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 창비에 바란다

 

공공성을 갖는 민주적 진지로 남아주길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인터뷰

 

 

조희연 趙喜

서울시 교육감, 사회학자. 저서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병든 사회, 아픈 교육』 등이 있음. hyunkgkk@sen.go.kr

 

김태우 金泰佑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인문한국 연구교수, 본지 편집위원. 저서 『폭격』『평화를 걷다』 등이 있음. peace21@snu.ac.kr

 

 

조희연 교육감과의 만남은 그의 집무실 탁자에서 간단한 점심 도시락을 함께 먹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의 바쁜 일상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보다 빨리 식사를 마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넘쳤고, 눈빛과 몸짓에는 열정이 생동했다. 서울시 교육청 최고 수장의 넘치는 에너지는 자못 주위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 공간에 있던 어느 누구도 위압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의 눈빛에는 겸손과 상냥함도 담뿍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날선 비판적 지식인의 약간은 신경질적인 눈빛을 상상하기도 했던 내겐 꽤나 인상적인 반전의 첫인상이었다.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조희연은 서울시 교육감이라는 ‘교육행정가’로 먼저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현대사 연구자인 내게 조희연은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대표했던 주요한 ‘비판적 지식인’의 한명으로 먼저 다가온다. 195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조희연은 1975년에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1978년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9호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한 죄로 구속되어 징역 3년을 받았으며, 1978815일 가석방으로 출소(2013년 무죄 선고)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여느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젊은 지식인 조희연 또한 당대의 수많은 변혁적 시각들을 두루 섭렵하고 비판적으로 극복해나가는 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조희연 ⓒ 이영균

 

저희는 72년 유신선포 이후 75년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된 시대를 살았던 ‘긴급조치 9호 세대’거든요. 한국 권위주의와 독재의 말기적 현상이 나타나던 시기, 그리고 그에 대응해서 민주화운동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또 일정하게 새로운 지적 갈증이 강하게 일어나던 시기에 우리는 대학에 들어갔고, 거기에 창비가 있었어요. 민주화운동이 급진화되던 때에 새로운 비판사회과학적 갈증이 창비의 시, 소설, 좌담 등으로 일정 정도 수용된 거죠. 그리고 당시는 교내 언더서클들이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런 곳에서 함께 창비의 책들을 돌려보고 세미나하며 창비와 최초의 관계 맺기를 했지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시기에 급진적 민주주의 이론에 대한 지적 갈증도 컸는데, 창비는 그러한 갈증을 공식적으로 해결해주는 매체였던 거죠.

 

김태우

창비는 최근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결같되 날로 새롭게: 창비 50년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창비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자료를 함께 수록하여 창비의 역사적 성격을 생동감있게 잘 보여준다. 반면에 ‘창비 바깥의 창비’ 혹은 ‘창비의 독자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1970~80년대 한국사회의 급속한 진보를 이끌었던 학생운동 세력과 창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1970~80년대 한국 학생운동 및 진보적 지식인 그룹과 창비의 관계 맺기에 대한 조희연의 소박하지만 구체적인 증언은 나처럼 당시 민주화운동의 열기를 직접 느껴보지 못한 후학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온다. 조희연은 계간 『창작과비평』 외에 ‘창비신서’로 발간된 황석영(黃晳暎)의 『객지』(1974), 리영희(李泳禧)의 『전환시대의 논리』(1974), 강만길(姜萬吉)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1978) 등에 대해 거론하자,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런 것들이 그대로 우리 언더서클의 교재였습니다. 저희는 그런 책들로 세미나하면서 비판적 인식을 심화했고, 종국에는 감옥에 갈 결단까지도 한 겁니다. 강만길, 박현채(朴玄埰), 이효재(效再) 선생님 등이 창비신서의 주요 필자가 되고, 그분들을 통해 분단사학, 민족경제론, 비판여성학 등이 발표되고, 이것이 다시 우리 언더서클의 교재가 되는 형태, 즉 일종의 비판적 지식의 순환구조가 1970년대 창비를 통해 만들어졌던 거죠.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창비와도 중요한 관계 맺기를 했던 것 같아요. 광주항쟁 이후에는 한국사회에 변혁적이고 급진적인 인식이 대거 등장하게 되는데, 당시 사회구성체논쟁의 출발점이 되는 박현채 선생님과 이대근(大根) 선생님의 글이 실렸던 매체가 바로 창비였죠.

