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위기의 자본주의, 전환의 계기들

 

특별대담: 데이비드 하비백낙청

자본은 어떻게 작동하며 세계와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최근 저서로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2013년체제 만들기』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백낙청 회화록』(전5권) 등이 있음.

 

데이비드 하비 David Harvey

뉴욕시립대학 대학원 교수. 지리학 박사이자 맑스주의 연구의 세계적 대가로 저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자본의 한계』 『신제국주의』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등이 있음.

 

*본 대담은 2016년 6월 23일 창비서교빌딩에서 진행되었으며 한겨레 2016년 7월 1일자에 그 일부가 게재된 바 있다. 영어로 진행된 이 대화의 녹취록은 리사 킴 데이비스(Lisa Kim Davis)가 작성했으며 두 대담자의 확인을 거친 후 백낙청 명예편집인이 우리말로 번역했다.

 
 

백낙청 먼저 계간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까지 먼 길 와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바쁜 일정을 소화하셨지요. 금주에 우리는 2016년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라는 또다른 기념행사를 치렀는데 영어통역이 없는데도 일부러 오셔서 오후 내내 동석하셨습니다. 그저께는 ‘가치실현의 위기와 일상생활의 변모’라는 제목으로 공개강연을 하셨고,1) 어제는 한정된 인원의 전문가 및 활동가 들과 더불어 선생의 저서 『반란의 도시』2)를 중심으로 워크샵을 했는데 다양한 분야에 걸친 토론이 벌어졌지요. 참여하신 행사들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 해주시겠습니까.

 

데이비드 하비(이하 하비) 제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출판사가 조직하는 행사가 대학이 조직하는 행사보다 더 흥미롭다는 사실입니다. 출판사들은 순전히 학술적인 행사보다 더 다양한 청중과 참여자를 동원하기 때문이지요. 이번에도 청중의 구성이 썩 마음에 들었고, 내가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기준에 따르면 잠드는 사람이 눈에 안 띄더군요.(웃음) 강연 뒤의 질문이나 이튿날 워크샵에서의 질의와 토론을 보면 적어도 한국사회의 일각에서는 제가 핵심적이라 생각하는 문제들에 폭넓은 관심이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청중에게 물어보셔야겠지요.

 

 

실천과 직결된 『자본』 읽기

 

백낙청

백낙청 선생의 강연 제목과 관련해서, 외국에서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맑스경제학에 관심있는 분들이 가치의 ‘실현’(realization) 문제는 많이 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생산과 실현의 모순적 통일성’이 맑스(K. Marx)의 주요 개념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실현의 측면이 경시되기 일쑤고 선생이 지적하시듯이 그게 실천적 투쟁에 손실을 가져오게 되지요. 선생은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자본』 제2권이 제1권에 비해 읽는 재미가 훨씬 덜하다는 점을 드셨는데, 다른 나라의 맑스 연구에도 해당되는 거겠지요?

 

하비 그렇습니다. 맑스를 읽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는데, 저는 맑스가 자본을 하나의 진화하는 유기적 체계로 이론화한다는 생각에 점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유기체의 비유는 아니에요. 무슨 몸뚱이 같은 것이라기보다 여러 부분이 상호 연관된 하나의 느슨하게 연결된 생태체계 비슷한 것이지요. 그 전체는 자본의 유통과 축적에 의해 추동됩니다. 유통의 과정 전반을 살펴보면 그것이 도처에서 중단될 수 있고 온갖 종류의 장애에 봉착함을 알 수 있지요. 생산에만 집중해서는 자본의 체계 전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맑스가 『자본』 제1권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생산이고, 제1권이 경제에 관한 훌륭한 학술서일 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걸작임을 누구나 인정합니다. 제2권에 가면 다른 시각으로 유통과정을 분석하는데 이걸 문학적 걸작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지요.

 

백낙청 그러다보니 맑스가 생산과 유통을 함께 다루는 제3권까지 못 가고 마는 경우가 많겠군요.

 

데 이 비 드 하 비 (David Harvey) 뉴욕시립대학 대학원 교수. 지리학 박사이자 맑스주의 연구의 세계적 대가로 저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자본의 한계』 『신제국주 의』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등이 있음.

데이비드 하비

하비 실은 제2권에서도 그런 종합을 약간은 시도합니다. 제가 점점 더 짜증스럽게 느끼는 것은, 심지어 원로 맑스연구자들조차 “제2권을 읽었는데 어찌나 재미없던지 다시는 안 읽었다”고 말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저는 제2권에서 다루는 많은 주제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예컨대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3)에서 ‘시·공간의 압축’(timespace compression)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부분을 자본회전의 시간과 회전시간 단축의 중요성에 대한 맑스의 논의에 의존했는데, 이건 바로 『자본』 제2부의 한가운데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나는 항상 제2권의 내용에서 많은 것을 배워왔기에 그것이 좀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형식으로 제시되지 않은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제1권에서도 맑스는 상품을 시장에서 판매함으로써 화폐형태로 실현하지 못하면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곧 가치란 전적으로 그것의 실현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인데, 다만 제1권에서는 실현의 조건들을 검토하지 않는 겁니다. 이 단계에서 맑스는 모든 상품이 그것의 가치대로 교역된다고 전제하고 있는 거예요.

 

백낙청 출판계에서는 그 문제가 쉽게 실감되지요. 책을 찍어냈는데 팔지를 못하면 종이를 백지로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못하거든요.(웃음)

 

하비 내 책만 해도 『맑스 자본 강의 1』은 잘 팔리는데 『맑스 자본 강의 2』는 그다지 안 팔리는 게 눈에 띕니다.4)2권 읽는 일이 중요하다는 나의 열렬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그게 잘 안되고 있는 거지요.

 

백낙청 가치실현을 두고 선생이 말씀하시는 것 중에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이 모든 것이 실천적 투쟁과 직결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자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거지요.

 

하비 요즘 투쟁이 벌어지는 큰 현장 중 하나는 주택비용과 집세 문제, 곧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의 주거를 구하는 문제입니다. 노동자들에게 생산참여의 댓가로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더라도 수입의 대부분이 곧바로 높은 주거비용 형태로 토지소유주와 건설업자 들에 의해 회수되는 문제지요. 제가 찾아가는 도시마다, “부동산 가격이 어떤 상황인가요?”라고 물으면 “예, 그게 진짜 심각한 문제예요” 하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개발업자들과 관련된 투쟁, 철거민 문제, 곧 개발업자 고층건물 건설을 위해 공간을 치워주는 과정에 따르는 투쟁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개발업자들은 초거대 건설 프로젝트를 너무도 좋아하고 많은 경우 국가도 개입돼 있지요. 저들은 또한 값비싼 고급아파트 짓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감당할 만한 주거를 건설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도시마다 우리가 목격하는 엄청난 불평등이 나타나고 이것이 대다수 주민들의 일상생활상의 관심사가 됩니다. 제게는 이런 종류의 과정들을 자본의 유통 및 시장에서의 가치실현에 대한 이해와 통합하는 작업이 늘 중요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맑스의 일반이론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하는데, 그러자면 자본의 흐름이 형성하는 ‘진화하는 생태체계로서의 자본’이라는 유기적 개념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얘기는 전적으로 맞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주거문제만도 아닙니다. 점증하는 교통비용도 있지요. 도시 내에서의 이동가능성은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도시문제들이 재화의 소비를 통한 가치의 실현과 그 재화들의 가격에 관한 것입니다. 상품의 가치가 어떻게 화폐로 전환되는가는 경제문제의 핵심이지요.

 

 

‘일대일로’ 등 중국의 행보를 어떻게 볼까

 

백낙청 선생의 강연과 그간의 저술활동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테마는 현시점에서 공장보다 도시를 잉여가치 생산의 주된 현장으로 보며 따라서 해방운동의 중대 현장으로 설정하는 작업이지요. 그와 관련해서 선생은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나아가 중국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벌이는 사업을 선생이 말씀하시는 ‘공간적 해결’(spatial fix)의 최신 사례이자 유례없는 대규모 사례로 거론하셨습니다. 아시겠지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기획에 대한 발제가 있었고 중국대륙뿐 아니라 타이완과 홍콩에서 온 참여자들도 대개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한 최신, 최대의 ‘공간적 해결’로 규정하신 선생보다 한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류였요. 중국 가셨을 때도 이런 주장을 들어보셨겠지요?

