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준영 奇俊英

1972년 서울 출생. 2009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장편 『와일드 펀치』, 소설집 『연애소설』 등이 있음. ariel_1@naver.com

 

 

 

조이

 

 

윤재는 그 밤에 문정과 무슨 얘기를 나눠야 좋을지 몰라 걱정이 됐다. 자매끼리 얼굴을 마주 보는 것도, 한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도 모두 7년 만의 일이었다. 할 만한 말들을 메모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우선, 조카들 선물을 고르느라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무난할 것 같았다. 지난여름 처음으로 자취방을 구했다는 사실 정도는 웃으면서 전할 만했고, 엄마와는 가끔씩 연락해 얼굴을 보고 지낸다는 말은 할 수도, 안할 수도 있었다. 어렸을 적 추억을 화제삼는 건 문정에게는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니 당일 분위기를 봐야 할 터였다. 아빠가 작년에 많이 아팠다는 얘기는 꺼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막막해졌다.

부모의 이혼 후에 윤재는 아빠를 따라가 살게 됐고, 문정은 애인과 함께 해남으로 떠난 뒤 가족들과 연을 끊었다. 윤재의 나이 열셋, 문정의 나이 스무살 때의 일이었다. 윤재는 문정이 아빠의 문자메시지에 어쩌다 한번씩 답을 보내왔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윤재가 알기로는 부녀가 주고받은 그 메시지들은 그리움이나 슬픔을 자아내는 감정의 교신 같은 게 아니었다. 아빠는 어색하게 다정한 인사를, 문정은 분명하게 건조한 대답을 보내며 관계의 한계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을 뿐인데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삶은 각자의 자리에 따로 놓여 있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은 이미 지나가버린 뒤였다.

윤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자 이후 몇년에 걸쳐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노력들을 찾았다. 그중 하나는 문정을 어렸을 적 함께 지내다 헤어진 성숙한 친구의 자리에 두는 것이었다. 멀리 전학을 가서 볼 수 없게 된 연상의 친구. 마음의 먼 자리로 물러난 친구에게는 적어도 원망이나 큰 기대감 없이 소식을 선별해 전할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서 나랑 제일 친한 친구는 정이야. 지난주에 걔가 기르던 햄스터가 죽어서 같이 산책로에 묻었어. 정이가 가끔 햄스터 이름 토리 앞에 내 이름을 붙여서 윤재토리라고 불렀는데, 이제 그런 장난은 칠 수가 없게 됐어.’

이 정도가 개중에 어느정도는 마음을 담아본 경우였다. 답신으로는 문자 대신 이모티콘을 받았다. 우는 얼굴 하나와 하트 하나.

지난 7년간 문정이 윤재에게 제 소식을 전해준 경우는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혼인신고를 했다, 시누이가 대장부다, 쌍둥이를 낳았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는 사실 정보들을 공지나 통보 식의 단문으로 보낸 거였다. 거기에 윤재가 나서서 ‘아!’나 ‘어!’ 이상의 반응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석은 없어 보였다. 사실 뭘 해야 할지 잘 알지도 못했다. 그러니 2주 전의 통화는 아주 이례적인 것이었는데, 문정은 윤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자기가 지금 서울에 있다면서 처음으로 정확한 주소를 윤재에게 전해주었다.

“크리스마스엔 뭐 해? 서울엔 안 오니?”

윤재는 멍하니 서서 문정의 그 명랑한 목소리를 낯설게 ‘경험’했다. 어떻게 지냈는가를 묻지도 답하지도 않은 채, 마치 가능하면 그냥 들러나 가라는 식으로 말하는 그 목소리에는 대답을 기원하는 간절함이나 오해를 두려워하는 망설임 같은 게 없었다. 거기에 대고 크리스마스 따위가 특별했던 적 없지 않느냐고 되묻는 건 덜 자란 아이의 수틀린 반항밖에 되지 않을 듯했다. 윤재는 “갈게”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이전 통화는 3년 전쯤에 있었다. 그때 문정은 불쑥 새엄마가 잘해주느냐고 물었고, 윤재는 특별히 그러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다음 질문은 새엄마가 미인이냐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 말에 농담기가 섞여 있다는 걸 알아챌 만큼은 정신이 들었기에 윤재는 그렇다고 대꾸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새엄마는 친엄마보다는 객관적으로 보아 미인이었다. 아빠와 선을 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살림을 합친 경우로, 아빠한테 살가운 사람이었다. 누구나의 인생에 저마다 복이 하나씩은 있다는 걸 그런대로 긍정할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윤재는 줄곧 대전에서 살면서 십대를 보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가요 후렴구에 심취한 아빠를 뒀다. 그녀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나중에 곱씹지 않도록 올해 크리스마스를 되도록 잘 보내고 싶었다. 실수라도 저질러 나중에 그 회상 전체를 물리치려고 도리질치게 되면 어떡하나 근심스러웠다. 하지만 이 만남에 스스로 계획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낙담했고, 그래서 고민하던 밤의 한순간 실제보다 아주 작은 사람이 됐다. 스무살의 극장 매표원. 그외에는 자신을 문정에게 무어라고 소개할 수 있을지 감감했다.

윤재는 문정과 통화를 한 그 주에 바로 극장 운영자에게 양해를 구해 23일부터 5일간의 휴가를 얻어놓았다. 약속일인 크리스마스이브를 전후해 며칠간은 조용히 혼자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운영자는 난감하다면서도 윤재에게 굳이 사정을 따져 묻지는 않았다. 연중무휴에 현금거래를 원칙으로 하는 이 단관극장에서 윤재는 성실하고 꼼꼼한 직원이었다.

극장은 200석 규모의 상영관과 라운지로 구성된 공간으로 번화가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4층짜리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사람들이 상영관까지 오르는 방법은 계단을 이용하는 것뿐이었고, 극장의 간판은 1층에 자리한 제화점 간판보다 작고 단순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외관과는 달리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라운지에 아기자기한 테이블과 소품들이 배치돼 있는 게 한눈에 들어왔고, 각종 영화 포스터와 리플릿을 전시하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어 관객들에게 ‘의외의 발견’을 했다는 기분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흥행성 위주가 아닌 나름의 기준으로 상영작들을 안배했다. 우연히, 순전한 호기심 때문에 이곳에 들렀던 사람이더라도 언젠가는 열혈 관객이 되어 빗길이나 눈길을 뚫고 다시 찾아오거나, 새 프로그램을 알리는 극장의 메일링 서비스를 기다리는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윤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이 작은 세계의 한 귀퉁이에서 지난 9개월간 아무런 미래도 그리지 않으며 보냈다. 집에서 나와 방을 얻어 시작한 새 생활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한동안 다른 시름 없이, 단순한 습관을 이어붙인 나날을 살고 싶었다. 그럼에도 한해가 저물어갈 때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달은 그녀에게도 다가올 날에 대한 질문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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