 

조희연은 70년대의 대학가를 회상하며, 가난했던 대학생들이 창비 책들을 돌려보거나 그 일부분을 복사·제본하여 함께 읽고 토론했던 추억을 끄집어냈다. 창비가 비판적 지식인들과 학생운동세력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한 조희연은 1980년 강제 폐간된 『창작과비평』이 1985년 부정기간행물 1(계간통산 57호)를 통해 ‘사회구성체논쟁’을 촉발했던 상황도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당시 박현채와 이대근의 논문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주변부자본주의론을 중심으로 한국사회 변혁노선 논쟁에 불을 댕겼는데, 1983년 석사논문의 주제로 ‘종속이론’을 다루기도 했던 조희연이 이같은 글들을 기억해내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심지어 조희연은 1987년 『창비 1987』에 실린 좌담을 통해, 창비로부터 촉발된 사회구성체논쟁을 “논쟁의 1단계”라고 성격규정하기도 했다.*

이어서 나는 조희연에게 사회구성체논쟁의 한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창비 편집인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에 대해 물어보았다. 앞서 조희연과 함께한 1987년 좌담에서도 백낙청은 “한국이 갖는 특수성을 해명하고 그것을 자본주의 전체의 어떤 일반성의 원리하고 연결시켜줄 수 있는 그러한 이론이 필요하다”(앞의 좌담 70면)는 문제의식을 드러냄으로써, 추후 발표될 자신의 ‘분단체제론’을 예고하기도 했다.

 

백낙청 선생님의 분단체제론은 창비의 민족문학론적 논의에 80년대의 사회구성체론적 문제의식을 더해서 이론적으로 확장한 시도였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긍정적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이 분단체제론을 볼 때마다 박현채 선생님이 “오늘 우리 사회의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의 분립은 잘못된 일이다. PD적 입장에 서지 않는 NL의 비계급성, PD적 입장을 저버린, 또는 그것과 대립되는 NL론은 허구”라고 하신 얘기를 떠올리곤 했죠. 행정을 하다보니 지금은 저에게도 익숙한 표현은 아니지만, “NLPD는 없다. NLPDPDNL만이 있을 뿐이고 있어야 한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견지에서 보면, 정확히 NLPDPDNL의 문제의식을 결합하려고 했던 지적 시도가 분단체제론이지 않을까 회상해봅니다. 그러니까 계급문제가 민족문제로 녹아 있는 지점들, 또 민족문제나 분단문제가 계급적 모순으로 결합된 지점들을 정식화하려고 했던 문제의식인데, 안타깝게도 사회과학 쪽에서는 PD론적 문제의식과 인식틀이 지배적이어서 분단체제론과 약간의 긴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분단체제론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분단체제론을 새롭게 확장해서 보자면, 분단체제하의 두 국가 간 관계가 변화했고, 그 변화된 관계가 남한을 상이하게 규정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북한의 후퇴라고 할까? 인권과 민주주의 관점에서의 북한의 퇴행성의 노정, 20세기의 문명사적 진보를 수용하지 못한 점, 남한사회의 대안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된 상황, 그래서 이제는 북한 바로 알기가 80년대 상황과는 달리 오히려 체제우월론적 반공주의를 강화시키는 소재가 될 수도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20세기는 러시아혁명으로 막이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문명화된 자본주의를 선택하느냐, 야만화된 사회주의를 선택하느냐 하는 곤욕스런 상황 속에서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어요. 그것의 일부로 현대 북한이 대안체제가 될 수 없는 변화된 현실이 있고, 그런 면에서 분단체제론도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새롭게 제기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창작과비평1992년 겨울호)를 통해 최초로 제시될 때부터 다른 분석단위들과의 상호관계, 그리고 그러한 상호관계의 이론화에 대해 열린 태도를 견지하고자 했다. 이같은 이론적 개방성은, 80년대의 주요 변혁이론들이 대부분 현대 한국사회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음에도 분단체제론만은 여전히 지속적으로 반추되는 주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위에서 제시된 조희연의 조언 또한 실천적 문제로서의 통일문제와 연계해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접어들어 창비는 교육출판 분야에도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교과서 개발에 착수했고, 2014년에는 ㈜창비교육을 설립하여 교육출판의 전문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 교육청의 수장인 조희연에게 ‘교육감’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시점의 목표, 그리고 ‘교육’ 분야와 관련해 창비에 바라는 점 등을 물어보았다. 우선 조희연 교육감은 암기식 지식교육 및 일등주의 교육 같은 ‘추격산업화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을 실현하는 것, ‘교육불평등 문제를 완화’하는 것 등을 자신의 핵심목표로 간주한다고 말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항들을 창비에 주문했다.

