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 ①
한국 종교의 보수성을 어떻게 볼까
개신교를 중심으로
박노자 朴露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동아시아학 및 한국학 교수. 저서로 『당신들의 대한민국』(전2권) 『하얀 가면의 제국』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나를 배반한 역사』 등이 있음.
강인철 姜仁哲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 기독교회와 국가, 시민사회: 1945∼1960』 『전쟁과 종교』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 『한국의 종교, 정치, 국가: 1945~2012』 등이 있음.
진보와 보수, 개신교의 분기(分岐) 1)

박노자 朴露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동아시아학 및 한국학 교수. 저서로 『당신들의 대한민국』(전2권) 『하얀 가면의 제국』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나를 배반한 역사』 등이 있음.
박노자 『창작과비평』 이번 호가 창간 50주년 기념호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뜻깊은 자리에서 한국의 개신교에 대해, 이 분야의 전문가이신 선생님께 질문 드리고 함께 한국적 근대, 자본, 그리고 종교라는 거대 맥락과 연결시켜 논의할 기회가 생겨 매우 기쁩니다. 『창비』에서 저희 대담에 이어 한국사회의 보수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룬다는데, 후속논의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 불교를 전공 삼아 공부해왔지만, 개신교에 대해서는 사실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일단 총론적인 부분부터 말씀드리자면, 대개 불가 안에서는 ‘불교 근대화의 실패’를 자주 한탄하곤 하는 것을 아시죠? 아무래도 근대 민족주의·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거승대덕(巨僧大德)이라면 만해 한용운 스님 외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불교 입장에서는 개신교의 처지가 부럽긴 합니다. 초기 민족주의 운동가들을 보면, 김규식 서재필 안창호부터 시작해서 개신교의 기여도가 눈에 띄고, 병원이나 학교 설립 등으로 물질적·제도적 근대화에 기여한 것도 한눈에 바로 보입니다. 거기에다 1970~80년대 사회운동에서는 민중불교보다 민중신학의 비중이 훨씬 컸기에, ‘개신교’와 ‘근대성’을 동일시하는 태도도 이제 거의 상식이 된 셈입니다.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타 종교 입장에서도 사실 그렇죠.
그런데 일면으로 보면, 개신교에는 서로 다른 두개의 종교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한쪽에는 소수지만 한백교회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신학의 기독교, 즉 급진적인 기독교와 역시 일부지만 다소 자유주의적 경향의 목사들이 있습니다. 한데 나머지, 즉 ‘일반’의 개신교를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집니다. 예컨대 기본적인 신앙 형태의 차원에서는 그런 ‘일반’의 개신교가 과연 그렇게까지 현재적 의미에서 ‘근대적’인가, 즉 여타의 한국 종교들과 그렇게까지 다른가라는 질문부터 절로 생깁니다. 사실, 과학적 합리성이 확립된 근대에 와서는 “신에게 빌어서, 제물을 바쳐서 복을 얻는다”는 ‘교환형 접신’이랄까, 일종의 시혜/수혜적 절대자와의 관계랄까 하는 것 자체가 과연 어느 정도 여전히 유의미한가 자문해볼 수 있죠. 전통적인 ‘기도’라는 것이 결국 자신의 공포심 내지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심적 장치라는 것도 종교인까지 대체로 인식할 것입니다. 그런 일이라면 기도로도 명상으로도 마음챙김 등 여러 방법으로 할 수 있는데, 기도한다 해도 더이상 그 기도가 초자연적 효과를 가져오리라고 그다지 믿지 않는 게 ‘근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근대, 특히 자본주의 후기 도심인의 종교란, 결국 ‘마음 조절’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아간다는 것이 종교학에서의 정설인 듯합니다. 한데, 한국 개신교는 위에서 언급한 불교 등과 그다지 다르지 않게 여전히 ‘기도’와 ‘은총’의 종교 같습니다. 즉 전통사회나 근대 도심소비사회 발달 이전의 초기 근대적인 ‘초자연적인 힘에의 의존, 그리고 물질적 시혜 기대’라는 집단심리를 그대로 보유하는 듯합니다. 이런 기복종교로서의 한국 개신교의 그다지 ‘근대 발전적’이지 않은 모습에 대해 그 안에서는 과연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리고 학술적으로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고견을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강인철姜仁哲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 기독교회와 국가, 시민사회: 1945∼1960』 『전쟁과 종교』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 『한국의 종교, 정치, 국가: 1945~2012』 등이 있음.
