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위기의 자본주의, 전환의 계기들

 

실현의 위기와 일상생활의 변모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뉴욕시립대학 대학원 교수. 지리학 박사이자 맑스주의 연구의 세계적 대가로 저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자본의 한계』 『신제국주의』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1·2』 등이 있음.

 

*이 글은 원제 “Realization Crises and the Transformation of Daily Life”를 옮긴 것으로, 2016년 6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공개강연에서 발표한 글을 추후 수정 보완했다.

 

 

볼 때마다 놀라게 되는 단순한 사실 하나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1900~99년 사이에 미국은 약 45억 톤의 시멘트를 사용했다. 그런데 2011~13년 사이에 중국은 약 65억 톤의 시멘트를 사용했다. 미국이 20세기 내내 소비한 것보다 40퍼센트나 더 많은 양을 중국은 단 3년 동안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시멘트 소비 확대는 전례없는 일이다. 미국 사람들은 시멘트가 대량으로 사용되는 것을 평생 보며 살아왔다. 하지만 중국의 시멘트 소비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에 따라 어떤 환경적·정치적·사회적 결과가 발생했을지는 어느정도 상상이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하지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시멘트 사용량에 대해 비판적인 논평을 한다고 해서, 내 입장이 반()중국은 아니라는 점이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분석할 때, 종종 국가 간 경쟁의 결과나 국가 행동과 정책의 잘잘못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게 추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계는 흔히 (실업과 좋은 일자리의 감소 등) 국내 문제의 많은 부분에 대해 중국을 탓하곤 한다. 중국에서 엄청난 양의 시멘트가 사용된다는 사실은 내 논의에서 부수적인 내용이다. 국가정책의 책임이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발생하는 문제들은 일차적으로 자본의 모순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반자본이지 반중국은 아니다.

그리고 요즘 사회과학의 작업방식에 대해서도 약간의 불만을 표시하고 싶다. 내가 처음 학계에 발을 들여놓던 당시에는, 모두가 ‘왜’라는 질문에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그 질문과 오랜 시간 씨름했고, 종종 꽤 과감하고 추측에 근거한 짐작들을 답으로 내놓기도 했다. 당시 나온 이야기들이 때로 과하거나 전혀 근거없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다소 교조적인 맑스주의적 독해의 결과였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로 차츰 주안점이 변화해왔다. 연구자들은 ‘왜’라는 질문을 점점 더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들은 ‘어떻게와 어디서’를 질문한다.

‘어떻게와 어디서’에 집중한 것은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와 어디서에 집중하면 현실의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그 복잡성을 더 잘 파헤칠 수 있으며, 교조적인 주장의 연쇄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우리는 더이상 계급투쟁의 추동력이나 조악한 기능주의 국가 행위이론 같은 거대한 설명을 앞세우지 않게 되었다. 대신 개발업자가 누구와 어떻게 협력하고, 또 어떻게 저항에도 아랑곳없이 그렇게 많은 물량의 시멘트가 필요한 초거대 건설 프로젝트를 탄생시키는지, 그 ‘어떻게’를 소상하게 보여주는 식으로 서술하는 게 요즘 사회과학의 방식이다. 우리는 지역의 조건들을 더 면밀히 살피게 되었다. 문화적이고 환경적인 차이에 대해서도 훨씬 더 민감해졌다. ‘어디서’가 중요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생겨났다. (그리스를 예로 들 수 있듯이) 자본의 끊임없는 축적이라는 기본 동력과 그 사회적 결과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국민성을 논쟁의 장에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런 모든 작업은 거대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이론에 매달리는 것이 ‘어떻게’나 ‘어디서’를 자세하게 따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푸꼬(M. Foucault)를 따라, 우리는 모든 메타이론에 회의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쪽 방향에 너무 치우쳐버렸고, ‘어떻게’와 ‘어디서’에 다소 과하게 집중하다보니 ‘왜’라는 질문을 아주 잊어버리는 지점까지 온 것 같다. 우리는 거대이론의 힘을 잠시 무시하는 게 특정 연구상황에서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아예 원칙적으로 배제해버린다. ‘어떻게와 어디서’에 몰두해온 누군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를 질문할 때마다, 거의 항상 “복잡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그 자체로 충분한 답이라는 듯이 말이다. 거기에 대한 나의 말은 이렇다. “네, 복잡한 것은 나도 압니다. 그렇지만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답해야만 합니다. 어떻게와 어디서의 복잡성에 너무 매여서 ‘왜’에 대답할 수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연구전략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거대이론을 개별 사례들과 연결해서 탐색한다면 더 심층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심층적인 질문들은, 사려 깊게 따라간다면 심층적인 이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걸 아래의 이야기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도대체 그 많은 시멘트가 중국 도처를 뒤덮게 되었는가? 시멘트는 건설에 사용된다. 이는 명백히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 조성과 도시화, 물리적 인프라 건설을 위해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이런 일들이 엄청나게 진행되어왔고, 몇년간 내가 방문한 거의 모든 도시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이 가운데서도 단연 두드러진 수치를 보이는, 이제까지 가장 극적인 사례다.