 

창비를 비롯해 80년대 이후 성장한 많은 비판적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지난 이삼십년 동안 다수의 독자층을 확보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독자들은 초··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어 있어요.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창비 책이나 비판적 사회과학 출판사의 책을 권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봐요. 이런 상황에서 창비가 오히려 선도적으로 교육 관련 출판사업을 해줘서 고마운 거죠. 교육 관련 책이라든지 유아들이 읽을 책을 발간해주는 것이 고마운 일이고, 그 부분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창비를 읽은 비판적 세대들이 부모로서 자녀에게 새로운 시대적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 확대된 규모로 많은 책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창비에서 간간이 다뤘습니다만, 교육문제도 좀더 중요한 주제로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진보교육감 진영에서는 세월호 이후 새로운 교육체제를 ‘4·16교육체제’라 부르고, 4·16교육체제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한 노력들도 창비에서 조명해줬으면 합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출판사업을 단순한 수익사업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시대정신을 가르치는 일종의 ‘사회적 사업’으로 다뤄주길 바란다는 조희연 교육감의 요구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지난 반세기에 걸친 창비의 독자층을 ‘학부모’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독해하면서, 이로부터 교육의 개혁과 한국사회 진보적 영역의 확대 가능성까지 두루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교육 분야에 대한 요구에서 그치지 않고, ‘출판사’ 창비와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바라는 점도 각각 한가지씩 명쾌하게 제시했다.

 

출판사 창비 자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창비가 이미 한명의 오너를 두지 않는 공공성을 갖는 민주적 진지다, 탈사유화된 공공적 자산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창비를 비롯한 여러 비판적 사회과학 출판사들의 경우, 80년대 민주화의 고투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자산이 출판사의 성장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하게 출판사 사장의 소유물로 여기기보다는 공공적 성격을 갖는다는 생각을 하고, 그 공공성을 사회과학 출판의 영역에서 어떻게 실현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창비가 이미 선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지만, 다른 비판적 사회과학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사실은 ‘교육의 공공성’을 확장하도록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로서 교육감직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계간 『창작과비평』과 관련해 말씀드리자면, 70~80년대 창비를 보면 그 시대의 가장 비판적인 관점과 분석까지 포용해주는, 굉장히 폭넓은 지적 그릇으로 작용했던 면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창비가 우리 시대의 중도주의적 지향뿐 아니라 급진적 시각도 일부는 자기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으면 해요. 창비 같은 넓은 그릇이 그걸 담아줘야 한다는 거죠. 게다가 분단체제하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하고, 그것이 상당한 지적 편협성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현시대는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사회공동체의 위기 속에서 대안을 찾지 못한 대중의 요구가 좌우익 포퓰리즘트럼프·쌘더스 현상이나 브렉시트 등으로 표현되는 현상, 대안적 출구를 찾지 못한 대중의 열망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되는 시대적 조건을 맞고 있다는 거죠. 창비가 그러한 대중의 대안적 열망들, 급진적이기까지 한 열망들을 지적으로 담아내는 큰 그릇으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창비를 향한 그의 조언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조희연은 “공공성을 갖는 민주적 진지” “탈사유화된 공공적 자산” “급진적 열망까지 담아내는 큰 그릇” 등의 표현을 통해, 향후 지켜나가야 할 창비의 사회적 역할과 그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동시에 드러냈다. 창비 밖에서 창비를 예의 주시할 ‘부릅뜬 눈의 경계자’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인 나는 인터뷰를 마치며 현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조치에 대한 서울시 교육감의 견해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입장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현시대에 역행하는 퇴행적 조치이기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오히려 앞으로 교과서는 국정이나 검인정을 넘어 자유발행제로 나아갈 정도로 개방화·유연화·다양화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게다가 조희연은 단순히 국정화 조치를 저지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지향적 역사교육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대안 마련에 나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토론 중심의 역사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을 강조하는 역사교육 등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서도 그가 매우 깊고 오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사학자의 한사람으로서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연륜()은 본래 나무의 나이테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무는 나이를 한살 먹을 때마다 나이테가 하나씩 생겨난다. 그리고 나이테가 많아질수록 나무는 더 단단해지고 허리가 굵어져서 거친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세월을 견뎌내게 된다. 1956년생인 조희연은 올해 정확히 만 60세의 ‘이순(耳順)’에 이르렀다. 그리고 1966년생인 창비는 만 50세 ‘지천명(知天命)’에 달했다. 이순의 조희연은 과거의 날선 사회과학자의 면모에서 벗어나 ‘귀가 순해졌다’는 평가를 듣기에 충분할 정도로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를 넓고 다양하게 포용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지천명의 창비는 스스로 ‘천명(天命)’을 안다고 자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조희연 교육감이 창비의 운명적 미래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준 걸지도 모르겠다. 공공성을 갖는 민주적 진지, 우리 사회의 급진적 열망까지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어달라는 조희연의 요구는 창비의 역사적 위상을 인정하는 존경의 표현임과 동시에, 미래의 창비를 향한 준엄한 경계의 말이라는 점에서 창비 구성원 모두 진지하게 반추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 백낙청·조희연·윤소영·정윤형 「현단계 한국사회의 성격과 민족운동의 과제」, 『창비 1987』 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