 

하비 저는 그런 기획들에 대해 상충하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 내부의 현실로 보자면 약 10년 전만 해도 고속철도 연결망이 없었는데 지금 중국은 거의 완전히 통합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갈 때 비행기보다 고속철로 가는 걸 좋아해요. 중국의 교통망이 촘촘히 짜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걸 부정적으로만 말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고속철을 타는 부류 보면 전문직이나 기업의 엘리트들이에요. 그러니까 이 거대한 투자의 혜택을 입는 서 계급적 차등이 있는 겁니다.

다른 일면을 보면 이런 개발의 많은 부분이 부채로 시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거대한 투자계획의 결과 중 하나는 중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육박하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누가 이 빚을 갚느냐는 게 문제가 됩니다.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행태를 보면중국이 반드시 그런 식으로 하리라고 예단하는 건 아니지만나중에 가서 그 부채를 떠안는 것은 대개 가장 불리하고 주변화된 주민들입니다. 중국의 해외 차관과 투자의 상환을 두고도 같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지요.

에꽈도르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에꽈도르에 대한 해외투자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의한 것입니다. 중국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는 에꽈도르 에너지 수요의 60%를 충족할 거대한 수력발전 댐 건설입니다. 물론 중국의 시멘트와 중국의 철강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건설공사를 통해 중국의 과잉 생산능력을 흡수하는 거지요. 그런데 중국은 에꽈도르에 돈을 빌려주고, 에꽈도르는 언젠가 갚아야 합니다. 갚는 방법의 하나로 에꽈도르는 자기 나라 남부의 광물자원을 마음대로 개발할 권리를 중국에 주는 거예요. 그 결과 그 지역 원주민들과 중국 광업회사들 간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중국 회사들이 직접 연루된 것은 아니지만 주로 지방정부들이 나서고 중앙정부가 지원해서 원주민들을 강력히 탄압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이런 결과들은 우리가 이게 좋은 사업이다,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해 많은 주민들의 전기수요를 충족시키는 일이다라고 말할 때 흔히 간과되곤 하지요.

따라서 온갖 문제들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의 발언자들이 중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프리카의 경제까지 세계적으로 통합하는 교통망을 창출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하는 게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저는 우리가 항상 두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거예요. 첫째는 누가 혜택을 보고 누가 갚을 거냐, 둘째는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입니다. 그런 사항들을 추가할 때 저는 그런 프로젝트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하기가 한층 어려워지고 심각한 의문을 품을 여지가 커지는 겁니다.

 

백낙청 회의에서 중국의 지리학자 쉬 진위(徐進玉)가 제기한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곧, ‘일대일로’ 기획이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 측의 방어적 행동이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건전한 도전에 해당한다는 주장5) 말이지요.

 

하비 그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잉여자본과 잉여노동을 흡수하는 차원에서는 중국이 달리 선택할 수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대량실업과 다수 철강공장의 폐쇄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다시 말해 중국 측에 지정학적 계획이 있건 없건 중국의 과잉 생산능력을 흡수하기 위해 자본을 수출하지 않을 수 없게 떠미는 경제논리가 있었던 거지요. 물론 나는 중국공산당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십중팔구 두가지 요인을 다 감안했을 겁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공간적 동력을 해석하는 나의 이론방식으로는 2005~2008년의 중국으로서는 경제성장을 계속하고 심지어 경제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지금과 같은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고 봅니다.

 

백낙청 글쎄요, 저도 저의 동아시아 동학들이 자본주의의 논리와 ‘공간적 해결’ 개념에 대해 의례적인 동의만 해둔 채 지정학적 측면에 거의 전적으로 몰입하는 데는 찬동하지 않습니다. 선생이 지적하시듯이 그건 중국당국이 자본의 논리 때문에 무언가 이런 걸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경시하는 거지요. 하지만 어제 워크샵에서 선생은 두가지 권력논리, 즉 영토주의적 논리(territorial logic)와 자본주의적 논리(capitalist logic)를 말씀하셨는데,6) 이 개념을 도입해서 중국의 시도를 단순히 신자유주의의 한 사례로 보는 대신에 예의 두 논리를 결합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보면 어떨까요? 애덤 스미스(Adam Smith)야말로 이런 결합을 제창한 사람이라고 선생 스스로 지적하셨지요. 곧, 그는 시장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나라들의 부()’, 인민을 포함한 저들 나라의 국부에 기여할 거라고 주장한 거지요. 저는 대략 1960년대까지는 자본주의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런 결합을 어느정도 성취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개발국가 또는 발전주의국가 이념도 말하자면 그런 목표를 내세웠던 거지요. 그에 비하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논리에 전적으로 몰입하려는 시도가 됩니다. 물론 군사력과 경찰력을 포함하는 국가권력에 의존하면서 그러는 거지만요. 상황을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중국은 자본주의적 논리에 전념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시도에 일정한 수정을 가하려는 노력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성공여부는 물론 별개 문제지만요.

 

©이영균

 

하비 저는 조반니 아리기7)와 이 문제로 늘상 논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조반니의 주장인즉 중국에서 시장의 침투, 시장으로의 전환, 개발의 여러 측면이 드러난다고 해서 중국당국이 자신의 사회주의적 권력논리를 전면적으로 포기했다고 단정하지는 말자는 것이었어요. 그가 제기한 문제는 현상의 분석에 따른 어떤 예측을 하기보다 중국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다른 전략에 대해 예민한 의식을 유지해야 된다는 거였습니다. 저의 반론은 대략 이런 식이었지요. 사회주의 논리가 여전히 하나의 선택지라는 당신의 주장이 1990년대 말엽까지는 옳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략 2000년대부터 중국의 영토적 논리는 과잉축적과 공간적 확장이라는 자본주의 논리에 추동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논리를 풀어놓았고 자본주의 논리는 그들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점점 더 통제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거였지요. 그들은 세계시장의 조건에 대응해야 하고, 따라서 미국 소비시장의 파탄은 중국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2007년과 2008년 당시에 중국, 특히 중국 남부의 수많은 수출산업이 폐쇄됐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논리가 휩쓸고 들어와서 실질적인 통제력을 행사하는 사례지요. 그렇게 되면 중국은 대응을 해야 되고 대응은 자기 방식이 아니라 자본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일단 호랑이를 풀어놓으면 그 꼬리를 붙잡고 있어야 하게 마련이지요. 제가 과장하는지는 모르지만, 중국정부가 자신의 영토 논리를 갖고 자본주의 논리를 얼마나 제어할 수 있을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들이 예컨대 1990년대보다 훨씬 통제력이 줄었다고 보며 점점 더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중국이 자국 경제를 시장교환체제로 인증받는 등의 방향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그들은 WTO(세계무역기구)의 기준에 순응해야 고 자본주의 권력논리에 더욱 통합되어야 하며 여러 대안들 사이에 선택할 자유가 점점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그게 조반니에 대한 내 반론의 핵심이었어요. 요컨대 사회주의적 영토 논리가 통제할 능력에 대해 그가 너무 낙관다는 거였지요. 자본주의체제는 점점 더 금융화왔고 세계 금융에 대한 중국 금융의 통합도는 급격히 높아져왔습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중국당국이 자본주의 논리에 온갖 양보를 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제국주의와 ‘약탈에 의한 축적’

 

백낙청 호랑이를 풀어놓고 그 꼬리를 잡고 있다는 비유와 관련해서는, 그 호랑이가 얼마나 건강하며 언제까지 살아남고 힘을 쓰리라 예상되는지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나중에 세계자본주의의 전반적 상황을 논할 때 재론하기로 하지요.

선생의 강연현장에서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또 하나의 문제는 ‘새로운 제국주의’와 그 특징을 이루는 ‘약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선생 스스로 그 개념을 맑스의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과 충분히 구별하지 못했었노라고 하셨는데 그 해명을 다시 해보시면 어떨까요?

 

하비 맑스에게 본원적 축적은 자본축적의 전제조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임금노동과 화폐화된 상품교환체제와 상품시장이 미리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 말입니다. 그런 요소들이 이미 있어야 자본가가 들어와서, 나는 이 임금노동 중 일부를 사서 잉여가치를 생산토록 하고 시장에서 판매할 상품을 생산케 하겠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순환 과정이 시작도록 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요.

