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제19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이주혜 李柱惠

1971년 전주 출생. leestori@hanmail.net

 

 

 

오늘의 할일

 

 

세 자매가 천변 산책로에 돗자리를 폈다. 평일 대낮이었다. 바람에 은색 돗자리 한 귀퉁이가 자꾸 펄럭였다. 첫째가 그 귀퉁이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무겁지 않은 가방이 들썩였다. 이놈의 바람이. 첫째는 일부러 가방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두 동생은 신발을 벗고 돗자리 위로 올라앉았다. 검정 구두 두켤레가 함부로 방치되었다. 세 자매 모두 어두운 색 옷을 입고 있었다. 채도랄지 담도랄지 그런 건 조금씩 달랐지만 어쨌든 검었다.

자매는 한동안 말없이 숨을 골랐다. 셋 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푸석하게 부어 있었다. 둘째가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큼직한 가죽 가방에서 캔맥주를 꺼내 자매에게 돌렸다. 셋 다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히 맥주를 들이켰다. 잠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 덕분에 꽃놀이를 다 하네? 드디어 첫째가 입을 열었다. 개울가엔 꽃나무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는데 자매가 앉은 곳 바로 앞에 우람한 수양벚나무가 꽃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자매는 내내 겨울을 살다 갑자기 봄의 한가운데로 내쳐진 것 같은 당혹감을 느꼈다. 이렇게 화사해도 좋은가 싶게 꽃들이 낭자했다. 검고 무거운 옷을 입고 꽃그늘 아래 앉은 자신들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소포 같았다. 그래도 봄이 좋긴 좋구나. 이 와중에도 꽃을 보니 웃음이 나오잖아. 첫째가 말했다.

누가 봄씨 아니랄까봐 봄 찬양이 늘어지시네. 둘째의 대꾸가 끝나자마자 셋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셋만이 알고 셋만이 공유해온 먼 옛날의 약속을 꽤 오랜만에 떠올렸다는 기꺼움의 표현이었다. 시작은 이랬다. 글쎄, 느이 아버지가 자식 욕심이 얼마나 많았는지, 결혼 첫날밤 베갯머리에서 자기는 최소한 넷은 낳아야겠다는 거라. 그때가 언제야?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운동 때 아냐? 둘 이상만 낳아도 무식하단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라고. 셋도 아니고 다섯도 아니고 왜 하필 넷이냐고 물었더니(4자는 왠지 불길하잖니) 안 물어봤으면 섭섭해했을 만큼 준비한 대답을 줄줄 늘어놓는 거야.

자매의 아버지는 자식을 넷 낳아 사계절을 뜻하는 한자를 하나씩 넣어 이름을 지어주는 게 꿈이었다. 춘하추동 네 글자는 그에게 시간과 세계를 완성하는 퍼즐 조각이었다. 만약 첫애가 딸이면 춘희나 춘애, 아들이면 춘수나 춘영 정도랄까? 둘째가 딸이면 하연이나 하선, 아들이면 하성이나 하문이 좋겠지. 신랑의 고백을 들은 자매의 어머니는 ‘춘’이나 ‘추’가 들어간 이름이라니 다소 촌스럽겠다고 생각했지만, 첫날밤 신부의 입으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고 또 내리 넷을 낳을 자신도 없어 일단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유보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는 뜻이었지 적극 찬성합니다,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부의 고갯짓을 동의로 해석한 자매의 아버지는 이듬해 첫딸이 태어났을 때 춘희나 춘애라는 이름을 탐탁지 않게 여긴 아내와 한판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 결국 아버지의 오랜 꿈이 승리했고 첫째의 이름에는 봄 춘()자가 들어가게 되었다. 2년 후 태어난 둘째딸의 이름에는 여름 하()자가, 그로부터 2년 후 태어난 셋째딸의 이름에는 가을 추()자가 들어갔다. 2년 터울로 내리 세 딸을 낳은 자매의 어머니는 계절의 소임을 다한 식물처럼 시들시들 말라갔다. 자매의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넷째는 끝내 태어나지 못했다. 춘하추동 네 글자로 이루어진 그의 우주적 소망은 그렇게 미완의 상태로 남는 듯했다.

첫째와 셋째는 학창시절 내내 춘자나 추녀 등의 별명을 피할 수 없었다. 두 딸이 짓궂은 놀림을 당하고 동시에 울며 돌아온 날 어머니는 세 딸을 나란히 앉혀놓고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려주었다. 어머니의 구술에는 본인의 체념과 딸들을 향한 미안함이 덜 녹은 설탕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자백과도 같은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세 딸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기는커녕 원망만 더 커졌다. 꼭 네 글자로 짝을 맞추고 싶었다면 춘하추동 말고 다른 한자도 많았을 텐데. 천자문만 들춰봐도 참고할 한자가 무려 천개나 있지 않은가. 일테면 매란국죽이랄지. 아니 굳이 한자를 꼭 써야 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 우리말을 썼다면 두고두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을 것이다.

이날부터 자매는 서로를 봄 여름 가을이라고 불러주었다. 가끔은 매화 난초 국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름을 향한 불만이 커질수록 결속력도 단단해졌다. 물론 심사가 틀어지면 이 장소팔고춘자야, 못생긴추녀야, 소리가 주먹질과 함께 오가기도 했다. 가끔은 이름이 비교적 평범한 둘째도 하지감자야, 하녀나부랭이야 소리를 면치 못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자매는 새 이름의 사용처를 집 밖으로 늘려갔다. 사실 내 진짜 이름은 봄이야. 아버지가 우리말을 너무 사랑하셔서 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보수적인 할아버지가 반대해서 호적에만 한자 이름을 올리고 집에서는 다들 봄이라고 불러. 울 아버지 기분 좋은 날엔 매화야, 이렇게 부르기도 해. 매화는 봄을 상징하는 꽃이잖아. 친구들은 아쉬운 일이 생기면 봄아, 하고 불렀고 장난기가 발동하면 춘자야, 했으며 이도 저도 아닐 때는 그냥 출석부에 오른 이름을 불렀다.

 

*

 

아무리 절간이라도 그렇지 사이다가 뭐냐, 사이다가. 봄이나 매화로 불릴 수도 있었던 첫째가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