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위기의 자본주의, 전환의 계기들

 

기후변화, 인공지능 그리고 자본주의

 

 

이필렬 李必烈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저서로 『다시 태양의 시대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등이 있음. prlee@knou.ac.kr

 

 

1. 빠리협약의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

 

201512월 빠리에서 열린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이하 기후총회)는 국가 간 기후변화 논의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지난 이십여년 동안 편을 갈라서 다투기만 하던 198개 국가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힘닿는 대로 노력한다는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빠리의 기적’으로도 불리는 이 합의는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섭씨 2도 아래로, 가능하면 1.5도까지 낮추기 위해 모든 국가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노력하며, 정기적으로 이 계획의 성과에 대해 보고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빠리협약은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며, 온실가스 배출이 크게 줄어들지 않으면 인류문명이 곤경에 처하리라는 이론이 세계정치의 무대에서 관철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도 기후변화의 원인이 대단히 복합적이고, 장기간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모델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이론이 국제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까지 이르렀음에도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기후변화의 원인을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찾으려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으며, 더 나아가서 기후변화는 선진국이나 원자력발전을 위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1) 기후과학자들조차 인간의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 이론을 모두가 믿는 것은 아니다. 2015년에 기후과학자 6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90퍼센트는 기후변화가 진행된다고 보지만 75퍼센트 정도만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기후 모델을 통해 기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대답의 비율이 60퍼센트 정도로 떨어진다.2)

이는 기후변화의 진행에 여전히 많은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에 관한 과학적 논의뿐 아니라 그것에 기초한 정치사회적 논의가 다시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국가 간 논의의 의제가 ‘온실가스 배출감소를 통한 섭씨 2(1.5)도 상승 억제’ 목표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어 다른 발상의 논의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목표달성을 위해 최종 시점을 정해놓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장기간을 대상으로 하는 논의에서 2100년까지로 시점을 고정해놓은 것은 해결방안이나 대안 모색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빠리협약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기후 모델들을 따를 경우 상승폭을 섭씨 1.5도는커녕 2도 이하로 막는 게 불가능한데, 이 목표가 끊임없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배출된다면 1.5도 목표 도달은 5년 후 이미 불가능해진다. 2도 목표도 2045년경까지 전세계의 온실가스 배출이 제로가 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국가간기후변화패널(IPCC)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를 분석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고, 기후변화를 거시적 시각에서 연구하는 학자들도 지적하는 바다.3)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국제협약에 이렇게 도달 불가능한 목표가 담긴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20여년간 기후총회에서 최후의 방어선으로 여겨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 2도 이하 억제는 100차례도 넘는 본회의와 준비회의를 거쳐 2015년에 합의에 이르렀다. 각 나라, 특히 기후총회를 주도해온 선진국들에는 합의를 끌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의미있다. 지금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원래의 목표를 폐기하고, 크게 바뀐 세계의 상황을 고려해 새로운 틀의 국제회의를 시작한다면, 각국 정부와 정치권은 정당성이나 신뢰 면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기후총회 자체에 대한 회의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들은 20년 이상 지속해온 협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실현 불가능하더라도 이 목표를 고집하고 협상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4)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기후변화 논의에서도 수십년 동안 지속해온 일의 정당성과 신뢰 확보를 위해, 기후총회를 변화한 상황에 맞춰 크게 개편하기보다 현상유지를 택한다는 것이다. 사실 기후변화에 대한 접근에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기후 모델이 예측하는 평균기온 상승과 그로 인한 결과만이 아니다. 기후총회에서 최종 시점으로 설정한 2100년이 되기 전에, 또는 수십년 안에 빠르게 변화할 인류사회로 인해 기후총회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현재의 기후변화 예측이 들어맞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20여차례의 기후총회에서는 금세기 100년 동안 인류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기후변화가 유발되므로 어떻게 온실가스를 줄일지에 초점이 맞추어졌을 뿐이다.

 

 

2. 급변하는 세계, 적응 못하는 기후총회

 

1994년 기후총회가 시작된 이래 세계는 크게 변화했고 변화하고 있다. 기술이 세상을 거의 재구성하는 수준으로 바꾸어왔으며, 전지구적인 출산율 감소와 수명연장으로 인구는 늘어가지만 인구 구성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인구가 감소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자본주의의 말기적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후총회에서 최종 시점으로 정한 2100년까지 지금보다 더 빠르고 놀라운 형태로 일어날 것이다.

기술은 국가 간 기후변화 논의가 시작된 후 2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급속히 발달해 세상을 크게 뒤흔들어놓았다. 연구자들이나 간간이 사용하던 인터넷은 전세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고, 보통 사람들도 인터넷에 쌓인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쉽게 찾고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무선인터넷 등장과 모바일기술 발달로 수십년 전의 슈퍼컴퓨터보다 더 높은 성능을 가진 기기에 거의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해졌다. 그리고 1990년대 초까지 수십년 동안 부진했던 인공지능기술이 급속히 발달했고, 사물인터넷과 로봇기술이 생산현장과 일상생활 곳곳에 빠른 속도로 침투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20여년 전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동물복제가 일반적인 기술이 되었고, 줄기세포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몇해 전에는 새로운 크리스퍼(CRISPRCas9)라는 이른바 ‘유전자 가위’ 기술이 개발되어 유전자 조작의 신기원을 열었다.

지난 20여년간 인구증가율과 인구구성도 눈에 띄게 변화했다. 세계 인구증가율은 1990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서 2015년에는 1.2퍼센트로 줄어들었다. 합계출산율도 빠르게 감소하여 2014년에는 1960년대의 절반 수준인 2.5명으로 떨어졌다. 반면에 기대수명은 1990년의 65세에서 71세로 증가했고, 그 결과 인구구성이 크게 변화했다.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5년 동안 6퍼센트에서 8퍼센트로 늘어났고, 14세 이하 인구의 비중은 33퍼센트에서 26퍼센트로 감소했다. 생산가능인구에 속하는 1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