이를 달리 표현하면, 자본주의 발달 초기단계에는 임금노동과 화폐자본이 엄청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자본이 자신의 존재조건을 재생산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임금노동과 화폐자본을 생산할 길을 찾아야 했어요. 이걸 해낸 것이 본원적 축적의 폭력입니다. 사람들을 토지에서 내쫓아서 그들이 살기 위해 임금노동자가 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게 만들고, 돈이 어떤 식으로든 모일 수 있도록 경제의 충분한 화폐화가 이뤄져야 했고, 돈을 한군데 모으는 초보적 은행제도가 생겨서 돈이 자본으로 유통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전제조건들이 제대로 갖춰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맑스 원축이론의 목표는 이런 전제조건들이 전통사회에 대한 폭력적인 개입과 파괴, 금의 사재기, 기타 등등의 방법으로 이룩되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교회와 국가를 통해 고리대금업자들이 봉건 귀족층을 파산시켜 부르주아를 위해 화폐를 풀어놓는 역할을 했지요. 이것이 맑스 원축론의 요지예요. 그런데 본원축적의 요소가 항상 존재하리라는 점을 맑스가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본주의가 자기재생산 조건을 산출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일단 자본주의가 순환을 시작하면 원축의 요소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다고 말한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자본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화폐자본을 창출하며 산업예비군의 생산을 통해 임금노동자들을 만들어내는 거지요. 물론 세계의 어떤 부분에서는 본원적 축적이 계속되는 양상을 우리는 보아왔고 원축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인도에서 농민사회의 파괴가 진행 중이고 물론 중국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현대세계에서 본원적 축적이 지속되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풍부한 자본이 있고 풍부한 노동력이 있는데도 자산가치를 강도 같은 수법으로 인구 한 부분의 호주머니에서 다른 부분의 호주머니로 옮겨놓는 과정입니다. 저는 주택차압 위기를 예로 들었는데 미국에서 6백만 내지 8백만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어요. 2007년과 2008년에 흑인들은 자신의 자산가치 중 60퍼센트 내지 70퍼센트를 잃었고 백인들은 자기 재산의 3분의 1가량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인구의 여러 부분에서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는데 그 모든 자산가치가 어디로 갔습니까? 월스트리트는 대략 이 손실에 맞먹는 금액을 자신들의 상여금으로 지급하고 있어요. 이 과정을 검토한 어느 미국 판사는, “이는 미국 역사상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의 최대 규모의 부()의 이전이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물론 특권에서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특권을 지닌 사람들 쪽으로의 이동이었지요. 이것이 뜻하는 바는 공황기에도 부자는 더 부자가 될 수 있고 가난한 자들은 훨씬 더 가난해진다는 겁니다.

 

백낙청 아마 앤드루 멜론(Andrew Mellon)이었을 텐데, 그가 한 말 아시지요? “공황기에는 자산이 그 본래 주인들의 손에 되돌아온다”고 했지요.

 

하비 꼭 맞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주택차압 위기라든가 대기업이 파산신청을 하는 방식이라든가 제약회사가 약품값을 한알에 5달러에서 500달러로 올리는데 그걸 막을 도리가 없다든가,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부가 전이되는 현실을 거론할 언어가 필요합니다. 이를 두고 나는 ‘약탈에 의한 축적’이라 부르는 거지요. 이런 현실의 한 징표는 토지의 약탈과 추방, 철거 등이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는 일반적인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임금노동력을 창출하는 행위가 아니에요. 그냥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자산을 옮겨놓는 일입니다. ‘약탈에 의한 축적’은 그런 것이고 그 덕에 월스트리트가 위기의 시대에 번창할 수 있는 겁니다. 또다른 표현은, 부자들은 좋은 위기를 결코 허비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실제로 많은 부자들이 2007년과 2008년의 위기를 통해 큰 이득을 봤습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많은 경우에 가치실현의 과정과 직결되는 자산이전의 메커니즘, 가치실현의 위기와 약탈을 통한 축적 사이의 관계를 거론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부의 이전을 본원적 축적이라 부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어요. 그 둘은 각기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는 상이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거든요.

 

백낙청 그렇습니다. 충분한 자본축적이 안된 시기에 벌어지는 약탈에 의한 축적과 자본이 과잉인 상태에서 벌어지는 약탈에 의한 축적을 구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저는 ‘약탈에 의한 축적’ 개념을 확대하여 원축기로부터 시작해서 약탈에 의한 축적이 눈에 덜 띄는 시기를 거쳐 그것이 다시 현저해지는 모든 시기를 망라하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른바 원축기라는 첫 단계는 엄밀히 ‘자본주의 이전’이라기보다 농업자본주의 시대와 실질적으로 겹치며, 이때 국내뿐 아니라 아메리카대륙과 아프리카의 부를 대대적으로 약탈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거든요. 또한 18세기로 오더라도 대서양 노예무역이 최대치를 찍은 것은 18세기 말엽이었고 곳곳에서 식민지사업이 전행되었습니다. 그러니 약탈에 의한 축적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던 겁니다. 실제로 선생의 신간에 수록된 어느 논문에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8) 맑스의 탁월성은 그가 수많은 구체적 역사적·사회적 조건들을 일단 사상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최선의 조건에서도다시 말해 공공연한 약탈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도결국은 자신의 무덤 파는 인력을 산출하게 마련임을 입증한 점이라는 거지요. 동시에 그 다른 일면은 맑스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맑스가 매우 특수화된 작업, 다분히 추상화된 작업을 수행하고 있음을 곧잘 잊어버리게 만들었고, 따라서 우리가 진짜 원만한 현실분석을 하려면 사상됐던 역사적·사회적 조건 들을 다시 집어넣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통찰을 적용해서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맑스가 그의 경제학적 분석의 집중대상으로 삼은 시기에도 약탈에 의한 축적은 진행되고 있었고, 어찌 보면 그것이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의 수탈 못지않게 역사적 자본주의의 본질적 일부라고요.

 

하비 그 말에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때때로 나는 내가 무얼 말했고 무얼 말하고자 했는지 잊어버리는데,(웃음) 제가 말하고자 한 것은 본원축적이 자본주의의 전 역사를 통해 존재했고 약탈에 의한 축적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1970년대 이후로 자본이 투자를 하고자 할 때 고전적인 방식이라면 생산에 투자해서맑스가 기술하는 식으로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얻어내는 작업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투자를 할 기회가 점점 줄어든 거예요. 그래서 자본은 약탈에 의한 축적 사업에 점점 더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약탈에 의한 축적이 1950년대나 60년대에 비해 점점 더 중요해진 거예요. 본원축적의 과정이 특히 이른바 제3세계에서 엄연히 진행 중이었지만 세계자본주의로서는 약탈에 의한 축적이 그다음 시기만큼 중요하진 않았다고 하겠어요. 우리가 1960년대를 검토한다면 우리 주변에서 약탈에 의한 축적으로 보이는 일이 많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예컨대 제약산업과 약값 관련해서 일어난 일들, 헤지펀드가 제약회사를 접수해서 약값을 대폭 올리는 일 같은 게 안 보일 거예요. 흥미로운 것은 그 약값을 개인이 내는 게 아니라 보험회사들이 내요. 그러고는 나중에 모두들 의료비가 너무 올라간다고 불평을 합니다. 실은 이게 많은 부분 헤지펀드들이 약탈에 의한 축적을 수행하기 때문이지요. 문제를 연금 권리의 상실로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벌어놓은 연금권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이 진행되었고 건강보험 권리의 상실, 교육에 대한 공공지원의 상실 등 이런 종류의 손실이 많습니다. 내가 보기에 현대 자본주의는 바로 면전에서 훨씬 많은 약탈에 의한 축적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 현실을 그런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또 하나의 이유는, 미국에서 아이오와주 농사꾼과 이야기하면서 당신이 본원적 축적의 희생자인 걸 아느냐고 묻는다면, 도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 거예요. 하지만 약탈을 통한 자본축적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금세 알아듣지요. 이렇듯 그건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는 걸 목격하는 과정을 논의할 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현장의 투쟁을 넘어 도시의 투쟁으로

 

백낙청 이제 도시문제로 넘어가십시다. 선생께서 최근 수십년간의 민중투쟁 중 대부분은 도시에서의 투쟁이라는 명백한 경험적 사실을 부각신 게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은 또 빠리꼬뮌의 예를 들면서 그것이 엄밀한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봉기라기보다 도시의 투쟁이었던 점을 지적하셨지요. 문제는 이런 경험적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입니다. 선생은 대다수 좌파 내지 진보적 사상가와 활동가 들이 아직도 도시가 잉여가치 생산이 일어나는 현장이고 투쟁은건조된 도시환경을 포함그렇게 생산된 잉여가치를 어떻게 처분할 거냐에 관한 것, 그 생산자와 비생산자 사이의 투쟁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셨지요. 저는 이것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통찰이라 생각합니다.