건설에는 시멘트 말고 다른 것도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철강 생산과 소비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증가해왔다. 최근 세계 철강 생산 및 사용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의 것이다. 그 철강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철광석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구리와 모래, 갖가지 광물 같은 많은 원자재들도 전에 없던 규모로 소비되는 중이다. 중국은 지난 수년간 세계 주요 광물자원의 적어도 반, 때론 60~70%까지 소비했다.

원자재 가격은 최근까지 급등 추세를 보여왔다. 모든 곳에서 채굴작업이 가속화되었다. 지난 20년 정도는 정말 오랜만에 거래조건이 원자재 생산업자들에게 유리했다. 인도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산이란 산은 모두 광물을 찾는 사람들 손에 파헤쳐졌고 거기엔 온갖 정치적·경제적·환경적 결과가 따랐다. 중국이 도시화와 인프라 투자를 왜 그토록 막대하게 늘리게 되었는지 묻는 것은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어려움에 빠진 세계 자본주의가 지난 수년간 지금만큼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음도 분명하다. 베이징의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작심하고 대공황으로부터 세계자본주의를 구해내려 한 건 아니었겠지만, 특히 세계경제가 2008년 이후 급추락하던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중국의 행동은 그런 효과를 가져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선 나는 ‘어떻게’와 ‘어디서’를 파헤쳐 들어가려고 한다. 2007~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있었고, 미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이는 전지구적 위기로 규정되었다. 1997~98년 동남아시아에서도 큰 위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지역적 위기로 규정되었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내 야구 결승전을 월드씨리즈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위기 역시 세계의 위기라 부르고 싶어한다. 그것이 어느정도는 진실이기도 하다. 미국경제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경제 가운데 하나다.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 모터스가 재채기를 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한때의 유행어는 더이상 사실이 아니지만, 여전히 미국발 대란의 여파가 세계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또한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미국의 기관과 정책입안자 들이 위기를 세계화함으로써 그 영향을 세계 전체로 분산시키려 노력했다는 명백한 증거도 있다.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이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다자간 금융기관과 금융연관성을 이용했다.

2007~2008년의 위기는 발발 초기까지는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위기는 미국에서도 특히 남부와 남서부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대체로 이 지역 주택과 부동산 시장의 극심한 투기에 따른 결과였다. 2001년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투기자금이 미국 부동산시장으로 쏟아져들어왔다. 당시 전세계에 잉여유동성이 넘쳐나면서, 그중 상당부분이 부동산시장에 흡수되었고, 부동산 가격을 한없이 끌어올렸다. 그러다가 주택 투기의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담보 대출 부분에 압류 위기가 닥쳤다. 집을 압류당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외출하거나 구매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 소비시장이 붕괴했고, 또다시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런데 그 소비시장의 주요 공급자는 중국이었다. 이것이 국지적 위기를 세계적 위기로 전환한 고리 가운데 하나였다. 또다른 고리는 금융체제를 통한 것이었다. 새로운 금융방식에 투자하라는 꼬임에 넘어갔던 사람들은 모두 돈을 잃었다. 부채의 상당부분을 보유한 은행들은 파산할 위험에 처했고, 소비자대출을 포함해 모든 곳에서 대출 요건을 강화했다. 지금 막 큰돈을 잃고 일자리까지 잃은 상태에서, 대출까지 막힌 소비자들은 더더욱 외출하거나 구매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미국 소비재시장의 약세는 확산·심화되었다. 세계 전체가 끝없는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2008년 중국의 수출산업은 붕괴까지는 아니라 해도 실로 엄청난 수축을 경험했다. 불과 수개월 만에 수출량이 2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중국 통계가 어느 만큼이 사실인지 믿을 수 없기로 악명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일각에서는 2008~2009년 수출시장의 붕괴로 중국 내에서만 3천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3천만이 아니라 실제로는 2천만 정도였다고 해도, 엄청난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중국정부는 전통적으로 잠재적 사회 불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그런데 3천만명의 실업자가 생겼다면, 실로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중국정부가 당시 여러 조치를 취한 이유가 바로 이 명백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확신한다.

2009년 말 전세계 순실업 총계 추산치를 담은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노동기구(ILO)의 합동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당시 실업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중국의 순실업자는 약 3백만명에 불과했다. 중국은 불과 1년 정도 만에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27백만명을 다시 노동시장으로 흡수해낸 것이다. 이는 전혀 유례가 없는 경이로운 성과다.

그럼 중국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그토록 엄청난 잉여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었는가? 중앙정부는 기본적으로 돈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나서서 돈을 빌려주도록 했고, 가능한 한 많은 프로젝트와 초거대 프로젝트를 만들어내도록 종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