강인철 저 역시 박노자 선생님과 뜻깊은 대화의 기회를 갖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박선생님 말씀대로 기복주의 신앙이 개신교 전반에 널리 퍼져 있고, 그것이 근대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며, 여러가지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 개신교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굳어져온 것, 굳이 이름 붙이자면 ‘두개의 개신교’ 현상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대해 미리 언급해두는 게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우리 사회의 개신교가 단일하지도 동질적이지도 않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같은 그리스도교이면서도 한국 전래(傳來) 후 줄곧 단일교단 체제를 유지해온 천주교와 대조되는 개신교만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개신교의 교파주의는 선교 초기부터 유명했지만, 1950년대 이후 교파 분열을 연이어 겪으면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파악한 바로는 2008년 현재 개신교로 분류되는 교단의 수가 무려 291개에 달했습니다. 여러 유형화 방식이 가능하겠으나, 정치적·사회적 성향을 기준 삼을 경우엔 개신교를 두 그룹으로 나누는 게 유용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사회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개신교 내부의 두 흐름 내지 세력이 갈등적으로 공존해왔다고 보는 것이지요.
보수 우위로의 세력관계 역전
제 판단으론 한국에서 ‘두개의 개신교’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 후반부터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개신교 내부에서 신학적·교리적 차이—주로 자유주의적인 진보신학과 근본주의적인 보수신학 사이의 차이—가 점점 현저해졌음에도 정치·사회적 지향 면에선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엔 ‘신학적 진보성’이 반드시 ‘정치적 진보성’을 의미하진 않았어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고요. 오히려 현세적 구원과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진보신학(참여신학) 쪽이 친일-친독재 등 퇴행적인 정치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았던 게 사실입니다. 참여신학의 공허함이랄까요, 사회참여·정치참여를 지지하는 참여신학은 일종의 빈 그릇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는 가장 반동적인 내용물부터 가장 급진적인 내용물까지 모두 담길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 1960년대에 정치성향의 분화와 신학적·정치적 지향의 수렴이라는 두가지 변화가 중첩되면서 ‘보수 개신교’와 ‘진보 개신교’라는 양대 세력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후 보수와 진보 진영은 각각 자신의 정치·사회적 입장을 정당화하는 세련된 신학적 기반까지 갖춤으로써 비교적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게 됩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중심으로 결집한 진보 개신교가 반체제적인 민주화운동·인권운동·민중운동에 나섰던 반면, 보수 개신교는 겉으로는 성속이원론-정교분리론을 내세우면서도 기존 체제에 대해 지지와 순응의 태도를 보였던 것이 1960~80년대의 지배적인 패턴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개신교 교세의 70~80%를 차지할 만큼 보수 개신교의 양적 우위가 명백했음에도 이 시기에 한국 개신교를 대외적으로 대표했던 것은 소수파인 진보 개신교였다는 것입니다. 보수 개신교를 구성하는 교단들의 분산성·분열성·비조직성과 대조적으로, 진보 개신교 세력은 단단하게 결속했고 세계교회협의회(WCC)나 외국계 선교회 등 개신교 국제네트워크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 NCCK 내부에도 보수성향 인사들이 꽤 많았죠. 그러나 군사정권과의 격렬한 충돌로 희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기의 보수적 목소리를 자제하면서 진보적 소수파에게 ‘조용한 동조’를 보내는 편이었습니다. 이런 요인들이 ‘저항적 소수의 주도성’을 뒷받침했고, 그로 인해 당시 개신교의 사회적 이미지도 진보 쪽에 가깝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민주화 이행기로 접어든 1980년대말부터 보수와 진보 개신교 간의 세력관계는 역전되었고, 그에 따라 한국 개신교의 대외적 대표성도,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도 모두 보수 쪽으로 확연히 기울었습니다. 1960~80년대를 거치면서 보수와 진보 개신교 사이의 양적 격차는 더욱 벌어졌습니다. 이 기간의 보수적인 교단 및 교회는 진보적 교단·교회에 비해 훨씬 빠른 양적 성장을 구가했습니다. 또 이 시기에 많은 교회들이 세계적인 초대형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예컨대 1993년에 미국 잡지인 『크리스천 월드』가 선정한 ‘세계 50대 개신교회’ 중 절반에 가까운 23곳이 한국 교회였습니다. 같은해에 신자수 70만명을 넘어 세계 최대 교회로 기네스북에 오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하여,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가 모두 한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초대형교회들 중 ‘진보 개신교’ 성향은 단 한곳도 없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개신교 지형에서 일어난 변화는 ‘보수 헤게모니의 확장’으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그 요인으로 네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보수 개신교의 조직력이 전례 없이 강해졌습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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