 

하비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건 항상 제게 중요한 문제였어요. 도시의 투쟁이 계급투쟁이라는 점을 좌파 인사들에게 설득하기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의 계급투쟁은 상당히 다른 내용을 갖고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띠지요. 한가지 예를 들자면 마누엘 까스뗄스9)와 나는 도시문제를 탐구하는 작업에 적극 관여해왔는데, 마누엘도 초기 저작에서는 이런 문제를 계급투쟁 차원에서 즐겨 논의했고 빠리꼬뮌 등에 관해 그것들이 맑스 이론의 일부가 아니라고 보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도시와 풀뿌리』10)에 와서 그는 갑자기 이게 잉여가치 생산을 둘러싼 투쟁이 아니므로 맑스 이론과 무관하다고 결정했어요. 도시의 투쟁은 노동현장에서의 투쟁과 통합될 수 없다는 거예요. 나는 도대체 그가 왜 그런 입장을 취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물론 그때부터 그는 맑스주의 진영을 떠나 나름의 길을 걸어갔지요.

나는 왜 그가 그리해야 했는지 정말 이해가 안되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같은 말의 되풀이지만가치실현에 관한 투쟁이 생산을 둘러싼 투쟁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하는 문제로 귀착됩니다. 그래서 내가 생산에 관한 투쟁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접할 때 나는 아니다, 중국의 선전(深圳)이나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보면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우리는 다른 문제들에 대한 이해와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예컨대 마누엘의 빠리꼬뮌 해석에 따르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봉기가 아니라 도시 반란이었습니다. 나는 그 둘을 별개로 보지 않으며, 사람들이 어떻게 양자를 별개의 것으로 보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저는 여기서 마누엘을 하나의 예로, 도시의 투쟁이 근본적으로 계급투쟁이라는 생각에 적응하지 못하는 좌파 사상가의 예로 거론하고 있는 거예요. 도시의 투쟁 중에는 ‘내 뒤뜰에서는 안된다’(Not in my backyard)라고 하는 이른바 ‘님비’ 정치에 근거한 투쟁도 물론 있지요. 님비는 부르주아지가 자기 권익을 지키려는 움직임이고 그래서 저들은 폐쇄적인 주택단지를 만들고 반개발주의적이며 배타적인 도시사회운동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이게 됩니다. 도시투쟁의 영역에서는 그런 종류의 많은 쟁점과 대면해야 해요. 노동자 대 자본가라는 명료한 대립구도가 사라지고, 매사가 몹시 흐리멍덩해지지요. 동시에 분석이 훨씬 현실적이 됩니다. 나는 현실주의 편을 선택해서, 그래 좋다, 우리는 이들 투쟁을 살펴보고 그 계급적 내용을 점검하며 거기 담긴 계급적 내용을 노동자들의 투쟁과 결합해서 비판적인 정치기획을 만들어내자 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그람시(A. Gramsci)가 일찍부터1919년경이었을 거예요이런 문제에 관해 글을 썼다는 사실이 늘 인상깊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공장의 노동자평의회를 조직하는 건 좋은데 이웃주민들의 조직을 통해 평의회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고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했어요. 노동계급을 그들이 사는 동네에서 고찰하면 공장에서 만나는 노동계급의 일부가 아닌 전체 노동계급의 욕구와 소망과 욕망이 어떤 것인지를 훨씬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리 청소부와 은행 사무원, 운수업 종사자 등 보통 노동계급의 일부로 취급되지 않는 이웃들의 조직을 만들 수 있다면, 주민조직 자체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지원하는 파업을 벌일 수도 있지요. 그람시는 이렇게 공장조직에 병행하는 이웃주민조직의 중요성을 인식했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이를 일반이론으로 발전시키는 데까지는 못 갔지만, 이런 논평들을 통해 제가 이 문제를 생각하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노동현장의 투쟁은 지역공동체와 이웃들의 지원이 있을 때 성공하는 사례가 훨씬 많아요. 지역공동체의 지원이 없다면 공장을 점거 중인 노동자들에게 누가 쌘드위치를 갖다주겠어요?

 

백낙청 영국의 탄광노동자 파업 당시에 노섬브리아 지방이 더 잘 버틴 사실을 지적하신 바도 있지요.

 

하비 그건 미국에서의 고전적인 투쟁에서도 드러난 현상입니다. 예컨대 1930년대 미시간주 플린트의 자동차산업 파업 때도 이웃에 사는 주민들이 파업노동자들에게 지지와 후원을 보냈고 파업의 성공은 그 덕이 컸습니다.

 

백낙청 강연에서 선생은 뉴욕시의 어느 작은 식당 주인의 예를 드셨습니다. 고용인들에게 매우 낮은 임금을 주면서도 자신이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직원 월급을 도저히 올려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생각을 안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가 벌어들이는 돈이 다 어디로 가는가? 은행이자로 나가고 건물주에게 집세로 나가고 그런 식이지요. 그래서 그는 노동자계급에 의한 도시투쟁의 자연스러운 우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하나의 이론적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를 구별하는 고전적 기준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입니다. 식당 주인이 식당의 소유주이기 때문에 그가 생산수단을 소유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예의 고전적 기준을 완화하거나, 아니면 달리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현대세계에서 생산에 필요한 수단의 규모를 생각하고 또 소규모 자영업자들에 대한 금융기관의 지배력을 감안할 때 뉴욕시의 그 식당 주인이 과연 자신의 생산수단을 얼마나 제대로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의미로는 막대한 연봉을 받는 대기업의 경영자가주주냐 아니냐를 떠나서도생산수단의 소유자에 훨씬 가까울 것 같아요.

 

하비 맞아요.

 

백낙청 그렇다면 식당 주인은 단지 도시투쟁에서의 우군이 아니라 잠재적 노동계급 성원으로 볼 수 있겠지요. 물론 그 자신은 스스로 프롤레타리아라고 절대 생각지 않을 거고 우리가 그 점을 굳이 설득하려 할 필요도 없지요. 다만 문제는 많은 좌파 사상가들이 그가 파산을 해서 이른바 소시민계급에서 탈락하기 전는 그가 프롤레타리아트에 이미 더 가까움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하비 저는 맑스가 그의 이론적 저술에서 항상 특정한 개인들이 아닌 역할을 논한다는 점을 주목해왔습니다. 예컨대 많은 노동계급 성원들이 연금계획을 통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어요. 개인으로서는 실제로 여러 상이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거지요. 식당 주인의 경우 그는 물론 집기라든가 다른 생산수단을 소유한 상태지만 생산수단 가운데 하나는 토지 또는 공간이에요. 토지보다 공간이라 부릅시다. 식당 주인이 공간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세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산수단으로서의 공간을 다른 사람이 소유한 셈인데 공간 또는 토지야말로 기본적인 생산수단이지요. 이건 돈에도 해당합니다. 돈은 생산수단이고 자본을 창출하는 수단입니다. 『자본』 제3권에 가면 토지에 대한 지대(임대료)와 빌린 돈에 대한 이자를 검토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자본』 읽기에 약간의 실패가 있어왔어요. 사람들은 생산수단 문제를 한결 복잡하게 만드는 지대와 이자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거든요. 일정한 물리적 생산수단을 소유하더라도 토지를 통제하지 못하면 당신의 생산수단 중 상당부분을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겁니다. 따라서 뉴욕시 식당 주인의 실질적인 처지에는 이런 복합적 요소가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노동계급이라 불리기를 원하지 않지만 기본적인 생산수단인 토지와 화폐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노동계급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흔히 무시되는 폭넓은 영역의 불만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뉴욕시에서는 전통적인 가족경영 식당들이 잇달아 폐업하면서 도시생활의 결이 크게 바뀌고 있어요. 가족경영 식당이 있던 곳에 지금은 은행지점이나 체인점이 들어섰기 일쑤입니다.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삶의 질과 도시생활의 결이 파괴되고 있어요. 실제로 매우 흥미있는 항의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뉴욕시의 매디슨스퀘어에 1930년대부터 존재했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까페가 있는데 임대료가 너무 올라서 문을 닫게 됐어요. 이에 대한 공개적인 항의가 있었고, 도시생활의 질을 파괴하는 이런 일들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의 주장이 뉴욕타임즈에도 보도되었어요. 도시 일대에서 이런 종류의 쟁점들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무엇이 계급이고 무엇이 생산수단인가에 대해 우리가 좀더 개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렇게 되면 문제는 한결 복잡해져요. 도시의 상황에서는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이라는 대립의 선명성이 흐려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훨씬 더 현실적이 되고 일상생활 정치의 실상에 훨씬 근접하게 되지요.

