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

 

보수적 사회단체, 어떻게 움직이나

 

 

이나미 李娜美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연구위원,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저서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한국의 보수와 수구』 『이념과 학살』 등이 있음.

 

정현곤 鄭鉉坤

세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위원장. 공저 『천안함을 묻는다』가 있음.

 

정환봉 鄭桓奉

『한겨레21』 기자. 2013년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공작 사건 연속보도’로 한국기자상 대상 수상.

 

후지이 다케시 藤井たけ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저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역서 『번역과 주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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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환봉, 이나미, 정현곤, 후지이 다케시 ©이영균

 

정현곤(사회) 『창작과비평』 50주년 기념 연속기획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의 세번째 주제는 보수 시민운동과 관변단체입니다. 1987년 시민항쟁의 결과로 민주체제가 열린 지 30년이 다 됐는데도 사회가 퇴행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여전히 큽니다. 특히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역진이 두드러진 것 같습니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 민주적 거버넌스를 약화시키는 억압적인 지형이 형성됐지요. 한국의 보수가 이러한 억압체제 강화에 한몫을 했습니다. 근래 들어 일각에서 수구세력의 ‘점진 쿠데타’를 경고했을 정도입니다(이남주 「역사쿠데타가 아니라 신종 쿠데타 국면이다」, 『창작과비평』 2015년 겨울호 ‘책머리에’). 4·13총선 이후 그나마 사회를 퇴행으로 몰고 가는 이 구조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호 대화에서는 한국사회 보수운동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 연구, 취재 활동을 해오신 세분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우선 올해 큰 이슈가 되었던 ‘어버이연합’ 문제를 되짚어보는 것에서 시작까 하는데요, 간단한 본인소개와 함께 말씀 청합니다.

 

이 나 미 (李娜美)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연구위원,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저서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한국의 보수와 수구』 『이념과 학살』 등이 있음.

이 나 미 (李娜美)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연구위원,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저서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한국의 보수와 수구』 『이념과 학살』 등이 있음.

이나미 저는 현재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에서 공화주의의 한국적 기원을 연구하고 있고 또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가 진행하는 ‘한국 시민사회사’ 총서 발간작업에 참여 중인데, 그중 해방 후부터 1960년까지의 한국 시민사회에 대해 연구와 집필을 맡고 있습니다. 거론하신 ‘점진 쿠데타’는 정말 와닿는 표현입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정상 상태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과거에 관변단체 등 보수단체가 기승을 부린 것은 대개 이승만(承晩), 박정희(朴正熙) 등 독재정부 시기로서 정당성 면에서 취약한 정부가 집권하고 있을 때였어요. 이것은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잃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울 때 우익단체나 관변단체를 만들어 거기에 의존했음을 의미합니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어버이연합을 지원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이슈가 됐는데, 이 역시 정부가 정당성을 잃어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음을 내보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지이 다케시(이하 후지이) 저는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고 주로 파시스트를 연구했습니다. 이범석(李範奭)을 중심으로 한 족청계(族靑系)를 연구하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50년대 중반에 파시즘의 역사적인 흐름이 끊긴다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박정희체제를 파시즘으로 규정하는데, 저는 60년대 이후 관변단체는 파시즘의 흐름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파시즘은 보수주의와는 분명히 다르고 어떻게 보면 혁명적인 성격도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기존 관변단체의 성격과 다른 어버이연합의 등장은 새로운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육칠십년대 관변단체가 이권을 매개로 위로부터 조직된, 말하자면 공식 관변단체였다면, 어버이연합은 아래로부터 생겨난 비공식 관변단체지요. 최근 상황도 저는 점진 쿠데타 국면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보수세력이나 기득권층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누가 이기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망가지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박근혜(朴槿惠)라는 인물의 상징적 효과로 겨우 봉합되어 있는 것이지, 이 정권이 끝나면 그들도 어떻게 될지…… 새누리당에도 미래 전망이라는 게 없을 거예요. 그렇게 사회가 망가져가는 조짐 가운데 하나가 어버이연합의 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환봉 저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중심으로 취재를 해왔고, 최근에도 어버이연합 관련 취재를 했습니다. 보수·관변단체의 역사성보다는 최근 상황에 대해 주로 말씀드리는 게 제 역할일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저항해야 할 목표를 잃은 기존 보수집단들이 시민단체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뒤 비슷한 단체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어버이연합도 2006년에 나왔고요. 저는 어버이연합이 겪어온 일련의 과정이,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됐던 보수단체들의 명멸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어떻게 보수운동을 개척하느냐에 따라 보수단체의 미래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사실 힘이 강력할 때는 치부가 잘 드러나지 않거든요. 어버이연합이 지금 이렇게 사회문제화된 것도 ‘잘나갈 때’는 있을 수 없었던 일들이 쌓인 결과입니다. 그들의 권력을 유지해줬던 정부나 국가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정 현 곤 (鄭鉉坤) 세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위원장. 공저 『천안함을 묻는다』가 있음.

정 현 곤 (鄭鉉坤)
세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위원장. 공저 『천안함을 묻는다』가 있음.

정현곤 어버이연합 사태가 새로운 흐름으로 형성되었다가 한계에 직면한 보수운동의 순환주기를 보여준다는 정기자님의 지적은 흥미롭군요. 그들이 아무런 명분 없이도 그렇게 떠들썩하게 무법적이었던 시절이 꽤나 길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그간 정치권력뿐 아니라 여러 사회적 권력이 얽힌 일종의 점진적인 쿠테타 시도가 진행되었다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합니다. 보수의 롤백(roll back)이랄 수도 있는 그들의 움직임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폈으면 합니다.

 

보수 관변단체가 거리로 나온 배경

 

정 환 봉 (鄭桓奉) 『한겨레21』 기자. 2013년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공작사건 연속보도’로 한국기자상 대상 수상.

정 환 봉 (鄭桓奉)
『한겨레21』 기자. 2013년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공작사건 연속보도’로 한국기자상 대상 수상.

정환봉 관변단체는 굳이 싸울 이유도,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없던 조직이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만 봐도 정부가 주장하고 싶어하는 반공·발전 이데올로기를 민간 차원에서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권의 하위 파트너였지요. 특별히 공격 대상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단순히 북한이 나쁘다는 이야기만 계속 반복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러던 게 정권이 바뀌어 국민의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자유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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