게 처리한데다가 배경에는 크기를 비교할 만한 마땅한 사람도 사물도 없었기 때문에 남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키가 큰지 작은지조차알 수 없었다. 코트 깃을 세우고 단추를 채우지 않은 채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그 남자는 이십대의 청년 같기도 했고 삼십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남자에게 고유한 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가 입고 있는 푸른 코트뿐이었다.

그림 앞에서 한동안 꿈쩍도 않고 넋이 팔려 있다가 함께 전시회를 보러 온 남편이 언제부터인지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무평 남짓한 전시장을 세번이나 둘러본 뒤에야 나는 남편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출입문의 대각선 반대쪽 구석에 놓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도록을 읽고 있었다. 사실 갈색 스웨터를 입은 남자가 얇은 종이책자를 무릎에 놓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긴 했다. 다만 그게 남편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낯선 사람을 쳐다보듯 한동안 남편을 관찰했다. 펼쳐놓은 지면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러 있고 책장은 넘기지 않고 있었다.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거나 아니면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가는 대신 다시 그림 앞에 섰다. 그림에서 눈을 떼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이번에는 남편을 찾는 데 시간이 좀더 걸렸다. 소파는 이제 비어 있었고 남편은 이번에도 그림을 감상하는 무리들 틈에 없었다. 남편을 발견한 곳은 정수기 앞이었다. 그는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중이었다. 나는 남편이 종이컵에 냉수를 받아 연거푸 두잔을 마시는 모습, 종이컵에 남은 물을 바닥에 흘리고 구두창으로 대충 문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문득 그가 불필요하게 덩치가 크다고 느꼈다. 평소보다 키가 오 센티미터 정도는 더 커 보였다. 목은 짧고 둔하며 허벅지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두껍다고 느꼈다. 그의 신체가 불균형해 보이니까 바닥에 흘린 물을 구두창으로 문지르는 행동마저 그가 평소에 드러내지 않던 부도덕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아니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의 사소한 행동 때문에 그의 신체 전체가 불균형하다고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다음 그림은 거대한 쇼핑몰 건물과 그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세명의 여중생이었다. 그림은 별 감흥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다른 그림을 보면서도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만 어른거렸다. 그림 속의 남자가 실존하는 인물일 거라는 생각에 그 남자가 진기와 아는 사이일 거라는 생각이 덧붙었다. 이따 진기에게 그 그림이 누구를 그린 것인지 물어보기로 했다. 그 남자를 실제로 보고 싶기도 했다. 나는 그림 속의 남자를 만나는 상상을 하며 나머지 그림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제일 마지막 그림역시 흐릿한 회색 배경에 사람들의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그림으로, 어떤 사람의 코는 누군가 베어문 듯 패어나가 있었고 어떤 이는 뒤통수가 있어야 할 부분이 비어 있었다앞에 섰을 때 남편이 내 옆에 와 섰다.

이 미술관 요즘 대센데 진기씨가 장소 컨택을 아주 잘했네.

남편은 내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이런 문화생활을 하게 되니 마음이 다 개운해진다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개운하다는 것은 그의 눈앞에 펼쳐진 그림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남편은 그림들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아무 말이나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남편의 처진 눈매에는 졸음이 그득했다. 그림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서 전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태도였다. 남편의 나른한 얼굴을 향해 ‘좀더 관심을 갖고 제대로 감상을 해보라’고 말하려는 순간, 나는 아주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남편의 얼굴이 전과 전혀 다르게 보였다. 진하게 쌍꺼풀 진 눈은 토끼의 동그란 눈처럼 지나치게 동그래서 어리석어 보였고, 평소 내가 좋아했던 갸름하고 부드러운 턱선은 남자답지 못한 유약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통통한 입술은 불만스럽다는 듯 툭 튀어나와 보기 싫었다. 전체적으로 이목구비가 지나치게 선명해서 부담스런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였던 얼굴이 눈에 거슬리자 내가 더 당황했다. 남편에게는 일단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출입문을 빠져나왔다.

전시회와 복도를 가르고 있는 유리벽 앞에 섰다. 남편은 아까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서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이 신나 보여서 나는 좀 의외였다. 그림의 어떤 점이 그를 신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슬쩍 비켜서서 다시 보니까 남편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그는 요즘 SNS에 빠져 있는데 아마 전시장의 그림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도 휴대폰을 너무 쥐고 산다는 이유로 그에게 화를 냈다. 남편은 나를 빼고 모두가 SNS를 하고 있다고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 오로지 나만이 세상의 흐름에 뒤쳐져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과 재미를 모르고 있으며, 너는 그게 고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라고 비아냥거리며 비난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원체 유행에 민감했다. 새로 나온 전자제품은 꼭 사서 사용해봐야 직성이 풀렸고, 인기그룹 멤버들의 이름도 다 알고 있었다. 유행이 지나면 멀쩡한 옷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가 세련되다고 칭찬했지만 내 귀에는 그게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남편과 함께 전시회에 온 것을 후회했다. 진기가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한 것은 그냥 지나가는 말일 뿐인데 그 말을 굳이 기억해두었다가 그를 억지로 데리고 나온 건 순전히 내 잘못이다. 남편이 그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모처럼 휴일에 집에서 쉬면서 티브이나 보도록 내버려두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립스틱을 고쳐 바른 뒤 다시 전시회장에 들어섰을 때 남편은 진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그가 말실수나 하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이 진기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무슨 얘기를 떠들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끼어들었다가 대화가 더 길어질 것이 걱정되었다. 나는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를 좀 더 감상했다.

조금 뒤에 키가 작고 빼빼 마른 여자가 케이크가 든 상자와 작은 난초 화분을 들고 나타났다. 나에게는 그 여자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진기가 그녀를 맞으러 가자 나는 손짓을 해 남편을 불렀다. 나는 진기를 도와 전시회 뒷정리를 하고 갈 건데 당신은 피곤해 보이니까 먼저 집에 돌아가 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그는 ‘모처럼 문화생활을 하니까 기분이 꽤 좋다’고 했다. 그는 또다시 문화생활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 단어는 남편이 전시회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증명이었다. 그는 진기가 그린 그림을 ‘문화’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로 뭉뚱그리고 있었다. 나는 왜 남편이 평소와 달리 눈치 없이 구는지 몰랐다. 하지만 억지로 들어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남편과 나는 전시회가 끝나고 술자리에까지 참석하기로 했다. 남편은 진기에게 마감시간을 묻더니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술자리는 생각보다 길어져서 어느새 밤 열한시가 지나고 있었다. 진기와 나는 이십년지기 친구로 허물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전에는 한번도 진기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