 

 

수평성과 위계질서의 문제

 

백낙청 서울에서도 비슷한 현상과 사건 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선생께서는 현장에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점을 확인하신 걸로 압니다. 도시와 도시에 대한 권리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고 이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주제라 믿습니다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의 저술과 어제 워크샵에서도 나온 이야기로 제가 특히 흥미진진하게 여긴 것은 투쟁이나 대안사회의 조직원리와 관련해서 ‘위계질서’(hierarchy)의 문제입니다. 그동안 이 문제를 제기하시면서 개인적인 댓가도 치르신 걸로 아는데, 위계질서를 거론하는 순간 많은 생태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로부터 스딸린주의자라느니 뭐니 하는 비난이 쏟아지기 십상이거든요. 그러나 선생이 지적하셨듯이 예컨대 기후변화 같은 대형 생태문제에 대처하려면 일정한 중앙권위랄까 어떤 종류의 위계적 조직이 필수적입니다. 기후변화를 반대하고 생태계를 보호한다는 수많은 소집단들이 단지 상호간의 ‘수평적 네트워크’만 유지한 채 각자 자기 할 일을 하고 다닐 수는 없거든요. 선생은 또 「환경의 성격」이라는 글에서 일체의 위계질서를 부정하는 생태주의 또는 무정부주의 운동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심지어 “삶에 위험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11)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위계질서의 개념이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그 단어 자체를 금기시하기도 합니다. 저도 이따금 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보수주의자 내지 반동주의자로 비난받기도 했지요.

 

하비 그래요. 게다가 선생이나 나나 가부장적이라는 비난도 들을 거예요. 글쎄, 약간은 그런지도 모르지요. 위계질서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는 이미 세계 도처에 현존하는 비공식 네트워크들이 여러 종류의 현실참여활동을 상호 연결하는 일에 나의 예상 이상으로 진전한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문화생산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눈에 띄지요. 그들은 활동을 지탱해줄 어떤 조정의 틀이 필요한데, 서로 연결하고 네트워킹하며 집결하기 위해 비엔날레라든가 여타 문화행사들의 확산을 이용하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따라서 저는 네트워크 형태, 수평적 형태를 한껏 확대하자는 생각을 지지하며, 아마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나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는 현존하는 새로운 사회적 미디어 구조를 건설적이고 협동적으로 사용하는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행동을 수평적인 네트워크의 틀로 조직하려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매우 진보적인 것이고 저는 그걸 지지하고 싶어요.

 

백낙청 아, 물론이지요.

 

하비 다만 어떤 쟁점들과 관련해서는 그런 방식으로 대응이 안된다는 문제가 있어요. 기후변화라든가 대규모 인프라 구축의 경우가 그지요. 그런 큰 스케일로 작업하는 일이 유익한 것이라고 하면 모종의 위계적 통제와 생산구조 없이 어떻게 그 일을 해낼 수 있나요?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민주주의적 책임추궁이 가능한 방식의 위계질서를 찾아내는 일이지요. 내가 보기에 그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어떤 위계구조는 일단 최상급에 권한을 집중시키고 나면 풀뿌리에 대한 자신의 책임성을 단절하는 경향이 있고 그리되면 민주주의는 사라지니까요. 선거와 관련해서 보더라도, 어떤 사람이 사회운동 출신이고 매우 민주적인데 일단 시장이라든가 그런 자리에 앉으면 갑자기 다른 궤도로 가버리는 수가 있지요.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데, 그럴 때 풀뿌리 쪽의 전형적인 반응은 정치권력이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더러 배신행위가 있긴 해도 나는 그게 공정한 평가라 보진 않아요. 제가 보기에 이것은 조직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중대한 쟁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가 전부터 민주적 연방주의에 관한 머리 북친12)의 저술을 좋아한 것은 그 때문이지요. 그는 마을과 지역 단위에서 주민총회식 의사결정구조를 갖되 이들 구조를 ‘총회들의 총회’로 통합하여 더 큰 규모의 생태지역적(bioregional) 문제를 다룬다는 구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하나의 생태지역에서 물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문제는 개인이나 소지역의 결정에 맡기지 않고 해당 생태지역이 지닌 가능성과 필요에 부합하는 실천방식이 합의를 통해 출현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북친의 체계는, 우리가 이런 외부적 차원에 도달하면 사람들에 대한 관리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관리가 주된 목표라고 했던 쌩씨몽(H. de SaintSimon)의 원칙으로 되돌아간 겁니다. 저는 이게 꽤 흥미로운 사고방식이라 봐요. 실제로 사물과 사람들을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취지는 알겠어요. 곧, 모든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고자 하는데 그러자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유를 의미있게 행사하도록 해주는 어떤 물리적 기반들을 집단적으로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토론해볼 필요가 절실한 문제입니다.

어떻든 저는 제가 수평적 조직형태의 물신숭배라 부르는 경향을 매우 개탄한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표명해놓은 바 있습니다. 수평적 조직형태가 신성불가침이 되어 비판이나 평가를 하면 안되는 분위기인데, 정작 이런 조직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위계질서의 수상쩍은 형태와 새로운 권력구조가 정립되는 은밀한 방식이 눈에 띄기도 하지요.

 

백낙청 우리가 한층 유연하고 현실적인 조직원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어떤 위계질서가 좋다든가 이롭고, 어떤 위계질서는 그렇지 않으며, 어떻게 좋은 위계질서를 확보하느냐는 문제에 원만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평등의 문제도 좀더 깊이 탐구해서, 어떤 것이 좋은 평등이며 어떤 것이 아닌가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지요? 맑스도제가 틀렸으면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만평등 자체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은 걸로 압니다. 그는 계급사회의 철폐를 주장했지만 삶의 대안적 비전을 논할 때는 주로 개성의 온전한 발달이라든가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자발적 연합 등을 말하지요. 저는 이런 것도 평등의 물신화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비 예, 맞아요. 저는 여러 차원에서 평등을 지지하지 않는 편입니다. 아마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다면, 저는 인생기회의 평등을 지지하지만 결과의 평등은 결코 지지하지 않아요. 사회를 매력 넘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차이의 생산이라 믿습니다. 예컨대 저는 지리적으로 불균등한 발전이 근절되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불균등한 지리적 발전은 실제로 극히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도시의 상이한 공간들, 각기 그 느낌이 다르고 일상생활의 결이 다른 공간들을 찾아가보기를 좋아하고, 그래서 다양성이라는 걸 굉장히 중요시해요. 하지만 어느 지점에선가 우리는 이를 완화해서, 그러한 차이들이 도시의 한쪽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기회가 다른 쪽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축소되어서는 안된다는 이념도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컨대 기대수명 같은 인생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되지만, 취미와 존재의 동질성이 강요되는 환경을 만들지는 말아야지요. 제가 항상 아이러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맑스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그가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들고자 한다는 거예요. 게다가 이런 비판이 도처에서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자본주의 측에서 나오는 겁니다. 도대체 누가 모든 걸 똑같이 만드느라 분주하단 말인가요? 실제로 문화적 범좌파 세력은 차이의 보존, 문화적 차이와 취미 및 생활양식의 차이를 보존하는 데 가장 열성적인 사회집단입니다. 평등을 물신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선생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자발성과 지혜가 발현된다면

 

백낙청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가보면 어떨까요? 평등한 인생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결과의 불평등이 가능케 하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데서 한걸음 더 나가, 성취된 지혜라든가 삶을 제대로 사는 진정한 능력이라든가 뭐 그런 것에서의 일종의 불균등 개념을 정립했으면 하는 겁니다. 제가 한때 외국에서 ‘hierarchy of wisdom’(지혜의 위계질서)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아주 부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하비 아, 그러다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꼭 좋지요.(웃음)

 

백낙청 ‘위계질서’만 해도 안 좋은 단어인데, 영어로 wisdom이라고 하면 인생을 사는 실용적인 슬기 정도를 생각하게 되지요. 그러나 제가 뜻했던 것은 차라리 불교적 의미의 지혜, 진정한 깨달음에서 나오는 지혜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지혜의 위계질서’는 별로 안 좋은 표현이었고 아직껏 딱 맞는 표현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취지는 자발적인 복종이나 리더십의 수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자연스러운 권위를 쌓은 사람들을 존중하도록 교육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건 흔히 말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와 달라요. 이른바 능력주의의 주된 문제는 ‘능력’이 기존 체제 안에서의 경쟁력 위주로 평가된다는 점인데, 제가 말하는 지혜는 ‘나쁜 불평등’에 해당하는 온갖 억압적인 차별이 제거되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될 수 있는 성질이거든요.

