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영희 『베를린장벽의 서사』, 창비 2016

여전히 벤치마킹할 가치가 있는 독일 통일

 

 

임을출 林乙出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peter@kyungnam.ac.kr

 

 

173_548남북관계를 지켜보면서 지금처럼 목마름이 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201616일)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높은 수준의 대북제재는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을 더욱 심화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정권의 올해 초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도발, 이에 대한 유엔의 대북제재와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5월 초 7차 당대회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 등이 물고 물리면서 남북 간 긴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압박하기 위해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지속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악화한데다 국제적 문제라는 점에서 남북관계는 북핵 문제의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더이상 나빠질 것이 없어 보이던 남북관계는 우리 정부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다시 고비를 맞고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북중러한미일’ 대립각 구도가 선명해지면서 통일의 외적 환경은 더욱 복잡해졌다.

통일정책의 길을 잃은 터에 발견한 『베를린장벽의 서사: 독일 통일을 다시 본다』는 그야말로 오랜 가뭄 끝의 단비 같았다. 우리의 암울한 현실이 독일과 극명하게 대조되어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너무나 설득력있게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독일통일에 관한 2, 3차 자료, 특히 독일·소련·영국·미국·프랑스 전문가 및 정책참여자 들의 저서와 기록을 토대로 쓰인 이 책은 통일로 가는 대장정의 지침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근현대 유럽 정치의 난맥상을 명쾌하게 정리하면서, 세계정세 속 한반도 문제를 깊이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만 이 책은 통일의 외적 조건에 집중한 것이라 내적 조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담고 있지 않아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 4강과 통일외교를 어떻게 추진해야 되는지에 대한 교훈과 통찰보다도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협력이라는 내적 조건을 갖추는 과제가 더 중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곳곳에 녹아 있는 독일의 걸출한 대정치가와 외교관 들의 비전, 지혜, 통찰과 리더십을 통해 통일의 내적 조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힌트를 충분히 준다. 아데나워(K. Adenauer)·브란트(W. Brandt)·콜(H. Kohl) 총리의 정파를 넘어선 깊은 사려, 예를 들면 정권이 바뀌어도 통일을 시야에 두고 정책을 계승하는 독일 정치인들의 통찰과 결단 등에 대한 묘사는 특히 눈여겨볼 대목이다.

독일 메르켈(A. Merkel) 총리가 언급했듯이 통일은 행운 이상의 ‘신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통일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의 한수’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신의 한수를 느끼게 하는 교훈과 통찰을 곳곳에서 제시한다. 저자는 ‘서방정책동방정책동서독 통일협상’에 이르는 지난한 통일 과정을 흥미로운 복선과 극적인 일화를 담아 한편의 대서사로 만들어냈다. 한국과 독일의 상황은 많이 차이가 나지만, 통일에 이르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저자 김영희(金永熙)가 강조했듯이 통일협상 과정 등 우리가 여전히 벤치마킹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상황이 달라 독일 통일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은 치명적인 무지와 나태의 발로라는 저자의 일갈에 적극 공감한다. “통일은 준비하되 말하지 않는다” “평화를 건너뛴 통일은 있을 수 없다” “통일정책은 한반도 평화 정착, 남북한 대화·화해·협력의 축적을 골격으로 해야 한다”(이상 10~11면) “통일은 (…) 일회성 행동이 아니라, 많은 조치와 단계를 거치는 과정이다” “한 정권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붕괴된다는 기대는 환상이다”(이상 55면) 등등의 표현은 통일을 준비하는 모든 이에게 금과옥조처럼 들린다.

저자는 지난 2월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조치를 두고 “개성공단은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전략적·심리적으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존재였다. 그 거위를 단칼에 죽여버린 것”이라 일갈했다.(360면) 중앙일보 국제문제 전문기자인 여든의 저자가 독일과의 구체적인 사례 비교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평가한 우리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은 거의 영점에 가깝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서는 “분노조절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 그런 자질이 없어 보인다”고까지 혹평했다.(360면)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도 ‘인내심’이다. 그는 “통일이나 평화는 무엇보다 대화에서 출발한다”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을 설득하여 대화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372면)

사실 오늘날 한반도 정세를 보면, 북한과 미국의 핵전쟁에 휘말려들 것인가가 시대의 중요한 실존적 문제로 부상한 상태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앞두고 늘상 벌어지는 북미 간 무력시위 경쟁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자아낸다. 한반도가 처해 있는 절박한 현실을 보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통일보다 당장의 평화 만들기에 집중할 것을 강하게 권고한다.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핵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첫단계로 저자는 ‘핵 모라토리엄’을 제시한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고 평화체제가 휴전체제를 대체하면서 한반도 양국과 주변국들이 서로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되었을 때 모라토리엄을 비핵화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드 배치 문제 같은 경우엔 그야말로 지혜가 필요한데 일단 가능한 한 시간을 길게 끌며 미중 양국의 체제경쟁을 활용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나아가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 평화적 교류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민사회의 대북 인도지원을 과감하게 개방하여 풀뿌리 교류를 확대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생생한 현장의 실제와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독일통일의 긴 과정을 쉽고 명쾌하게 그리고 깊게 분석한 이 책은 현재의 위기 국면을 분석하고 타개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되기에 충분하다. 대통령을 비롯해 통일을 비전으로 삼고 정진하고 있는 많은 정치인, 학자, 언론인, 그리고 학생 들에게 주저없이 일독을 권한다. 각자가 이 책을 읽고 교훈들을 가슴에 새긴다면 어느 순간 통일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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