 

하비 저는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겠어요. 딱히 그런 길을 택하고 싶진 않아요. 제가 『희망의 공간들』13)의 끝부분에 삽입한 유토피아적 스케치에서는 사람들이 권위 같은 걸 갖는 게 아니라 그들이 이룩한 소양에 대한 존중심을 갖고 그래서 이걸 존중하는 사람이 그들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상황을 그려보았습니다. 그 대목에서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누구나 안식년을 얻어서 7년에 한번씩 하던 일을 다 놓고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일을 해본다는 거였어요. 가령 음악에 관심이 많고 찾아가 배우고 싶은 훌륭한 음악가가 있다고 할 때 안식년에 그걸 해보는 거예요. 그러나 이건 복종 같은 건 전혀 아니고, 일정한 기량을 습득하려는 욕망이지요. 저 자신은 피아노 치는 걸 정말 배우고 싶어요. 어릴 때 좀 배우기는 했는데 제대로 계속하지 않은 게 늘 아쉬워요. 내게 안식년이 주어진다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서 그런 식으로 해볼 수도 있지요. 선생이 말씀하는 건 어쩌면 성취의 일정한 불균등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싶어하는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복종이라기보다 따라하기라 부르고 싶어요. 물론 자신이 매우 좋아하고 존중하는 걸 따라하는 거지요. 당연히 그건 전적으로 자발적인 성격이고요.

 

백낙청 자발적인 건 물론이고 어떤 고정된 권위에 대한 복종도 아니지요. 피아노 선생님은 자신의 안식년이 왔을 때 선생을 찾아와서 『자본』 읽기를 배울 수도 있어요. 요는 단순한 기예나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삶이 요구하는 어떤 본질적인 능력, 예컨대 불교에서 말하는 ‘법력’이라든가 동아시아에서 ‘도()’라 부르는 차원의 능력을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법(dharma)을 인생의 이런저런 구체적 상황에 응용할 때 특정 법사가 항상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닙니다. 만약에 어느 법사가 그런 시도를 한다면 도리어 그의 법사 자격과 지혜가 의심스러워질 테지요.

불교나 ‘도’를 끌어들이는 게 가장 적절한 의사전달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인정합니다. 차라리 어제 워크샵에서 제기된 E. P. 톰슨의 ‘욕망의 교육’(education of desire)이라는 개념이 더 유용할지 모르겠어요.14) ‘지자(智者)’란 지성이나 실천력뿐만 아니라 욕망 차원에서도 더 훌륭하게 교육된 사람이라 할 수 있거든요. 어쨌든 저의 취지는, 우리가 사회나 조직에 꼭 필요한 ‘좋은 위계질서’를 확보하려면 평등과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 이상의 어떤 교육과 조직의 원리를 탐구해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꼭 필요한 현실적 요구에 부응할 ‘좋은’ 불평등 내지 불균등을 인정하고 그런 지혜를 보급하는 교육을 하여 궁극적으로는 그런 바람직한 차이마저 축소하는 데 기여할 교육 말이지요.

 

하비 저는 거기까지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나 같으면 교육 구도의 반대쪽 극에서 시작하겠어요. 어제 나는 프레이리의 『페다고지』15)를 좋아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의 교육학은 민중이 일단의 물신화된 개념들, 그람시가 정의한 ‘나쁜 상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이지요. 기존의 편견으로부터 민중을 해방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 과정이 시작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 못하지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문을 여는 일과 같습니다. 그야말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인 거예요. 저는 선생의 말씀 중에 함축된 어떤 성취의 기준보다는 그런 식의 생각을 선호합니다. 일정한 성취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책임을 지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백낙청 글쎄요, 제가 아직 딱 맞는 표현을 찾지 못한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군요.(웃음) 아무튼 선생께서는 ‘선무한’(good infinity), 곧 좋은 무한대를 말씀하시면서 맑스의 ‘단순재생산’(simple reproduction) 개념을 언급하셨는데,16) 단순재생산이 문자 그대로 제로 성장일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복률성장(compound growth)이 아닌 단순재생산이 주된 목표가 되자면 새로운 사회제도뿐 아니라 전혀 달리 교육받은 시민들이 필요하리라는 점은 분명하지요.

 

하비 물론이지요. 맑스 이론에 따르면 단순재생산이 붕괴되는 이유는 이윤추구가 자본의 유통과정에서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윤추구는 곧 확장을 의미하고 이는 우리가 당면한 ‘악무한’(bad infinity)을 낳습니다. 영원한 복률성장은 불가능한 일이고 온갖 스트레스 현상을 낳기 시작하지요.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이 이윤동기 없이 사회생활의 단순재생산을 지속할 활동의 유인(誘因)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재생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집단적 의식을 요구합니다. 물론 과거 농민생활의 단순재생산을 생각해보면 그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거지요. 사람들이 자신들을 재생산하고, 이는 ‘선무한’, 사회가 대대로 자기재생산을 할 수 있는 좋은 무한대예요. 자본주의가 그것과 결별했고 지금은 끝없는 성장이 대세입니다. 농민사회에 존재하던 인센티브들은 물론 대개가 곡식을 재배해서 농사철이 끝난 뒤 빵을 확보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순환주기에 직결되었고 주어진 사회구조 내부에서 장려되는 여러가지와 직결돼 있었지요. 이제 우리는 한층 복잡한 사회를 어떤 식으로든 재생산할 수 있는 인센티브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개인주의적 성공을 생각하는 시대에 그 일을 해내기가 무척 힘들지요. 따라서 우리는 개인주의를 무너뜨리고 이윤동기를 척결하며 사람들이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 충분한 만큼 일하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방안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의식의 일대 변모를 요할 것이라는 선생의 생각은 맞습니다. 사람들은 글쎄 그게 되겠냐고들 하는데, 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며 살아왔고 지난 삼사십년간선생도 그러셨겠지만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는 것을 목도했노라고 답합니다. 의식의 변화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단지 장기간에 걸친 과정일 따름이지요. 지금 우리는 모두 197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식으로 신자유주의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변화는 가능하고 극적인 변화도 가능합니다. 중국에 가서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중국에서는 누구나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점이었어요. 서방세계는 지금 엄청 비관적이에요. 중국에서 우리가 비판할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변화는 가능하고 급속한 변화가 가능하며 실제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아는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가능하며, 중국에서 일어난 일들은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는 실제로 한층 나아지는 변화였습니다.

 

 

신자유주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한가

 

백낙청 이제 자본의 현 상황 문제로 돌아가봅시다. 선생은 자본가계급이 현재 완전히 혼란상태에 빠졌고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할지 전혀 모르고 있으며 정치는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 중이라고 하셨어요. 미국에서의 트럼프(D. Trump) 현상이라든가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등을 예로 드셨지요.17) 오늘날 한국의 상황도 저는 비슷하다고 봐요. 물론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 하나는 한국이 분단된 한반도의 일부라는 점입니다. 제가 분단체제라고 부르는 것이 남한의 자본주의체제를 지탱해주는 하나의 기둥 역할을 하고 북녘의 이른바 사회주의체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분단체제 자체도 이제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어요. 한국의 정치는 지금 거의 ‘미쳐 돌아가는’ 수준인데, 다만 한국인과 중국인의 공통점 하나는 사람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포함해서 많은 변화를 보아왔고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아직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점이 한국과 일본이 다른 점인지도 모르겠는데, 요즘은 일본에서도 사람들이 깨어나고 너무 분노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과 유럽으로 돌아가서, 선생은 자본가계급이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하셨는데, 1973년의 위기 이후 그들이 산출한 신자유주의 처방이 효능을 잃었다는 이야긴가요?

 

하비 신자유주의 처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지요. 저는 처음부터 그것이 권력을 과두체제로 돌려놓고 집중하기 위한 계급적 기획이라고 보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 계급적 프로젝트는 지금도 건재합니다. 1930년대를 보면 기존 체제를 대신할 대안적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사상과 논의가 그 시대에 대량으로 생산됐습니다. 국가의 역할이 바뀔 수 있고 경제의 운용이 바뀔 수 있으며 케인즈( J. M. Keynes)의 경제이론이 갑자기 실현 가능해졌습니다. 고장난 게 분명한 자본주의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한 사고개념들의 변모를 위기가 촉발했던 거지요. 이때 나타난 새로운 사고방식과 새로운 정치적 실천이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1945년 이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970년대로 오면 또 성찰의 시기가 있고 새로운 이론들이 나왔으며 케인즈가 배척당하고 공급자 위주의 경제학이 대두하고 권력구조의 이전이 일어나고 제도가 달라지고 사고방식이 바뀌기 시작하고…… 그래서 1970년대에 여전히 자본주의 입장에서 새로운 답안이내가 싫어하는 답안이지만만들어지지요.

2008년 이후로 주목되는 점은 그런 성찰이 전혀 안 보인다는 겁니다. 정치권력이 하는 일들을 보면 그냥 예전에 내놓던 똑같은 처방을 내주고 있어요. 한두군데 약간 손질만 해서요. 유일한 예외는 중국이 주도하는 확장인데 이는 엄밀한 의미로 케인즈식은 아니지만 1945년 이후 미국이 한 일과 매우 흡사합니다. 하지만 진짜 새로운 사고, 새로운 처방은 안 나오고 있어요. 어디선가 무엇이 진행 중인데 내가 모를 수도 있지만요. 어쨌든 예전과 같은 토론과 논쟁과 발효상태가 내 눈에는 안 들어옵니다. IMF가 또 하나의 암담한 예측을 내놓고 똑같은 구조조정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보일 뿐이에요. 이것이 요즘 내가 거듭 비판하는 점 중에 하나, 곧 모두가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만 말하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에는 관심이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IMF는 지금 미국경제가 난항이 예상된다, 노동참여율이 내려가고 있고 생산율이 매우 낮으며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등의 얘기를 합니다. 이건 대단히 비관적인 전망인데 그럼에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전체 경제를 재구성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중국경제가 딱히 침체는 아니지만 그 동력이 저하하는 상황에서 세계자본주의는 큰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통화공급을 계속 늘리는 것뿐이에요. 각국의 중앙은행은 마치 그게 해결책이나 되는 것처럼 세계의 통화량에 새로운 0을 추가하고 있어요. 이런 게 ‘악무한’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래서 저는 철저한 사고를 하며 경제체제를 전환하려는 전투적 자세가 더 많이 보이지 않는 게 무척 놀랍습니다. 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설은 건재하며 그 어느때 못지않게 강력하고, 대학들은 점점 신자유주의적 기업구조의 지배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고가 어디서 나오려는지요?

 

백낙청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 이념은 2008년 이후로 빛이 바랬다고 생각되는데요.

 

하비 정당성은 상실했지만 그 실행력은 여전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당성 대신에 들어선 것이 세상을 바꾸려는 일체의 진정한 투쟁에 대한 권위주의적이고 군사화된 통제이지요. 신자유주의가 그 정당성을 상실했을지 모르지만 모든 반대세력을 군사적 대응이 필요한 테러리즘으로 규정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백낙청 한국에서 저는 많은 진보적 동료들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너무 쉽게 휘둘러대는 점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예컨대 그들은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수행하는 매개역할을 완전히 무시하기 일쑤지요. 지구 차원의 신자유주의가 한국에도 적용되는 건 틀림없지만 이곳에서는 남북의 분단과 대결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작용이 악화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무튼 저는 신자유주의가 자산가치 이전을 위한 기획으로서 지금도 건재하다는 선생의 진단에 동의합니다. 저 자신은 신자유주의를 ‘인간의 가면을 벗어던진 자본주의’라 일컬은 바 있습니다만,18)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 이야기를 한때 많이들 했는데 요즘은 별로 그런 말이 안 들리지요.

 

하비 예, 나도 그게 대충 사라진 게 눈에 띄어요.

 

백낙청 저의 취지는 자본주의의 소위 인간의 얼굴이라는 게 원래 가면이었다는 거지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게 진짜 얼굴이라 믿었지만요.

 

하비 나눔의 경제라든가 윤리적 경제라는 식으로 가면을 다시 만들어내려는 시도들이 있기는 하지요. 그런 프로그램이 일부 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는 않아요.

 

백낙청 1970년대에 자본가계급의 지도자들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다분히 원시적 내지 야만적인 자본주의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 같아요.

 

하비 『자본』 제1권에 기술된 행태로 돌아가기로 한 거지요.

 

백낙청 본원적 축적 챕터를 포함한 『자본』 제1권으로요.

 

하비 예, 틀림없이요.

 

백낙청 그런데 동시에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또다른 가면일 수 있어요. ‘신〓새로운’이라든가 ‘자유주의’가 모두 어떤 의미로는 긍정적인 용어들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면이 있어요.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실제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일정하게 결합한다든가 심지어 사회민주주의로 진화하기 이전 단계로 돌아가자는 것이니까 진짜로 새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도 아니에요. 원래 자유주의는 개인들과 개인 사업가의 자유를 뜻한 것이지, 신자유주의의 수혜자인 법인들, 대기업들의 자유를 제창한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가면을 만난 셈인데 선생도 동의하셨듯이 이 가면조차 2008년 이후로는 너덜너덜해졌습니다.

 

하비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제가 반신자유주의자가 아닌 반자본주의자로 자처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면서도 반자본주의는 아니에요. 저는 반자본주의자가 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그러니까 신자유주의에 너무 집중할 때의 또다른 폐단은 자본주의의 실상을 은폐한다는 것이요.

 

하비 그렇습니다.

 

 

영토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 기로에 선 중국·인도

 

백낙청 선생이 중국이 자본주의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있다는 비유를 하셨을 때 제가 호랑이가 얼마나 건강하냐, 얼마나 더 오래 살리라고 예상되느냐에 많은 것이 달렸다고 말씀드렸지요. 미국과 유럽의 중심부 자본가계급이 실제로 엉망인 상태고 통제력을 상실했다면 영토 논리와 자본주의 논리를 자기네 식으로 새롭게 결합하려는 중국 측의 노력이 얼핏 보기보다 큰 잠재력을 지닌 게 아닐까요? 물론 저들의 구호가 말하는 대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요. 정반대로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 일단 가담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사민주의 비슷한, 사민주의랄 수는 없지만 어쨌든 좀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어떤 면에서는 자신들의 사회주의혁명 유산을 보존하려는 일종의 후위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정말 엄청 큰 나라예요. 면적으로만 치면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그리 큰 건 아니고 러시아보다 작지만, 거대한 인구와 장구한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선생이 ‘이질장소적’(heterotopic)이라 부르시는 요소들을 굉장히 여럿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의 호랑이가 드디어 쓰러질 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많은 잠재력들을 일종의 지연작전으로도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동아시아 잡지 회의에서 중국사회과학원 소속의 쑨 거(孫歌)라는 중국 지식인이 한 말인데요, 사람들이 마치 중국이 완성된 국민국가인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고, 실제로 중국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무엇이며 장차 무엇이 될지 아직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봐요. 물론 국제무대에서 중국은 강력한 국민국가로 행세하고 있지만, 중국 내부는 옛날 제국과 근대적 국민국가와 그밖에 확실히 규정하기 힘든 여러 요소들의 복합체라고 봅니다. 실제로 중국이 완성된 국민국가로 가느냐 여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텐데, 저는 동아시아 지역의 화합과 균형을 위해서나 선생께서 앞서 최근 중국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거대한 투자활동을 두고 우려를 표명하신 지구적 생태 문제의 관점에서나 중국의 완전한 국민국가화는 크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저는 중국이 호랑이한테 먹히지 않고 꼬리를 붙잡고 충분히 오랜 시간을 견딘다면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복잡한 요인들이 중국 내부에 꽤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비 그건 미국의 경우, 적어도 지난날 미국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미국의 남부는 노예제도의 유산이라든가 인종관계의 특수한 역사로 인해 상당한 이질성을 보였고 미국의 서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 내의 지역주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지요. 그리고 요즘 경제신문들이 전망하는 것을 보면, 중국의 거대한 라이벌은 인도예요. 인도의 임노동력 규모는 중국보다 빨리 성장하고 있지요. 중국은 지정학적 차원에서 인구문제에 당면하는 것 같고 그래서 경제활동의 상당부분을 방글라데시,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로 외주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 세계금융체제로 편입되는 것이 꽤나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따라서 제가 무한성장의 미래에 관해 비관적이라 할 때는 장기적으로 그렇다는 뜻이고 단기적으로는 ‘호랑이 꼬리를 붙잡고’ 살아남는 지역들이 있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서 그들이 붙들고 있는 호랑이에게 상당량의 에너지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2008년 이후 중국이 세계자본주의에 해준 일이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몰락하는 걸 중국이 실질적으로 건져줬어요. 그게 중국 집권당의 의도는 결코 아니었다고 보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한 거지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의 영토 논리와 자본축적의 논리 사이의 관계를 주목할 것을 강조하고, 그들의 영토 논리가 상당부분 자본축적의 논리에 종속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영토 논리를 유지하는 일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관리하느냐에 좌우되는데, 이것이 자본주의 전체에 이득이 될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인도에서도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인도는 매우 급속히 증가하는 거대 인구를 가진 나라예요. 인도에서는 분명히 지금 매우 악랄한 본원적 축적 과정이 진행되고 있어요. 중국에서도 어느정도 보아온 농민사회의 파괴라든가…… 우리는 미래의 자본축적이 의존할 수 있는 이들 두개의 주된 동력자원을 보유한 세계자본주의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력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저들 자신의 영토 논리와 절충을 해야 되겠지요. 하지만 영토 논리와 자본주의 논리 사이에서 이게 어떻게 전개될지는 물론 제가 알지 못합니다. 저는 두 논리의 전개를 지켜보면서 그 진행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동력을 분석하며 이해하고자 하는데,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를 세계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해하려 합니다.

 

 

함께 가는 변혁으로의 길

 

백낙청 그런데 저는 미국의 지역적 다양성을 중국의 다양성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보는데요.

 

하비 지금은 아니지만 1945년 시점에서 본다면……

 

백낙청 1945년이라 해도 저는 다를 거라 생각해요. 아주 간단하면서도 눈길을 끄는 한가지 예만 들자면 중국에서는 별로 멀지 않은 지역 사람들끼리도 자기네 사투리를 쓰면 서로 못 알아듣는 경우가 흔하거든요. 한 사오궁(韓少功)이라는 매우 훌륭한 중국 작가가 있는데 몇해 전 서울에 왔을 때 만났어요. 그는 후난(湖南)성 출신인데아시다시피 후난은 마오 쩌둥(毛澤東)의 고향이기도 하지요문화대혁명 때 시골로 하방(下放)을 당해 같은 후난성의 다른 지역으로 갔답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의 말을 도무지 못 알아듣겠더라는 거예요. 그런 식의 다양성은 미국에 없지요. 미국의 백인 정착민들에게는 그런 지역적·언어적 다양성을 형성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 점에서는 인도가 더 방불한 비교대상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어쨌든 사회주의혁명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 두 나라의 차이겠지요.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어냈는지는 의문이지만 집단적 경험의 특이한 유산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그 유산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도 많은 것이 달렸습니다. 러시아와는 달리 중국의 지도부는 혁명의 유산을 공식적으로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러시아에서도 볼셰비끼혁명의 유산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생각지 않지만요. 인도에는 또 인도 나름의 반자본주의적 유산이 풍부하지요.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집단적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유산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제 우리 논의를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군요. 선생의 마무리 발언을 듣기 전에 저는 선생이 역사적지리적 유물론(historicalgeographical materialism)이라 부르시는 것이 실은 그람시가 정의한 ‘양식’
(good sense)일 따름이고,19) 선생의 방한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양식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그것을 되도록 널리 ‘상식’으로 만드는 일은 저희들 몫이겠지요.

 

하비 제가 역사적지리적 유물론 차원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를 하나로 연결해주고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전지구적 공유지에 관해 적어도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맑스의 언어를 쓰자면‘모순적 통일성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선생이 잘 지적하신 언어적 다양성을 포함한 다양성과 차이를 감안하는 일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우리가 보유한 양대 전지구적 공유지는 땅과 언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 저는 다른 땅에 와서 다른 언어로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들과 회화하고 있음에도 소통이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러한 분리선들을 넘어 대화하는 이런 특별한 기회를 마련해주신 데 감사드리고, 선생과 창비사 그리고 계간지가 지난 50년 동안 이룩한 중요한 업적과 공헌에 축하를 보냅니다.

 

백낙청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기서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1) 본지 수록 「실현의 위기와 일상생활의 변모」 참조. 본 대담의 각주는 모두 편집자 주임.

2) David Harvey, Rebel Cities, Verso 2013; 국역본 데이비드 하비 『반란의 도시』,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2014.

3) David Harvey,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Blackwell 1989. 국역본 데이비드 하비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구동회·박영민 옮김, 한울 1994.

4) David Harvey, Companion to Marxs Capital, Volume 1, Verso 2010; Companion to Marxs Capital, Volume 2, Verso 2013. 국역본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1』, 강신준 옮김, 창비 2011;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2』, 강신준 옮김, 창비 2016.

5) 본지 수록 「중국 ‘일대일로’의 지정학적 경제학」 참조.

6) 이는 뒤에 언급되는 조반니 아리기에서 가져온 개념인 듯. G. Arrighi, The Long Twentieth Century: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Our Time (1994, 2009), 국역본 『장기 20세기』, 그린비 2008 참조.

7) Giovanni Arrighi (1937-2009), 이딸리아 출신의 사회학자, 경제학자. 저서로 The Long Twentieth Century, Chaos and Governance in the Modern World System (with Beverly Silver, 1999), Adam Smith in Beijing (2007). 국역본 『장기 20세기』(백승욱 옮김),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최흥주 옮김, 모티브북 2008),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강진아 옮김, 길 2009) 등이 있으며,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로 한때 하비의 동료이기도 했다. 하비가 인터뷰한 그의 자전적 회고담 “The Winding Paths of Capital”이 그의 사후 New Left Review 2009년 3-4월호에 게재된 바 있다.

8)TheNewImperialism,” The Ways of the World,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259면.

9) Manuel Castells Oliván (1942- ), 스페인 출신의 사회학자.

10) Manuel Castells, The City and the Grassroot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3.

11)The Nature of Environment,” The Ways of the World, 206면.

12) Murray Bookchin (1921-2006), 미국의 사상가. ‘사회적 생태학’을 제기했고, 개인주의적이고 비정치적인 당대 미국의 무정부주의자들에 반발하여 ‘사회적 무정부주의’, ‘자유론적 지방자치주의’(libertarian municipalism)(대문자를 사용하여 다른 지방자치주의와 구별하는) Communalism을 제창했다.

13) David Harvey, Spaces of Hop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0. 국역본 데이비드 하비 『희망의 공간』, 최병두 옮김, 한울 2001.

14) E. P. Thompson, William Morris: Romantic to Revolutionary (Merlin Press 1955), 개정판(1976), 저자후기 참조. 국역본 에드워드 파머 톰슨 『윌리엄 모리스』(전2권), 윤효녕 외 옮김, 한길사 2012.

15) Paulo Freire (1921-1997), Pedagogy of the Oppressed [1968], tr. Myra Bergman Ramos (1970, 2000). 국역본 파울루 프레이리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 남경태 옮김, 그린비 2009.

16) 본지 94면 참조.

17) 영국의 국민투표는 대담 바로 다음날 시행되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는데 워크샵에서 하비는 이런 국민투표를 하게 된 것 자체가 지배계급의 무능을 뜻하는 것이고 결과에 관계없이 지배계급이 사태를 통제할 능력은 크게 약화되리라고 내다보았다.

18) 백낙청 「다시 지혜의 시대를 위하여」,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104면.

19) 앞서 하비가 잠시 언급했듯이 그람시는 상식이 다 좋은 건 아니고 나쁜 상식도 있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것은 양식(良識)이라고 말한 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